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月十五日
東岳 李安訥
四月十五日 平明家家哭 天地變蕭瑟 凄風振林木
驚怪問老吏 哭聲何慘怛 壬辰海賊至 是日城陷沒
惟時宋使君 堅壁守忠節 闔境驅入城 同時化爲血
投身積屍底 千百遺一二 所以逢是日 設尊哭其死
父或哭其子 子或哭其父 祖或哭其孫 孫或哭其祖
亦有母哭女 亦有女哭母 亦有婦哭夫 亦有夫哭婦
兄弟與姉妹 有生皆哭之 蹙額聽未終 涕泗忽交頤
吏乃前致詞 有哭猶未悲 幾多白刃下 擧族無哭者
萊山錄 卷 8
사월십오일
동악 이안눌
사월십오일 평명가가곡 천지변소슬 처풍진림목
경괴문노리 곡성하참달 임진해적지 시일성함몰
유시송사군 견벽수충절 합경구입성 동시화위혈
투신적시저 천백유일이 소이봉시일 설존곡기사
부혹곡기자 자혹곡기부 조혹곡기손 손혹곡기조
역유모곡녀 역유여곡모 역유부곡부 역유부곡부
형제여자매 유생개곡지 축액청미종 체사홀교이
이내전치사 유곡유미비 기다백인하 거족무곡자
래산록 권 8
처凄 - 쓸쓸하다,
진振 - 떨치다,
참慘 - 참혹하다, 비참하다,
달怛 - 슬프다, 놀라다,
합闔 - 문짝,
축蹙 - 가까이 대들다, 궁지에 빠지다, 오므라들다,
체涕 - 눈물, 울다,
이頤 - 턱, 기르다, 봉양하다,
송사또는 宋象賢을 말합니다.
이안눌은 1571년 6월 한양에서 태어났습니다. 1592년 4월 14일 왜구가 부산포에 상륙하고 선조는 4월 30일 새벽 한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릅니다. 이안눌도 함경도로 피난을 갑니다. 임란을 겪고 1599년 정시에서 12韻 排律 ‘인정전’을 지어 을과 제1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피난길 마을들로 부임해 다니다가 1607년 12월 21일 東萊 부사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 작품은 동래 東軒에 쓴 작품입니다.
4월 15일
동곡 이안눌
새벽 집집마다 곡을 하니
천지가 온통 쓸쓸하게 변하고
스산한 바람이 숲을 뒤흔든다.
놀라고 기괴하여 늙은 아전에게 물었지
“통곡 소리 어찌 이리 참혹한가?”
“임진년 왜구가 이르러
이 날 성안이 함몰 되었소
다만 이때 송 사또만 있어서
성벽을 굳게 닫고 충절을 지키니
경내의 사람들이 성안으로 몰려들어
동시에 피바다를 이루었지요.
쌓인 주검에 몸을 던졌으니
천 명 중에 한 두 명만 살아났지요.
이 때문에 이 날에는
술잔을 바치고 죽은 자를 곡한다오.
아버지가 자식위해 곡하기도 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위해 곡하기도 하고
할아비가 손자 위해 곡하기도 하고
손자가 할아비를 위해 곡하기도 하고
또 어미는 딸 때문에 곡을 하고
또 딸은 어미 때문에 곡을 하고
또 아낙네는 남편 때문에 곡을 하고
또 남편은 아내 때문에 곡을 하고
형제와 자매까지
산 자는 모두 곡을 한다오.“
찡그린 채 차마 다 듣지 못하는데
눈물이 문득 뺨에 가득하네.
아전이 앞에 나와 다시 말하기를
“곡할 이 있는 것은 그래도 슬프지 않지요,
얼마나 많은데요, 퍼런 칼날아래
온 가족이 다 죽어 곡할 이 조차 없는 사람이“
'天衣無縫'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尹善道 (1587~1671) (0) | 2008.03.04 |
---|---|
[스크랩]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尹善道 (1587~1671) (0) | 2008.03.04 |
[스크랩] 五友歌--윤선도(1587~1671) (0) | 2008.02.26 |
황진이(黃眞伊) 시, 시조 (0) | 2007.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