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捺文 土器

타날(打捺) 작업

吾心竹--오심죽-- 2010. 9. 3. 14:01

[유물속에 숨은 기술] ④ 타날(打捺) 작업

충남 공주 장원리 1호 옹관(사진1)은 달 표면처럼 울퉁불퉁하다.

단박에 실패작임을 알 수 있다.

다른 토기들은 겉이 매끄러운데

이 토기는 무슨 공정이 잘못됐을까? 복천박물관 홍보식 조사보존

실장은 '점토 안에 들어 있는 공기를 빼내고 토기 벽을 단단하게

두드리는 타날(打捺)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 공기를 온전히 빼내지 못한 부분은 토기를 굽는 과정에서 마치

작은 폭발이 일어나는 것처럼 팽창하고 급기야 터진다.

타날 작업

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장원리 1호 옹관만큼 적합한 것도

없다.

타날은 신석기 시대부터 줄곧 해오던 토기 만들기 과정의 하나다.

신석기 시대에는 강돌 같은 매끄러운 돌로 면을 골고루 두드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기원전후가 되면 손잡이가 달린 나무판

으로 타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시기 나무로 된 타날

도구가 발굴된 적은 없다.

그럼 어떻게 아느냐고? 토기 외벽에 남

아있는 타날무늬가 그것을 증명한다.

일자무늬,격자무늬 등 다양

한 무늬를 나무에 새긴 뒤 톡톡 두드려 전체적으로 문양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토기에 전면적으로 무늬가 있는 토기는 타날 흔적

이라고 보면 된다.

타날은 토기를 세워놓거나 뒤집어 눕혀놓고 돌아가며 이뤄졌다.

토기를 자세히 보면 바닥 근처엔 타날 무늬가 겹쳐진 경우가 많은

데 이는 한 방향에서 타날하기가 곤란해 여러 방향에서 두드려 온

결과로 생긴 흔적이다.

타날문도 유행을 탔는데 3세기엔 격자 무

늬,4세기 초에는 격자와 평행문이 혼재했고,4세기 후반에는 새끼

줄이나 꼰 실을 두르고 난 뒤 나무로 타날한 돗자리 무늬(사진2)

가 주류를 이뤘다.

그런데 타날 도구로 외벽을 두드릴 때 그 힘이 토기벽에 전달돼

움푹 들어가는 것은 어떻게 방지했을까? 내박자라는 도구를 토기

안에 댔다.

흙으로 구운 것을 주로 사용했는데 토기 내벽을 보면

부채꼴 모양의 흔적이 남아있기도 하다.

타날 흔적은 18~19세기

기와에도 남아있다.

사진제공=충청문화재연구원·복천박물관

이상헌기자 tt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