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삼각산이 어디죠?

吾心竹--오심죽-- 2010. 9. 30. 13:01
마루 2010.09.17 17:28

 

 

삼각산(三角山)의 유래

 

 

삼각산은 지금의 북한산이다. 삼각산이란 이름은 고려 성종 때인 993년 고려사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당시만 해도 부아악이란 명칭이 같이 사용되었으나 고려 정종 때부터는 부아악이라는 이름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삼각산으로 통일된다. 이 명칭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고문헌에 삼각산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기록되어있다.

즉 삼각산은 천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간직한 이름이다. 삼각산이 삼각산이라 불리게 것은 삼각산의 정상을 이루는 세 봉우리에서 유래하였다. 세 봉우리는 백운봉, 만경봉, 인수봉을 뜻하며, 봉우리 하나 하나가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형상으로 인간이 감히 범접하기 쉽지 않은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 상징성이 결국 지금의 북한산이라 불리는 산 전체를 삼각산으로 부르게 된 이유라 할 수 있다.

 

(관련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삼각산은 인수봉, 백운봉, 만경봉의 세 봉이 있는데, 우뚝 솟아 높고 뾰족한 것이 마치 세 뿔과 같으므로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 동국여지비고의 삼각산기

    백운봉과 만경봉 일명 국망봉과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삼각산이라 이름 하였다.

 

 고려 및 조선시대의 옛 선비들 또한 삼각산의 빼어난 자체에 매혹되어 삼각산의 아름다움을 많은 시로써 남겼다. 아래 시들은 북한지에 수록된 시 들 중 일부이다.

 

고려시대의 문인 이존오의 시

 

三㭆奇峯迥接天    세 송이 꽃 같은 기묘한 봉우리 멀리 하늘에 닿았는데

虛無元氣積雲煙    텅 빈 자연의 원기에 구름 연기 쌓였네.

仰看廉利攙長劍    쳐다보니 날카로운 모습 장검을 꽂은 듯

橫似參差聳碧蓮    가로로 둘러보면 올망졸망 푸른 연꽃 솟아 오른 양.

 

조선시대 초기의 문인인 김시습의 시

 

三角高峯貫太淸    세 뿔 같은 높은 산봉 하늘을 꿰뚫으니

登臨可摘斗牛星    높은 곳 오르면 가히 두우성을 딸 만하네

非徒岳岫興雲雨    멧부리는 구름과 비를 일으킬 뿐 아니라

能使王家萬歲寧    왕실을 만세토록 능히 편안케 하리로다

 

삼각산의 세 봉우리 중 만경봉만이 주능선상에 위치하고 나머지는 독자적인 맥을 갖는다. 

백운봉은 주능선과 연결은 되지만 이어지는 원효능선은 효자동에서 맥을 다하며, 인수봉은

큰 줄기를 갖지 못하고 사기막골에서 그 맥을 다한다.

어찌 보면 평범한 산줄기와의 연결을 거부하는 장군의 기상을 보는 듯하다. 

백운봉, 인수봉, 만경봉은 다양한 문헌에 그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지(北漢誌)의 기록을 보면 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 등 옛 문헌의 기록을 그

대로 차용한 부분이 많다. 여기서는 북한지의 기록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내용만 기술한다.

 

(1) 백운봉(白雲峯)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인수봉 서쪽에 있다. 일명 백운대라고도 한다. 곧 이 산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나. 내용

■ 백운봉은 북한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당시에는 백운봉 또는 백운대로 불렸으나 현재는 백운대로 불린다.

백운대는 행정상으로는 경기도 고양시에 속하며 하루재에서 만경대를 거쳐 대남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상에서 살짝 벗어난 지점에 위치한다.

■ 사방이 깎아지른 암벽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로 조선시대에는 만경대 또는 노적봉보다도 더 올라가기 어려웠던 봉우리이다. 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가장 일반적인 위문길을 비롯 호랑이굴길, 여우굴길, 원효능선에서 오르는 길 등 모두 네 가지가 있다. 위문길은 쇠난간 등 안전시설이 있어 겨울철에도 올라갈 수 있으나 나머지 길 들은 동절기에는 위험하다. 특히 원효능선길은 위험한 리지구간으로 반드시 안전장비를 갖추고 경험자의 동행이 필요한 길이다. 위문에서 올라가는 쇠난간은 최초 일제시대에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2) 인수봉(仁壽峯)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인수봉의 삼각산의 첫 번째 봉우리이다. 사면이 순수한 암석으로 되어 깎아 세운 듯 서 있는데, 한 봉우리가 .이 봉우리 동쪽에 혹처럼 붙어 있으므로 또한 부아악(負兒嶽)이라고도 이름하였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고구려에서 남행하여 한산(漢山, 지금의 서울)에 이른 후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살펴 보았는데, 그 산봉이 곧 이봉우리이다.

 

나. 내용

■ 북한지에서는 삼각산의 세 개의 봉우리 중 인수봉을 가장 으뜸 되는 봉우리로 생각하는 듯하다. 문구의 내용으로 보아 현재의 인수봉이 분명하며 동쪽에 혹처럼 붙은 봉우리는 귀바위를 뜻한다. 다만, 온조와 비류가 과연 험준한 인수봉을 올랐을까 하는 데는 이론의 소지가 있으며, 이는 부아악이란 명칭을 북한산이 아니라 인수봉으로 좁게 해석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인수봉은 암벽등반지로 유명한 봉우리이다. 안전 장비 없이는 사실상 올라가기 불가능한 봉우리로 최대 200m정도의 대암벽이 있는 등 봉우리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이다.

 

(3) 만경봉(萬景峯)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백운봉 남쪽에 있다. 높고 빼어나고 기이하고 웅장함이 인수봉과 자웅을 겨룰 만하다.

■ 申耆의 書啓

    만경봉과 백운봉 사이에 또 암문이 있습니다. 

■ 신경준의 삼각산기(三角山記)

    삼각산은 다 석봉이다. 그 상봉을 백운대라 하며, 그 옆에 국망봉과 인수봉이 있다. 세봉우리가 깎아 세운 듯 하늘로 치솟아 있으므로 삼각산이라 이름 붙여졌다.

■ 동국여지비고의 삼각산기

    백운봉과 만경봉 일명 국망봉과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삼각산이라 이름하였다.

 

나. 해석

■ 백운대 옆의 있는 암문은 백운봉암문으로 현재의 위문을 가리키며, 바로 옆에 만경대가 있다. 따라서 위문을 중심으로 백운대 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는 만경대를 의미하며, 과거 만경봉 또는 국망봉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만경대로 불린다.

■ 만경(萬景)의 이름에 담고 있는 뜻과 같이 만경봉이란 전망이 좋은 봉우리로 국망봉이란 이름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제시대 온조, 고려 말 무학대사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올랐다는 봉우리가 만경봉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 만경대에서 용암문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위험한 암릉 구간으로 상당히 위험하여 안전장비가 필요하나, 위문에서 정상까지는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따라서 장비가 없던 옛날에는 만경대가 백운대보다 상대적으로 올라가기 쉬운 길이다

 

 

삼각산(三角山)의 유래

1395년 12월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새로 지은 경복궁에 들게 되니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은 새 도읍의 만년태평을 기원하는 가사를 지었다. 그 내용을 담은 '악장가사'에 북한산을 일러 '삼각산'(三角山)'이라 쓰고 있다. 또 고려조 성종 12년(993년) 서희가 성종에게 아뢰기를 "삼각산 이북도 또한 고구려 땅입니다"하였고, 그 뒤 고려사에 20여회나 삼각산이 등장하면서 각종 문헌과 비석 등에도 삼각산으로 굳어져 세종실록지리지, 대동여지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한결같이 '삼각산'이 북한산의 본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남긴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시에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 떠나려.'라며 '삼각산'이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주객이 전도되어 '북한산'이 산의 본명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북한산'은 산이름이라기 보다는 백제 건국 이후 한강 이북지역을 뜻하는 이름, 또는 고을 이름이었던 것이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으르렁 대며 영토확장에 혈안이 되었을 당시에는 개차산, 열야산, 진악산, 삼년산, 마시산 등 '산'이 붙은 이른바 고을 이름이 많이 나온다. 여기서 '산'은 고구려계 땅이름이 달(達), 홀(忽), 골(骨) 등과 함께 고(高) 또는 성읍(城邑)을 뜻하는 땅이름의 접미어로 쓰였던 것이다. 이 밖에도 여러 문헌을 눈여겨보면 산을이야기할 때는 '삼각산'이라 하였고 한성부의 옛 고을명칭을 이야기할 때는 '북한산'이란 이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삼각산 이름에 대하여 풀이하기를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솟아있으므로 삼각산이라 부른다

"고 풀이하고 있으나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 북한산이 어찌 이 세 봉우리뿐이랴.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과 맞먹는 노적봉, 보현봉, 문수봉 등 여러 봉우리들을 제외하고서 어찌 세 봉우리만 가지고서 논할 것인가. 이것은 뒷날 사람이 '삼각'(三角)이란 한자풀이에 너무 얽매어 부회한 결과일 뿐이다. 여기서 '삼각산'이란 이름은 '서울산'을 한자로 나타낸 것 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서울'의 본딧말이 '셔불'(세불)이다. 그러니까 '삼각'(三角)의 '삼'(三)은 '세'(서)이고, '각'(角)은 '불'(뿔)로 곧 '서불→서울'이 된다.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의 삼각산,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의 삼각산 등 여러 곳에 산이 삼각형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말의 '셔불', '세부리'를 한자로 뜻빌림(意譯)한 것 뿐이다. 그것은 옛날 그 지역이 부족국가의 군장(君長)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셔불, 세부리)은 그 지역의 '수부'(으뜸도시)라는 뜻이다. 특히 신라의 17관등급 가운데 첫번째 품계인 '각간'(角干)을 '셔블한'(敍弗邯)으로 쓰고 있는데, 여기서 '각=셔블'과 '간=한'의 대등관계가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삼각산'에서 '삼=셔(서)'와 '각=셔(서)불'에서 '셔'(서)가 다만 중복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북한산=삼각산'에서 뭇사람 사이에 사용해온 산이름은 백제의 도읍 이후 삼각산이었으며 그것은 이 산이 사람들 사이에 '서울산'의 뜻으로 통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 '서울산'이 있음은 온당한 일이다.

 
 
 
 
푸른소ㄴr무 조회 8 | 2010.07.21. 16:12 http://cafe.daum.net/fieldmount/eL8D/15

삼각산이 어디죠?

 

무슨산을 보고 우리는 삼각산이라고 부르죠?

 

갑자기 뭔 시답잖은 질문이냐... 라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녜, 맞습니다.

북한산을 우리는 삼각산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렇다면 북한산을 왜 삼각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느냐...

이에 대해서는 이미 조선조 시대부터 많은 학자들이 저마다의 썰을 풀었었고

일제시대때 뿐 아니라 해방후에도 대산련 초대 회장을 역임한

전 서울대교수 이숭녕 박사를 비롯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그럴듯한 주장을 내 놓았었지요.

 

그러나 오늘, 그 양반들의 그간의 모든 썰과 주장이

모조리 거짓말이고 잡설인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


삼각산세(三)뿔(角) 산, 즉 봉우리가 세개인 산이 아니라

쇠(牛)뿔(角)산 입니다.

다시 말해, 소의 뿔처럼 생긴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바로 이에 관한

충격적인 (?) 진실입니다 ^^

 

땅이름, 산이름, 동네이름 등등의 지명 (地名)은 그것을 보는 사람이 자기를 중심에 놓고

한글로 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이 동네 사람이 "앞산"이라고 부르는 산이

저 동네 사람들에게는 "뒷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것이죠.

 

어쨌건 그건 그렇다 치고...

옛날, 그것도 한참 지난 옛날...
정권이 바뀌어서 개성이 수도가 됩니다. 

 

그리고 태조 왕건은 전국의 시도지사에게 개성을 중심으로 해서,

선진문자인 한문으로 이름을 지어 올리라고 명합니다.

개성이 수도니까 당연히 개성에서 바라보는 시각으로 이름을 지어야 했을테니까요.


이 지엄한 명을 받들어 면서기(?)가 어느날 개성 어느 산자락에 사는 촌뜨기에게 찾아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면서기 : 어이 촌뜨기~~ 저 산 이름이 뭐냐?
촌뜨기 : 저 산 말씀이요? 저 산은 세뿔산인디요 (평안도 방언)


면서기 : 세뿔산? 그거이 뭔 뜻이냐?
촌뜨기 : 세뿔산이니께 세뿔산이쥬. (이걸 묻는게 이상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면서기 : (이런 촌뜨기하고는 말이 안통하네..) 음 세뿔산이라...
           옳커니, 뿔처럼 생긴 봉우리가  세개니까 세(三) 뿔(角) 산이겠지?

           그렇다면 오늘부터 이 산은 고상한 한문으로 써서 삼각산이라고 하자...
          
요즘 이명박씨한테 시달리는 인수위원처럼 면서기도 대충 이렇게 보고를 올렸겠죠?

이 이후에 우이동쪽 면서기 입장인 학자는 삼각산을 인수봉 + 백운대 + 만경대로,

조선시대의 이익. 신경준같은 구파발쪽 면서기 학자는 삼각산을 노적봉 + 백운대 + 만경대로,

조선시대 이덕무 등등, 기타 글깨나 읽었다는 사람들마다 이러쿵 저러쿵 주장을 하는데...

사실 이것들이 모두 다 허망한 주장이라 이겁니다.

 

왜냐 하면, 그 양반들은 애시당초 삼각산이라고 이름 지은 면서기는

개성 면서기였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즉, 개성에서 바라 본 산의 모습에서 뭔가 실마리를 찾았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

 

자, 그럼 개성에서 한번 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이렇게 생겼습니다.
개성쪽 촌뜨기와 개성 면서기의 입장에서 보아야  산이 제대로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성쪽에서 보자면 삼각산은 그래서, 인수봉, 백운대. 염초봉이 정답입니다.

그럼, 봉우리 세개를 찾았는데 또 뭐가 문제냐.... 그럴 분들이 계시죠?


아래에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사실 어느 산치고 한자로 메 산(),

그러니까 뾰족한 봉우리가 세개가 아닌 산이 어디 있을까요?
보려고 작정하면 어느 산이든 봉우리가 세개로 보입니다.

 

그래서 고대 중국인도 산을 으로 그리고
이는 우리동네 유치원생도 산을 그릴 때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삼각산 아닌 산이 없겠지요?

 

그런데 왜 개성의 촌뜨기가 개성주변의 허다한 산 중에서

하필이면 북한산만을 뾰족한 봉우리가 세개라고 세뿔산(三角산)이라고 했을까요?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과연 우리 입맛에 맞게 전형적인 뿔이 세개인 산으로 보이는가요?
아닙니다.
산이름은 그렇게 짓는게 아닙니다.

 

북한산을 여느 산과 다르게 구분을 지어서 이름을 붙이려면

북한산 만의 포인트를 잡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엄청 헷갈리게 되겠죠.


다시 촌뜨기와 면서기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


면서기 : what is the name of that mountain?
촌뜨기 : 쇠뿔산 인디유.
면서기 : 음.....이하 생략..한문으로 쓰면 삼각산이야..
이 면서기의 붓끝에 이후 조선과 한국의 학자들은 놀아나게 됩니다.


그런데, 촌뜨기가 과연 말하고자 한건 뭐였을까요?
를 사투리로 라고도 하죠.

즉, 그가 "쇠뿔산"이라고 했을 땐 소의 뿔처럼 생긴 산 을 말하려고 했던 겁니다 !!

자, 읽어야 할 부분이 아직 많으니,

호흡을 가다듬고...

아래를 봅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거 누구그림인지 모르면 한국사람 아니죠.

이중섭씨의 소 그림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다른 소그림입니다.

그는 소그림을 즐겼나 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다른 소그림입니다....
뭔가  유사한 디자인이 떠오르지 않나여???

한번 간단한 트릭 좀 써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놈을 다리 아래쪽 우족은... 우족탕 해먹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색깔을 흐리게 해보면....

놀라웁게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이 그림과, 개성에서 바라 본 삼각산 사진 속의 모습이 

그야말로 에누리없이 똑같이 생겼습니다!!!


어느부분이 소대가리 소뿔이고

어느부분이 앞발쪽 어깨근육인지는 명약관화입니다.
인수봉이 바로 소대가리부분이고 백운대가 앞발위쪽입니다.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에 빼꼼하게 숨은벽 정상도 보이는군요 ^^

낫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개성 촌뜨기도 바로 이렇게 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전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까지 와 보니, 또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왜 개성사람들은 소대가리 산이 아니라 소뿔 산으로 불렀을까요?

그 이유인즉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북한산 뒤쪽에 있는 상장능선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대충 개성에서 보는 것과 각도가  비슷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둥근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개성시민들은

남쪽 방향으로 이렇게 북한산이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빛이 비추기 시작하자...북한산은 서서히 Magic에 걸립니다.
저멀리 화강암 덩어리인 인수봉이 White 화이트로 변합니다.

오~~ 놀라워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황홀한 순간의 인수봉.
이 하얀색 기
둥을 소대가리로 불러야 옳을까요? 소뿔로 불러야 옳을까요?

물어보나 마나 그 답은 응당 소뿔입니다.

(만약에 유럽이라면 마무트라고 불렀을려나? ㅎㅎㅎ)

이를 입증하는 또 다른 이야기 하나...

 

개성시내에 가보면 서울의 삼각산의 기를 누르기 위해

돌로 개의 형상을 만들어 놓은 다리, 즉 좌견교(座犬橋 )라는 다리가 있다고 합니다.

왜 하필이면 신성한 다리 이름에 '개'를 넣어서 지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엿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관악산은 풍수지리로 '불'이라고 하죠.

따라서 경복궁 앞에다가는 물먹는 해태를 세워놓았고.

 

또한 관악산은 호랑이 형상이라(호압산),

혹시라도 호랑이가 날뛰면서 사대문 안을 위협할까봐
상도동에 라이벌인 사자암을 세워 놓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가 성나면 무서울 게 없습니다.

전쟁터에서도 소꼬리에 불을 붙여서 적진으로 뛰어들어 헤집게 했다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녜, 그렇습니다.

우리는 실체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대가리산이 이중섭의 소처럼 눈길을 부아리며 개성시내를 돌아볼까봐서

돌로 만든 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개하고 소하고 싸우면 소가 이기겠죠.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개는 소를 잘 인도하는 동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개성사람들은

북한산을 봉우리가 세개 달린 세뿔산이 아니라

소의 뿔처럼 생긴 소뿔산으로 보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을 해도 인정을 안하고 딴소리를 하는 분들이 있을까봐

입가심으로 하나 더~! ^^

고려시대 현종이 왕이 되기전에 삼각산 신혈사에서 근신하였다고 합니다.

신혈사는 지금의 진관사 서북쪽에 있었다고 하는 절인데

왜 이름을 신령스러운 구멍에 있는 절"神穴寺"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인즉슨. 바로 그곳이 암소의 성기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개성인들은 북한산을 '소'로 보았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