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부소산 유래

吾心竹--오심죽-- 2009. 2. 16. 14:00

속세를 떠난다고 해서 '俗離'라니

 

소백산맥은 한반도 남부를 남서방향으로 크게 가로질러 영/호남을 구분지어 놓았는데, 이 산맥의 여러

산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산이 태백산, 속리산, 지리산이다. 그런데 이 중 속리산(俗離山)은 불교적 지명

으로 붙여져있어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 신앙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나 여겨지게 한다.

 

법주사가  창건된지  233년만인  784년(신라 선덕왕 5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김제 고을의 금산사
(金山寺)로부터 이곳에 이르자, 들판에서 밭갈이하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율사를 맞았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회심이 저리 존엄한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하며 머리를 깎고 진표율사를 따라
이 산으로  입산수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때부터  사람들이  '속세를 떠난다'는  뜻에서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것이  문헌이나 구전을 통해 전해오는,  속리산의 이름 유래이다.  속리산은  그 산이름 자체에서뿐만

아니라 이 산의 여러 봉우리에서도 신앙적 요소를 찿아볼 수 있다.최고봉인 천황봉(天皇峰)이 그러하고,

비로봉(毘盧峰), 관음봉(觀音峰) 등이 그렇다. 속리산은 우리나라 8경의 하나로,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 또는 제2금강)이라고도 불러왔다.  또 구봉산(九峰山), 지명산(智明山), 미지산(彌智山), 형제산(兄

弟山), 자하산(紫霞山), 광명산(光明山), 이지메 등의 다른 이름을 갖고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속리'라는 이름을 보고 한자 그대로 풀어 '세속을 떠나'라는  지명풀이에 머물러

는 안될 것이다.  '세속을 떠나'의 뜻을 한자로 나타낸다면  조어난 관행상으로 '이속'(離俗)이어야 더

옳을 것인데, 왜 '속리'가 되었느냐 하는 부정적 견해도 있다.

 

승려나 풍수가들이 만든 지명도 많아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산이름들을 살펴보면서 순 우리말에서 출발한 이름들이 한자로 붙여지는 과정에

서 뜻의 혼동을  가져오게 만든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특히 음역(音譯)에서  그러한  경우가  많은데,

큰 산,신성한 산의 뜻인 '감뫼'(검뫼)가 검산(劍山), 감악산(紺岳山)이 된 것이라든지, 밝은 산, 양지쪽의

산의 뜻인 '밝달'이 박달산(朴達山), 백산(白山)으로 된 것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무릇 모든 땅이름이 거의 다 그렇치만, 산이름도 처음부터 특별히 어떤 이름이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고,

단순히 그대로 산(山)이나 꼭대기의 뜻인 '달', '두리', '술', '수리', '부리', '모로', '모루', '마루', '마리',

'자', '재' 등으로 불려 왔을 것이었다.

 

지금과 같이 어떤 큰 생활 영역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던  오랜 옛날에는  자기 집,  자기 마을 주위만

알면 그만이어서,  '무슨 산'이라는 이름의 필요성을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았다.  따라서  산이라는  말

자체가 그대로 이름처럼 씌었고,   부득이 어떤 산을  따로 지칭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큰산',  '작은산',

'앞산', '뒷산', '동산', '남산' 식으로 불렀던 것이다.

 

이렇게 오랬동안 불려왔던 관계로 전국의 수많은 산들이 몇개의 아주 큰 산, 잘 알려진 명산을 빼놓고는
모두 비슷비슷한 이름이었고, 결국 지금까지도 같은 산이름이 무척 많이 남아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생활권의 확장,  고장과 고장 사이의 교류/왕래에 따라 서로 같거나  비슷한 산이름이  조금씩 구분지어

불려지기 시작했고,  더우기 지명의 한자화에 따라 같은 산이름을 두고도 표기를 각각 달리하는 방법을

써서 이름의 다양화를 꾀하였다.  그래서 '한밝'이 태백(太白), 대박(大朴), 함박(咸朴), 함백(咸白) 등으

로 되고,'감뫼'(검뫼)가 신산(神山), 가마산(可馬山), 검산(劍山), 웅산(熊山), 흑산(黑山) 등으로 되었다.

 

순 우리말 산이름을 한자로 바꿔 붙일 때, 우리 조상들은 가급적 뜻이 좋은 한자를 취하였다. 특히 불교

가 성해지고, 풍수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산이름을 붙임에 있어 산과 관련이 많은 승려나 풍수지리 학자

들이 산이름을 그러한 쪽으로 이끌어 간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속리'를 한자풀이의 차원

이 아닌, 우리말의 유추 차원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속리는 '수리'의 차음?

 

한자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에서 쓰고 있지만, 잘 알다시피 이 글자의 각 자가 가진 뜻을 각 나라가
공통하되,  읽는 법이 다른 것이 아주 많다.   예를 들어 '天'이란  한자 하나만 보더라도 중국 음으로는

'텐'이요, 우리 음으로는 '천'이며, 일본 음으로는 '덴'인 것이다.

 

그런데  '天'은 우리의 옛 자전에  '하늘 틴'하는 식으로  '틴'으로 된 것이 많으니, 세 나라가 이 글자의

거의 같은 음으로 읽어 왔슴을  알 수가 있다.   한자의 발생지가 중국이고 보면, 우리가 현재 쓰고있는

한자의 음은 처음에는 중국 본래의 음에 가까웠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한자로 기록된 삼국시대의  옛 지명을  우리말로  유추해 보면 이 추측은 더욱 굳어진다. 따라서 음역이

확실한  어느 한 지명을 가지고  우리 본래의 음으로 유추할 때, 지금의 우리식 한자 음에 맞추기보다는

음역이되었을 당시의 발음 상황을 고려해야 더욱 확실한 우리 본래의 땅이름을 찿아낼 수가 있다.

 

속리를 음역된 지명으로 보고, 이를 옛날식 우리음을 따라 유추해보면 결국 '수리'가 된다.  '속'(俗)은
중국 음으로는 '쉬'이고, 우리의 옛 음으로는 '수'이니, 속리는 '쉬리', '수리'이거나, 아니면  이에 근사

한 어떤 음일 것이다.  '수리'는 '꼭대기'를 뜻하는 옛말로서, 오늘날의 머리의 '정수리'도 바로 이 말에

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수리'를 음역으로 한 산이름에는 수리산(修理산: 경기 안양), 소래산(蘇萊山: 경기 시흥), 소리산(所伊

山: 강원 이천 *대동여지도), 소의산(所衣山: 경기 가평 *대동여지도), 소라산(所羅山: 황해 평산 *대동

여지도) 등이 있다.차산(車山), 차령(車嶺), 취령(鷲嶺) 등도 모두 '수리'를 수레(車)나 수리(鷲)로 보고

한자로 취한 것이다.
   
고려 태조 탄생을 신성시한 송악 설화

 

이처럼  산이름은 단순히 산,  꼭대기,  봉우리의 뜻이던 것이  한자로 음역/의역되는 과정에서 붙이는

이의 취향과 그 당시의 사회 사정, 신앙, 풍습 등에 따라 다른 뜻의 이름처럼 되어버린 것이 많다.

 

지명의 한자화는 불교가 성하던 통일 신라시대에 특히 많이 이루어져 꽤 많은 이름들이 불교적인 색채

를 띠게 되었고,  풍수사상이 퍼지면서 풍수적 지명으로 흐르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와선 풍수신앙이

크게 성행, 원래 있던 땅이름을 없애버리고 아예 풍수 지명으로 새로 바꿔 붙이는 경우도 허다했다.
고려의 학자 김관의(金寬毅)가 쓴 <편년통록(編年通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려 왕실의 시조 호경(虎景)이라는 이가 백두산으로부터 유력(遊歷)하여 부소산(扶蘇山: 송악산)

     의 왼쪽 골짜기에서 산신(山神)이 되었다.   그는 옛 아내를 잊지 못하여  강충(康忠)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 뒤 신라 풍수가인  감천팔원(監千八元)이라는 이가   부소압군(扶蘇押郡: 지금의 개성

     남서쪽)에 와서 부소산의 형세를 살핀 다음, 강충에게 '만약 고을을 산남(山南)에 옮기고 소나무를

     널리 심어 산의 바위들을 드러내지 않게 한다면 삼한(三韓)을 통합할 사람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강충은 군민들과 함께 산 남쪽에 옮겨 살면서 소나무를 널리 심고, 고을 이름을 송악

     (松岳)이라 하였다. 그는 드디어 이 고을의 상사찬(上沙粲)이 되었다"

 

또 다른 기록인 왕창근(王昌瑾)의 <경문(鏡文)>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고 있다.

 

    "어느 해 뱀해(巳年)에 두 용이 서로 다른 쪽을 보고 소나무에 몸을 숨겼기 때문에 고을 이름을 송악

     이라 했다.

 

송악이 정말로 이런 연유에서 붙여진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풍수와 관련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고려 태조를 신성시하려고 꾸며 낸 설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소입',  '부소산'의  부소가  풋소, 즉

소나무의 옛말이므로, 송악은 같은 뜻으로 된, 이 지명의 후속 이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학자들 중에

는 개성의 옛이름  '부소',  '송악'을 백제 땅 부여의  부소산과 같은 계통으로  '밝'에 연원을  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어서 계속

 

     전국의 풍수적 지명들     

 

풍수사상이나 기복신앙과 관련된 산/고개 이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 비봉산(飛鳳山)/ 봉황산(鳳皇山)

 

봉황은 학, 거북, 기린과 더불어 옛부터 상서러운 동물로여겨 전국에 비봉산, 봉황산 등의  이름을 깔아

놓고 있다. 전남 곡성의 비봉산은 <삼국유사> 선덕여왕조에 따르면 원래 곡성읍의 진산인 동락산(動樂

山)이 봉이 날아가는 형국이어서 고을이 쇠퇴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봉(鳳)을 지명으로 묶어 놓은 것

이었다. 봉은 오동나무에 살므로 동쪽마을을 오지(梧枝: 오곡면 오지리)라 했고,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

하여 남쪽에 죽곡(竹谷面)을 두었다. 또 봉이 멧돼지(실은 고양이)를 싫어한다 해서 서쪽에 묘산(猫山)

을 두었고, 메추리를 보면 멈춘다 해서 북쪽에 순자강이 있다고 했다. 지금 묘산 밑에는 묘천리(猫川里)

라는 내가 있다.

 

* 무학산(舞鶴山)

 

학이 춤추는 지세라 하여 무학산이라고 한 산이 여러 곳 있다. 평남 강서읍의 진산도 이러한 지상(地相)

이라 하여 무학산이라 고쳤다고 하는데, 근처 지명까지를 학과 관련된 것으로 새로 짓거나 고쳐 흥미를

끈다. 즉 그 옆의 구룡산(九龍山)은 서학산(棲鶴山)으로, 읍내에 있는 미륵지(彌勒池)를 명학지(鳴鶴池)

로 각각 고쳤고, 강서평야의 수교천(水橋川) 북안(北岸)의 작은 화산(花山)을 깎아 둥글게 다듬고, 달걀

모양으로 깎아 만든 돌을 그 산에 묻어 학란구(鶴卵丘)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 구산(龜山)/ 구봉산(龜峰山)/ 기린산(驥麟山)

 

거북과 기린도 서물류(瑞物類)에 속하므로 구산, 기린산 등의 산들도 많다. 구산은 큰 산 이름으로 붙여

진 것이 별로 없고,지금은 대개 마을 이름으로 남아 서울 은평구와 경남 김해의 구산동을 비롯하여 경북

의성,  문경,  경남 함양,  전북 순창,  전남 보성,  광양 등에 구산리라는 지명을 깔아 놓고 있다.  구봉은

평북 박천에,  구봉산(龜峰山: 408m)은 부산 동구/서구에 있다.   기린이라는  동물 이름이  직접 들어간

지명에는  기린령(평남 영원),  기린산(함남 흥원),  기린면(강원 인제),  기린리(황해 서흥,  전북 정읍),

기린도(인천 옹진) 등이 있다.

 

* 용산(龍山)/ 용두산(龍頭山)

 

용도 길상(吉祥)의 동물이기에 용산, 용두산, 용마산, 용문산 등의 산이 전국에 많다. 그러나 이 계통의

산이름은 '용과 용산'이란 제목에서 자세히 다루었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 와룡산(臥龍山)/ 와우산(臥牛山)

 

용, 소 등의 동물이  누운 모양이라 하여  산이름에 '와'(臥)자를 넣는 경우가 많다. 용이 누웠다는 뜻의

와룡산은  대구시,  경북 달성,  청송, 경남 삼천포시 등에 있고,  와우산은 서울 마포구에 있다.  서울의

와우산은 풍수설에 따라  큰 소가 길마를  길마재(鞍山)에 벗어 놓고,   굴레는 굴레방다리에  벗어 놓은

다음, 서강(西江)을 향하여 내려가다가 이 산에 누워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안산(鞍山)과 낙산(駱山)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홍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무악제라 하는데,  그 오른쪽의 산이 인왕산

(仁旺山)이고,  왼쪽의 산이  안산(鞍山: 길마재)이다.   그런데  이 안산을 두고  조선 영조 때  예언자

남사고(南師古)가 유명한 예언을 한 적이 있다.

 

    "서울의 동쪽에 낙산(駱山)이 있고, 서쪽에 안산이 있으니, 반드시 당파가 생기는데,
     낙산의 '駱'(낙)자는 '各馬'(각마)이니 동인(東人)은 갈라질 것이고,
     안산의 '鞍'(안)자는 '革安'(혁안)이니 서인(西人)은 혁명이 있은 후에 안정을 찿으리라.

 

하는 예언 이었다. 이 예언은 과연 맞아 동인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서인은 인조반정(仁祖反政) 후에

안정되었던 것이다.

 

* 모악(母岳)과 벌아령(罰兒嶺/伐兒嶺)

 

서울 서대문구의 모악(무악재)과  남산의 벌아령도  서로 풍수상으로 연결된 지명이다.  서울의 진산인
삼각산의 인수봉(仁壽峰/ 負兒岳)이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모습으로 그것을 막기 위해 '어머니'를 둔다

해서  인왕산 옆에  모악(母岳)이란  산이름을 붙였고,  또 떡으로 달래거나 말을 안들으면 벌을 준다고

해서 이 산의 남쪽 고개를 떡고개,  남산 동쪽 고개를 벌아령이라고  이름을 붙여  고을의  기가  나가지

않게 지명으로서 비보(裨補)를 해 놓고 있다.

 

* 잠두산(蠶頭山)과 잠실(蠶室)

 

서울 남산의 산머리는 그 모양이 누에 머리같다 하여 '누에머리'(蠶頭)라고도 불리었다. 누에의 먹이는
뽕이므로  이 산의 지덕(地德)을 키우기 위해서  뽕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해서  사평리(沙坪里: 지금의
강남구 일대)에  뽕나무를 심고  땅이름까지 잠실이라 했다.   잠원동(蠶院洞)이란 지명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 수리봉(鷲峰)과 매봉(鷹峰)

 

경기 개풍군 중면 식현리(食峴里) 근처에 수리봉이 있고, 황견곡(黃犬谷)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이 곳

에 금릉(金陵)이라는, 파평 윤씨 조상의 묘가 있는데, 최고의 명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묘지 뒤의 수리

봉은 수리(鷲), 앞의 매봉은 매(鷹), 그 왼쪽의 황견곡은 개(犬)이니, 이 세 동물이 서로 움직이지 못하

게 노리므로 삼수부동(三獸不動)의 길지(吉地)라는 것이다.

 

즉 수리는 개를 노리고,  개는 매를 노리므로  꿩이 업드린 채 안심하고 새끼를 깔 수 있어 후손에 탈이

없고 자손이 번성할 터라는 것이다.  이 무덤의 주인공이 죽어서 그의 고향인 경주로 운구될 때 상여가

붙어 움직이지 못해 그대로 묻힌 곳이라고 한다.

 

* 주미산(舟尾山)과 정지산(艇止山)

 

지형이 배(舟) 모양일 때, 뱃골(舟里), 배미(舟尾). 배론(舟論), 배내(舟川), 배나루(舟津)와 같은 이름

이 붙기도 한다.  배는 물이 많고 바람이 있어야 잘 떠 간다 해서  이러한 지명 근처에  풍(風), 수(水),

해(海)자 지명을 함께 붙인 경우도 보인다.충남 공주도 행주형(行舟形)이어서 부근의 산이름에 주미산
(舟尾山: 읍 남쪽, 근처에 舟尾里가 있다), 정지산(艇止山: 읍 북서쪽), 사공암(沙工岩: 읍내) 등의 이름

을 붙여 두고 있다.

 

* 계명산(鷄鳴山)

 

충북 충주시에 계명산(鷄鳴山)이 있는데, 이 고을의 진산이기도 하다. 이 산의 원래 이름은 '닭의 발'의

뜻인 계족산(鷄足山)이었는데, 옛날에 지네가 너무 많아 '지네는 닭과 상극이니 닭을 길러 없애라' 하는

어느 도인의 말을 따라  그 말대로 하여  지네가 없어져  이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뒤

이 산으로 인해  충주 읍내의 부자들이  자주 망하므로  객망산(客亡山)이라 하다가,  계족산,  객망산의

산이름이 별로 좋지 않다 하여 1958년에 '닭이 운다'는 뜻의 지금의 계명산(鷄鳴山)으로 바꾸었다는 것

이다.   닭이 울면 날이 밝으므로, 계명산은 고을에 새 광명이 찿아들라는 뜻의, 다분히 기복적(祈福的)

의미가 깃든 이름이랄 수 있다. 이 밖에도 풍수/기복사상과 관련한 산이름들이 무수히 많다.       
    
                                                            
........  山  (글: 지명 연구가,  배우리)

 

 

'慰禮城 地名由來'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둠-대둔산의 유래  (0) 2009.02.16
곰...감의 유래  (0) 2009.02.16
돌과 관련지명  (0) 2009.02.16
색깔과 지명  (0) 2009.02.16
들이름이 지명...  (0) 2009.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