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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시 일죽면 망이산성에서 확인된 팔각건물터. 그 뒤로 인접한 지점에서는 기둥 구멍과 같은 대형 구덩이 7개가 동-서쪽으로 일렬을 이루고 있으며, 그 뒤로는 또 다른 건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초석들이 일렬을 이루고 있다. 제사 시설이었다고 추정된다. /김태식/문화부기사참조/문화/2005.11.27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 망이산성(望夷山城, 馬耳山城) >>>
종 목 | 시도기념물 제138호 (안성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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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망이산성(望夷山城) |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
수량/면적 | 일원 |
지 정 일 | 1993.06.03 |
소 재 지 | 경기 안성시 일죽면 금산리,이천군 율면 산양리 |
시 대 | |
소 유 자 | 국유 |
관 리 자 | 안성시,이천시 |
상 세 문 의 | 경기도 안성시 문화체육관광과 031-678-2478 |
중부지역을 가로지르는 차령산맥 가운데에 있는 이 산성은 망이산(지금의 마이산) 정상에서 능선과 골짜기를 걸쳐 쌓은 것으로, 안쪽의 내성과 바깥쪽의 외성으로 이루어진 2중성이다.
산 정상을 둘러싼 내성은 흙으로 쌓은 것으로 백제 때 축조된 것이다. 현재 밝혀진 길이는 250m쯤 되며, 북쪽에 문터로 짐작되는 자리가 있다. 내성 안에는 직사각형의 봉수대터가 남아있는데, 이곳에서 남쪽을 보면 산세는 거의 절벽으로 되어 험준하나 뒤쪽인 북쪽은 낮은 평원이 넓게 전개된다. 따라서 이 성은 남쪽의 적을 대비하여 쌓았음을 알 수 있다. 북문터 부근에는 샘이 있으며, 그 주위로 기와와 자기조각이 흩어져 있다. 북쪽으로 낮은 평원을 이룬 외곽 봉우리들의 능선을 따라 약 3㎞ 주위에 둘러 쌓은 외성은 돌로 쌓은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축조한 것이다. 외성에서는 3군데 걸쳐 문터가 확인되었으며, 산등성이 윗부분에는 공격에 유리하도록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돌출시켜 쌓은 치성도 5곳 발견되었다. 이 산성은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치는 유물이 발견되어 망이산성의 성격과 역할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죽산현의 봉수대로서 영남과 중부 내륙의 봉수를 받아서 도성으로 올린 봉수대 유적으로도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음도 확인되었다. 중부 지역을 가로지르는 차령산맥 가운데에 있는 망이산성은 망이산의 산봉우리와 능선 그리고 골짜기를 감싸도록 쌓은 성이다. 포곡식 산성의 한 형태인 망이산성은 남·서·북쪽에 있는 봉우리의 경사진 면을 이용하여 쌓았으며, 성 안쪽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지대가 낮고, 풍부한 물과 넓은 공간을 갖춘 좋은 지형이다. 산성에서 바깥을 보면 망이산 언저리가 낮은 들판을 이루어서 안성·이천·음성 지역은 물론 용인·진천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이 매우 좋은 곳이다. 토성(土城)인 내성과 석성(石城)인 외성으로 이루어진 겹성이며, 토성은 백제 때 쌓았고, 석성은 통일신라 후기의 것으로 밝혀졌다. 토성은 가장 높은 남쪽의 봉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며 현재 밝혀진 길이는 250m쯤 되고 북쪽에 문터로 짐작되는 자리가 있다. 특히 흙을 쌓을 때 버팀 기둥을 세우고 나무판자를 대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석성은 능선과 봉우리의 지세를 이용하여 쌓았다. 둘레는 약 2㎞로 남북 방향이고 성벽 안쪽의 언저리에는 성 안길이 있다. 외성에서는 3곳에 걸쳐 문터가 확인된 것을 비롯하여, 산등성이 윗부분에 쌓은 치성(雉城)이 5곳 발견되었으며 건물터도 여러 곳 확인되었다. 특히 치성은 성벽에 맞물려 쌓은 것과 덧대어 쌓은 것이 모두 발견되었다. 토성 안의 높은 곳에는 봉수터가 있는데 생김새는 직사각형이고 자기와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 이 봉수는 동래·충주 등을 거쳐 올라오는 직봉(直烽)과, 남해·진주 등에서 올라오는 간봉(間烽)을 서울 남산(목멱산)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백제·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에 걸치는 유구(遺構)와 유물이 발굴되어 망이산성의 성격과 역할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청동기시대 후기의 유물이 이처럼 높은 지역에서 발굴된 것은 청동기시대 후기의 사회와 초기 국가의 발달 과정을 밝히는 데 이 곳이 갖는 중요성을 잘 나타낸다.
<<< 출처-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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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이산성 [望夷山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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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청주박물관 2001년 망이산성 출토품 공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지금까지 실물자료가 매우 드문 백제시대 철갑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립청주박물관은 2001년 12월 충북 음성군 삼성면사무소가 같은 면 양덕리(良德里) 망이산성(望夷山城) 내 봉수대 남쪽 경사면에 자리한 약수터 인근 지역을 휴식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공사를 벌이던 중 지하에서 백제시대 철제솥이나 철제 도끼류 등과 함께 발견된 백제시대 철제갑옷을 보존처리를 거쳐 26일 공개했다. 지금까지 삼국시대 철갑옷 유물로 가장 알려져있으며 교과서나 도록 등지에 자주 실리는 것으로는 신라적 전통이 강하게 가미된 가야계 고분들인 경북 고령 지산동(池山洞) 32호분, 경남 합천 옥전(玉田) 28호분, 부산 동래 복천동(福泉洞) 112호분 출토품 외에 전(傳) 전북 장성 만무리(晩舞里) 유적 출토품 등이 있다.
반면 백제시대 철제갑옷은 출토 수량이 적을 뿐더러 그나마 완제품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림픽공원 조성 공사에 즈음해 80년대에 대대적으로 발굴된 서울 송파구 몽촌토성 출토 갑옷은 철제가 아니라 동물뼈로 만든 골제 갑옷이다.
따라서 망이산성 출토품은 비록 정식 발굴조사를 거치지는 않았다 해도, 그 형태가 거의 완벽하게 복원될 뿐만 아니라, 그 형태가 가야계 고분 출토품의 철제갑옷을 연상케 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보존처리 결과 이 갑옷은 흉부 3단, 복부 4단의 총 7단으로 이루어졌으며, 개폐 장치를 갖추었고, 각 판은 못을 박아 고정시키는 이른바 횡장판정결판갑(橫長板釘結板甲)으로 밝혀졌다. 현존 유물 기준 높이는 45㎝에 폭은 46.2㎝. X-레이 촬영 판독 등을 통해 갑옷 앞뒷면에 각각 멜빵을 고정하기 위한 흔적으로 보이는 구멍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확인됐다. 철갑 외에도 몸통을 기준으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폭이 좁아지며, 굽이 낮고 둥근 철부(鐵釜. 쇠로 만든 솥. 높이 29㎝, 아가리 지름 18.8㎝)와 일부가 결실된 철부(鐵斧. 쇠도끼. 길이 14.7㎝), 역시 한쪽이 결실된 쇠 꺾쇠(길이 9.4㎝)가 발견됐다.
이들 유물이 발견됐다는 신고를 접수한 직후 청주박물관 직원들이 현장으로 출동해 조사를 진행, 백제시대 토기편들을 수습했다.
청주박물관은 이들 유물에 대한 보존처리 과정과 결과, 유물 수습 과정 등을 국립중앙박물관 유관 학술단체인 한국고미술연구소(소장 이건무)의 연간 기관지인 '고고학지' 14호에 정리, 수록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경기 안성시 일죽면 망이산성에서 확인된 팔각건물터. 그 뒤로 인접한 지점에서는 기둥 구멍과 같은 대형 구덩이 7개가 동-서쪽으로 일렬을 이루고 있으며, 그 뒤로는 또 다른 건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초석들이 일렬을 이루고 있다. 제사 시설이었다고 추정된다. /김태식/문화부기사참조/문화/2005.11.27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경기 안성시 일죽면 망이산성 성벽 발굴 전경. 성벽 바깥 겉면은 品자 모양으로 쌓은 돌로 덧대고 그 안쪽에는 흙으로 채우고 있다./김태식/문화부기사참조/문화/2005.11.27 (서울=연합뉴스) 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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