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타날문(두드림무늬) 토기

吾心竹--오심죽-- 2009. 4. 9. 12:18

“풍납토성 언제 쌓았을까” 공개토론


초기백제 도읍터로 유력한 서울 풍납토성은 언제 쌓았을까. 99년 성벽발굴조사로 토성의 거대규모가 드러나자 고고학계는 입씨름을 벌였으나 학문논쟁으로 다듬는데는 실패했다. 완성이 3세기 전이라는 소장파쪽과 3세기 중엽을 못 넘긴다는 강단쪽 견해가 감정대립으로 치달아 공개토론마저 회피한 것이 그간 사정이었다.

 

21일 충남대 박물관 강당에서 이 대학 백제연구소(소장 박순발)주최로 열리는 제42회 백제연구공개강좌는 이런 폐습을 걷고 성벽완성시점에 얽힌 본격논쟁을 예고한다. 소장파로 발굴에 참여한 신희권 국립문화재연구소학예사와 강단학파의 박순발, 성정룡 충남대 교수 등 상반된 시각의 학자들이 처음 공개토론에 나선다는 점에서 눈길이 쏠린다.

 

신씨는 발제문격인 <풍납토성 축조연대 시론>을 통해 성벽 안에서 파편과 완형으로 출토된 두드림무늬 바리그릇(타날문심발형토기)의 제작연대를 쟁점으로 들고나왔다. 성을 쌓다 쓸려들어간 유물이라 축성연대를 직접 가늠케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논문에서 성벽 안과 성안의 경계구덩이(환호)유적서 나온 타날문토기들이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께의 무늬없는 토기들과 섞여나온데다 바탕흙도 같은 흙을 쓴 만큼 그 연대를 대체로 2~3세기 전반께로 보았다. 따라서 성벽쌓기는 3세기 이전 끝났다는 주장이다.

 

이 견해는 먼저 쌓은 성벽중심부에서 무늬없는 토기가, 외벽에서는 연질 타날문토기가 주로 나오는 반면 3세기 중엽이후 백제유물인 세발토기, 굽다리접시 등은 거의 없다는 데 근거를 둔 것이다. 신씨는 이와함께 타날문토기가 3세기 전반 이후 본격제작됐음을 전제로 성벽축조시기를 3세기 중엽으로 낮춰본 박순발 교수의 지론도 정면으로 공격했다.

 

기원직후 타날문토기 발생설을 인정해온 박 교수가 충청·전라도 등 중서부 무덤서 나온 타날문토기 추정연대(3세기 중후반)에 한강유역 타날문토기의 연대를 무리하게 끌어맞추는 바람에 기원후부터 3세기까지 타날문토기의 실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다른 지역 유물의 시기를 비교하며 상관관계에 따라 연대를 구성하는 것이 합리적 접근법”이라며 “신씨 주장은 다른 지역 토기와의 시기적인 교류관계를 보지않고 임의적으로 토기연대를 올렸다”고 반박했다.

노형석 기자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