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풍납토성 지킴이' 이형구교수의 20년 외로운 싸움

吾心竹--오심죽-- 2009. 3. 28. 20:11
동아일보

'풍납토성 지킴이' 이형구교수의 20년 외로운 싸움

 

 

어쩌면 그의 혼 속에는 백제무사의 혼백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풍납토성 유적 보전을 위해 20년간 외로운 싸움을 벌여온 선문대 이형구(李亨求·56·고고학)교수는 17일 정부가 사실상 풍납토성 내부를 국가 사적으로 지정, 보존키로 정책방향을 잡았다는 소식에 남다른 감회를 감추지 못했다.

▼"백제수도" 81년부터 주장▼

그가 풍납토성 연구에 뛰어든 것은 국립대만대에서 중국고대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81년. 당시만 해도 ‘풍납토성은 왕성 외곽을 지키는 사성(蛇城)에 불과하다’는 이병도(李丙燾)박사의 학설이 유력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대만 유학 시절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나 노나라처럼 중국 고대국가의 도성이 대부분 강을 낀 평지에 진흙을 잘게 개어 시루떡처럼 쌓아만드는 판축토성(板築土城)이었음을 알게 된 그는 같은 방식의 풍납토성을 사성으로 봐넘길 수가 없었다.

그는 이때부터 성 내부는 물론 성곽 위에까지 무허가주택이 들어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된 풍납토성에 대한 연구와 보존운동에 자신을 걸었다. 85년 풍납토성을 가로지르는 올림픽대교의 설계변경 운동을 주도했고 94년엔 풍납토성이 삼국사기에 소개된 한성백제의 도성 ‘하남위례성’이라는 논문까지 발표했다.

96년부터는 1년여 실측조사를 통해 풍납토성의 전체길이가 3.5㎞에 성곽 기단부 두께가 40m, 높이가 무려 10m에 이르는 대형성곽이라는 사실도밝혀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주류학설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학계의 관심을 끌지못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경당연립재개발지역의 발굴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한신대 권오영교수조차 한때 풍납토성이 하남위례성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논문을 발표했을 정도. 정부도 ‘풍납토성 내 재개발사업 중지’를 요구하는 그의 요청을 번번이 묵살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97년 1월에는 신정 연휴기간 풍납토성 내 현대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기원전후에 제작된 백제토기와 기와, 목재가 대거 파괴되는 현장을 잡아내기도 했다. 그의 게릴라식 작업의 결과 풍납토성 내에서는 어떤 공사든 발굴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규정이 만들어졌고 이로써 경당연립 재건축지 등의 초기백제 유물이 공사장의 흙가루로 사라지는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그는 올해 1월엔 도심지에서 발굴된 역사유적의 보존사례 연구를 위해 사비를 들여 일본열도를 돌며 자료를 수집하는 등 가족들의 반대도 무릅쓰고 연구에 사재를 털어왔다.

“풍납토성 유적지는 신령스러운 힘이 지켜주는 곳입니다. 고구려군의 공격으로 불탄 지 1500여년이 지났지만 다른 시대의 유물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순수하게 보존됐습니다. 그런 곳을 우리 시대에 파괴하는 억겁의 죄는 짓지 말아야죠.”

그 신령스러운 땅의 신명이 자신에게 깃들었다고 생각하는 이교수의 다음 작업은 이 지역 주민들의 이익을 최대한 지켜줄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협박전화도 수없이 받았지만 저 자신이 풍납토성의 주민이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그곳을 지키고자 했을 뿐 결코 주민들의 생존권을 파괴하려한 것은 아닙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