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백제 사람들도 차를 맛보았을 것이다.
Camellia sinensis O. Kuztze, 차(茶)의 학명이다.
전세계의 차과 식물은 23속(屬) 380여종,
그 가운데 중국의 윈난(雲南), 꿰이조우(貴州), 스촨(四川) 등지에 15속 260여종이 분포하고 있다.
중국의 서남부 지역은 차의 원산지이자 고향이다. 이곳에는 수령 1700년된 자연산 차나무가 남아 있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오늘날 전세계 160개국의 약 30억 인구가 차를 마시고 있으며,
차를 생산하는 나라는 50여개국에 이른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차를 마셨을 까?
중국의 전설상 농업신인 신농(神農)이 여러 식물들의 독성 여부를 시험하다
하루에 72가지의 독을 만나 차를 얻어 해독하였다는 내용이 전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이 이용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차는 일년에 3차례 새싹이 돋는다. 봄, 여름, 가을에 각각 춘차, 하차, 추차를 딸 수 있다.
가을에 흰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섭시 5도 이하의 겨울철에는 생육이 정지된다.
이듬해 가울에 열매가 떨어져 다음해 봄에 발아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차는 사계절의 변화가 있는 곳에서 생육한다.
신석기시대 말까지 차는 장강유역 이남에서만 생장하였으나, 상주(商周)시대에 와서 황하유역으로 전파되었다.
청(淸) 고염무(顧炎武)의 <일지록(日知錄)>에는 "전국시대 말기에 비로소 차마시는 풍습이 황하유역에 들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위진남북조시대까지만 해도 음차(飮茶) 습속은 남방에만 유행하였을 뿐 북방에까지 보급되지는 않았다.
당시의 기호 음료 습속은 "남차북락(南茶北酪)", 즉 남방지역은 차를 마시고 북위 등 북방지역에서는 유(乳)제품을 즐겼다.
당(唐)대에 들어 마침내 음차는 중국의 전역에서 유행하게 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興德王) 4년(829)
"당에 조공하고 돌아온 김대렴(金大廉)이 차의 씨앗을 회사(廻使)받아 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는 기록이 전하므로 이 때가 바로 국산차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805년 최증선사가 중국 절강 천태산 국청사에 유학하고 돌아 오면서 차 열매를 가지고 와
오오미(近江 : 지금의 滋賀縣) 지역에 심은 것이 차 재배의 시작이다.
그러나 일찍이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차가 한반도지역으로 전파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백제는 384년에 처음으로 불교를 받아 들인다.
중국의 장강이남 지역 역대 정권과 밀접한 교류를 가졌던 백제가 당시 유행하던 음차 습속을 놓쳤을 리 없기 때문이다.
백제가 중국의 위진남북조시대 각 정권과 교섭한 횟수는 평균 4년에 한번 꼴이니, 그야 말로 중국의 문물에 정통하였다.
백제지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 중국제 자기들에서 그러한 추정이 가능하다.
삼국 가운데 중국제 도자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여 사용하였던 것이 바로 백제이다.
그 가운데 "앵(罌)"이라 불렀던 특이한 주자(注子)와 완(碗)은 음차용 그릇으로 볼 수 있다.
도자기의 수입에는 그 음식문화도 함께 따라 오는 법이므로
백제인들이 이미 한성시기(3세기 중후반~475년)에
중국의 동진이나 남조의 음차습속을 받아 들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당시의 차마시는 풍습은 어떠했을 까?
당대 이전까지의 음차 습속은 지금의 그것과는 달랐다.
찻잎을 그대로 말리거나 볶아서 뜨거운 물에 불려 차즙을 우려내는 방식이 아니었다.
차잎을 분말로 간 다음 쌀가루로 쑨 풀과 섞어 차병(茶餠)을 만들어 말려 두었다가
차를 마실 때는 차병을 찧어 차관(茶罐)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갱(羹)으로 만들고
거기에 파, 생강, 산수유, 소금 등을 더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음차 습속은 한대이후 지속되어 당에까지도 일부 이어지고 있었다.
차에 다른 향신료나 염분을 가하는 방식에 대해
당 육우(陸羽)의 <차경(茶經)>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반대하였지만
전통적인 음차 습속에서는 소금을 타서 마시는 것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광지(廣志)>에는
"생차잎을 달여 마시는 것을 명(茗)이라 하고, 산수유 등 다른 재료를 더하여 먹는 것을 차(茶)라 한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명(茗)은 늦게 딴 찻잎을 일컫는다는 설도 있다.
육우의 <차경>에는 차를 따는 시기의 이름과 늦음에 따라
"첫번 째는 차(一曰茶),
두번 째는 가(二曰檟),
세번 째는 설(三曰 蔎),
네번 째는 명(四曰茗),
다섯번 째는 천(五曰荈)"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 陳文華, 2004, <長江流域茶文化>, 湖北敎育出版社.
張承宗, 2002, <六朝民俗>, 南京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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