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추풍령'은 '가파름재'의 뜻

吾心竹--오심죽-- 2009. 8. 28. 15:53

'추풍령'은 '가파름재'의 뜻

 

'가을 바람'과는 별 관계가 없을 듯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배우리

 

 

 

050600 산 기고 25매 땅기 월간산  백두대간 땅이름  `지리산6 우두령~추풍령(추풍령)


  "온갖 비리로 그들 모가지가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다 날아갔쟎나?"
  "허, 이젠, 그들도 추풍삭막(秋風索莫)이구만."
  "그러길래 작은 민초의 소리랄지도 진작부터 추풍과이(秋風過耳)하지 말았어야지."
  "에이그, 이젠 가졌던 것도 다 추풍선(秋風扇)꼴이지 뭐."
  정치 얘기에 웬 추풍(秋風) 타령? 그 본뜻이 뭐길래 썩은 정치판의 한 단면을 '추풍'으로 빗대나?


□ '추풍'이 붙은 성어들
  '추풍'은 이름 그대로 '가을 바람'이다.
  춘풍(春風) 즉 '봄바람'이란 말이 '훈훈함', '찾아옴'의 느낌을 준다면 이 말의 상대가 되는 추풍(秋風)이란 말은 이와는 반대로 '서늘함', '사라짐'의 느낌을 안겨 준다.
  그래서,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라는 뜻으로, 세력 따위가 갑자기 기울거나 시듦을 이르는 말인 '추풍낙엽(秋風落葉)'이란 말이 나왔고, 가을 바람이 삭막하는 뜻으로, 옛날 누렸던 권세가 간곳 없이 초라해진 모습을 이르는 말인 추풍삭막(秋風索莫)'이란 말이 나왔다.
  가을철의 부채라는 뜻의 '추풍선(秋風扇)'은 제 철이 지나서 아무 쓸모없이 된 물건을 비유하는 말로 자리잡았고, 가을 바람이 귀를 스쳐간다는 뜻의 '추풍과이(秋風過耳)'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음을 이를 때 쓰이는 말이 되었다.
  추풍.
  그래서, 땅이름 중에 '추풍'이 들어가면 '서늘함'이나 '떠남'을 떠올린다. '추풍령'을 넘으며 불러 봄직한 '추풍령 고개' 가사에도 떠남(지남, 흘러감)의 아쉬움이 배어 있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 / 추풍령 구비마다 한 많은 사연 /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면 /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 고개
  기적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가는 / 추풍령 구비마다 싸늘한 철길 / 떠나간 아쉬움이 뼈에 사무쳐 / 거칠은 두 뺨 위에 눈물이 흐른 /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 고개

  추풍령은 경북 김천시 봉산면(鳳山面)과 충북 영동군 황금면(黃金面)(1991년부터 추풍령면)의 경계가 되는, 해발고도 221m의 고개. 백두대간의 한 허리를 넘는 고갯마루. 낙동강의 지류 감천(甘川)과 금강의 지류 송천(松川)의 첫 줄기가 고개의 양 비탈 골을 타고 흘러내린다.
  예로부터 영남과 중부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음은 천안, 목천, 청주, 보은, 청산, 황간, 김천으로 이어지는 옛길이 이 고개를 지나고, 근처에 추풍역이 있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한 이 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장지현(張智賢)이 왜군과 분전하다가 장렬히 전사하기도 하다.
  지금도 경부선철도와 경부고속도로 및 4번국도가 통과하며, 그 땅 속으로는 경부고속철도가 통과해 한반도의 중심에서 교통의 중요한 몫을 한다. 그렇게 높은 고개가 아니지만, 전에는 험준하고 높은 고개였음을 고개 이름의 '령(嶺)'이 잘 말해 주고 있다. 또, 당당히 그 기세 좋은 백두대간을 넘고 있쟎은가.


□ 추풍령의 '추'는 '갓(가)', '풍'은 '파름'인 듯
  '추풍령'이란 이름이 나온 과정을 써 놓은 글을 별로 볼 수가 없다. 더러는 '바람'과 관련해 그 이름 유래를 설명한 것이 보이기는 해도 그 내용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근처에 있었던 추풍역(秋風驛, 秋豊驛)의 이름을 따라 고개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지만, 이 역시 고개 이름이 먼전지 역이름이 먼전지 알 길이 없다.
  나름대로 이 고개의 이름을 어원적으로 더듬어 볼 수밖에 없는데, 어쩌면 지나친 비약이 될 수도 있기에 붓을 움직이기에 무척 조심스럽다.
  전국에는 '풍현'이나 '풍치'처럼 '풍(風)자가 들어간 땅이름들이 많은데, 이들의 토박이 이름들을 보니 거의 모두가 '바람재'였다.
  풍치(風峙)란 이름을 가진 곳이 전남 강진 군동면 장산리, 곡성 죽곡면 삼태리, 보성 미력면 초당리, 복내면 용동리, 순천 삼거동, 쌍암면 신성리, 화순 청풍면 이만리, 승주 상사면 도월리, 충북 중원 상모면 수회리 등에 있는데, 그 원이름이 모두 '바람재'이다.
  풍현(風峴), 풍산(風山) 등의 이름이 경남 산청 산청읍 내리, 경북 경주 외동면 제내리, 충남 천안 입장면 도림리 등에 있는데, 이들 역시 '바람재', '바람이재', '바람산' 등의 원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지명에서 '풍(風)'을 '바람'으로 푸는 것은 당연할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많은 '풍' 지명의 고개나 산들이 과연 오로지 '바람'과 연관해서 붙여진 것일까 하는 데는 수긍 못할 구석이 많다. 그래서, 필자는 '바람'의 본말(옛말)로 찾아들어가 이 지명들과 얽힌 관계를 풀어 보기로 했다.
  지금은 우리가 '바람'이라고 하지만, 이의 옛말은 '  '이다. '  '은 '바람'으로 읽을 수 있으나, '보름' 또는 '부름'에 가까운 발음으로 읽을 수도 있다.
  ㆍ블휘 기픈 남근 바라매 아니 뮐새  (용비어천가 2장) 

  ㆍ매온 바라미 하도다 (多烈風) (두시언해 18-12)
  ㆍ풍(風) 브름 (훈몽자회 상2)

 

  가을 보름이 건드렁하난

  촐도 비엄직하구나.

  비소금 가탄 내 호미들아

  몰착몰착 비어 나간다.

  보름아 보름아 불 테면

  하늬보름으로 불어 오라.

 

  위 노래 ('가을 보름이…')는 제주도 동북부 산간 지역에서 전해 오는 '촐 비는 소리'로, '홍애기 소리'라고도 한다. 여기서의 '촐'은 '꼴'을 말하고, '하늬보름'은 '하늬바람'을 말한다.
  우리의 옛말이 많이 살아 있는 제주도에선 이처럼 '바람'을 '보름'이라고 한다. 아주 옛날엔 제주도뿐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도 '바람'을 '보름'이라고 많이 했으며, 지금도 호남지방에서는 이렇게 발음하는 곳이 많다.
  '바람'이란 말은 우리말의 '불다'라는 말과 아주 관계가 깊다. '울다'에서 '울음'이란 말이, '웃다'에서 '웃음'이란 말이 나온 것처럼 '불다(吹)'에서는 '불음'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 '불음(부름)'이 변한 말이 '볼음(보름)'인데, 서울이나 경기도 일대에선 이 말이 그 특유의 말습관에 따라 '바람'으로 자리잡게 됐고, 표준말로도 됐다.
  그런데, 이 '바람(보름)'이란 말 앞에 다른 말이 접두사처럼 붙으면 곧잘 '파람(포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남풍(南風)'을 뜻하는 '마파람(마포름)'이 나왔고, '동풍(東風)'을 뜻하는 '새파람(새포름)'이 나왔다. '휘파람'의 '파람'도 '바람'이다.
  그렇다면 '가을 바람'을 뜻하는 '추풍(秋風)'은 '가파람'이나 '가파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파름'은 '가파르다(비탈이 급하다)'의 명사형이므로 '가파름재'는 한자로 '추풍현(秋風峴)' 또는 '추풍령(秋風嶺)'으로 옮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갓('가을'의 본뿌리말)=추(秋) ※ 가슬(가 )=가을
  파름(파람.바람)=풍(風)
  재(고개)=현(峴), 령(嶺)
  ∵ 갓+파름+재=秋+風+嶺=추풍령(秋風嶺)


□ 재미있는 바람 이름들
  땅이름은 아니지만, 추풍령 이야기를 하다가 '바람'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니, 이 기회에 바람의 여러 가지 이름을 살펴보기로 하자.
  지금은 순 우리말의 바람 이름이 우리 머리에서 많이 멀어져 갔지만, 우리 조상들은 '새파람', '갈바람' 등 토속의 정이 담긴 바람 이름들을 많이 썼다.
  '새파람(샛바람)'은 동풍이다. '새'가 '동쪽을 가리키기 때문. 제주도에서 이를 '샛바름(새파름)'이라고 하고, 농가에서는 '동부새'라 한다.
  '하늬바람'이나 '갈바람'은 서풍. 전라도나 충청도에선 이 바람을 '늦바람'이라 하고, 강원도나 경북 또는 함경도 지방에서는 '북새'라고 하며, 뱃사람들은 '가수알바람'이라고 한다. 또, 서풍은 연을 위쪽으로 잘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연날리기에선 '윗바람'으로 통한다.
  남풍은 '마파람'이나 '앞바람'이라 하고, 북풍은 '된바람'이나 '뒷바람'이라 한다.
  동남풍은 '된마바람' 또는 '새마바람', 서남풍은 '갈마바람', 동북풍은 '높새바람' 또는 '된새바람', 서북풍은 '높하늬바람'이다.
  북한에서는 북풍을 '북새바람'이라고 하고, 서남풍을 '세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은 그 세기에 따라서도 이름이 달리 붙는다.
  약하게 솔솔 부는 바람은 '가는바람', '솔바람'이고, 아주 약하게 부는 바람은 '실바람'이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는 '날파람', 눈꽃을 날리며 잔잔히 부는 '눈꽃바람', 보드랍고 화창한 '명지바람'이 있다.
  첫가을에 동쪽에서 불어오는 센 '강쇠바람', 살을 엘 듯한 겨울의 센 '매운바람', '모진바람', 방향이 일정하지 않으면서 거세고 세찬 '거친바람', 맵고 독하게 부는 '고추바람', 채찍질을 하듯 간간이 세차게 후려치며 부는 '채찍바람'도 있다.
  좁은 틈으로 세게 불어오는 '황소바람'은 짐승의 크기와 성격에 비겨서 붙인 재미있는 바람 이름.
  큰 나무가 온통 움직이고 사람이 걷기 어려울 정도의 바람은 '센바람'이고, 가는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사람이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의 바람은 '큰바람'이며, 좀 굵은 나뭇가지도 부러지고 건물에 피해를 조금 주는 바람은 '큰센바람'이다. 건물에 큰 피해를 주는 바람은 '왕바람', 간간이 나무뿌리가 송두리째 뽑히는 정도의 센 바람은 '노대바람', 육지의 모든 것을 싹 쓸 정도의 바람은 '싹쓸바람'이다.
  한국 기상청에서는 바람의 종류를 그 세기에 따라 12가지로 나누어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풍향계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의 가장 약한 바람은 '실바람'이고, 깃발이 휘날릴 정도의 바람은 '산들바람', 길거리의 종이조각이 날릴 정도는 '건들바람'이다. 초속 17m가 넘으면 '큰바람'인데, 이 바람을 포함해 '노대바람', '싹쓸바람' 등이 태풍권이다.
  북한에선 곧추 들어오는 바람을 '직통바람'이라고 한다.
  원뿔형으로 세차게 돌아 오르는 바람은 '회오리바람' 또는 '돌개바람'이라 한다. 그 세기가 좀 약하다면 '용수바람'이 된다.
  또, 움직이는 모양(의태어)을 따서 붙인 '남실바람', '건들바람'. '산들바람', '솔솔바람'도 있다. '솔바람'은 솔(松) 사이를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라, 아주 느낌이 작게 올 정도로 가는 바람을 뜻한다. '솔'은 '가늘다(細)'의 뜻이다.   
  '살바람'은 살살 부는 바람이 아니라, 봄철에 부는 아주 찬 바람이다.
철에 따라 주기적으로 일정하게 부는 '철바람'을 한자말로는 '계절풍'이라 한다.
  바람은 그 무엇을 동반하기도 하면서 또 다른 이름들을 얻는다. 눈을 흩날리며 부는 '눈바람', 비와 함께 불어 치는 '비바람', 먼지를 안고 오는 '먼지바람'처럼. 먼지바람보다 더 규모가 큰 것이 '모랫바람'인데, 중국 대륙에서 날아오는 '황사바람'도 그 중의 하나.
  '서릿바람'은 서리와 함께 내리는 바람이 아니라 서리 내린 아침의 찬 바람을 뜻한다. 바다에서 소금기를 머금고 불어오는 바람은 '짠바람'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열을 안고 오는 바람을 '열바람'이라고 한다.
  '뭍바람', '산바람', '골바람' 등은 산을 찾는 이들이 많이 쓰는 말이고, '바닷바람', '강바람', '무파람'은 바다나 강을 찾는 이들이 많이 쓰는 말이다.
  '바람'이란 말은 그 앞에 놓이는 소리마디에 따라 '마파람', '날파람' 등처럼 '파람'이 되기도 한다. 진짜 바람이 아닌 '휘파람'은 입으로 바람을 내며 '휘이' 소리를 낸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정치바람, 치맛바람, 투기열풍, 입시열풍, □풍, ■풍, …
  바람은 분명히 바람인데, 모두가 가슴을 시원히 식혀 줄 시원한 갈바람이 아니다.
  백두대간의 한 허리 '가파름재'라도 오르면서 머릿속에 꽉 찬 열바람을 휘파람 자락에 실어 멀리멀리 날려 버릴까. /// 글. 배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