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와 '뿔'은 친척말
(참조: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와 "반시옷"을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은 적색 처리 하였슴)
산을 자주 찿다 보면 '묏부리'(뫼뿌리), '굼부리', '갓부리'와 같이 '부리'가 들어간 이름들을 더러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부리'는 봉우리의 뜻이 된는데, 이 말은 오래 전부터 씌어 온 듯하다. 정약용의 <아언
각비>에는 이 '부리'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훈몽(訓蒙) 책을 보면 산(山)을 다만 산봉우리라 하고, 방언으로 '부리'라고 한다."
東俗訓蒙 山只有峰 方言曰不伊 <아언각비 권2>
"...날카로운 칼날(鋒)과 같은 봉우리를 봉(峰)이라 하는데, 오늘날 모두 그 뜻을 '부리'라고 한다."
...銳作鋒者爲峰 今竝訓之爲峰可乎比訓云不伊 <아언각비 권2>
'부리는 새 또는 짐승의 주둥이나 물건의 끝이 뾰쬭하게 된 부분의 뜻으로도 쓰인다. 이를 보면 '부리'가
원래 뾰쬭하게 솟은 부분을 뜻했음이 확실해진다.지금의 말 중에는 '부리'와 아주 가까운 '뿔'(角)이라는
낱말도 짐승의 머리에 뾰쪽하게 솟은 부분이어서 나온 것이다. '뿔'은 '불'이 경음화하여 된 말임을 여러
옛 문헌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
어원 공식의 활용
우리가 지금 쓰는 낱말 중에는 '가리', '다리', '마리'와 같이 끝 음이 '리'로 된 것이 많다.이러한 낱말들
에서 끝음절 '리'를 떼어버리고 대신 자음의 'ㄹ'을 앞음절의 받침으로 붙여 보면, 그 낱말의 어원 또는
그 어원에까운 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이렇게 하면 '가리'는 '갈', '다리'는 '달', '마리'는 '말'이라
는 음을 얻게 되는데, 이 갈, 달, 말이 그낱말의 어원(또는 옛말)이 된다. 이것이 하나의 어원 공식이다.
이런 식으로 풀 때, '부리'는 '불'이라는 음을 얻을 수 있는데, 이 '불'이 바로 '부리'의 어원이거나 그 어
원에 가까운 옛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원을 찿는데 한 가지 공식에 머물러서는 않된다. 예를들어 위의 공식에 의해 나온 '불'을 또
다른 공식에 풀어 나아가야 한다. '불'과 같은 말의 경우엔 'ㄹ'받침을 'ㄷ'받침으로 바꾸어 보는 것도
그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ㄹ' 말음(末音)은 대개 고어에서 'ㄷ' 받침에 가까운 음이었기
때문이다.
* (낟악)나락
낟: "나디 밭에셔 남과 같알세" <석보상절 6/19>
낟: "낟곡" <훈몽자회 9하/3>
* 구지담(구짇 + 암)구지람(꾸지람)
구지다: "모진 이브로 구지드며" <월인석보 17/84>
구지돔: "구지돔 모라시니" <월인천강지곡 77>
구지럼: "상녜 구지럼 도로데" <석보상절 19/30>
따라서 '불'을 '붇'의 음으로 거슬러 올릴 수 있는데, 이 '붇'이 뿌리말 또는 그에 가까운 음이 되는가 하
는 것은 또다시 다른 관련/친족어를 참고하고 나아가 우리말과 한 계통을 이루는 이웃나라의 말도 살피
는 겻이 중요하다.
'부리'의 뿌리말
'불', .부리.의 관련어로 생각되는 것에는 다음과 같이 있다.
[명사에서]
* 불: 부룻(무더기로 놓인 물건의 부피), 부루퉁이(불룩하게 내밀거나 솟은 물건)
* 북: 북(식물의 뿌리를 싸고 있는 흙 *북주다)
* 벋: 버덩(높고 편편하고 풀만 난 땅)
* 받: 바닥(물건의 밑이 되는 부분)
[동사에서]
* 받: 받다(突), 박다(內入)
* 벋: 벋다, 뻗다(進出)
* 붇: 붇다, 붓다, 붙다
* 발: 바르다(粘)
* 벌: 벌다(發), 벌이다(列/展)
* 불: 불다(吹), 부르다(* 배가 부르다), 부르다(唱/呼), 부르트다
[부사에서]
* 받: 바짝
* 붇: 부쩍부쩍
* 북: 듬뿍, 담뿍
* 불: 불쑥 불끈, 더불어
이렇게 볼 때, 이 계통 낱말의 조어형(祖語形)은 '붇', '받', '벋'이라 할 수가 있다. 땅에 관련한 이 계통
낱말의 파생 과정은 다음과 같이 잡아볼 수 있다.
* 받: 받+앗 > 바닷 > 바닥
* 발: 발 > 밝 > 박/팍(頭)
* 벋: 벋+엉 > 버덩
* 븓: 벋 > 믇 > 빋 > 빗
* 블: 븓 > 블 > 브리 > 부리(峰)
'받'은 원래 '머리'의 뜻이다. 이 '받'은 몇천 년을 내려오는 동안 많은 관련어를 낳아 놓았음을 알 수 있
다. 그러나 문자가 없어 모음의 구분 개념이 확실하지 않았던 오랜 옛날엔 '받'이 '벋'이나 '붇'의 음에
가까운 음이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서정범 님은 '부리'(嘴/口)의 어근은 '불'로서 그 조어형이 '붇'이라 하고 있다. 부리가 입의 뜻이기도
해서 '부르다', '불다' 등의 동사가 나왔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거짓말의 사투리인 '거짓부리'의 부리가
말(嘴:취)의 뜻을 지니고 있다는 예도 곁들이고 있다.
'말발이 서지 않다'(말발)
'글발이 좋지 않다'(글발)
'젖을 빨다.(발다 > 빨다)
위에 나온 낱말들에서 '발'이 모두 입(口)과 관계되는 것으로 보아, 이 '발'의 조어형인 '받' 역시 입 또
는 그와 관련된 뜻을 가졌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아이누어에 '바시'(嘴/口), '발'(口), '부리'(癖:벽) 등
이 있는 것을 보면 '받'계통의 말이 일본으로 건너 갔음을 말해 주고 있다.
'부리'는 '角'이 되기도...
'받'이 원래 머리(頭)나 부리(嘴)의 뜻이기는 하지만, 이 계통의 땅이름에서는 산(山)이나 봉우리의 뜻
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부리'인데, 한자로는 근(根), 각(角), 봉(峰) 등이 되어 전
국에 많은 산이름을 깔아 놓고 있다.
인천 강화도 교동면은 삼국시대에 고목근(高木根)현인데, '달부리'(달ㅇ,불)로 유추되고 있다.고(高)는
옛지명에서 그 훈이 '달'로 되는 경우가 많고, 목근(木根)은 뿌리(옛말은 불휘 > 부리)여서 이런 유추가
가능하다. 따라서 고목근은 '산봉우리'의 뜻에 해당한다. 고목근의 딴 이름은 달을참(達乙斬)인데, '달
을'은 '달(山)의'의 뜻으로, 참(斬: 버힐 >벨)을 '불'의 음으로 풀면 이 역시 '달부리'로의 유추에 합치된
다. 이 곳의 현재 지명 교동(喬洞)의 교도 고(高)의 오기일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의 일부로 들어간 양근(楊根)은 '얃블'로 보는데, '얃블'이 '낮은 벌'의 뜻인지 '낮은 봉우
리'의 뜻인지는 알기가 어렵다.통일신라시대에 사진주(沙津州)의 한 지명인 모량부리(毛良夫里. 물불?=
물과 불의 근원이란 뜻인 듯)가 무할(無割)현이라는 딴 지명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할(割)도 그 훈이
'버힐'이어서 '불'의 음을 취하는 데 이용한 듯하다. 그러나 '물불'은 '물벌'(水原)의 뜻일 가능성도 있다.
'부리'는 한자로 '각'(角)이 되기도 했다. '부리'의 원래 음이 '불'이고, 이 '불은' 된소리로 '뿔'이 되었던
것이다. '뿌릿개', '뿌리터', '뿌럼'(뿔럼) 등의 토박이 땅이름이 한자로 각계(角溪: 경북 청도군 이서면),
각기(角基: 충북 단양군 적성면), 각이(角耳: 전남 영광군 낙월면) 등이 되어 이명(里名)으로 남아 있다.
삼각산은 '세 부리'의 뜻
삼각산(三角山=北漢山 :836m)의 '각'도 '부리'를 뜻하는데, 여기서 삼각(三角)은 '세 봉우리'의 뜻으로
백운대(白雲臺), 인수봉(仁壽峰), 만경대(萬景臺=望景臺)를 가르킨다. 망경대의 옛이름은 국망봉(國望
峰)인데, 이 이름은 태조 이성계의 명을 받은 무학대사가 이 봉에 올라 나라 다스릴 터를 살펴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 산은 일명 화산(華山)이라고도 하는데, <둥국여지승람>에는 서울의
진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때에는 부아악(負兒嶽)으로 칭하기도 했고, 세조 때 집현전 직제학인 양성지(梁誠之)는 이 산을
중악(中岳)이라 하자는 진언을 하기도 했다. 또 우이동 쪽에서는 백운대와 인수봉이 마치 소의 귀처럼
보이기도 해서 그 곳에선 '귀봉'이라 하기도 했다. 지금의 서울 도봉구 우이동의 우이(牛耳)는 바로 '쇠
귀'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세귀'(세 봉우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여기서의 '세귀'
도 한자로 '삼각'(三角)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삼각산의 세 봉우리는 서울 쪽보다 양주 쪽에서 더욱
뚜렸이 나타난다.
지금은 이 산이 북한산으로 더 잘 알려져있으나, 옛 지도에는 거의 모두 삼각산으로 나타나 있다.
조선 초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동국팔도대총도: 東國八道大總圖>에도 삼각(三角)으로 나타나 있고,
<경도도: 京都圖: 숙종37년 이전> 등에도 모두 삼각산으로 표시해 놓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지도
에나 세 봉우리를 크고 뚜렸이 나타내어 봉우리가 셋이라는 것을 강조한 점이다.
........ 山 (글: 지명 연구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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