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제목 |
하북위례성의 유적을 찾아서 |
내용 | |
#1.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온조(溫祚)가 재위 14년에 낙랑과 말갈의 잦은 침략을 피해 하북위례성에서 한수의 남쪽인 한산 아래 하남위례성으로 천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 온조가 BC18년에 첫 도읍한 하북위례성의 위치를 정약용, 김용국은 삼각산 동록으로, 이병도는 세검정 부근으로, 최몽룡, 권오영, 차용걸, 성주탁은 중랑천 일대로 보았다. #1. 이중에서 세검정 부근은 백제가 개루왕 5년에 북한산성을 쌓은것으로 나와 있어 제외될 수밖에 없다. #1. 한편 북한산 동록인 혜화문 밖 10리 한양동에는 토성지가 없는 반면 중랑천 일대는 일제시대에 나온 {조선보물고적조사보고자료}에 따르면 중곡동과 면목동 일대에 크고 작은 토루가 있다고 하여 하북위례성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데다 그 옆의 아차산의 동봉에는 백제시대의 토성이 있어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곳을 하북위례성 터로 보고 있다. #1. 그러나 이 곳은 거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낙랑과 말갈로부터 수없이 공격을 당하던 백제 초기의 미약한 소규모의 집단으로는 큰 산 전체를 지킨다는 것은 무리이고 한강을 남쪽에 끼고있어 퇴로가 없다는 점이 맹점이다. #1. {남한비사}를 쓴 구민회는 북한산 아래인 우이동에는 옛 성터가 남아 있고 왕궁터가 있다고 하였는데, 최근 향토사학자 한종섭은 방학동에 있는 175m의 시루봉 동북쪽 능선에서 "해 다니는 길 엄"자의 금석문을 발견하였다. #1. 필자와 함께 답사해 본 결과 그 곳은 극동아파트 옆길로 올라가는 곳으로 물길을 따라 계곡을 올라가면 절터로 추측되는 석축이 나오는데 그 부근에서 백제 초기의 타날문토기편이 나오고 있다. 이 곳에서 좀더 올라가면 왼쪽으로 시루봉을 낀 넓은 분지가 나타난다. 현재는 묵은 논과 밭으로 그 곳에서도 백제 초기의 흑색연질토기편이 나오고 있으며, 밭 가운데에 주초석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돌들이 여러 개 남아 있다. 좀더 올라 그 산의 능선에 오르면 삭토한 흔적이 있고, 토성의 북문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초기 옹성과 같이 엇갈린 형태를 띠고 있어 토성문의 매우 초기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1. 남쪽으로는 방학천, 동으로는 중랑천이 있어 해자의 역활을 하고 있어 이 곳을 하북 위례성으로 비정할 수 있었다. #1. 이곳은 북쪽에 도봉산, 서쪽에는 북한산이 자리잡고 있고 동쪽으로는 수락산과 불암산, 아차산이 버티고 있는데 이러한 거대한 산 아래 작은 산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이를 퇴로로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궁예의 도성으로 김일성고지로 불리는 거대한 산 아래 갈매기가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의 작은 야산을 등지고 도성을 쌓은 것에서 볼 수 있다. #10. {삼국사기}에는 위례성을 수리하기 위해 한수동북의 부락이 동원되었다고 하였다. 이들은 남양주의 평구, 용진, 토원 등지로 이 곳과 가까운 거리에 하북위례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 상계동 부근을 흐르는 중랑천이 한천 또는 한내라고 불린다. 이것을 필자는 하남위례성에 흐르던 한수와의 관계와 같이 한천이 하북위례성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한수=한강=큰물=큰강"이고 "하넌=한내=큰냇물"이므로 중랑천변의 방학동토성을 하북위례성으로 비정하고자 한다. #12. 그 이유는 정약용이 하북위례성이 삼각산 동록에 있다 고 하였는데 이 곳이 북한산의 정상을 이루는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정동쪽으로 그 방향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정서쪽에는 부아암 이라고 부른 바위가 인수봉 바로 밑에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근처인 삼양동에서 금동보살입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13. 상계동 부근의 중랑천을 한천이라고 불렀다고 했는데 그것은 "큰내"라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이 곳에는 "성고개"라는 지명이 남아 있으며 서로 북한산, 북으로 도봉산, 동으로 수락산, 서북으로 우이봉, 동남으로 불암산, 남으로 아차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 #14. 특히 이 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땔감이 풍부하고 상계동에 드넓은 마들평원이 있어 농사짓기가 적합하다. 특히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는 중랑천이 흐르고 있으며 남쪽으로 한강을 통해 서해의 소금과 고기를 얻을 수 있다. #15. 또 이 성터의 북쪽은 가팔라 적의 침입을 막기에 적합하고 그 곳에서 의정부 쪽에서 들어오는 적을 조망할 수 있다. 특히 동쪽으로는 상계동, 중계동 쪽에도 성터가 밀집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불암산성은 작은 성으로 동북쪽인 포천과 동쪽인 남양주쪽에서 들어오는 적을 조망하고 막은 전초기지 역활을 하였다. #16. 이 곳을 중심으로 동서 방향으로 삼각산->하북위례성지->불암산->불암사로 일직선을 이루고 있어 백제가 이 곳에 도읍을 했을 때 저동에 위치한 불암산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 산의 옛 이름이 검암산으로 "신성한 바위가 있는 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백제에 불교가 들어오자 매우 중요시되었던 이 곳을 불암사와 같은 절을 지었을 것으로 본다. #17. 한종섭은 불암산 정상의 바로 북쪽 봉우리(488m)에서 훼손된 제단터를 발견하였는데 돌들이 일렬로 박혀 있어 온조왕 원년에 건립된 초기의 동명모 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곳의 동명묘는 온조왕 14년에 수도를 하남위례성으로 천도하면서 검단산으로 이전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고구려도 국내성에서 지냈던 국동대혈을 평양천도 이후에는 기린굴에서 지낸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8. 필자가 이 곳을 답사하여 실측하여 보니 검단산 제단터와 간이 맨 앞에 평편한 바위가 있고 그 바위와 정상 남쪽에 있는 불암산 성터를 향해 진북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중심에는 남북 방향으로 7개의 돌이 일렬로 박혀 있고 그 우측에는 큰 돌이 2개, 좌측에는 3개의 돌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동서 방향으로는 5열의 석렬이 있으며 그 중에서 하단의 2열은 각각 12개씩 돌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이 동서 방향의 돌들이 도봉산을 가리키고 있다. #19. 이것은 하북위례성지로 추정되는 방학동 토성에서 발견된 엄자가 새겨진 바위가 북쪽 방향으로 정확하게 도봉산을 가리키고 있는 것과 일치하고 있다. 이것은 엄자가 "해 가는 길"이라는 뜻으로 천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때 도봉이라는 명칭이 이것에 부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 한천이 위례성과 한 세트가 되어 나타나는 것은 후일 한강유역을 상실한 웅진시대에도 한산성이라는 지명이 나타난다. #11. 현재 천원군 입장면 호당리의 위례성으로 비정된다. 왜냐하면 이 부근의 천원군에는 한천이 있기 때문인데 이 물은 {한국지명총람}에 천원군 성거면 요방리 무너미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성거면 중앙을 꿰뚫고 정총리에서 오목천을 합하여 입장면 용정리에서 입장천으로 들어가는 "한내"가 있다고 하였다. 그 우측에 있는 것이 바로 입장면 호당리의 위례성이다. 그런데 한내는 오목천과 합하여 입장천으로 들어가고 입장천은 안성천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의미로 본다면 한천이란 안성천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2. 온조가 하남위례성으로 천도한 후에는 하북위례성이 위례성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하북위례성과 관련된 기록을 보면 溫祚王 8年 2月 靺鞨賊三千來圍慰禮城 라고 하였다. 그리고 책계왕 원년에 하북위례성을 수축함과 더불어 고구려의 공격에 대비해 사성, 아차성을 수리하였다. #13. 그 후 하북위례성, 위례성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고 북한산이라는 명칭이 나타난다. 이것은 한강의 남쪽에 있던 한성에 대한 대칭으로 바뀌어 불린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후일 도읍인 하남위례성이 한성으로 바뀐 후에는 세검정 쪽에 있던 북한산성과는 달리 남쪽의 한성에 대칭되어 "북쪽에 있는 한성"이라는 뜻으로 "북한성"으로 불렸을 것으로 추측되기 떄문이다. #14. 후일 이 지역의 지명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 당시 고구려의 주공격 방향이 북한산성 쪽으로 옮겨 갔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15. 즉 {삼국사기}에서 개로왕 15년에 쌍현성을 수리하고 청목령에 대책을 설치한 후 북한산성의 사졸을 나누어 지키게 하였다는 기록을 참조해 보면 고구려의 주공격 루트가 개성을 통한 통일로 쪽이 되였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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