考古學

풍납동 유래

吾心竹--오심죽-- 2009. 1. 23. 13:14
동유래
마을에 바람드리성, 즉 풍납리토성이 있으므로 '바람드리' 또는 한자음으로 '풍납리(風納里)'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일설에는 이 토성을 사성(蛇城)이라고도 하는데, 사(蛇)는 '배암'으로서 '바람'과 음이 유사하고, 또 '드리'는 납(納)의 뜻이 아니라 평야의 뜻인 '들'로서 고대에는 취락의 성읍(城邑)을 뜻하는 말이며 그 발음은 '들'이외에 '들' '드라' '드레' '다라' '달래' '드르' 등 방음이 많다. 따라서 '바람드리'는 사성(蛇城)을 말하는 '배암드르' 혹은 '배암드리'의 와전이며, 백제시대에는 한자로 사성(蛇城)이라 썼지만 구두(口頭)로 방음을 사용한 것이 '바람드리'로 되어 풍납으로 표기되어진 것 같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후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에 속하여 있었다. 그 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 111호에 의거하여 경기도 내 각 면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이 지역의 웃바람드리ㆍ아랫바람드리 등 자연부락을 병합하여 풍납리라 하였다.

그후 1963년 대통령령 제 7816호에 의해 강남구가 신설됨으로써 이에 속하게 되었고, 곧 이어 1979년 대통령령 제 9630호로 강동구가 신설되자 다시 이에 속하게 되었다. 1988년 대통령령 제 12367호에 의해 강동구에서 송파구가 분리 신설됨으로써 이에 속하여 오늘에 이른다.

 

 

 

세발토기(三足土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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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명칭 : 세발토기(三足土器)
국적/시대 : 한국(韓國) / 백제(百濟)
재질 : 토제(土製) / ()
용도/기능 : 사회생활(社會生活) / 의례생활(儀禮生活) / 제례(祭禮) / 제기(祭器)
소장처 : 학교(學校) / 한국교원대(한국교원대)
유물번호 : 기증(기증) 87
3D :
1. 정의(개요)

이 백제토기는 소형의 뚜껑을 갖춘 경질(硬質) 세발토기이다.



2. 특징

이 토기는 뚜껑을 갖춘 소형의 세발토기로 경질이다. 세발토기는 백제 지역에서만 출토되는 특이한 것으로 주로 제사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토기는 충남 부여에서 출토된 것이다. 아랫부분의 토기는 내부의 가운데 부분이 약간 움푹하다. 비교적 높은 테두리가 직립하였는데, 뚜껑을 받기 위한 턱이 마련되어 있다. 밑부분에는 양각한 원문이 전체를 두르고 있다. 세발을 깎아 적당한 간격을 두고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하였는데, 치우쳐 있다. 뚜?에는 단추 모양의 손잡이가 달렸으며, 토기부분과 결합하도록 아래로 턱을 마련하였다. 뚜껑과 토기의 구연부에 파손된 부분이 있으나, 유물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실측치: 전체높이 7.1cm, 뚜껑지름 11.7cm, 두껑높이 3.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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