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3가지 악재가 겹친 풍납토성 파괴

吾心竹--오심죽-- 2009. 3. 28. 20:15
연합뉴스

<3가지 악재가 겹친 풍납토성 파괴>

 

 

김태식기자 = 지난 13일 오전에 일어난 풍납토성 문화유적 발굴현장 파괴는 문화재 발굴로 인한 재산권 침해를 우려한 재건축아파트 조합원들이발굴과 보존여부에 대한 결정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굴착기로 밀어버렸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문화유적 보존과 개발은 늘 극단적인 길로 내닫곤 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문화재 보존과 개발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대립한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지난 95~96년도에 일어난 경부고속전철의 통과여부를 둘러싼 논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풍납토성 사건은 속성상 함께 할 수 없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길이 막다른 골목에서 충돌했다는 점 말고도 여러가지 악재들이 겹친 사례라고 할 수있다.

그 여러 악재들 중에서도 ▲문화재청과 서울시를 비롯한 정부의 문화재 행정부재와 ▲발굴단의 발굴행정 미숙 ▲문화재에 대한 시민의식 부재 등 3가지는 반드시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우선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은 한신대 발굴단과 발굴비용을 대는 공사시행자인 경당연립재건축아파트 조합의 빈번한 충돌에서 비롯됐다.

건축공사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화재발굴은 문제의 이번 경당연립재건축아파트 건설예정지의 경우 지난해 9월에 시작돼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전체 건축면적 2천300평 중에 발굴 대상지역은 1천평 가량. 면적으로만 보면 고고학자들에게 그리 부담이 가는 발굴은 아니다.

그러나 풍납토성은 예외였다. 기원전후~5세기경 초기백제 유물이 정신차리지 못할 만큼 쏟아져나오는 바람에 당초 70일(실제 발굴한 날짜를 말함)로 예정했던 발굴기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50일이 연장됐고 이것으로도 부족해 한신대발굴단은 다시10일 가량의 발굴연장을 문화재청과 재건축조합에 요구하고 있었다.

문제는 발굴기간 연장과정에서 발굴비용 문제를 둘러싸고 발굴단과 발굴비용을대는 재건축조합 사이에 신뢰가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됐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발굴단이 취한 행동은 재건축조합원들을 더욱 자극했다. 한신대발굴단은 지금까지 모두 4차례나 발굴비용을 문제삼아 현장에서 철수해 버리곤했다.

이런 경솔한 행동은 가뜩이나 이곳이 보존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휩싸인 재건축조합원들을 극단으로 내몰았다.

이와함께 문화재청과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를 비롯한 정부당국의 나몰라라식 대응 태도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풍납토성 보존문제가 대두되자 문화재청이 지금까지 보인 반응은 한결 같았다.

즉 발굴이 끝나고 유적에 대한 정확한 성격규명이 있고 나서야 보존여부를 결정할수 있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과연 풍납토성 유적의 성격규명이 되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는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풍납토성이 어떤 유적인지는 이미 일제시대에 판가름났고 1964년 김원룡 당시 서울대 교수의 발굴로 확정이 됐다.

즉 풍납토성의 성격이란 이것이 왕성이고 아니고를 떠나 초기백제 중요한 유적이라는 것 말고 다른 게 없다.

이런 성격은 문제의 경당연립재건축아파트 건설 예정지 또한 마찬가지였다.예상처럼 이곳에서는 초기백제 각종 유물과 유적이 출토됐다.

다시말해 경당연립아파트 건설예정지는 이미 발굴과 동시에 초기백제 유적임이판가름 났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유적의 "정확한 성격규명" 운운하며 보존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도 못한 채 미적거기리만 했다.

물론 문화재청으로서도 할 말은 많다. 무엇보다 돈이 문제다. 실제 당장 경당연립재건축 부지를 보존한다 해도 문화재청에서 끌어댈 수 있는 돈은 30억~40억원에불과한 실정이다.

문화재청 공무원들이나 고고학자들이 입만 열면 "우리라고 유적을 파괴하고 싶겠느냐"고 반문하곤 한다.

그러나 도대체 이런 말을 하는 정부당국이 지금까지 무슨 대책을 세웠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가 찬다. 청와대와 대통령, 정부 예산편성권을 틀어쥔 기획예산처만 바라본 일 말곤 없다.

정부당국이 보존여부에 대한 결정을 이처럼 미루기만 하는 사이에 대부분이 서민이고 내집 마련의 꿈을 위해 은행에서 막대한 빚을 낸 재건축조합원들은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문화재 발굴현장을 밀어버린 조합원들의 행태는 도저히묵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곳 풍납토성 주민들이 보존을 반대하면서 내세운 구호 중 누가 들어도 심금을울릴만한 대목이 "2000년전 백제인들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우리 삶도중요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런 설득력 있는 구호는 문화재 파괴 앞에서 이미 약효를 잃었다.

더불어 현재의 우리 삶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문화재를 파괴할수는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잠 잘 곳이 없다고 해서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고 거기다가 집을짓지는 않는다. 풍납토성은 우리네 조상의 무덤이다. 무덤을 파헤칠 수는 없다.

아울러 풍납토성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것이 아니다.

풍납토성은 이곳을 살고 있는 풍납토성 주민들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것이 아니기도하다.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유산이기때문이다.

taeshik@yonhapnews.co.krㅌ (끝)

 

 

 

 

 

한국경제

[천자칼럼] 풍납토성 훼손

 

서울백제수도유적보존회(대표 이형구 선문대교수)는 지난 8일 한글회관에서 "풍납토성(백제왕성) 보존을 위한 학술회의"를 열었다.

그동안 풍납토성을 위례성이라고 보고 있는 역사.고고학계의 학자들이 모인 토론의 장이었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풍납통성 발굴은 초기 백제의 실체를 구명해 한국고대사체계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1백년발굴사중 가장 의미있는 발굴이라고 평가했다.

또 유적의 중요성에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토성안까지 사적으로 지정하고 주민들의 재산권은 보상해야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이런 내용을 건의문으로 만들어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풍납토성 발굴현장이 주민들의 재건축조합측에 의해 무단 훼손된 것은 학술회의가 끝난지 5일만인 13일의 일이다.

발굴단이 없는 새 굴삭기까지 동원해 명문토기 말뼈등 중요 유적이 나온 구역을 포함한 1백50여평을 복원하기 어렵게 훼손시켜 놓았다니 어처구니 없다.

발굴에서 유물채집이 중요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유물이 어떤 장소에 어떻게 있었느냐를 알아내는 것이 유적전체를 파악하는데 더 중요하다.

그래야 유적의 원상복원도 할 수 있다.

1천5백여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유적의 근거마져 없애버린 꼴이다.

재산권을 침해당하는데다 추가발국비용까지 대야하는 조합측의 고충을 감안한다 해도 문화재파괴는 어떤 이유로든 용서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문화재 행정당국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무얼하고 있었던 것일까.

무조건 공사중단만 시켜놓고 몇달이지나도록 아무런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문화재위원회도 마찬가지다.

풍납토성이 이례성이냐 여부에 대한 문헌사학자와 고고학자간의 심한 견해의 차이가 아직 남아있는 탓이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서울시와 문화관광부의 재정책임떠넘기기도 볼상사납다.

우리처럼 건설자가 발굴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같지만 일본의 경우 63년 오사카인구밀집지역에서 7세기께 아스카(비조)시대 난바(난파)궁 유적이 발견됐을때 국가가 나서서 땅을 사들인 뒤 유적지 전체를 보존하는 방법을 택했다.

풍납토성이 위례성이든 아니든 백제초 유적이라면 국가가 나서서 보존하는 것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