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위례'는 '크고 많음' 또는 '울-우리-울타리'의 뜻으로 추정

吾心竹--오심죽-- 2010. 4. 1. 11:13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위례 신도시 | 땅이름

전체공개 2007.07.28 18:37
 


 

리젼뉴스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7- 위례 신도시


백제 도읍 이름 위례가 살아났다


 - '위례'는 '크고 많음' 또는 '울-우리-울타리'의 뜻으로 추정 -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배우리

(이름사랑 대표)

 

서울 송파구 거여동, 장지동 일대와 경기도 하남시 학암동,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복정동 일대, 즉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 서쪽 너른 평야는 우리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던 지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송파 신도시'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이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송파 신도시'란 말은 이제는 사라지게 되었다. 오는 9월부터는 이 이름 대신 '위례 신도시'란 이름으로 사용하도록 했기 때문. 이 지역에 들어설 신도시 이름 '송파 신도시'를 바꾸게 된 것은 서울 송파구와 함께 이 지역의 신도시를 삼분하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와 하남시가 신도시 이름에서 '송파'를 빼 달라고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 여러 후보 이름 중에서 '위례'를 선정
'송파 신도시'라는 이름은 개발 지역이 송파구 지역에만 해당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3개의 시구(市區)가 걸쳐 있는 지역이어서 애초부터 이것은 맞지 않았다.
송파 신도시는 '송파 거여 택지개발 예정지구(205만평)'가 정식 명칭. 그러나, 지역에서 송파구 부분은 38%에 불과하고, 성남시가 41%로 송파구 부분보다 넓고, 하남시도  21%나 된다. 이에, 성남시와 하남시에서는 '송파 신도시'란 명칭은 맞지 않다 하여 변경을 요구해 왔던 것.
이에, 토지공사에서는 지난 4월 국민공모를 실시, 940여 건의 이름들을 접수했고, 한국땅이름학회, 한국지명학회, 국학연구소 소속의 전문 학자 등 11명으로 구성된 명칭공모 심사위원단(위원장 배우리)에서는 5월 29일 심사를 통해 '위례 신도시'를 선정했다.


 

□ '위례'라는 이름은 '울' 또는 '우리'가 그 바탕인 듯
위례성은 백제 건국 초기의 도성(都城)으로 원래 한강 북쪽에 있었으나 온조왕 때에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의 이성(二聖)산성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역사학계에서는 한강 북쪽에 처음 만든 왕성을 위례성 혹은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 한강 남쪽에 새로 지은 왕성은 하남위례성이라 불렀다고 보고 있다. 
'위레성'에 대한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졸본부여 사람인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남쪽으로 함께 내려온 뒤 비류는 미추홀(彌鄒忽)에, 온조는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에 각기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고, 비류가 죽자 그 신하와 백성이 모두 위례성으로 옮겨오므로 비로소 백제(百濟)라는 큰 나라로 성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책에 또 보면, 온조왕 13년(BC.6)에 왕이 신하들에게 '동쪽의 낙랑(樂浪)과 북쪽 말갈(靺鞨)의 잦은 침범으로 한수(漢水) 남쪽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한산(漢山) 아래에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백성들을 옮겨 살게 했다고도 적혀 있다.
'위례'는 우리말 '울타리'를 한자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목책을 세우고 흙을 쌓아 만든 담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하는데, 이는 사방을 널리 둘러싼다는 뜻의 위리(圍籬)와 음이 비슷하기 때문. 욱리하(郁里河), 아리수(阿利水)와 함께 위례는 한강을 가리키는 이두(吏讀)식 이름으로 보고 한강 옆에 쌓은 성을 가리킨다는 해석에도 무게를 둔다.
위례성(慰禮城)을 '강변의 성' 또는 '왕성'의 뜻으로 보기도 한다.
왕이 사는 성을 가리킨다는 해석은 중국의 역사서인 <주서(周書)>에 '백제왕을 어라하(於羅瑕)라고 부르는데 중국말로 왕(王)'이라는 기록이 있어 '위례'는 '어라'와 함께 '왕' 내지 '크다'라는 뜻이며, 위례성은 왕성 혹은 큰성[大城]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에서 나온 것이다. '위례'가 '크다’ 또는 ‘많다’는 뜻을 가진 ‘여르’에서 유래된 말로 추정된다고 하고 있다. ('여르'가 왜 '많다'나 '크다'의 뜻이었는지를 설명한다면 상당한 설득력을 갖지만, 이 설이 일반인들에게 이해쪽으로 다가가기는 그리 쉽지 않다.)
위례가 '담'이나 '울타리'를 뜻한다는 해석은 '울' 또는 '우리(울애)'에서 나왔다는 설과도 거의 일치하는데, '위례'라는 이름이 원래 한자에서 나온 이름이 아닐 것으로 보면 '울'과 '위례'의 음의 근사치로 보아 큰 설득력을 갖는다.

 

□ 위례성의 위치에 관해서도 학자들 분분
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또는 시대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학자들은 위례성을 충남 천안(직산) 지역이라고 믿었는데, 이는 천안시 입장면의 성거산(해발 523m) 정상부를 감싼 위례산성(慰禮山城)을 그 흔적으로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정약용 등의 역사지리학자들이 이 설을 뒤집었다. 고증을 통해 위례성은 한강 북쪽이고, 한강 남쪽 광주지역(지금의 경기도 하남시)으로 도읍을 옮긴 뒤에 하남위례성이라 불렀다고 주장했다.
일제 강점기에 학자들은 남한산성과 풍납토성처럼 한강 유역의 규모가 큰 성(城)에 주목했다. 일본인 학자들이 주로 유적·유물을 분석하는 고고학적 방법으로 위례성의 위치를 밝히게 되면서 나온 현상. 그러나, 문헌자료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소홀하여 위례성, 하남위

례성, 한성(漢城) 한산성(漢山城) 등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 사라질 뻔한 '송파'라는 땅이름
이제 서울 남동쪽의 송파, 하남, 성남 일부 지역이 하나로 묶여 새 주택 단지가 생길 것인데, 이렇게 되면 결국 이 지역은 독립적인 다른 행정지명을 갖게 될 수 있다. 적어도 새 도시 형태가 되기 전까지는 '위례 신도시'란 이름이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사실, '송파'라는 이름도 하마터면 사라질 뻔한 땅이름이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 시절이던 1960년대 중반에 한 고관이 수도 서울 이름을 '우남(雩南)'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벌였다. '우남'은 이승만 대통령의 호인데, '서울특별시'가 아닌 '우남특별시'로 하면 이승만 박사를 길이길이 그 이름으로써 기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4 19에 의해 대통령이 물러남으로써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또, 성남시가 새로 생긴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그 시에 새로 생긴 가장 큰 거리 이름이 시정 책임자가 바뀔 때마다 대붕로(大鵬路), 대봉로(大峰路) 등으로 몇 차례 엎치락뒤치락한 일도 있다. 당시 시의 책임자가 자기 이름의 끝 글자를 따서 넣는답시고 이처럼 땅이름을 마구 주물렀던 것이다.
옛날 '송파진(松波津)'이라는 나루가 있던 지금의 송파 일대에 서울 강동구에서 갈린 구가 새로 생겨나(1988년) '송파구(松波區)'란 이름이 자리잡았으나, 불과 1년도 안 되어 '올림픽구'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民正黨)쪽에서 일고 있었다. 88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려 이를 기념해 여기에 '올림픽구'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의 많은 주민들이 '송파구' 이름을 고수, 진정서까지 만들어 각 계에 호소하였다. 결국 ,서울시의 주선으로 '올림픽구'가 아닌 '송파구'로 굳혀지기는 했다.
'송파'는 조선시대에 큰 상설 시장이 있었다. 이 때문에 지금의 석촌호 근처에 있었던 송파 나루터는 전국에서 모여드는 장사꾼들로 크게 붐볐다. 강원도쪽에서 한강 물줄기를 타고 내려온 갖가지 작물, 목재 등이 그득그득 쌓였고, 특히 소(牛)시장으로도 유명해서 안성 읍내장, 은진 강경장, 전주장, 덕원 원산장과 함께 전국 5대 향시(鄕市)의 하나로 꼽혔다. 1925년 을축년 장마 직전까지도 207호나 되는 객주집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장사꾼들 중심으로 형성된 '송파 산대놀이(탈꾼대놀이)'도 유명했다. 관원 관노들의 놀이라 할 수 있는 양주 별산대 놀이와 달리 갖가지 탈을 쓰고 거드름춤(거만하게 거드름을 피우며 추는 춤)과 깨끼춤(앉았다 뛰어올랐다 하는 춤) 등의 묘한 몸짓으로 한바탕 장내를 흥겹게 하면서 당시 사회를 잘 풍자하고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연중 행사로 정월 대보름, 단오, 추석 등의 명절에 베풀어졌고, 1주일씩 계속되기도 했다. 서울 외곽의 중요한 나루였던 송파진은 국방상으로도 중요하여 나라에서는 송파 별장(別將)을 두고 방어를 했다.
이렇던 송파 남쪽에 이제 아파트숲이 이루어지고 새 도시가 만들어져 그 이름을 '위례'라 할 것이다. 그리고, 2007년은 '위례'라는 백제 때의 이름을 이 땅 위에 살려 놓은 중요한 해로도 기록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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