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한성백제 하남위례성에 대하여??? ---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 //

吾心竹--오심죽-- 2009. 3. 29. 20:53

  • 한성백제 하남위례성에 대하여???
  • 윤종일
    • 2009-03-24 18:07
    • 조회
    • 36
      국립중앙박물관...부여박물관...<<백제관>>의 입구 설명판에는 어김없이, 한결같이
      <한성백제-BC18~AD475>로 되어있는데 왜 그런지요???

      백제초도---고기록(삼국유사,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동사강목,연려실기술 등...)에는
      하남위례성-<금직산,사산(사천)>으로 지금의 천안시 직산읍을 말하는데

      <삼국사기>온조왕 13년 7월에 한수 이남으로 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가를 옮겼다.
      8월에 사신을 마한에 보내어 천도를 알리고 드디어 경계를 그어 정하여...중략...온조왕 14년 봄 정월에 도읍을 옮기고...중략...

      백제초도사의 수수께끼...하남위례성이 명쾌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다산 정약용, 두계 이병도를 이어받아 하북위례성을 추종하여
      서울지역이라고 단정지어 설명하는데 누가 감히 그런 주장을 펴는 것 인지요??? 
      궁금합니다???

      잘 모르면 <<<백제초도 하남위례성은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아직 어딘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숙제로 남겨놔야 학생,일반인 등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찾아 나설것 아닙니까???

      또한 <<한성 백제>>설명란에 이미 모두 백제초도가  밝혀진 것처럼 기술했는데
      정말 그 논리와 주장이 맞는 것 입니까???

      다산의 <아방강역고 위례고> 이후 <두계 이병도박사> 이후에 현재의 사학계에서는 <하북위례성>을 추종하는 건가요???
      일부는 중랑천변이라고도 말하고...도통 추측이 난무합니다. 


      << 성호 이익~순암 안정복>>이 동사문답을 통해서 꼼꼼히 지명을 고찰하였고, 순암이 1778년 목천(천안시) 용회당에서 20년만에 동사강목을 완성하고, 정조가 을람하시고, 
      동강강목에 <<<위례성--직산, 미추홀--인천>>>이라 곳곳에 기록합니다.

      순암이<친필  대록지--천안 목천현지>를 직접 찬할때에도 <<<위례성-직산>>>이라 분명히 기록합니다.

      다산 정약용처럼 패수고,대수고, 예고, 맥고 등을  서술하지만  <<< 위례고>>>를 별도로 서술 안합니다...근데 다산은 정말 이상합니다.

      순암은 다산과 같은 남인으로  천주교에 대해서 < 천학고><천학문답>으로 천주교를 부정합니다...그래서 다산과 순암의 주장이 틀린가요???

      다산의<아방강역고 위례고>에서는 서거정의 <직산 제원루기...백제의 근원이되는 누각>과 삼국사기를 꿈속에서 보았나???등등으로 서거정을 맹공격하는데...

      다산이 1794년 암행어사로 연천현감 서용보를 파직해서, 정조가 죽자
      서용보로 부터 철저히 보복 당한 한풀인 것 처럼 비쳐지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서용보--조선초 사가정 서거정의 친형인 서거광의 직계 후손임.

      <<<다산의 하북위례성 문제점>>>

      1. 마한왕이 봉토한 동북 100리를 무시하였고(웅천--금강,안성천이던),
      2. 춘천의 말갈(맥국-우두산성)의 침입경로를 한수이북으로 보아,
          원주~이천~용인 / 충주~음성~안성 등의 침략을 무시하였고,
      3. 문주왕이 고구려군을 피해 도망가다가 머물렀던 곳이라 근거없이
           주장했고,
      4. 신라가 한강을 정복후 한산주를 설치한 삼각산(북한산)이 부아산
          이라 잘못  비정하였고,
      5. 1814년 다산의<대동수경>, 외조부 공재 윤두서의 <동국여지전도>,
          정상기,정항령<조선지도첩>을 보았음에도 옛 한산의  고지도
         <용인현 부아산>을  못 보았다는 논리가 안맞고,
         (수원 화성 건축시 수원부에도 광교산 옆에 부아산은 뚜렷히 표시됨)
      6. 단순 하남의 대칭어인 하북위례성을 주장했는데, 아산만 유역의
          하남백 조성(백제 개국공신), 온조의 신하 목천마씨 마려와 천안
          전씨 전섭을 고찰 안했고,
          아산만 유역의 하팔현(진위천+안성천, 평택 팽성읍)을 못보았고...
      7. <동사강목-안정복, 성호 이익>의 주장을 뭉개고, 
          별도로 <위례고>를 집필하여 그들과 차별화 했고...
      8. 하남위례성이라 불리던 직산의 지형지세를 비교적 자세히 답사치
          못한 오류.

      ***기타 많은 자료가 더 있지만 중략하고...

      왜??? <<< 한성백제 bc18~475년>>>이라 그런지 밝혀주세요.

      박순발--<한성백제의 탄생, 서경문화사>--책을 사서 읽어보면 안다는 답변은 사양합니다.

      **하남위례성의 문제는 <<<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 건설>>>, <<<천안지역의 역사문화 연구>>><<<국가예산의 집행>>>등으로 이어지는  파급효과가 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국립중앙박물관이 주장할때는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것 입니다.

      ***제가 아는 백제시대 구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직산백제 위례성시대-----bc18~bc6, 13년
      2. 한성백제 풍납성시대-----bc 5~371년
      3. 한성백제 남평양성시대---371~475년
      4. 웅천백제 공산성시대-----475~538년
      5. 사비백제 사비성시대-----538~660년


      <<< 감사합니다 >>>
      • 답변
      • 2009-03-26 09:42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의하신 한성백제의 연대를 BC18~AD475로 설정한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백제사의 시기 구분은 일반적으로 한성기-웅진기-사비기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더욱 세부적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도읍을 어디에 정했느냐에 따라 크게 3시기로 나누고 있습니다. 
      한성기는 백제가 한성에 도읍한 시기를 말합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한성과 위례성을 달리보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하남위례성을 한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남위례성의 위치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아직까지 하남위례성의 위치는 명백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삼국유사』 및 『동사강목』 등 기타 사서에서는 하남위례성을 직산으로 비정하고 있지만(『동사강목』은 『삼국유사』의 기록을 따름), 『삼국사기』에는 하남위례성의 위치가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남위례성의 위치에 대한 문제는 많은 역사가들의 화두였습니다. 하남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충남 직산, 북한산 지역, 몽촌토성, 풍납토성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현재까지의 문헌사적·고고학적 연구결과에 의하면,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으로 좁혀지고 있는 상황이며 몽촌토성 보다는 풍납토성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한편 한성백제의 시작 연대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거하여 BC18년으로 비정하였습니다. 
      “온조는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필로 삼아 나라를 십제(十濟)라 했다. 이때는 전한(前漢) 성제(成帝) 홍가(鴻嘉) 3년[기원전 18]이었다.”(『삼국사기』백제본기)
      국립중앙박물관은 학계의 다양한 연구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반영합니다. 백제사의 시기 구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3시기 분류법 이외에도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주장되는 견해를 받아들여 전시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역사연구에 있어서는 어떤 견해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향후 백제사의 연구가 더욱 진전되어 많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면 전시개편시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 담당부서
      • 고고부
      • 담당자
      • 통합관리
      • 담당자
      • 02-2077-9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