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增東國輿地勝覽

예산현(禮山縣)--오산(烏山)ㆍ고산(孤山)

吾心竹--오심죽-- 2009. 9. 16. 20:41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0권
 충청도(忠淸道)
예산현 禮山縣


동쪽으로는 온양군(溫陽郡) 경계까지 28리이고, 남쪽으로는 대흥현(大興縣) 경계까지 9리이고, 서쪽으로는 덕산현(德山縣) 경계까지 22리이고, 북쪽으로는 신창현(新昌縣) 경계까지 21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2백 95리이다.
【건치연혁】 본래 백제의 오산현(烏山縣)이었는데, 신라에서 고산(孤山)으로 고쳐 임성군(任城郡)의 속현으로 삼았고, 고려 태조(太祖) 2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으며, 현종(顯宗) 9년에 천안부(天安府)에 붙였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던 것을 본조 태종 13년에 예에 따라 현감으로 하였다.
【관원】 현감ㆍ훈도 각 1인.
【군명】 오산(烏山)ㆍ고산(孤山).
【성씨】 본현 신(申)ㆍ손(孫)ㆍ심(沈)ㆍ장(張)이 있으며, 심(沈) 속성(續姓)이다. 화물(化物) 방(方) 문석(文石)과 같다.
【산천】 금오산(金烏山) 현 북쪽 2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남산(南山) 현 남쪽 6리에 있다. 도고산(道高山) 현 북쪽 11리에 있다. 또한 신창현(新昌縣) 산천에도 나와 있다. 무한산(無限山) 현 서쪽 9리에 있다. 소기현(蘇機峴) 현 동북쪽 28리에 있다. 무한천(無限川) 무한산 서쪽에 있는데, 홍주(洪州) 여양천(驪陽川)의 하류이다. 매양 여름철에 물이 벌창하면 큰 뱀이 산에서 나와 냇물에 잠복하여 사람과 가축에 우환을 준다. 호두포(狐頭浦) 현 북쪽 19리에 있는데, 곧 무한천의 하류이다.
【토산】 사기그릇[磁器]ㆍ숭어[秀魚]ㆍ게[蟹]ㆍ웅어[葦魚]ㆍ복령(茯苓).
【학교】 향교 현 동쪽 1리에 있다.
【역원】 일흥역(日興驛) 현 서쪽 13리에 있다. 무한성원(無限城院) 무한천 냇가에 있다. 고사원(古沙院) 현 동쪽 13리에 있다.
【불우】 향천사(香泉寺)ㆍ안락사(安樂寺)ㆍ관정사(觀正寺) 모두 도고산에 있다.
【사묘】 사직단 현 서쪽에 있다. 문묘 향교에 있다. 성황사 현 동쪽 1리에 있다. 여단 현 북쪽에 있다.
【고적】 입석소(立石所) 구명은 문석(文石)이며, 현 동쪽 16리에 있는데, 지금은 대지동촌(大枝洞村)으로 되어 있다. 화물장(化物莊) 현 서쪽 22리에 있는데 지금은 입암촌(立巖村)으로 되어 있다. 무한산성(無限山城) 돌로 쌓았는데, 주위가 2천 2척이며, 안에 우물 하나가 있는데 지금은 못쓰게 되었다.
【명환】 본조 유문통(柳文通) 현감이 되었었다.
【효자】 본조 김근(金勤)ㆍ이개우(李開右) 모두 정문을 세워 표창했다.
【열녀】 본조 매읍덕(每邑德) 호장(戶長) 장중연(張仲淵)의 딸이다. 나이 23세에 남편이 죽었는데, 무덤 곁에 여막[廬]을 세우고 3년간을 친히 제사하며 소금ㆍ장 등을 먹지 않았다. 뒤에 부모가 그 뜻을 꺾고 다시 시집보내려 하자, 죽음으로 스스로 맹세하고 드디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연혁】 본래 백제의 고산(孤山)이다 오산(烏山)이라고도 한다. 당(唐)이 마진(馬津)이라 고치고 지심주(支潯州)의 영현(領縣)으로 만들었다. 고종 32년에 군으로 고쳤다.

《대동지지(大東地志)》
【방면】 현내(縣內) 끝이 5리. 술곡(述谷) 동남쪽으로 처음이 5리, 끝은 20리. 대지동(大枝洞) 본래는 입석소(立石所)인데, 동쪽으로 처음은 10리, 끝이 20리이다. 금평(金坪) 북쪽으로 처음은 7리, 끝은 20리이다. 두촌(豆村) 북쪽으로 처음은 10리, 끝은 15리이다. 입암(立巖) 본래는 화물장(化物莊)인데, 서북쪽으로 처음은 15리, 끝은 20리이다. 거구화(巨仇火) 서쪽으로 처음은 10리, 끝은 20리이다. 자가산(子加山) 서쪽으로 처음은 7리, 끝은 20리이다. 오원(吾元) 북쪽으로 처음은 7리, 끝은 10리이다.
【성지】 오산성(烏山城) 바로 옛읍의 터인데 지금 치소(治所)에서 서쪽으로 6리에 있다. 평평한 들에서 외롭게 서 있기 때문에 고산(孤山)이라 하며, 오산산성(烏山山城)이라고도 한다. 둘레가 2천 2척인데 우물 하나가 있다.
【역참】 북쪽으로 10리에 있는데, 내포(內浦) 11읍에서 서울로 통하는 큰길에 있다.
【토산】 감[枾]ㆍ붕어[鯽魚].
【사원】 덕잠서원(德岑書院) 숙종 을유년에 세워졌고, 갑오년에 사액되었다. 김구(金絿) 자는 대유(大柔), 호는 자암(自庵),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벼슬은 부제학(副提學)이었고, 이조 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의(文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