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12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개최한 서울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 발굴현장 설명회는 고고학 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사학계에 일대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이날 모습을 드러낸 풍납토성은 일단 그 규모면에서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한강을 북쪽으로 끼고 반타원형 모양으로 3.5㎞를 빙두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풍납토성은 현재 남쪽을 중심으로 2.2㎞ 가량만 남아있다.
그런데 문화재연구소가 현존 성벽 2곳 부분을 절개한 결과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성벽 아래쪽 폭이 40m, 높이가 9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다.
문제는 이 풍납토성의 조성시기가 과연 언제냐는 것.
이날 발굴설명회에 참가한 이형구 선문대 교수와 최몽룡 서울대 교수, 심정보 대전산업대 교수 등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여기서 출토된 경질무문토기와 심발형토기,연질타날문토기를 비롯한 출토유물들을 근거로 적어도 이 성벽 축조시기가 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늦어도 3세기를 전후한 시기에는 공사가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박순발 충남대 교수 같은 일부 고고학자는 이들 유물이 길게 잡아도 3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없으며 따라서 풍납토성도 3세기 초,중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지난 97년 발굴된 풍납토성안 주거지에서 발굴된 유적의 방사선탄소연대측정 결과 기원전으로 나온 점을 미뤄볼 때 이날 공개된 풍납토성도 적어도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축조에 들어간 것만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와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 일본학자들과 이병도에서 비롯된 대부분의 한국고대사학자들이 그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기기록이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더없이 좋은 증거가 된다.
지금까지 한국고대사학자 대부분은 건국이 기원전 18년이며 이미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강력한 절대왕권을 갖춘 것으로 기록한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기기록을 허구라고 비판하면서 이병도를 따라 대체로 3세기 중반 고이왕 이후부터 역사기록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모습을 드러낸 풍납토성은 그 축조시기가 「삼국사기」가 백제 건국연대로 기록한 기원전 18년을 즈음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뿐만 아니라 늦어도 기원후 20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축조가 완료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이날 일부 고고학자들은 풍납토성이 한강을 끼고 있는 점을 들어 초기수도인 하남위례성의 성벽이 아니라 제방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는 신중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의 풍납토성이 백제초기 수도라는 하남위례성이든 혹은 제방이든 현재 남아있는 거대한 풍납토성을 축성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인력동원이 있어야 하며 또 이를 위해서는 절대왕권이 성립돼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늦어도 기원후 200년 무렵에는 축조가 끝난 풍납토성을 축조했던 주인공은 누구인가?
백제 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한국고대사학자들처럼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기기록을 믿지 않고서는 연인원 수십만명이 동원돼도 완성에는 적어도 수십년 이상일 걸릴 것으로 보이는 풍납토성 축조를 도대체 설명할 수는 없다.
설사 박순발 교수의 설명처럼 풍납토성이 기원후 3세기 중엽쯤에 만들어졌다고 해도 대규모 공사와 이를 위해 필요한 대규모 인력동원이 3세기 중엽 어느 때 순간적으로 이뤄질 수는 없는 만큼 이미 그 이전부터 백제는 현재의 풍납토성 일대를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이룩했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풍납토성은 지난 1세기 동안 한국고대사학계를 주름잡았던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기기록에 대한 불신이 잘못됐음을 입증하는 단적인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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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해자 흔적 첫 확인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초기백제 왕성터임이 확실한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에서 성벽 바깥을 둘러 판 일종의 도랑 겸 연못 방어시설인 해자(垓字)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 해자는 성벽을 쌓으면서 같이 축조한 인공해자인지, 샛강을 최대한 활용한자연해자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초기백제 유물과 후기 조선시대 유물을 함께 출토하는 것으로 보아 최근세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이 확실해졌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최근 현존 풍납토성 성벽 중에서도 한강과 인접한 서남쪽성벽 바로 바깥 지역인 풍납동 309의 6 등 5필지, 대지 1천200여평에 레미콘 업체인삼표산업(대표 김호)이 추진하는 '풍납동 삼표산업사옥' 신축 터를 시굴조사한 결과물길이 흐른 해자 흔적을 확인했다고 8일 말했다.
조사결과 강물이 흐른 밑바닥층임을 증명하고 있는 강자갈층은 현존 지표 9m 아래 지점에서 확인됐다.
이 강자갈층에서 위쪽으로 1-2m 구간에는 강물이 흐르면서 퇴적된 시커먼 뻘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었다. 이러한 검은 뻘층 위에는 홍수 등으로 퇴적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색 뻘층이 다시 확인됐다.
맨 아래쪽 검은 뻘층에서는 풍납토성 성벽 안쪽에서 이미 수없이 확인된 타날문토기와 삼족기, 백제 기와조각을 비롯한 한성시대 백제 유물과 백자 등 조선시대 유물이 동반 출토됐다.
이로써 이 일대에는 풍납토성이 축조돼 활용되고 있었을 한성도읍기(BC 18-AD 475년)에 해자가 있었으며, 더구나 그러한 해자 흔적이 조선시대까지도 샛강 등으로활용됐음이 밝혀졌다.
둘레 3.5㎞에 달하는 현존 한반도 최대 평지토성인 풍납토성은 성벽 바깥 주위를 따라 해자가 있었을 것으로 강력히 추정됐으나 그러한 흔적이 발굴조사로 드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 해자가 자연 강물을 이용한 것인지, 아니면 성벽과 함께 축조된 인공해자인지는 추가 발굴을 기다려 보아야 확인될 전망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뻘층이 해자임은 분명하며, 성벽과의 좀더 확실한 연관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성벽과 연결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면확대 발굴 여부는 문화재위원회가 결정하게 된다. <사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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