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한성도읍기 백제 왕성 사실상 결판
와당만 30여 점, 토관ㆍ초석ㆍ중국제 도기 출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서울 풍납토성이 자칫 영원한 역사의 미궁으로 빠질 뻔한 한성도읍기(BC 18-AD 475년) 백제 왕성(王城)이었음이 사실상 판가름났다.
한성도읍기 왕성(王城), 혹은 그것을 포괄하는 왕도(王都)에 대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후대 문헌자료에는 그 명칭이 한성(漢城) 혹은 위례성(慰禮城)이라고 기록돼 있을 뿐, 그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다고 기록돼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그 왕성에 대해서는 크게 ▲하남시 춘궁리 일대 ▲몽촌토성 ▲풍납토성의 3가지 설이 맞서왔다.
그러나 1997년과 1999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한 풍납토성 안쪽 현대리버빌 아파트 예정지와 동쪽 성벽에 대한 발굴 조사 이후 풍납토성이 한성기 백제왕성의 가장 강력한 후보군으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한 풍납토성 안쪽 미래마을 지역에 대한 조사성과는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의 `유일한' 후보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475년 가을, 장수왕이 이끄는 3만 고구려 대군에 의해 백제 왕성이 철저하게 짓밟히기 전에 백제인들이 미래마을 일대에 남겼음이 분명한 고고학적 흔적이 증명하고 있다.
전체 미래마을 부지 6천400여 평 중 일부 구역에 대해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 이곳에서는 한성백제가 남긴 대형 쓰레기장과 건물터, 석축 유구(돌로 쌓은 구조물), 아궁이 시설 등이 확인됐다.
출토 유물 중에는 5세기 이전 한반도에서는 왕궁이나 사찰과 같은 최고급 건물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됐음이 분명한 각종 기와류가 특히 주목을 요하고 있다.
기와류 중 고고학계를 경악케 하는 대목은 건축물의 처마 끝에 장식 마감용으로 대는 와당(瓦當)이 무려 30여 점 출토됐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대형 평기와와 수키와, 하수도관 일종인 토관(土管), 나무기둥 받침대인 초석(礎石), 금제 장신구 외에 중국 수입품임이 분명한 청자와 유약을 바른 도기(陶器)인 시유도기(施釉陶器) 등 다종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이 폐기장은 발굴이 한창 진행 중임에도 현재까지 약 200여 상자에 이르는 유물을 쏟아내고 있다.
폐기장 동쪽에서 확인된 또 다른 소형 구덩이에서는 백합조개, 피뿔고둥 등의 패각류와 소ㆍ돼지의 아래턱뼈ㆍ다리뼈ㆍ갈비뼈, 닭뼈, 생선뼈, 골각기 등이 출토됐다.
여기서는 또 이들 생선ㆍ패각ㆍ육류 등의 음식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들이 인위적으로 땅에 파묻힌 상태로 확인됨으로써 이 일대에서 모종의 제사 행위가 치러졌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조사단은 이러한 성과 중 특히 기와류를 주목하면서 "풍납토성에 매우 중요한 건축물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평가하는 한편 "이 주변 일대에 백제시대의 궁성(宮城) 또는 관청 건물 등의 국가적 중요 시설의 흔적이 존재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간단히 말해 풍납토성이 바로 `잃어버린' 한성백제의 왕성(王城)이라는 뜻이다.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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