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百濟의 첫 都邑地는 稷山慰禮城(직산위례성) | |
『고려사』(1454 간)-직산현은 본시 위례성 | |
“고대사의 비교 언어학적 연구” 저서에서 강길운 교수(전 수원대학교) 백제의 첫 번째 도읍지는 稷山慰禮城으로 비정(批正) 했다. 옛 지명의 대부분은 당시의 지배층이 사용하던 어휘를 한자를 빌어 새기거나 음역한 것이다. 따라서 백제의 慰禮城도 몽고어 - ulus(나라)의 발달형인 울레(>위례, cf. 한자음의 변화에 따름)에 몽고어 - kotu(성)의 발달형 - 골(>홀)을 첨가한 것을 한자의 음을 빌어서 표기한 것이다. 즉 ‘위례골’은 국성>국도(도읍)를 뜻한다.
그런데, 김씨 신라 지배층은 주로 터키계 어휘를 썼는데 백제가 망한 뒤에 직산이 당시에는 도읍지가 아니므로 개명함에 있어서 ‘울레’와 유사하면서도 비하된 터키어를 찾아보니, 마침 뱀(蛇 )을 뜻하는 yian(율란)>ilan(을란)이 있어서 그것으로 대체하고 산에 위치한 성이니 성 대신 산으로 교체한 것이 蛇山이다.
그러나, 그 실제 발음은 여전히 ‘울레’의 변음인 ‘위례’였는데 고려가 건국되자 그들은 고구려의 후신으로 자처하니 백제도 동족의 나라로 보게 되매 蛇山을 좋은 의미의 한자어로 바꾼 것이 稷山이다. 이것은 yugur(기장, 터키어)의 발달형인 ‘위르’와 ‘위례’가 유사하기 때문에 蛇를 稷으로 교체한 것이다.
그리고 『고려사』(1454 간) - 지리지 직산 현조에서 “직산현은 본시 위례성으로 백제 시조 온조왕이 개국하여 도읍을 세웠다”(稷山懸本慰禮城 百濟始祖溫祚王開國建都)라고 하였고, 『동국여지승람』(1530 간) 직산조에도 그와 같은 기사가 있어서 직산이 백제의 첫 번째 도읍지가 분명하다.
이병도 박사가 “백제가 위례부락(河北)에서 일어나 후에 하남 廣州로 옮기어 그곳 지명에 의하여 백제라고 하였던 것이다”(『한국사 - 고대편』진단학회, 1959)라 하고, 직산은 目支國의 도읍이었을 것이라고 한 것은 문헌상, 고고학 상으로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장 김 성 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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