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安 文化財 探訪

천안 문화재 탐방-3...목천 서흥리 석탑~목천향교~개목이고개(구항령)~도동서원 터~은석사

吾心竹--오심죽-- 2012. 12. 2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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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천 서흥리사지 석탑(木川 西興里寺址 石塔)

 

* 백두대간 금북정맥 성거산(聖居山, 579m)에서 남쪽으로 굽이친 중구봉(重九峯)의 능선에 위치하여 복구혈(伏龜穴)의 명당이라고 전한다. 중구봉은 목천의 4군데 기우제단이 있는 산의 하나이다. 목천읍 용연저수지, 흑성산의 동북쪽에 위치하며, 왕자산 태조봉(일명 유려왕산, 현재 태조산) 마점의 동쪽 서흥리 마을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절터에 남아있는 석탑이다. 동네 주민의 말에 따르면 오래전 이름 모를 절 터라 전해지며, 바로 아래에 용연사(龍淵寺)라는 사찰이 최근 신축되었다.

동국대학교 및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탑의 형식은 고려시대로 추정된다고 한다. 절터에 곡부공씨 공한선씨댁이 있으며, 원래 탑의 자리는 현재 탑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10m옆에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밭을 갈면 기와편이 가장 많이 출토된다고 한다. 일부 자기편과 토기편이 출토되며, 탑 주변에 어골문, 격자문의 기와편이 있다.

 

이 탑의 특징은 맨 밑바닥 기단석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자연석 위에 탑의 기단받침이 올려져 있는데 밭을 개간하며 인위적으로 자연석에 올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옥개석이 군데군데 깨어진 상태로 있으며 4층의 옥개석이 얹혀있어 4층 이상의 탑으로 추정되나 파손정도가 심하여 추정하기가 어렵다. 주변에 절 터 추정되는 축대석이 그대로 남아 있고, 탑지의 서쪽으로 시냇물이 흘러 어렴풋이 절의 전체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집주인의 말에 따르면 기단부에 글씨가 있다고 하는데 이리저리 보아도 명문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이 탑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경우 재앙이 닥친다고 하며, 동네 주민 중에서 이탑을 옮긴 사람이 죽었다고 전한다. 배산(背山)의 명칭은 황산이라고 하는데 황씨들의 산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조선 1470~1530년경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정책으로 사찰 통폐합으로 규모가 비교적 사찰은 빈대가 많다하여 폐사시켜 이 무렵 목천 서흥리사지도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 목천 용연저수지 서북쪽에 고려 태조 왕건이 오룡쟁주형의 천안 진산 왕자산의 유려왕산(현재 태조산)을 오르기 위해 말을 매었다는 마점(馬点)이 탑의 서쪽에 위치하며, 용연저수지 아래에 목천향교가 자리 잡고 있다. 목천은 성거산 만일령(晩日嶺)과 흑성산 아홉사리고개(구령-九嶺), 도리치(회치-廻峙)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 육로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 서흥리에는 철(鐵)의 생산지로 철의 제련 터와 자기를 굽던 가마터가 있었다. 어간이골, 대소골, 고시골, 동막고개, 쟁이골, 점골, 오미쇠죽골, 쇠물고개 등의 제철과 그릇에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서흥리 258, 산24-5

 

 

 

 

 

 

 

 

 

 

 

 

 

 

 

 

 

 

 

 

 

 

 

 

 

 

 

 

 

 

 

 

 

 

 

 

 

 

 

 

 

* 파평윤씨 판도공파 비...목천읍 서흥리 //

 

 

 

*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목천향교 // 

 

 

 

 

 

 

* 아우내 독립만세운동비...충청남도 기념물 제58호...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

 

 

 

 

 

* 병천, 개목이고개...구항령...의구비...작성산~은석산 // 

 

 

 

 

 

 

 

* 개목이고개...우측으로 가면 작성산, 좌측으로 가면 은석산...원래는 작성산 ///

 

* 개목이 산신제 : 정월 길일을 택하여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 사람을 선정하여 제관으로 삼고 비용은 당일 모금하여 충당하고 제관, 축관, 두 사람이 제를 올리고 부락민 중에서 탈이 없는 집들은 개별적으로 자기 집에서 시루떡을 해놓고 자기 집 평안과 일 년 간 무탈하기를 빈다.

 

* 개목이 : 구항(拘項), 신촌(新村)이라고도 하며 개목 고개 입구에 있는 마을. 조선조에 질그릇과 사기점이 있었다. 개목고개는 서원말에서 북면 매송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다음과 같은 저널이 전한다.

(전설) 옛날 어떤 사람이 봄에 자기 집 개를 데리고 술이 취해 가지고 이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마루턱에서 쉬다가 잠이 들었다. 그 때 마침 산불이 나서 이 사람이 타 죽게 되어도 잠에서 깰 줄을 모르고 곤히 잠을 잤는데 따라 다니던 개가 급히 그 아래 냇가에 가서 몸을 냇물에 적시어 가지고 불위에 뒹굴어 몇 번을 계속하여 불을 끄고 주인을 살렸으나 개는 죽고 말았다고 한다. 주인이 잠에 깨어 일어나 보니 옆에는 온통 재로 변하여 있고 자기 가 요행히 살게된 것을 개의 도움인 것을 깨닫고 이 후로는 술을 끊고 마시지 않았다고 하며, 미물인 개가 주인을 위하여 죽었으므로 의구시(義狗詩)를 지어 돌에 새겨 의구비(義狗碑)를 세워주고 개의 장사를 잘 지내 주었다고 한다. 

 

 

 

 

 

 

 

* 개목이고개에서 본 성거산 // 

 

 

 

 

 

 

* 목천 도동서원 가는 입구 // 

 

 

 

* 목천 도동서원 터

 

* 은석산의 남동쪽 계곡에는 도동서원이 있었던 서원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이름이 ‘서원’인 것은 그 마을에 서원으로는 유일하게 도동서원이 자리하면서 마을 이름까지 서원으로 붙였다고 한다. 이 서원에선 김일손과 목천현 출신 유학자 황종배가 배출되었다.

서원말(書院里)은 은석산 동쪽 기슭에 있는 마을로 처음에는 이곳도 개목이라 하였는데 선조 때 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강당의 터를 닦는데 죽림(竹林)이라 새긴 지석(誌石)이 나오므로 죽림서원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인조 때 사액을 받아 도동서원(道東書院)을 세운 후 부터 서원말이라 한다.

 

* 도동서원의 배산인 은석산은 천안시 북면과 병천면에 경계해 있는 높이 455m의 산이며, 산 남쪽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은석사가 있어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았다 한다. 또 사찰 입구엔 백 여명이 앉아 쉴 수 있는 반석이 있다.

 

은석사를 지나면 어사로 유명한 영성군(靈城君) 박문수(1691~1756)의 묘가 있다. 암행어사 박문수는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득세하자 사서에 등용되어 영남 암행어사로 나가 부정관리들을 적발했다. 이듬해 이인좌의 난 때는 종사관으로 출전, 전공을 세워 경상도 관찰사에 발탁되고, 분무공신 2등에 책록되어 영성군에 봉해졌다. 군정과 세정에 밝았으며, 암행어사 때의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또 은석산은 불개미로 유명한데 송충이의 천적으로 숲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은석산 남쪽에는 병천암이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매송리 543-1, 543-2, 542, 544, 544-1 

 

 

 

 

 

 

 

 

 

 

 

 

 

 

 

 

 

 

 

 

 

 

 

 

 

 

 

 

 

* 작성산...현재는 은석산 은석사 //

 

 

 

 

 

 

 

 

 

 

 

 

 

 

 

 

 

 

 

 

 

 

 

* 천안시 동남구 북면 사담리 느티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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