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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다파라국’, 삼국유사에는 ‘용성국’

吾心竹--오심죽-- 2010. 1. 31. 17:26

역사 게시판

   (2007-11-09 09:18:27, Hit : 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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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님은 ‘대장장이’

▲왕릉급인 경주 황남대총에서 나온 철로 만든 집게.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임금님은 ‘대장장이’
황남대총의 철집게
삼국시대 초기 상류층 상징 7세기 중엽부터 지위 추락

‘사기꾼 대장장이’가 왕이 됐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4대 임금 탈해왕(서기 57~80년)은 ‘사기’를 쳐서 남의 집을 빼앗았다. 배 타고 먼 나라(삼국사기에는 ‘다파라국’, 삼국유사에는 ‘용성국’)에서 온 ‘이민자’ 출신 탈해는 어느 날 산에 올랐다가 현재 경주 월성에서 권력자 호공의 멋진 집 한 채를 발견했다. 탈해는 그 집 곁에 숫돌과 숯을 묻었다. 다음날 탈해는 호공을 고소한 뒤 증거자료로 “우리 조상은 본디 대장장이였다.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다른 사람이 빼앗았다. 집을 파보면 숯과 숫돌이 나올 것이다”고 주장했다. 결국 호공은 집을 뺏긴다. 탈해는 분명 ‘사기’ 혹은 ‘무고’를 한 셈이지만, 신라 2대 남해왕(서기 4~24년)은 탈해가 어질다며 딸을 주어, 왕위에 오르는 길을 열었다.(왕이 된 탈해는 호공에게 ‘대보’라는 최고위 벼슬을 내렸다.)

고고학계는 이 이야기를 ‘철기 제작 집단의 이주와 정복(혹은 중용)’으로 해석한다. 청동기가 주류를 이루던 서기 전후 신라에서 철기를 제작할 줄 아는 이민자 집단이 들어왔다. 주조(鑄造) 방식으로 제품을 만드는 청동기에 비해, 불에 달군 뒤 때리고 식히는 과정을 반복해서 강도를 높이는 철기는 ‘최첨단 신소재’였다. 숯과 숫돌은 결국 대장장이의 아이콘이었다. 집도 절도 없이 배 타고 들어온 이민자 탈해가 권력자의 집을 뺏고 공주마저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대장장이의 힘, 더 정확히는 철기를 다룰 줄 아는 집단의 힘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400여 년 뒤 무덤인 경주 황남대총 등 삼국시대 지배자들의 무덤에서 대장장이의 표상인 철집게 등이 발굴되는 것도 무덤에 묻힌 이는 ‘철기 제작 집단’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웅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건무 용인대 교수(전 국립중앙박물관장)는 “고대에 대장장이가 ‘상류층’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대장장이를 부리는 사람이 최고위층을 이루었을 것이고 막상 철을 다루는 사람은 ‘최고 지배자급’까지는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0여 년 전 무덤인 경남 창원 다호리고분을 보더라도 망치나 철광석 등이 나온 실제 철기 제작자의 무덤은 최고위급으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상류층’에 속했던 대장장이는 언제부터 그 ‘지위’를 잃었을까? 삼국사기 ‘강수(强首)전’에 힌트가 보인다. 당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도맡아 써서 나당연합을 가능하게 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강수가 대장장이의 딸과 결혼하려 했다. 아버지는 그러나 “미천한 사람을 짝으로 삼으려 한다”며 반대한다. 때는 서기 7세기 중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