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史(북사)」백제전에 따르면 백제에는 鼓(고), 角(각), 空後(공후) 箏(쟁)〈아쟁과 비슷한 현악기〉, 竿(간)〈생황 비슷한 관악기〉, (호)〈가로로 부는 피리〉, 笛(적)〈세로로 부는 피리〉등의 악기가 있었다. 이 밖에 복숭아나무 껍질로 만든 (차후)등도 있었는데 이 가운데 군후는「구다라고도」하여 百濟琴(백제금)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백제 의자왕이 일본에 보낸 관악기 목록을 보면 橫笛(횡적), 長笛(장적), 高麗笛(고려적)笙(생)(생황), 筆 (필율), 簫(소)(퉁소), 莫目(막목), 尺入(척입), 中管(중관) 등이 있는데, 불행히도 이들 악기가 관악기라는 것외에 구체적으로 생김새나 소리늘 알 수가 없다. 기록에 나타난 백제의 악기들을 다시 정리해 보면 타악기로 鼓(고)가 있고 현악기로는 (공후), (차후), 箏(쟁)등이 있으며 관악기로는 角(각), 竿(간), (호), 笛(적) 筆 (필율), 莫目(막목), 長笛(장적), 高麗笛(고려적), 笙簫(생소), 尺入(척입), 中管(중관)등이 있는데 유난히 관악기 종류가 두드러지게 많다는 것이다. 백제 악기들 가운데 고구려 피리인 高麗笛(고려적)이 있었고 당시 중국 대륙에서도 연주된 (공후), 筆 (필율)등의 악기가 있었으며 이들 관악기가 의자왕때 일본에 전해졌음을 볼 때 당시 백제 악기 구성은 매우 다양하고 이채로웠음을 알 수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백제시대 악사와 무용수는 꽤 높은 벼슬로 우대되었다.
악사들은 8품의 벼슬시덕에서 11품인 대덕등의 벼슬을 내렸고 무용수는 자주빛의 통넓은 소매의 도포에다 章甫冠(장보관)〈儒者(유자)가 쓰는 관〉을 쓰고 가죽신을 신었다. 더욱이 백제사회가 계급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악사가 8품에서 11품을 차지하고 무용수가 임금이 입었다는 자주빛 도포를 입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백제에는 기악무라고 하는 특별한 예술이 있었는데 이것은 음악과 무용 그리고 재담과 놀이를 결합한 종합 예술이었다. 기악면이라고 부르는 가면을 쓰고 연출하는 기악무는 일본의 推古天皇(추고천황)〈20년에〉백제의 악사 味麻之(미마지) 등 세사람이 중국 대륙의 오나라에 배워와 일본에 전파시켰다 한다. 또한 불교의 공양극이면서 가면을 쓰고 하는 연극이라 해서 가면극으로 불리는 기악무는 미마지 말고도 백제의자왕때 일본에 건너간 은고에 의해 일본인들에게 전수되었다.
현존 일본에는 2백종의 기악면이 있는데 그 가운데 奈良(나량)의 도오다이지(東大寺)와 일본 국립박물관에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기악면과 그리고 다케사키의 관음사에 소장되어 있는 기악면에서 바로 백제 기악면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다케사키의 관읍사에 수장되어 있는 「肥前古跡緣起(비전고적연기)」란 책에는 「천축백제국으로부터 귀면 2개를 보내왔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절의 보물고 비장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악면은 나무로 만든 가로 20cm 세로 28cm의 검정색 가면으로 두눈은 왕방울 같이 튀어나오고 코는 둥글면서도 높으며 입둘레와 이마위에는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는 모습이 꼭 우리나라의 먹중 백정 말뚝이탈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사악한 귀신을 쫓는 의식인 기악의 사자무는 바로 봉산탈춤의 사자춤과 기악의 가루나 金剛(금강)은 산대놀이의 팔목중 침노리(완보) 및 봉산탈춤의 팔먹중과 일치하고 우리의 양주산대놀이, 봉산탈춤을 비교해보면 그 내용이 아주 유리하다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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