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순발/문화도 국가경쟁력이다
역사는 반드시 그 깊이로 평가되진 않지만 ‘샘이 깊은 물’이나 ‘뿌리 깊은 나무’가 선망되듯 유구한 역사는 분명 긍지가 된다. 반만년 역사의 깊이는 우리에게 정신적 우월감의 원천이었으며 무한경쟁의 지구촌시대에 세계를 향해 내놓을 수 있는 든든한 밑천이기도 하다. 오늘날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민족이나 국가들이 모두 역사를 소중히 하는 까닭일 것이다.
어제 오늘 우리는 귀를 의심케 하는 뉴스를 접했다. 발굴조사가 진행되던 풍납토성 유구(遺構)가 조직적이고 고의적인 파괴 행위로 무참히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실로 반문화적이고 반역사적 만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악과 분노의 순간이 지나면서 오죽하면 그러한 일이 있었을까 하는가슴 답답함과 함께 문화재 관리당국에 대한 이유 있는 공분(公憤)이 더욱 커졌다.
풍납토성에 대해 지금과 같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된 계기는 1997년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도 어처구니없는 사단(事端)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백제시대 유적인 토성 내에서 아파트 재건축공사가 아무런 사전 조사 없이 이루어져 무수한 유물과 유구가 파괴되고서야 비로소 당국의 조치가 취해졌던 것이다. 지금의 사태는 이미 그때 예감되었다.
그 경위야 지금 따져 무엇하랴마는 작금의 풍납토성 사태는 이미 1960년대에 잉태되어 있었다. 백제시대 중요 유적임을 인지하고 국가 사적으로 지정한 것은 다행한 일이었으나 그 대상은 성벽에 국한되었을 뿐 정작중요한 알맹이랄 수 있는 성 내부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즈음어려웠던 나라 형편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후에도 문화재 보호 관리에는 여전히 소흘했던 것도 사실이다. 급격한 서울의 도시 팽창 과정에서보호의 울타리조차 없는 풍납토성이 온전할 리 만무했다.
이제 시비를 가리는 것은 그만두기로 하자. 시체말로 ‘동네 창피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 명예회복의 길은 모두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우리의문화재 정책을 일대 혁신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화민족임을 자부하고 있다. 온 인류가 기리는 세계문화유산을 가지고 있고 또 우리 문화유산을 현창(顯彰)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이라면, 양식 있는 문명사회의 그 누구라도, 역사를 가벼이여기고 문화유산을 고의로 파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겠는가? 풍납토성 사태에 행동으로 가담한 이들도 역시 그러하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그들로 하여금 이 시대의 실정법을 어긴 범법행위는 물론 역사 말살가의 오명을 무릅쓰게 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살아야 문화재도 있지 않은가’라는 항변이다. 애국적 관념적 문화재 보존의 당위성만을 앞세운 채 개발 유혹과의 갈등 해소에 등한하였던 당국의 정책 부재에대한 질책일 것이다.
문화재 보존을 통해 실현하여야 하는 역사환경의 유지 관리는 자연환경보존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공익적 요소이다.
잘 보존된 자연환경은 이제 국가경쟁력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듯 역사환경 역시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민족 공유의 재산이자 항구적 가치 창출이 가능한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한때 산업화가 지상목표였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는 지하의 각종 광물자원이 절대적 가치를 가졌다. 이제 지식을 비롯한 무형의 자산이 위력을발휘되는 시대이다. 따라서 문화재의 보존 관리는 역사자료의 보존이라는 학술적 가치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중요한 자원으로서 인식돼야 한다. 지금 우리는 산업구조조정에 몰골하고 있고 거기에 많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문화재 관리정책도 그 대상임이 드러났다. 일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여력이 없을지도 모르나 그럴 필요도 없다. 성의 있는 정책 태도로 지속적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마저 인색해 투자를 게을리 하면 참담한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문화재 보존은 역사환경을 활용하게 될 새로운 미래 산업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박순발(충남대 교수·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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