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구리시-하남시, 고구려-백제 뿌리찾기

吾心竹--오심죽-- 2009. 3. 28. 19:57
연합뉴스

<구리시-하남시, 고구려-백제 뿌리찾기>

 

 

김태식 기자 = "전통은 창출된다"(Tradition is invented).

영국 출신 좌파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그 자신이 편집한 단행본 「전통의 창출」(Invention of Tradition)에서 선언한 유명한 말이다. 역사학은 의도하건 하지않건 그 시대 이데올로기를 강화,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가 사용한 invention이라는 말은 창조(creation)라는 뜻과 함께 날조(fabrication)라는 부정적 의미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홉스봄은 역사학의 강력한기능 한편에 잠재한 역기능을 아울러 경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전통창출에는 여러 학문이 동원되지만 역사학과 그 인접학문인 고고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 나라 또한 최근에 각 지방자치단체가 전통 창출을 위한 갖가지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강 너머로 마주보고 있는 경기 하남시와 구리시는 지방자치제가 본격 시행된이후 '전통창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구리가 고구려를 통해 전통과 정체성(identity)을 찾으려 한다면 하남시는 한성백제(BC 18-AD 475년)를 특히 주목한다.

구리시에 진입하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는 것은 '고구려의 도시'라는 큼지막한 도로 간판이다. 이런 대형 간판은 구리시 경계 진입로에서는 어김없이 만날 수있으며 시청을 비롯한 각 관공서도 예외가 아니다.

구리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장 이하 모든 공무원 명함에 구리시가 '고구려의 도시'임을 명기하고 있다.

고구려를 통한 구리시의 정체성 창출작업은 지난 2일의 광개토대왕 동상 건립으로 절정기를 맞고 있다. 이를 기념해 사단법인 고구려연구회(회장 서길수)가 '광개토대왕과 고구려 남진정책'을 주제로 학술대회도 열었다.

이런 일련의 전통창출 작업은 많은 이에게 격세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구리와 고구려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이는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무슨 사건이 있었기에 구리시는 고구려라는 전통을 재발견한 것일까? 90년대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아차산과 용마산 일대 이른바 '고구려 보루' 유적 발굴이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이 중에서도 아차산 제4보루 발굴은 중대한 분기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곳에서 고구려인들이 남긴 것으로 판단되는 유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한강 남쪽 건너편 하남은 정체성 창출을 백제에서 구하고 있다. 최근에야 고구려를 '발견'한 구리시와는 달리 하남과 백제의 관계는 아주 뿌리가 깊다.

무엇보다 하남이라는 지명부터가 온조가 백제를 건국한 도읍이라는 하남위례성에서 유래하고 있고, 한성 백제 500년 내내 그 영토였음은 각종 기록이 증명하고 있으며, 남한산성과 이성산성을 비롯한 각종 고대 유적도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하남시의 백제 찾기 작업은 그 역사나 기록, 유적의 풍성함에 비해 적지않은 고충이 따르고 있다.

우선 한성백제의 중심지인 하남위례성이 하남임을 증명하는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기대했으나 강력한 후보지로 거론됐던 춘궁리와 교산리 및 이성산성에서 그러한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인근 서울 송파구에서 80년대 몽촌토성에 이어 90년대말 풍납토성이 발굴됨으로써 하남위례성이 하남 일대 어느 곳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하남이 백제의 도시임을 증명할 좀더 뚜렷한 유적이나 유물은 없는가?백제를 통한 전통창출에 주력하는 하남을 위해 미사리 유적은 결정적인 고리 역할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80년대 이래 최근까지 발굴 결과 신석기-청동기 및 초기철기시대에걸치는 선사유적은 물론 한성백제 유적이 무더기로 확인되고 있다. 하남으로서는 원래 광주군(현 광주시) 행정구역이었던 미사리를 편입함으로써 백제를 고리로 한 전통창출에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달 26일 하남시청 대회의실에서 '동아시아에서 미사리 유적의위치'라는 주제로 개최된 학술대회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지만 구리시와 하남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의 전통창출 작업에는 홉스봄이 지적한 것과 같은 우려스런 점도 없지 않다.

한 역사학자는 "전통 혹은 정체성 창출은 꼭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이 과정에 개입된 학계가 역사를 '주문생산'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으므로 이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taeshik@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