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두루'에서 출발한 지리산

吾心竹--오심죽-- 2009. 8. 28. 15:51

'두루'에서 출발한 지리산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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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 남쪽 끝자락의 산괴인 지리산(智異山)은 우리 한반도 남쪽 중앙에서 거대하게 솟구쳐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웅장함만큼이나 전하는 이야기도 많고, 찾는 이도 많다.

  두류산 양단수(兩端水)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조식(曺植)(1501 ∼ 1572)         
 
□ 지리산의 본뜻
  무릉이 정말 어디이겠는가? 바로 두류산(지리산).
  그런데, '두류산'과 '지리산은 음운상 어떤 연관이 있을까? 생각해 보기 위해 우선 호남지방 방언의 구개음화 현상을 살펴보자.
   ·형님→성님
   ·힘→심
   ·기름→지름
   ·길→질
   ·드새다→지새다(뜬 눈으로 밤을 지내다)
   ·디뎌→지뎌
   ·디밀다→지밀다
  위와 같이 호남지방에선 'ㄷ'이 대부분 'ㅈ'으로 옮겨가고 있다. 따라서, '지리산'의 '지'도 '디' 또는 '드'가 구개음화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지. 여기서 '지리산'과 '두류산(두리산)'의 음운적 관계를 더듬어 보자.
  ·두루 → 두리 → 드리 →  디리 → 지리
  '두류'는 '두루'가 음차(音借)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두루'가 호남 방언식으로 '지리'까지 가게 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두류산'이나 이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에 무수히 많다. '두류봉', '두류령', '두루봉', '두리봉', '두로봉' 등.
  그렇다면 '두리(두루)'는 원래 어떤 뜻을 담은 말일까? 많은 학자들은 이를 ' '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원래 '땅' 또는 '산(山)'을 뜻하는 이 ' '은 땅이름에서 '두루'나 '두리'뿐 아니라 '드르', '두르(周)' '두레' 등 상당히 많은 지명을 파생시키고 있다. 일반 용어에서 '두리목'(둥근 재목), '두리반'(두레상), '두리새암('우물'의 사투리)', '두리 함지박'(둥근 함지박) '두레(돌려가며 도움)' 등의 말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 '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지. 우리의 전통 옷 '두루마기'를 전에는 한자로 '주의(周衣)' 또는 '주막의(周幕衣)'처럼 '둥글 주(周)'자를 넣었는데, 이 역시 '두루'와 '둥금(圓)'이 어의상 서로 근접함을 엿보게 한다.
  '지리산(두리뫼)'은 '크고 둥글게 둘려쳐진 산'의 의미로 새길 수 있지 않은가? 지리산(智異山)을 한자 뜻 그대로 푸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 천황봉과 천왕봉
  전국에는 '천왕봉(天王峰) 또는 '천황봉(天皇峰)'의 이름을 가진 산이 무척 많다.
  속리산(俗離山), 월출산(月出山), 계룡산(鷄龍山) 등의 높은 봉우리들이 모두 이 이름을 달고 있다. 그런데, 여러 지도들을 보면 어느 것은 '천왕봉'으로 또 어느 것은 '천황봉'으로 표기해 놓고 있다. 그러나, 옛 문헌이나 지도에선 '천황봉'보다는 '천왕봉'으로 표기한 것이 더 많이 보인다. 지리산 주봉의 봉우리도 대동여지도에선 분명히' 천왕봉(天王峰)'이다.
  '천왕봉'으로 표기되어 왔던 많은 봉우리 이름들이 일제 이후의 지도들에선 '천황봉'으로 많이 옮겨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천황봉'은 일본 천황(天皇)이 연상되어서일까? 약간은 그쪽 냄새가 나서 부르기 꺼려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 반야봉
  지리산의 여신 마야고(痲耶姑)는 남신 반야(般若)를 사모하여, 그리운 반야의 옷 한 벌을 고이 지어, 만나서 전해 줄 기회를 찾고 있었단다. 달 밝은 밤, 마야고는 지리산 중턱에 앉아 반야의 옷을 품에 안고 그를 생각하다가 꿈에도 그리던 반야가 자기쪽으로 손짓하며 걸어오기에 반야의 옷을 든 채 달려가 정신없이 무엇을 잡을 듯이 허위적거렸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잡히는 것은 없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반야는 보이지 않고 쇠별꽃들만 달빛 아래서 바람에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전설)
  천왕봉에서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반야봉(般若蜂)은 마야고가 늘 바라보고 반야를 생각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마야고가 메워 버렸다는 못은 누군가가 천왕봉 밑 장터목에서 찾아내 '산희샘(山姬샘)'이라고 이름 붙였다던가.
  우리네 산이나 봉우리 이름들을 보면 불교적인 것이 무척 많다.
  당연하지. 산(山)을 가장 많이 이용한 사람들이 그네들이니.
  지금 전국에 있는 산이나 봉우리들 중에는 이름 없는 것이 무척 많다. 우리 조상들은 산을 이용하긴 했어도 그 이름을 붙이는 데는 무척 인색했다, 아니, 붙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한 일정한 공간에서 '터' 하나만 있으면 용케도 살아갈 수 있었던 우리 선인들은 나무하러 갈 때는 '뒷산'으로 가면 되었고, 밭 매러 갈 때는 '앞뜰'로 가면 됐으니까. 산이름이 무엇이고, 들이름이 무엇인가는 '사는 일'과는 별 큰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한 산을 중심으로 해서 도를 닦는 사람이 다른 고장으로 가서 '어디에서 온 승려'라고 할 때는 자기 고장에서 부르던 '뒷산'이란 말로야 통할 수가 없었겠지. 자연히 산이름이 필요했고, 이름이 없을 때는 불교적인 용어에 '산' 또는 '봉'자를 뒤에 붙여서라도 이름을 대야 했으니. 불교적인 산이름, 봉우리 이름은 그렇게 많이 퍼져갔을 것이다.

 

□ 노고단 능선 근처의 땅이름들
  지리산 반야봉에서 노고단을 거쳐 만복대(萬福臺)에 이르는 산줄기는 전남 남원시 산내면(山內面)을 삼태기처럼 휘어감고 그 안에 심원계곡을 형성해 놓고 있다.
  노고단 전상 근처에서부터 흘러내린 물은 심원계곡을 따라 계속 북동쪽으로 흘러 멀리까지 나아가다가 갑자기 남동쪽으로 갈고리처럼 휘어돌며 진주 남강의 중요한 지류를 이루어 놓는다.
  산내면 중에서도 가장 깊은 산골이 덕동리(德洞里).
  지리산 산행을 많이 한 사람들이라면 거의 안 밟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보디재, 정령재(鄭嶺-), 황령골(黃嶺-) 등이 다 이 곳에 있다.
  휴정(休靜)의 <황령기(黃嶺記)>에 다르면, 한(漢) 소제(昭帝) 3년(기원 전 33) 마한이 진한의 난을 피하기 위해 이 곳(지금의 달궁터)에 도성을 세우고, 황장군과 정장군에게 각각 한 재(嶺)씩 지키게 했단다. 결국, 그렇게 해서 '황령재', '정령재'란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
  덕곡리 돌고개(석현=石峴)에서 구례군 산동면을 지나 마산면 황전리 화암사로 가는 긴 고개는 '아홉사리재'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고개가 아홉 번 굽어 붙은 이름. 전국에는 '사리'가 접미사격으로 붙은 땅이름들이 무척 많은데, 거의 모두 '굽음(曲)'을 뜻하고 있다.
  만복대의 남동쪽 골짜기는 산수유(山茱萸)로 유명한 전남 구례군 산동면(山洞面).
'산동면'이나 '산내면'이란 이름은 똑같이 '산골'이란 의미를 지닌다. 의미는 같지만, 지리산 줄기에 의해 생활권은 달라서 조선시대엔 산내면쪽은 운봉(雲峰) 땅이고, 산동면쪽은 남원 땅이었다.
  이른 봄이면 노란 산수유꽃으로 마을 주위를 가장 짙게 노랑물을 들이는 곳이 산동면의 위안리(位安里).
  이 곳 '위안'이란 이름이 재미있다. '골짜기 안쪽에서 가장 위쪽'이란 뜻에서 나온 것. 한자의 위안(位安)'을 그 뜻대로 푸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위안리 옆의 마을은 한자로 '좌사(佐沙)'.
'모래'와 관련 있는 이름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도 단순히 '산(山)'의 의미일 뿐이다. 즉, 원래 우리 땅이름 '자새(좌새)'를 음차해 한자의 '좌사'로 옮긴 것. '자새(좌사)'는 '산'의 뜻인 '잣'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과 노고단을 중심으로 한 일대는 '산(山)'과 연관이 있는 땅이름들이 온통 텃밭을 이룬다. /// 글. 배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