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백제시대 국내最古 목간 발굴
3~4세기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성백제 시대(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의 목간이 발굴됐다.
가장 오래된 목간으로 기록될 이 목간은 5각형으로 5개 면에 각각 ‘논어(論語)’에 나오는 문장들을 먹으로 썼다. 학계는 연대측정 등 정밀연구 결과 한성백제 유물일 경우 백제 초기시대의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라고 평가한다.
◇출토와 의미=선문대 고고학연구소(소장 이형구)는 27일 국립문화재연구소 서울 사무소에서 인천시 계양구에 있는 삼국시대 계양산성 발굴 출토유물 설명회를 열었다.
선문대 연구소에 따르면 목간은 계양산성 내 집수정(集水井) 바닥면에서 원저단경호(둥근바닥에 목이 짧은 항아리) 등과 함께 출토됐다. 아래 위가 부러진 상태로 확인된 목간은 길이가 약 14㎝, 한 면 너비가 1.1~1.8㎝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적외선촬영 결과 각 면에는 논어의 문장들이 적혀 있다.
이형구 소장은 “목간과 함께 나온 원저단경호 등 동반유물이 약 4세기대”라며 “목간도 3~4세기 유물로 본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한성백제의 왕성인 풍납토성에 중국 위진시대의 청자 등 중국제 도기가 나오고 있다”며 “이와 연관해 논어를 적은 목간은 3~4세기에 이미 경전도 들어왔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물 출토지는 지정학적으로 한성백제의 관문”이라며 “우리나라의 한자문화, 나아가 유교 전래 등의 도입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유전 전 문화재연구소장은 “더 치밀한 연구가 있어야겠지만 백제사를 새로 쓸 만한 귀중한 유물”이라고 강조했다. 학자들은 또 “한성백제 시대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다”며 “백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목간 내용은 논어의 ‘공야장편(公冶長篇)’으로 1면은 3장, 2면은 6장, 3면은 8장, 5면은 11장의 글이 훼손된 채 실려 있다.
◇목간은=목간(木簡)은 종이가 발명되기 전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만든 나무편으로 고대 동아시아에서 활용된 기록유물이다. 특히 목간은 편찬자의 주관, 정치적 해석이 더해질 수 있는 역사서와 달리 기본적으로 당대인이 쓴 것이라는 점 때문에 최고의 사료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가 펴낸 ‘한국의 고대 목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첫 고대 목간이 출토된 이래 경주와 부여, 김해, 익산, 함안 등 12개 유적에서 모두 319점이 확인됐다. 이중 신라목간은 함안 성산산성, 하남 이성산성, 김해 봉황동 유적 등 282점, 백제목간은 부여 관북리·능산리사지·궁남지·쌍북리와 익산 미륵사지에서 37점이다. 이들 목간은 6세기 초반에서 8세기 대 유물로 추정된다. 특히 1988년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는 기원전 1세기대의 붓이 출토됐으며, 논어의 내용을 적은 목간은 2000년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나온 적이 있다.
이형구 소장은 “5각의 목간 등 여러 면이 있는 목간은 ‘고’라 부른다”며 “이번 목간은 논어의 교훈적인 문장들을 적어 교육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휴대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재기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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