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화성 길성리토성은 '작은 풍납토성'

吾心竹--오심죽-- 2009. 4. 4. 10:44

"화성 길성리토성은 '작은 풍납토성'"

연합뉴스 | 입력 2008.10.08 15:40 | 수정 2008.10.08 16:00

 

3-4세기 한성백제 축조 토성 판명
(화성=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기 화성시 향남면 요리에 있는 고대 성곽 유적인 '길성리토성'이 풍납토성의 축소판이자, 몽촌토성과는 축조시기나 축조기법이 대단히 흡사한 한성백제시대(BC 18-AD 475년) 토성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총 둘레 약 2.3㎞인 길성리토성에 대해 한신대박물관(관장 이남규)이 사상 처음으로 성벽 절개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 성벽 내부에서 3-4세기 무렵 백제토기편들을 다수 수습함으로써 밝혀졌다.

박물관은 유적 보존과 정비를 위해 화성시가 의뢰한 길성리토성 내부 북동쪽 성벽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 일환으로 지난달 16일부터 폭 1.5m 규모로 성벽 절단 조사를 해 본 결과 성벽은 폭 7.9m 이상, 높이 2.55m에 이르는 토성벽임을 확인했다고 8일 말했다.

책임조사원인 권오영 한신대 교수는 "토층 단면에서는 치밀한 형태의 켜 쌓기(판축 < 版築 > ) 흔적은 보이지 않으나, 성질이 다른 흙을 켜켜이 쌓아 올린 공정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성벽 내부에서는 대옹(大饔)을 비롯한 한성백제시대 토기류 조각들이 출토됐다"고 덧붙였다.

이 토기류들은 고고학계에서 이른바 '원삼국 토기'로 분류하는 것들로 제작시기는 대체로 3세기 이전으로 분류된다.

이로써 본다면 길성리토성은 축조시기를 3세기 무렵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충남대 박순발 교수는 "이 토기류들은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깨진 상태로 들어간 것이므로 이를 근거로 성벽 축조시기를 '안전하게' 본다면, 4세기 초반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길성리토성은 90년대 중반 무렵에 이미 고고학계가 주목한 유적이긴 했으나, 방치되다시피하다가 2002년에야 개발에 따른 긴급 지표수습 조사가 한신대박물관에 의해 이뤄지고 그 결과 한성백제시대 유물이 다수 출토됨에 따라 비로소 한성백제의 유적일 것이라는 견해가 제출됐다.

하지만 성벽에 대한 절개 조사가 그동안 한 번도 실시되지 않아 그 축조 주체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만한 확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길성리토성은 아무리 늦어도 4세기 전반 이전 한성백제가 축조한 토성으로 밝혀짐에 따라 그 왕성터임이 확실시되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둘레 3.4㎞)과 그 남쪽 700m 지점 올림픽공원 내부에 위치하며 풍납토성을 보조하던 성곽으로 생각되는 몽촌토성(둘레 2.2㎞)과 여러 모로 비교되고 있다.

무엇보다 길성리토성은 입지 조건이 얕은 구릉성 산지를 최대한 이용하고자 한 토성이며 규모 또한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서 몽촌토성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토지박물관 심광주 학예실장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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