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 歷史 探訪-2

태백산 부석사 탐방...발아래 더러운 티끌 잠재우는 여래불

吾心竹--오심죽-- 2019. 8. 12. 16:04
태백산 부석사 탐방^^

영주 부석사

바윗돌 둥둥 띄워 불심을 펼쳐보여
태백산 영험한 기운 여기서 맺혔나니
발아래 더러운 티끌 잠재우는 여래불

부석사

국보 제18호.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서 내부에 무량수불(無量壽佛: 무한한 수명을 지닌 부처)인 아미타불(국보 제45호)을 봉안하고 있다.

정면 가운데 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이 썼다는 기록이 있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 때 안동으로 피난 왔다가 귀경길에 부석사에 들러 쓴 것이라고 전한다.

한편, 부석사 무량수전 서쪽에는 부석(浮石, 일명 뜬바위)이 있는데 이 바위는 의상대사를 흠모하던 당나라 선묘(善妙)낭자가 변한 것이라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부석사를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황산부석사개연기(鳳凰山浮石寺改椽記) 등에는 창건연대를 676년(신라 문무왕 16)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창건 후 부석사는 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에 병화로 소실되었다고 전한다.

경내에 있는 대석단(大石壇)과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이 9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음을 볼 때 비슷한 시기에 대규모 불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량수전 동쪽 언덕 위에 있는 원융국사비문(圓融國師碑文)에는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부석사에 머물면서 부석사를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원융국사는 1041년(정종 7)에 부석사로 들어와 화엄종통(華嚴宗統)을 이어받았고 입적할 때까지 부석사에 머물렀다.

이후 무량수전은 1358년(공민왕 7)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타 큰 피해를 입었고, 1376년(우왕 2) 진각국사(眞覺國師) 원응(圓應)이 고쳐 지었다. 1611년(광해군 3)에는 보가 비바람에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는데 이듬해 중수하면서 서까래도 함께 교체하고 단청도 다시 하였다.

무량수전불상개금기(無量壽殿佛像改金記)와 무량수전미타존상개금기(無量壽殿彌陀尊像改金記)에 따르면 1723년(경종 3)과 1767년(영조 43)에 각각 본존불의 금칠을 다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는 조사당과 함께 해체수리공사가 이루어졌다. 1969년과 1999년에는 기와를 교체하였으며, 2001년에 주변 정비와 함께 정밀 실측조사가 실시되었다.

<출처:한국민족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