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安歷史文化硏究

중국 마원동주...당간-한대(漢代)에 군사용 깃발인 번(幡)과 결합하면서 급속히 유행한 당(幢)은 송대(宋代)까지 이어집니다

吾心竹--오심죽-- 2012. 7. 9. 15:44

 

                                    

                                       당간지주(幢竿支柱)란 무엇일까요


 저는 요즘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전국의 사찰을 답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답사에서 의문을 제기하신 당간지주에 대해서 함께 토론해 보는 것도 답사를 마무리 하면서 깊은 의미가 있을듯합니다. 부석사에 들어서면 일주문 지나는 길에 오랜 세월을 정정하게 서있는 당간지주(幢竿支柱)를 볼 수 있습니다.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

 

 

 당간지주(幢竿支柱)란 무엇일까요?  당간(幢竿)은 삼국시대 불교가 전파되면서 사찰 앞에 돌이나 쇠로 만들어 높이 세운 기둥으로 찰간(刹竿)이라고도 합니다. 찰간에 깃발을 달아 종파, 문파를 알렸는데, 행사와 불사 때 행사를 알리고 그 주변지역에 사찰이라는 신성한 영역을 알리는 동시에 사원에 모든 액을 물리치려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幢)이란 사찰의 문 앞에 긴 장대를 세우고 그 끝에 용두의 모양을 만든 다음 깃발을 달아서 부처님과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과시하는 장엄구로서 모든 번뇌를 파괴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번(幢幡)은 항상 달아두지 않고 기도나 법회가 있을 때 불전이나 불당 앞에 세우기도 하였는데 이는 중생을 지휘하고 마군(魔軍)을 굴복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청동용두보당 국보136호

 

 

 당간지주는 당간을 세우기 위한 버팀대이고, 그 당간에는 당(幢), 번(幡)이란 깃발이 걸려 있기 때문에 당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당은 불교의 발생지였던 인도에서 시작했고, 그 원형은 간다라 시대를 잇는 마투라 시대의 암벽조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중국 한대(漢代)에 군사용 깃발인 번(幡)과 결합하면서 급속히 유행한 당(幢)은 송대(宋代)까지 이어집니다. 불교가 전해진 북위(北魏)시대에 <제비꼬리형 동幢(幡)>이 완성되어 한반도의 삼국시대로 전승됩니다. 중국 돈황석굴, 일본 법륭사, 동대사 정창원에 당대의 당과 번이 다수 보관되어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당만 남아있어 고구려 고분벽화 그림으로 추정할 뿐이며, 일본 오사카 예복사(叡福寺)에 <新羅國獻上之幡>이라고 묵서명된 번이 한 점 남아있습니다.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으로는 영주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의 그림을 보면, 고구려 적석총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번과 비슷한 유형의 당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일본여행을 하다보면, 형형색색의 깃발형태에서 당이 전승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인도에서 시작된 당은 중국을 지나 한반도를 거쳐 오늘날 일본에 전해진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 형태는 북위시대에 완성된 제비꼬리형에서 물고기 모형으로 변형된 듯합니다. 

 

 

                                                         고분벽화에 재현된 당

 

     

                                                           일본의 당과 유사한 깃발

 

 

 그러나 의아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대승불교국인 중국이나 일본에는 이러한 당(幢)을 세운 당간지주가 극히 적다는 점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제가 중국에 있으면서 여행했을 때 사찰을 찾아가서 당간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유독 이렇게 당간지주가 많은 것은 고대 마한(馬韓)시대 소도(蘇塗)의 전통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파될 때 습합된 것이 아닐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신성한 지역의 상징[蘇塗]이라는 고대의 깃발인 당(幢) 혹은 번(幡)이 불교식으로 각색되어 사찰초입이나 일주문 언저리에 세워진 당간지주에 펄럭이는 깃발로 매달렸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더 상세히 자료조사를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에 전해오는 칠성각도 민간신앙이 습합된 것이라고 볼 때 이러한 유추가 가능한 것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는 부석사당간지주(浮石寺幢竿支柱:보물 제255호), 숙수사지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보물 제59호), 금산사당간지주(金山寺幢竿支柱:보물 제28호)가 있고, 중초사지당간지주(中初寺址幢竿支柱:보물 제4호)에는 827년이라는 제작연대가 새겨져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당간지주는 세로선 무늬가 새겨지는가 하면, 문양이 장식화되고 간략화되어 정교하지 못하고 치석도 고르지 않아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보원사지당간지주(普願寺址幢竿支柱:보물 제103호), 천흥사지당간지주(天興寺址幢竿支柱:보물 제99호), 춘천근화동당간지주(春川槿花洞幢竿支柱:보물 제76호), 홍천희망리당간지주(洪川希望里幢竿支柱:보물 제80호) 등이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유교국가인 탓인지 거대한 규모의 당간지주는 조성되지 않았고, 작고 낮은 목조 당간이 세워졌는데 그나마 흔적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미륵사지 당간지주

 

 

                                                                  금산사 당간지주

                        

 

 따라서 당간지주는 불교 사찰의 조형물임에 분명하며, 서원입구에 세워진 하마비와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루하고 난삽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년 6월 22일    삼도헌 배

                                                    글 보낸이 ; 서예세상

 

 

 

용에게는 아홉 아들이 있다고 하는데,

명나라의 호승지가 쓴 「진주선」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들의 종류와 성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비희: 패하라고도 하며, 모양은 거북을 닮았다.무거운 것을 지기를 좋아하며 돌비석 아래에 놓는다.

2. 이문: 조풍 또는 치미라고도 하며, 모양은 짐승을 닮았다.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해 높 고 험한 곳을 좋아하며 화재를 누를 수 있어 전각의 지붕 위에 세운다.

3. 포뢰: 모양은 용을 닮았고, 울기를 좋아하며 범종의 상부 고리에 매단다.

            포뢰 용은 특히 바다의 고래를 무서워하므로 종을 치는 당목은 고래모양을 취하여,

             포뢰 를 겁주어 더욱 우렁차고 힘차게 울도록 한다.

4. 폐안: 헌장이라고도 하며, 모양은 호랑이를 닮았다. 위력이 있으므로 옥문에 세우거나 관아의 지붕에 장식한다.

5. 도철: 치문이라고도 하며,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므로 주로 솥의 뚜껑에 세우거나 식 기, 반기에 시문한다.

6. 공하: 범공이라고도 하며, 물을 좋아하여 다리의 기둥에 세운다.

7. 애차: 살생을 좋아하므로 칼의 콧등이나 손잡이에 조각한다.

8. 산예: 금예라고도 하며 모양을 사자를 닮았다. 연기와 불을 좋아하여 향로에 새기며, 또한 앉기를 좋아하여 불좌나 용좌에 쓴다.

9. 초도: 초도라고도 하며, 모양이 나방을 닮았다. 닫기를 좋아하여 문고리에 붙인다.

이 외에도 각종 문헌에는

용의 새끼를 .................교룡,

뿔이 없는 용을............. 이룡,

날개를 가진 용을 ..........응룡,

뿔이 달린 용을 .............규룡,

아직 승천하지 못한 용을.... 반룡,

물을 좋아하는 용을 ...........청룡,

불을 좋아하는 용을 ...........화룡,....

울기 좋아하는 용을 ...........명룡

등이라 하여 그 종류와 성격 및 특성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당간과 깃대.

 

깃대 는 고대 부터 무리 집단 단체의 상징성을 띄고 모임이나 행사때 앞세우고 집단적 정체성을 가지고 움직임과 영역을 표시하고 세력을 내세우기위해 오늘날 까지 전래되어 우리네 생활속에 한부분을 찾이 하고 있다.

 

당간지주의 당이나 번은 종교적 의미가 짙으나 당시로서는 역사의 흐름으로 볼때 한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깃대는 고대의 선사시대 부터의 내려온 고유의 남근사상 인 솟대 장승 돌무덤 서낭당 지극히 자연숭배사상인 고유의 민족신앙이 였스며 불교가 들어오면서 토속신앙 흡수 융화을 불교는 하는 과정에서 솟대가 당간으로 변했다고 하는 이가 있다.


솟대(민간신앙. 토속신앙 ) .....하늘을 뜻함 하늘로 솟는다.

융화 (토속신앙+불교) ←불교문화.......당시에 세력좋은 불교가 전파 때문.

                                                        다른 종교가 전파  되었다면?.

↓  

당간 (토속+불교)......................하늘 극락을 뜻함.(일시적으로 나타남)

깃대 (오늘날.단체기.국기.등 )....집단의 상징.내세움.


자연에 의존해서 농경생활를 하는 우리민족은 솟대에 의존을 했으며 솟대는 오리를 당간에는 용머리를 얹어서 하늘에 대한 숭배을 하며 민간신앙 토속신앙을 믿었다 한다.

 

 

 

수곡리 암각화

암각화는 선사시대 바위나 암벽에 사실적인 그림이나 상징적인 도형을 새겨놓은 것이다. 따라서 선사인들이 정신세계와 물질생활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암각화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그 분포지가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가 속한 동북아시아만 해도 중국이나 시베리아는 물론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의 암각화들이 대체로 우리나라 암각화와 크고 작은 연관이 있다는 것도 상당 부분 인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선사시대 암각화로는 울주 천전리와 반구대, 고령 양정동과 안화리, 영일 인비리와 칠포리, 경주 석장동과 안심리, 영주 가흥동, 안동 수곡리, 여수 오림동, 남원 대곡리, 함안 도항리, 남해 상주 양아리 등에서 발견되었다. 암각화의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데, 대체로 청동기 시대에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고, 일부 신석기시대와 철기 시대에 제작된 것도 있다.

안동에서 영덕쪽으로 21㎞쯤 가면 지금은 수몰되어 없어진 임동면 수곡리 한들 마을을 지나게 된다. 이 마을 위에는 현재 대형 교량이 가설되어 있고, 마을의 양쪽 능선 사이로 500m가량 북쪽으로 들어가면 능선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 능선의 줄기를 따라 50m 가량 올라가면 큰 바위가 하나 솟아 있는데, 이곳이 바로 수곡리 암각화 유적이다.

바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유적 바로 밑까지 임하댐 물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임하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양쪽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서 대곡천에 합류되는 모습이 내려다 보였으며, 멀리 수곡리 앞의 넓은 들도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바위의 규모는 동-서 15m, 남-북 30m 가량이고, 동쪽․서쪽․남쪽의 삼면은 낭떠러지로 이루어 졌다. 바위의 윗면은 북쪽과 서쪽이 높아서 전체적으로 동남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수곡리 암각화의 내용은 크게 장대 구멍과 물을 저장한 수조 시설, 말굽형, 새, 윷판형, 사람 발자국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각각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장대 구멍과 물을 저장한 수조 시설은 이곳에서 어떤 의식이 거행되었음을 알려준다. 장대 구멍은 바위 면의 둘레를 돌아가며 동쪽에 다섯 개, 서쪽에 세 개, 남쪽에 네 개로 모두 12개이다. 장대 구멍들은 남쪽 것들의 간격이 비교적 조밀하고, 동쪽이나 서쪽은 바위 면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간격이 많이 떨어져 있다. 규모는 지름 30~40㎝, 깊이 20~60㎝로 일반적으로 일컫는 성혈(性穴)로 보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다.

이와 같이 구멍의 크기가 크고, 간격과 굵기가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건축적인 기능을 위해서가 아니라 긴 장대를 세우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고대 문화에서 장대와 관련된 것을 찾는다면 솟대를 들 수 있다.

솟대의 형태 가운데 긴 나무 장대 끝에 새를 만들어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암각화에서 새 그림이 함께 있다는 것은 구멍들이 솟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물을 저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길이 110㎝, 폭 50㎝, 깊이 45㎝의 대형 바위 구덩이가 있다. 그리고 바위면 중심부에도 깊이 40~60㎝ 전후의 바위 구덩이가 몰려 있는데,

이것들은 제사 의식에 필요한 특별한 물건들을 보관하여 두는 용도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견된 말굽형 암각이 바위면 남쪽에 비교적 고루 분포되어 있다. 타원의 한쪽이 트여 있고, 원호는 대부분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반원형의 중심에 직선을 그어 내부 공간을 둘로 나눈 것도 있다. 이 형태의 도형이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해서, 중국에서는 동물의 발자국을 묘사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고, 러시아의 오클라드니코프(A.P.Okladnikov)는 여성의 성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 새처럼 보이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일견 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활로 보기에는 전면으로 화살대가 나와 있지 않고 뒤쪽으로만 길게 나와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활처럼 구부러진 선의 앞쪽으로 작은 꼭지가 붙어 있고 뒤쪽으로 뻗친 직선의 끝은 둘로 갈라져 있는데 이는 새의 머리와 다리 부분처럼 보인다. 따라서 전체 모습을 양 날개를 활짝 편 큰 새를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넷째, 원형의 윷판형 도형이다. 원형의 내부를 십자형으로 분할하고, 네 개의 내부 공간에 작은 원형 홈을 다시 하나씩 배치하였다. 십자형으로 분할된 4분원 둘레를 양쪽 분할선 사이마다 각각 네 개씩의 원형 홈을 넣었으며, 십자형 분할선에도 중심선과 원둘레 사이에 두 개씩의 원형 홈을 파넣었다. 따라서 원형 홈의 배치상태는 윷놀이에 사용하는 말판과 완전히 일치한다.

이러한 윷판형 암각화는 경북일대에서 많이 조사되었고, 충북이나 전북 등지에서도 일부 발견되고 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절터의 주초석 윗면이나 조선시대 무덤 앞에 놓는 상석 윗면에도 새겨진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윷판형 암각화는 상당히 후대까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사람 발자국 형태의 암각화이다. 바위면의 남쪽 끝부분에 길이 15㎝, 너비 4~6㎝, 깊이 2㎝ 정도의 작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

 이러한 발자국은 경주 석장동이나 중국 내이멍꾸 우란차부 지방의 암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수곡리 유적은 암각화이면서 제천 의식과 관련되는 여러 시설들을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한반도 다른 지역 암각화들이 강가의 수직 암벽에 새겨진 것과는 달리 산 능선의 수평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특히, 말굽형 그림은 중국 내이멍꾸 우란차부 지방의 것들과 동질성을 보여주어 두 지역이 문화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종교적 의례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는 구덩이 등의 시설은 앞으로 선사시대의 제천 의식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임세권 : 안동대 사학과 교수>

 

*암가화는 언어전달이다.당시의 신앙 생활상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솟대의 꿈을 위하여

 

한국의 솟대는 고대로 올라갈수록 천상이 세계와 관계된 상징성이 강하지만 후대에는 마을을 지키는 액막이와 풍요를 신으로 변모했음을 알 수 있다.지배계층의 신앙물에서 피지배층의 신으로 솟대는 그렇게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서 이땅을 지켜온 것이다.

 

이름도 지역에 따라서 다양하다.

경기도 충청도에서는 솟대,수산간,수사리,

전라도에서는 솔대,짐대,진대,당산,

제주도에서는 거오기,

경상도에서는 별신대,

강원도에서는 진또배기,짐대 등으로 불린다.

 

어원은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솟대는 솟아있는 대,짐대는

긴대에서 변이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수산간이란 마을의 허한 곳을 비보한다는 뜻이고

진대에 대해서는 군사들이 진을 친대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지금은 그 존재가 다소 미미해졌지만 솟대는 장승과 더불어 대표적인 마을신이었다.한글학회가 펴낸 「한국지명총람」을 토대로 625개에 이르는 솟대와 관계된 지명을 조사한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932개소에 이른 장승관계 지명과 비교해 보더라도 크게 뒤지지 않으니 번창했던 역사를 확인시켜 준다.

 

장승이 지닌 역사의 이미지에 비해 솟대의 수호신적 기능은 떨어지는 것이지만 그래도 하늘 높이 치솟는 모습은 가슴설레이는 장관을 보여준다.

단순하면서도 티없이 맑게 느껴지는 소박한 조형성과 거기에 바쳐진 순정한 마음들.

어떤 것은 붕어 한마리를 물고 있고 어떤 것은 씨앗이나 엽전 물밥을 담은 오쟁이를 목에 걸고 있다.

붕어와 씨앗은 당연히 풍요를 기원하는 것일 텐데 물밥이나 엽전은 또 무슨 의미인가.혹시 긴 여행을 떠날 새들의 식량과 노잣돈으로 바쳐진 것은 아닐는지.길떠나는 자식들에게 주먹밥을 싸주시는 때절은 돈을 안겨 주시던 그 어버이들의 마음이 저렇게 바람 속에 나부끼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같은 한국의 마음이다.

 

또 어떤 솟대는 긴 대살가지를 축축 늘여 꾸미기도 했고 한지나 실꾸러미를 휘감기도 했다.할아버지의 수염이고 선물로 받친 예단이라고 한다.

한국의 신들은 이렇듯 엄숙하게 굴지 않고 할아버지처럼 새색시처럼 친근한 반려자들이다.문명화된 종교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표정 중의 하나이다.

이 땅의 바람과 이슬,햇볕,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그 삶의 추억을 간직한 솟대의 꿈.

그 소중했던 꿈이 한국의 마을에서 사라지고 있다.불씨처럼 남아있던 마을 축제의 신명이 하나둘씩 꺼져가면서 솟대는 쓰러져 더이상 하늘을 날아오르지 못한다.

이제 이땅의 마지막 농사꾼이 사라져 버린 날,도시의 거대한 군상 속으로 쫓겨가 버린 날,그 황망한 들길에서 우리는 무엇을 노래할 것인지.

역사가 사라지고,전설이 사라지고,신화가 사라져 버린 고향의 잿더미 속에서 우리는 자식들의 손을 잡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인지….

아아 눈보라가 치는 날의 솟대여.

참고문헌

이형권;새가 있기에 살아 있는 신화의 공간,<錦湖文化>통권116호,1995.2,pp 6∼19.


솟대란 긴 장대 끝에 두어 뼘 정도의 가늠대를 얹고 그 끝에 나무로 만든 새[木鳥]를 만들어 얹어놓은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새를 올려놓은 솟은 나무막대기라고나 할까. 그런 형태 외에 전북 고창 읍내나 부안 읍내에 있는 당산처럼 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새를 얹어놓고 줄다리기를 끝낸 줄로 기둥을 감아 옷을 입힌 형태도 있다. 지금은 전국을 통틀어도 몇 군데 남아 있지 않은 민속물이다.

참고문헌

김재일;솟대,<우리 민속 아흔아홉 마당>,1997.2,pp 95∼101. .......퍼온것임

 

 

 

 

철새는 이승과 저승을 그리고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넘나드는 신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밖에 철새가 갖는 주기성이 농경에 절대 필요한 비를 가져다 주는 주기와도 관련있는 것으로 생각됐다.

실제로 일부 마을에서는 솟대 위의 오리를 정남향으로 앉혀 우순풍조를 기원했던 것이다.(오리는 북녘에서 날아오지만, 오리가 남쪽으로부터 비를 몰고 온다는 상반된 믿음이 있음)

곧 물새류의 철새인 오리가 농경에 절대 필요한 물과 관련되어 정착 농민들에게 충분히 신앙의 대상이 되었음직하다.

 

이점과 관련해 삼국시대 동물형 토기 가운데 오리형 토기가 많이 있다. 특히 낙동강 하류인 대구에서 함안에 이르는 좁은 지역에서 중점적으로 출토된다는 점은 매우 시사하는 바 크다. 이들 가야지구가 오리형 토기에서는 적어도 문화중심영역을 이루는 셈이다.

낙동강 하류 지역은 일찍부터 벼농사의 중심지였고 오리를 비롯하여 최대의 철새도래지였다. 이 지역에서 벼농사를 위한 물과 관련된 오리가 신앙의 대상이 되고, 토기로 제작되었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생각된다.


오리의 특성

각 특성의 종교적 상징성

물새(잠수조)

* 상,중,하계를 가로 지르는 우주 여행이 가능함.

* 천둥새로서 천둥과 비를 지배함

* 홍수에서 살아남게 하는 구원의 새

* 불을 극복하여 화재를 방지함

철 새

* 나타남과 사라짐의 주기성,거주공간의 이동성:이승과 저승,

인간과 신의 중계자

* 계절풍의 주기성과 농경

* 구멍,오리알,날알 사이에 내재해 있는 생산과 풍요의 주술적

관련성


또한 오리는 다산성의 대표적인 조류이다.

오리는 닭보다는 크고 무거운 알을 보다 많이 낳는다.

이러한 새의 알은 대개 불멸성, 잠재력, 생명의 신비, 생식의 근원 등의 상징성을 지니기에 때로는 알을 곡령적 힘을 지닌 존재로 생각했다. 이에따라 파종 때에 주머니 알을 넣고 있거나, 밭에 알을 파묻는 습관이 있어 왔다.

 

한편 경주지방에서는 각 가정의 방문 앞 처마에 꿩알의 껍질을 줄에 꿰어 달아놓고 있다.

이는 이것이 상서로움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다. 역시 알과 행운, 풍농과의 관계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끝으로 솟대신앙에서 오리의 기능을 다음 표로서 정리하면서 솟대신앙의 이해를 위한 도움말을 마친다.<이이상 회원/2002. 7>

............................................................

<참고서적> 솟대 / 대원사         ..............퍼온것임

 

 

 

 

旗 역활


農旗(농기)

풍물패가 농기를 앞세우고 堂山(당산)에 가서 절가락을 치면서 절하며(神받이) 악을 하겠다고 고한다. 그리고 나서 농기를 세우고 집돌이를 하게 되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神대를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이때 농기에 술을 대접하거나 농기를땅에 쓰러뜨렸을 때는 다시 당산에 가서 신받이를 한다. 그리고 농기앞을 지나갈 때는 어느 누구든지 기에 절을 하였고, 말을 타고 가다가도 말에서 내려서 지나갔다는 구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농기는 神대 神기의 기능을 가진 신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농기를 가지고 집돌이 行樂(행악)을 하는 것은 神體(신체)를 모시고 동네를 돌아다니므로 해서 마을의無事(무사)와 풍년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令旗(영기)

청색 바탕에 빨강색의 '令'이라는 글자가 있으며, 명령을 전달하는 말단의 깃발이다.

즉, 영기는 악을 진행할 때 지휘기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호남지방에서는 악을 시작할 때 어름굿으로 다스름을 먼저 치는데, 이것 또한 神令(신영)을 받는 풍속에서 나온 예능 형태라 할 수 있다.

영기는 잡귀를 막는 힘이 있다고 하며, 가뭄시 논에 물을 순서대로 대게 하는 법기의 역할도 있다고 한다.


蛟龍旗(교룡기)

왕이 행차할 때 사용하며, 왕의 명령을 하달하는데도 사용한다.

용의 모양과 구름이 그려져 있으며, 황색 바탕에 붉은 불꽃 테가 있는데, 왕과 용신의 존재를 알린다.

임금의 초상화와 같은 의미 이다. .......퍼온것임.


 

 

현존 하는 철당간 spec
 

철 당 간

      원 통

 

지 주

높 이

제작연대

재 질

    

(높이)

(직경)

(높이)

(M)

 

1

용두사지

원형

630

400

4200

18.9

통일신라

청동

 

현존

630

0

0

12.7

 

 

 

2

갑사

원형

575

486

3080

15

고려

주철

 

현존

575

0

0

12

 

 

 

3

칠장사

 

 

 

 

 

고려

주철

 

 

 

 

 

 

 

 

 

4

법주사

 

 

 

 

16

조선

주철

 

 

 

 

         

 

 

 

 

가람배치 변천.

 

① 평지 가람형

도성에서 발달(삼국, 고려). 국가 불교, 호국 불교의 성격과 관련됨. 왕실과 귀족의 사찰


② 산지 가람형

선종과 풍수설의 영향, 수도생활에 적합하다. 수도 장소로서 소규모 암자(원효암, 의상대) 내지는 산지가람이 형성된다.

산신앙, 선종의 과 풍수지리설의 요인, 초세속주의 경향이나 조선조의 억불정책과 관련하여 살펴볼 수 있다.

토속신과 결합된 양식을 띠게 된다


③ 석굴 가람형

인도와 중국에서 발달(아잔타 석굴사원, 돈황, 운강ㆍ용문석굴)

* 석굴암, 분황사탑, 운주사의 좌불탑 .........한국불교문화에서 따온것

 

 

 

산지가람(山地伽藍) 구성배치.


1) 초입

ㅇ 제석단, 당간지주, 장승

ㅇ 개울과 다리: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향수해(香水海)를 의미, 피안교(彼岸橋)

ㅇ 연못


2) 삼문(三門) : 사바세계에서 불국토로 들어가는 3단계의 문

*일주문

일주삼문(一柱三門) 양식이 일반적이다. → 수미산 초입.

일주(一柱)는 一心을 의미한다.

*금강문(또는 仁王門)

수문신장 금강역사를 안치

*천왕문

외호신(外護神) 사천왕 안치 → 수미산 중턱

불국토(청정도량의 수호신)

*불인문 / 해탈문 → 수미산 정상

不二:해탈의 경지를 의미.

도리문(克利門, 불국사의 청운교ㆍ백운교ㆍ33천)을 지나 천상계에 도달함

*안양문.


3) 사물(四物)

① 법고:법고는 양문을 암수 소가죽으로 대어(음양의 조화) 만드는데, 법고를 치는 것은 축생(畜生)의 제도를 의미. 조석예불과 염불예식에 사용된다.

② 운판:청동이나 철로 구름무늬 운판을 치는 것은 공중을 나는 중생을 제도하는 의미를 가진다.

③ 목어:물고기 모양에서 용두어신(龍頭魚身)의 형태 목어를 치는 것은 물속의 중생을 제도하는 의미가 있다.

범종:중생교화의 울림. 범종각은 불이문과 나란히 위치함 : 도리천의 세계


4) 과 석등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이래 불탑이 성행하여 현재 1,500여기가 남아 있을 정도이다. 한국탑은 석탑이 많은데 목탑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성행하였다. 주로 3ㆍ5ㆍ7ㆍ9층의 양수(陽數)의 층수를 가지며 탑의 평면형은 음수(陰數) 즉 4ㆍ6ㆍ8각형이 보통이다.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석등은 불타의 광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기본형은 8각(8정도의 의미), 4화창(火窓 4諦의 의미)이 기본이다. 구조는 하대, 중대, 간석, 상대, 화사석, 옥개와 보륜으로 이루어져 있다.


5) 법당

불교신앙의 대상인 불상이나 보살상을 모신 전각이다. ‘금당’이라 했다. .

※ 전(殿):불교신앙의 부처나 보살을 모신 곳

※ 각(閣):민간 토착 신앙(산신, 칠성, 용왕)을 모신 곳

 

 

 

갑사 철당간&지주.

 

지주(460*620*3080h)은 석재로 600간격으로 동서을 남북을 약간 엇비슷 하게 마주보고 있다.

 

지금의 입간판이 서 있는곳 은 옛날의 길이 아닌 뒤쪽인 듯한데.편리상 정면이 되어있다.

옛길은 개울을 건너 오는 길일 가능성이 있다.

 

당간은 철(주철)당간으로 24개(500Φ*620h/개) 계단(총15m.h)으로 꿀뚝처럼 원통형태 마디(대나무)형 이며 여기에 4개와 용두가 유실 됐다 한다.당시의 위용을 상상 할수 있으며 원통의 철 주조 기술과 제작에 감탄한다.

 

중심은 간구만으로 지탱하고 당간좌에 안착하고 있다.

철당간 지주의 전반적으로 모습은 수수하고 굳건하다.

 

기단(1500*2600*400h)은 2쪽오목형 석제이며 철지주 자중에 의한 벌어짐(좌우간격이 틀어짐)과 침하현상(동쪽에 오목하게 처짐)이 나타나고 있다.

남쪽에 철단간 원통 일부분이 파손(중심이동시 자연현상)되어 있다.

기단과 지주의 좌석이 일체형 으로 오목형 2쪽으로 끼어맞춤과 양쪽 벌어짐을 막아주는 꺽쇠(工 자 모양)자리 음각이 독특 하다.

통일 신라시대 작품이라 한다.

안전 관리:지리적 조건으로 지금것 잘유지 보전 되었지만 주변 울창한 나무들의 낙뢰방지 기단지반의 침하 방지을 위한 주위의 배수로 확보가 요망됨.

 

 

 

 

천흥사 당간지주


당간지주( 석재.580*680*3000)는 동서 을 720 간격을 두고 나란히 놓여 있다.

전만적으로 풍기는 모습은 우람하고 상부는 단을 주어 간결하다. 간공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목당간은 아니라 철당간으로 짐작할 수 있다.

별도 단간좌(원형)가 간결하게 설치 되었으며 볼록단 으로 미끄럼방지용 오목하게 판 반구형 (170Φ/깊이80)이 있다.......반구형 좌 가 설치 되었다?.


철당간으로 추측하는 이유로는.

첫째는 상부의간구가 파손된점으로 봐서는  철단간이다 어떤 물리적힘으로 인한 파손시 나타나는 파손흔적이다.

둘째 지주의 간공이 없는다는 점이다. 철단간 만이 모든 힘이 간구에 집중된다.

지층 침하로 붕괴되는 현상과 재료의 특성상 오랜기간 보존되는 것이 어렵다 본다.

단간이 2단으로 기단을 설치 안전감을 준다.지형적으로 단단한 지질을 요구하는 지리적 지형에 잘 대응 하여 오늘날 까지 보존 되어지고 있다.

조금씩 지반침하의 움직임이 엿 보인다.


1단기단(2740*3620*300) 기초석으로 수평 유지 하고 그위에

2단기단(3010*1910*500)연화 문양 또한 특이하게 양각되어 아름답게 3조각의 석물로 오목형으로 설치 되어 있다.

당간은 유실된 상태로 확인이 불가능 상태이며 기단은 매우 아름답다.

연대는 고려시대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됨

 

 

 

 

당간(幢竿) 또는 보당(寶幢)이란 절의 입구나 법당 앞에 세워 번(幡)이라는 장엄적인 깃발을 달았던 장대이다.

오늘날 쇠나 돌로 된 당간이 남아있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당간을 받치는 당간지주(幢竿支柱)만이 남아있는 것이 보통이다.

당간의 꼭대기에는 용머리를 장식하여 올렸는데 현재 완전하게 남아있는 것으로는 호암미술관의 소형 청동용두보당이 있을 뿐이다.

 

이 보당의 금동용두는 1977년 경북 영주 풍기에서 발견된 것으로 용의 입을 가로지른 철봉에는 실패모양의 도르래가 끼워져 있다.

그리고 이 도르래는 그 앞의 여의주에 의해 가려져 있어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있다. 턱 밑은 뚫려 있어 쇠줄을 도르래에 걸 수 있도록 되어있다.

용의 조각으로 보아 경주의 성덕대왕 신종보다는 다소 늦은 기원 800년 전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찰의 어원


○ 사(寺)의 유래

본래 관청(한자의 사(寺)는 공공기관의 의미가 있다)의 뜻인데 인도의 승려를 처음에 사신으로 접대하고 기거하게 했던 중국의 ‘홍로사(鴻豈寺)’라는 관청에서 유래되어 부르게 되었다.

 

○ 암(庵):산 속의 작은 사찰이나 토굴을 말함.

○ 절:신라에 불교가 전래될 때 아도(阿道)화상이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 살았는데, 우리 말로 ‘털례의 집’이라는 말에서 털이 덜로, 덜이 절로 되었다고 한다.

 

○ 찰(刹)의 어원

찰(刹)이란 산스크리트어의 ‘lakdata’로 깃대 혹은 탑의 중심부를 일컫는 말이다.

찰간대에 깃발이 휘날리는 곳이 있으면 절이 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旅(여)와 깃발

旅行을 현대 중국어에서는 ‘뤼요우(旅游)’라고 하는데, 그 자원을 뜻밖에도 ‘깃발 旅行’과 관계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旅는 갑골문에서 깃발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으로, 깃발은 바람에 나부끼고 사람들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서 있다. 전통적으로 깃발은 부족이나 종족의 집단적 상징으로, 중대사가 생기면 사람들은 깃발을 중심으로 모여 들었다.

 

 

깃발 과 고대부족

고대 국가의 여러 부족과 집단의 표지(標識)로 사용한 깃발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국기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나 중국 주(周)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러한 국기는 염색과 천[布]을 짜는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천에다 그들 나름의 상징을 여러 가지의 빛깔과 모양으로 그려서 나타내게 되었다. ...퍼온것

 

 

국기 <national flag>(國旗)

한 국가의 권위와 존엄(尊嚴)을 표상하는 것으로서, 국가의 전통(傳統)과 이상을 특정한 빛깔과 모양으로 나타낸 기.

 

고대 국가의 여러 부족과 집단의 표지(標識)로 사용한 깃발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국기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나 중국 주(周)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국기는 염색과 천[布]을 짜는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천에다 그들 나름의 상징을 여러 가지의 빛깔과 모양으로 그려서 나타내게 되었다.

근대의 국기는 중세 기사들이 사용한 문장(紋章)과 기장(旗章), 즉 십자기(十字旗) 등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각국의 기사들은 이교도(異敎徒)와의 싸움에서 공통의 표지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십자(十字)가 공통의 문장으로 선정되었으며 깃발․투구․군복에 부착하였고 십자의 빛깔과 모양으로 출신지와 신원(身元)을 구별하였다.

근대적 의미의 국가가 형성됨에 따라 십자기는 국적(國籍)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5세기 지리상의 대발견 이후 수세기 동안 유럽의 선진국가들은 앞을 다투어 식민지 개척에 나섰으며, 획득한 식민지에 국기를 꽂아둠으로써 배타적인 영유권(領有權)을 주장하였고, 이로써 국기는 한 나라의 주권을 상징하는 표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근대 이전의 국기는 국가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수단에 그쳤기 때문에 일반 국민에게는 게양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그 어떤 깃발의 사용도 금지되었다.

 국기가 모든 국민의 것으로 일반화된 것은 프랑스혁명 후부터이며, 하나의 깃발이 진정한 의미의 국기로서 국가를 상징하게 된 것도 프랑스혁명 때 사용된 3색기(三色旗) 이후이다.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속속 등장한 서유럽의 근대 시민국가들에서는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3색기를 모방하여 그들 나름대로의 국기를 제작․사용하였으며, 현대 유럽 여러 나라의 국기들은 대부분 이때 제정된 것을 수정한 것이다.

 

【색과 도안】

【국기의 종류】

한 종류의 국기를 사용하는 나라도 있고, 장소나 경우에 따라 달리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기를 제정하여 구분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정식 국기․정부기․재외 공관기(在外公館旗)․해군기․상선기(商船旗)․시민용 국기․해외용 국기․황제기(皇帝旗)․수장기(首長旗) 등 20여 가지에 이르며, 이들 국기의 도안은 정식 국기를 기초로 하고, 특정의 문양(紋樣)을 빼버리거나 마크를 첨가하는 등 정식 국기의 일부를 변형시킨 경우가 많다. 영국의 상선기, 일본의 군함기 등이 그 예로서 국제적인 관계를 다룰 때에는 국제 관습상 국기와 동등한 예우를 받게 되고 권위(權威) 또한 국기와 동등하게 인정된다.

 

【배색에 의한 분류】

영국 해군성에서 편집한 《Flags of All Nations》(1955)에서는 배색을 기준으로 하여 7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① 횡2색기(橫二色旗):2가지 색을 가로로 배색한 것으로, 인도네시아․모나코․폴란드가 이에 속하며 필리핀은 이의 변형이다.

② 횡3색기(橫三色旗):3가지 색을 가로로 배색한 것으로, 이란․인도․오스트리아․독일․에티오피아․수단․시에라리온․파라과이․헝가리․러시아연방 등 비교적 많은 편이다. 변형으로는 5가지 색을 가로로 배색한 타이․코스타리카․이스라엘 등이 있다.

③ 종2색기(縱二色旗):2가지 색을 세로로 배색한 것으로 파키스탄․포르투갈․알제리 등이 있다.

④ 종3색기(縱三色旗):3가지 색을 세로로 배색한 것으로 프랑스를 비롯하여 벨기에․이탈리아․멕시코․페루․루마니아 및 아프리카의 신생국에 많다.

⑤ 캔턴(canton:기폭 상부의 소구획, 예를 들면 성조기에 별이 그려져 있는 부분)이 있는 기:성조기(星條旗)를 비롯하여 타이완․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미얀마․말레이시아․라이베리아 등이 있다.

⑥ 십자기(十字旗):그리스도교의 십자가를 뜻하는 십자형을 기본으로 한 것으로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여러 나라를 비롯하여 그리스․도미니카 공화국․파나마 등이 있으며, 자메이카는 이의 변형이다.

⑦ 기타:태극기를 비롯하여 일본․터키․라오스․스위스․모로코․사우디아라비아․브라질․알바니아․튀니지 등의 국기와 같이 단색의 바탕에 특정 문양이나 기장 등을 그려 넣은 것도 있고, 이상에서 설명한 7가지의 모양을 기본으로 하여 배색․ 도안 등을 다양하게 변형하여 제작한 것도 있다

 

< 출처...한반도 당간지주 연구회한반도 당간지주연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