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安歷史文化硏究

직산위례성 주변 고고학 지표조사 요약

吾心竹--오심죽-- 2012. 3. 14. 11:32

<<< 직산위례성 주변 고고학 지표조사...2012.3.15 >>>

 

 

 

위례성주변 고고학 지표조사.천안사학회.2012.hwp

 

 

 

1. 위례산성(慰禮山城...백두대간 금북정맥 능선, 해발 523m)

산성

위치

시대

축조방식

둘레

대표 수습유물

慰禮山城

입장면 호당리~

북면 운용리

백제~통일신라

(상한 AD4C 추정)

테뫼식

950m

타날문토기, 삼족기, 토제마, 우각파수호, 철겸, 철준, 백제토기, 신라 선조문 와편,

인화문토기, 고려 청자편, 조선 분청사기, 백자 등

 

위례성 발굴 유물 편년 상한연대 AD 4세기경으로 추정함.

백제의 타날문토기, 삼족기, 토제마, 우각파수호, 철겸, 철준, 백제토기, 통일신라의 선조문 와편 수습 성벽의 축조연대는 통일신라를 상회하지는 못할 것이다.

위례산성은 백제말~통일신라시대에 초축(初築)되었으며, 일부구간은 고려시대~조선시대 수축된 것으로 추정함.

위례산성 토성 기저부에서 출토한 목탄을 일본 교토산업대에 보내 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2010±480년으로 추정함. (서울대인문학연구소, 1997)

 

1차 축조 시기의 뒤채움과 구지표면에서 연질 토기완과 인화문토기가 출토되어 통일신라시대로 파악하였으며,

2차 축조 시기는 청자편과 토기류 등의 유물을 통해 고려시대로 보았으며,

3차 축조시기는 늦은 시기의 청자편과 분청사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고려말~조선초로 파악함.

출토유물 가운데 타날문토기의 경우는 한성백제기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2009~2011 발굴조사, 충남역사문화연구원)

 

◎ 현재 위례산성은 <성거산 위례성>이라 표현한 것은 잘못이며,

<부소산 위례성>이란 표현이 옳다할 것이다.

직산현지 역시 “위례성이 성거산”에 있다고 표현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서울대 규장각 조선시대 고지도에도 부소산, 부소령, 부소문이, 부수문이 등의 지명이 있고, 현재의 지명유래 역시 남아있다.

백제초도 역사의 올바른 복원을 위해서라도 사실의 기록은 보존되어야 한다.

백제초도사 문헌사학의 부족한 부분은 고고학적 유물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헌사학의 <백제초도 하남위례성> 위치논쟁에 대한 학술회의, 세미나, 토론회 등 갑론을박은 말싸움에 지나지 않고, 수많은 추론과 가정, 각자 제주장에 근거해 하남위례성, 하북위례성을 주장할 뿐이므로 고고학 유물, 유적을 토대로 과학적 접근과 이해가 위례성 백제초도를 입증할 유일무이한 수단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또한 해발 523m의 위례산성은 왕궁성으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며, 위례산성 아래 성거읍 천흥리~저리~모전리~오색당리~삼곡리, 입장면 호당리~시장리 주변, 직산읍 판정리~남산리~군동리~군서리 지역의 평지성에 주목하여 검토해야만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위례산성 아래 평야지대의 산성 유적과 고고학 유물에 눈을 돌려 다시 검토되어야 할 것인데 예나 이제나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이를 간과했다.

이제라도 위례산성 아래 평지성에 대한 주도면밀한 조사와 검토를 통해서만이

<천안 직산 하남위례성>의 역사는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 광주 이성산성, 몽촌토성, 풍납토성 등이 그동안 사학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도 이곳이 <하남위례성>이란 결정적 고고학적 유물은 수습하지 못했다.

위례산성의 발굴 역시 천안시의 재정부족으로 전면적인 발굴을 못해 아쉽지만 언젠가 재정 여유가 생기면 전면적인 재발굴이 이루어져 위례성의 역사를 재조명하기를 바랄뿐이다.

 

천안시 역시 인구집중에 따른 도시화, 공업화에 주변지역 유물, 유적이 파괴 멸실되고 있다. <천안시 문화유적 지도>를 수정, 보완하여 개발에 따른 문화유적의 무분별한 훼손은 막아야 한다.

 

직산위례성이 백제시대 유물이 다수 출토됨에도 불구하고 백제초도 기원전후의 핵심적인 연결고리가 될만한 단서에 주목하여 찾지 않고, 발견된 다른 고고학적 유물, 유구, 유적으로 <위례성=직산이 아니다>라 단정하거나, 폄훼하는 학문적 접근태도는 버려야 할 것이다. 특히 위례성에서 발굴된 타날문토기 역시 기원전후~3세기에 사용되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일반적 견해인 줄로 아는데 타날문토기의 편년연대를 백제후기로 잡고 백제초도 위례성을 서울시 풍납토성 인근으로 초점을 맞추어 고증하려는 학문적 태도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위례산성과 천안 입장~북면의 부소산(459.1m...금북정맥)은 직산관아에서 바라보면 동지와 설날엔 성거산, 위례산성에서 해가 뜨고, 단오와 하지엔 좌성산(서운산)에서 해가 뜬다.

1년의 시작 새해 첫날인 설날, 정월 초하루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는 일출봉(日出峯)이며, 거룩한 성산(聖山)이며, 서해바다 아산만에서도 훤히 잘 보이는 직산의 랜드마크이며, 백제초도 위례성은 등대 불빛과 같은 상징적 의미인 왕성(王城)의 진산(鎭山)인 것이다. 서운산(좌성산)~부소산~위례산성~성거산성(우성산)은 해가 솟는 신령스런 산인 것이다.

서울 풍납토성 인근, 광주 고골 동쪽 검단산처럼 쌍둥이 지형의 산이 바로 위례산성이다.

 

 

 

2. 문성(文城, 저성-猪城...백두대간 금북정맥 직산지맥, 해발 약 80~90m)

산성

위치

시대

축조방식

둘레

대표 수습유물

文城

(猪城)

성거읍 문덕리 1-17 ~ 정촌리 74-2, 산20-2외

초기백제

자연지형

700m

 

타날문토기, 무문토기편

 

 

◎ 문성(文城)은 그간 그 어떤 기록문헌에도 남아있지 않고,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직산현지(1899년) 산천조에 <현 남쪽 10리에 있다>고 짧게 기록되었고, 성지편, 고적편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고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았다.

 

백제초도라 전해지는 위례산성의 수차례 발굴에 의심을 품고, 서울 풍납토성, 몽촌토성, 공주 공산성, 부여 부소산성, <왕성=평지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역사적으로 백제의 도읍 형승이 북대천수(北帶川水)의 지형됨을 의심스럽게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직산 땅 어딘가에도 비슷한 지형을 추적하게 되었다.

 

북대천수의 지형으로 그간 사학계에선 성환읍 안궁리(양양리+궁리), 도하리(도감리+하리)를 위례성 혹은 마한의 도읍지 등으로 추정하였던바 일리는 있으나 험준함이 약해서 항시 의심을 품게 되었다.

 

일제시대 신문 직산사금광 기사를 검색하다가 “사금 채취시 입장면 용정리 한천 강바닥 약10m 지점에서 고대 뱃조각(주즙)들이 발견되어 백제 위례성시대엔 강바닥이 매우 깊어 배가 통행했을 가능성이 있다“에 주목했다.

*한천(漢川,大川)...아산만~안성천~도하리~입장 용정리~성거읍 문덕리~요방리.

 

성거 모곶(모전리, 일명 띄우지, 띠우지), 대문앞들, 천흥바다들, 신두(섶머리,섬머리), 모시울(저리), 만호들, 도토생이(도토성) 등 기록문헌에도 없는 동네 어른신들의 마을 지명유래를 추적하다가 <도토생이>에 주목하고, 직산현지에 기록된 저성(猪城)의 순우릿말이 도토성, 톹성임을 알게 되었다.

토토성(저성) 주변 1~2km 지역의 정밀지표조사를 매주말 답사하며 발품을 팔았다.

문성은 경부고속도로와 접해있고,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최근까지 성환활주로 공군비행장으로 사용 되었던 곳이고, 성거읍 문성리란 지명이 있을뿐, 성터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장마철이라 잡풀과 잡목이 얽혀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민묘 이장 터에서 우연히 토기편을 주워왔는데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감정결과 타날문토기편으로 기원전후~AD3,4세기를 추정한다. 몇 차례 재방문하면서 수습한 타날문토기 및 무문토기편 등 유물을 몇몇 교수들에게 의뢰 감정한 결과 놀랍게도 제작기법, 태토상태 등등으로 편년연대가 BC3C~AD3,4C로 추정하였다.

 

문성은 나지막한 동네 뒷산이며 주변엔 넓은 들판이 있다.

오목한 자연지형이며 동북향 C자형이다. 둘레 650~700m정도이며 동쪽으로 흐르는 한천(漢川)은 자연해자처럼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건너편 동쪽 위례산성 5.5km, 성거산성 4.7km, 서북 사산성 4km지점에 위치한다.

 

문성(文城)이라 기록되었지만 지명유래를 종합 검토하여 추정하면

대문, 관문의 성-문성(門城)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거읍 모전리(모곶)의 대문앞들, 대문안 방죽, 모시울 만호들이 이를 방증한다.

 

문성이 위치한 성거읍 문덕리, 정촌리, 삼곡리, 직산 남산리, 판정리, 입장의 호당리, 시장리 일대는 백두대간 금북정맥이 동북~남서쪽으로 막혀 천험을 이루며 아산만 수계의 최상류에 위치하며, 영인지맥과 교차하고 천안 원성천~봉호천~곡교천~ 삽교천 수계의 최상류가 분수하는 분수령이다.

고대의 산성들은 수계(水界)의 최상류에 입지해야만 적의 공격에 안전할 수 있다.

 

위례산성 바로 밑 성거읍 모곶(茅串) 대문앞들~문성까지 일제시대 한천에서 발견된 주즙(舟葺)을 추정하여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왔다면 소형 선박을 통한 고대육로와 해상교통로가 만나는 요충지, 접경지에 문성과 위례산성이 입지한 것이다.

 

문성~만일령, 문성~부소문령, 문성~엽전재(협탄령), 문성~납은치, 도리치 등 서해바다 해상교통로와 당항성로 육상교통로의 중심이며,

이를 통제하고 제어하는 천혜의 요충지에 문성이 위치한다고 볼 수 있고,

고대 강력한 세력집단이 문성주변에 세거하며 주변을 장악하며 통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도토성(都土城,일명 저성-猪城...백두대간 금북정맥 직산지맥...해발 약40~90m)

산성

위치

시대

축조방식

둘레

대표 수습유물

都土城

(猪城)

직산읍 판정리 260-2

~

성거읍 정촌리 211-2

백제~통일신라

6~7세기 추정

구릉 토축

400m

타날문토기, 인화문토기

와편, 토기편 등

 

◎ 직산현지에 저성(猪城)은 현의 동남쪽 5리쯤에 있다. 토축으로 둘레 1리 가량 되는데 어느 시대에 축조한 것인지 알 수 없고 지금은 없어졌다.

 

저성은 우릿말로 도토성, 톹성, 돼지성이라 통상 풀이한다. (배우리-우리말연구회)

 

성거읍 문성부근을 지표 조사하던 중 직산의 토박이 동네 어른신들이 많이 써오던 구전지명 <도토생이>에 궁금하던 때 도토생이 어원을 추적하여 얻은 결과이다.

향토사학자들은 도토생이=陶土生이라 풀이하였다. 도자기를 굽던 흙을 생산하던 곳이라 풀이하였는데 명쾌하진 않았다.

 

도토성(都土城)=저성(猪城)=땅의 지형이 도톰하다, 돼지(톹)...저성(渚城)-물가의 성, 성거읍 삼곡리(三谷里)=시구리(우릿말)의 지명은 3개의 하천이 합수하여 붙은 명칭이므로 한천+천흥천+판정천이 합수하여 붙은 지명이다.

 

삼곡리(시구리) 뒷편 언덕에 1998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안시문화유적분포지도를 근거하면 이곳이 도토성이라 전한다고 한다. 혹은 일부 주민들의 의견에 고분군이 있었다고 전하나 믿기 어렵다고 돼있어 성 터의 흔적 찾기란 매우 어렵다.

일부 토기편 등이 발견되기는 하나 편년연대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좀 더 영역을 확대하여 남쪽 북천안인터체인지, 코리아나 화장품 공장이 있는 직산 남산리~성거 정촌리 부근까지 확대하여 유물을 수습하였지만 잡초와 잡목으로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최근 코리아나공장에서 자연생태 식물공원을 조성하는 밭에서 일부 토기편, 인화문 토기편, 와편 등이 수습되어 편년을 고증한바 일부 백제 토기류 추정, 통일신라~고려시대 것으로 추정하였다.

 

직산현지의 저성=도토성의 정확한 위치는 비정키 어려워 성거읍 삼곡리~정촌리 ~직산읍 남산리(대남산) 부근으로 코리아나 화장품공장 부근으로 추정할 뿐이다.

 

 

 

4. 직산읍 온조왕묘 수습 유물 //

유적 위치

시대

대표 수습유물

직산읍 판정리

산24-19외

백제~통일신라

추정

항아리편, 토기, 기와편

 

온조묘(溫祚廟)터로 추정되는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판정리 산24-19외> 용안치(龍鞍峙) 아래 약 50,000여평 주변은 일부 벌목과 개간 등으로 현재 일부 밭으로 전용되고 있으며, 최근 국도34번(당진~영덕)의 부분개통과 경부고속도로 북천안 인터체인지(가칭, 천안위례성IC)가 공사 중이며,

 

<국제과학 비즈니스벨트 기능기구>로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남산리 일대가 확정되면서 주변의 급속한 도시화, 산업화가 가속되고 수도권 인근 사통팔달의 편리한 입지조건은 <물류창고 건설>이 적합하여 본 토지의 지주(地主)가 최근 매매계약이 성사 되었다고 전함. 이런 연유로 백제초도 위례성 온조왕묘 터가 고의적, 악의적으로 멸실, 훼손될 위기에 처함.

 

아직도 일부 임야에서 <백제~신라시대 추정 고분(古墳)> 부장품인 항아리 파편 유물이 발견되었고, 고려 해무리굽 청자편, 조선시대 기와편이 다수 발견되고 있어 이곳에 건물이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며, 또한 무덤의 상석과 기단석이 부분 발견되어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특히 온조묘 터에서 수습된 항아리편은 백제 사비기로 보는 학자와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하는 학자가 있어 조선 세종대왕이 온조묘를 건립할 때 중요한 유적이 이곳에 분포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5. 성거읍 모전리(茅串, 띄우지, 띠우지) 수습 유물...//

유적 위치

시대

대표 수습유물

성거읍 모전리

(모곶-茅串)

청동기~

초기백제

무문토기편, 타날문토기,

파수호편, 토기편, 기와편 등

 

◎ 성거읍 모전리 유물이 출토된 지역은 모곶이란 지명으로 알려져 있고

위례산성의 서쪽지역이며 안성천의 상류이며 한천이 앞에 흐른다.

 

모전리 서북쪽의 지명이 대문안에 해당되며, 문성과 지척에 있어 만일령, 부소령, 엽전재로 넘는 고대 당항성로의 교통로 중심지역에 모전리이다.

모전리 앞 구릉지대에서 지표조사 결과 인삼밭으로 조성하기 위해 밭을 갈아 놓은 곳에서 다수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고분, 생활유물이 발견되었다.

 

충남역사문화원과의 공동 지표조사 결과 무문토기편, 타날문토기편이 발견되어 청동기시대~백제 AD3~4C의 유물로 추정하였다.

 

똑같은 문양의 타날문토기편으로는 강화도 교동에서 출토된 낙랑식토기와 문양이 같아 상한 연대를 더 올려 볼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6. 직산읍 군서리 수습 유물...사산성(성산) 남쪽 //

유적 위치

시대

대표 수습유물

직산읍 군서리 266

통일신라~고려

추정

항아리편, 토기, 기와편

청자, 백자편

 

○ 직산읍 군서리 유적은 직산현의 진산 성산(사산성) 남쪽 아래에 있다.

드넓은 직산의 마룻들 평야와 안성천~성환천의 상류에 있으며 직산현 관아 남서쪽에 위치한다. 촌로들의 말에 따르면 예전 직산고을이 이곳에 있다가 어느 시기엔가 지금의 동쪽으로 옮겨 마을이 형성되었다고도 한다.

 

이곳에는 무수한 기와장과 토기편 자기편 등이 수습되는데 생활유물이 많다고 하겠다. 지형은 남향을 바라보며 햇볕이 잘 들고 성환천의 상류에 근접하여 아산만과 수로로 연결된다. 예전 아산만이 막히기 전에는 장마철이면 하천물이 범람하여 바닷물고기들이 많이 이곳 부근에서 잡혔다.

 

직산읍 군서리 유물 수습지 동쪽에 요골이 있어 이곳에서 토기와 자기 등을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인근에 직산읍 수헐리 시름새가 있고, 삼남대로의 길목에 자리한다. 최근 수헐리 시름새 앞뒷편의 드넓은 밭에서 백제시대 타날문토기편이 수습되어 이곳 사산성의 남쪽 낮은 구릉지대가 고대인의 생활 터전이었음을 증명하여 준다.

 

고려 태조 왕건이 직산읍 수헐리 시름새에서 오색구름이 있는 산을 바라보며 자신이 태어난 개성, 송악의 성거산과 똑같은 지명을 이곳 천안 직산에 성거산이란 이름으로 작명하였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전한다.

 

 

 

7. 입장면 연봉(蓮峯, 延峯, 蓮花峯 - 해발 37m)

유적 위치

시대

대표 수습유물

입장면 연곡리 244

백제

격자타날문토기편

 

○ 천안시 입장면 연곡리 연봉유적은 해발 37m로 안성천 상류 한천 옆에 있으며 드넓은 소사평야를 굽어 보며, 양성현의 진산 천덕산과 무한산성을 안성천을 경계로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현재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하며 산의 절반이 깎여 나간 상태이며 이곳은 안성시와 천안시의 접경지역으로 아산만 밀물이 이곳까지 밀려왔음을 추정 할 수 있다.

 

이곳 역시 아직 학계에 한번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금번 위례성 관련 지표조사 탐방시 격자타날문토기편이 연봉 정상과 동쪽 밭에서 많이 수습되었다. 수원박물관에 전시된 파주 육계토성의 대형 항아리편과 똑같은 문양으로 한성백제기까지 그 연대를 추정 소급할 수 있다.

 

특히 백제 왕성(王城)의 공통점은 북쪽으로 강과 하천을 두고 조성되었는데 천안 입장면 연곡리 연봉유적은 이러한 지형에 유사하며, 서쪽으로 도하리(都下里, 都監里+下里), 안궁리(安宮里, 安養里+宮里), 평택 진위천에 궁리(宮里)가 있고, 동북쪽으로 안성의 신두리(薪頭里), 웅교리(熊橋里)와 마주하여 북대한수(北帶漢水) 지형이 풍납토성, 이성산성(경기도 광주 고골), 공주 공산성, 부여 부소산성과 유사한 지형이다.

 

성환, 평택의 소사벌판은 고려 현종 1021년 봉선홍선사, 광연통화원을 건립할 당시 갈대숲이 우거졌다고 기록되어 이곳이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바닷물이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염분이 많아 벼농사, 밭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황량한 개펄과 습지 였슴을 알 수 있다.

 

입장면 연봉 아래 한천(漢川-仁州川)의 수위(水位)는 해발 6~9m 정도로 아산만 밀물 최대수위 8.7m 일 때 바닷물이 역류하여 작은 나룻배도 통행이 가능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며, 천흥바다들, 성거읍 모곶(茅串), 입장면 배삼딩이(유곶-柳串)의 지명이 아직도 주변에 남아 있다.

성환읍 안궁리, 양령리 일대는 최근까지도 장마철이면 홍수가 범람하여 많은 피해를 주고 있고, 근래에 와서야 하천정비와 토사를 정비하여 피해를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1927.8.27 동일일보 신문기사 내용을 참조 하면

“온조(溫祚)의 왕도(王都)이었음은 근거(根據)가 충분(充分)할 뿐 아니라, 더욱 경기(京畿) 광주목(廣州牧) 건치연혁(建置沿革)에 「本百濟 南漢山城 始祖 溫祚王 十三年 自慰禮城 移都之 (下略) 」이라 하였나니 여상(如上)의 사기(史記)를 종합(綜合)하여 보면 온조왕(溫祚王)의 구도(舊都)이였던 것은 확실(確實)하지만은 하남(河南)이라는 하(河)의 위치(位置)가 금(今)의 한강(漢江)을 운(云)하였던 것인지? 또는 거성(距城) 2리 북(二里 北)에 있는 안성천(安城川)이 석일(昔日)에 있어서 하(河)이였던 것인지 확증(確證)키 난(難)하나 안성천(安城川)의 유역(流域)이 상당(相當)히 광활(廣闊)함을 볼진대 이시(伊時)의 하(河)이었는지? 또한 의문(疑問)인 바 성근지(城近地)의 촌명(村名)이 기로(耆老), 시랑(侍郞), 남창(南倉) 등 명칭(名稱)을 가졌고, 또는 근고(近古)에 있어서 채광(採鑛) 중에 지하(地下) 20여장(二十餘丈)에서 주즙(舟楫)의 파편부(破片部)를 다수(多數)히 발견(發見)하였음을 보면 현재(現在)의 육지(陸地)가 혹(或)은 기시(其時)의 강하(江河)인 듯한 의문(疑問)도 생(生)하여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사실(事實)이 종종(種種)있나니 필자(筆者)는 우월(偶越)하나 직산 위례성(稷山 慰禮城) 이 백제(百濟)의 왕도(王都)이였던 것이 무의(無疑)하다고 주장(主張)하고 싶다.

< 출처 - 1927. 8. 27 동일일보 신문 >

 

○ 직산금광 입장면 용정리 앞 한천(漢川)에 준설채금선...고대 선박의 뱃조각, 주즙편이 지하 20여장에서 다수 발견되었다는 신문기사 내용이다.

<하천 강바닥 지하 20여장>

1丈=3.58m, 10尺(1尺=3.58cm), 혹은 1丈=2.3m, 10尺(1尺=23cm)

20丈 X 3.58m=71.6m

20丈 X 2.3m=46m

1장의 길이는 보통 사람 키, 혹은 양팔을 벌린 길이와 비슷하다고 판단함.

 

입장면 연곡리~용정리~성거읍 도토성~모전리 일대까지 아산만의 최대 조수간만의 차이 8.7m를 적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신문기사 내용이며, 성환 봉선홍경사 부근 수향리(지족향-지질캥이) 무내(水川) 역시 바닷물이 들어왔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백제건도 기원전 18년경 천안 직산위례성 부근까지 만조 밀물 때 바닷물이 유입되어 해로와 육로의 요충지에 온조왕은 위례성에 도읍 세웠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 안성천 주요하천 출구표고(出口標高)...자료출처-한강 홍수통제소

① 평택 군문교 영점표고: 0.13m ②성환천: 1m ③입장천: 10m ④청룡천: 15m

⑤ 한천, 안성천 합수머리: 15m ⑥둔포천 : 1.23m ⑦황구지천 하류: 4m

 

 

 

< 입장면 연곡리 연봉 수습... 격자타날문 토기...2012.2월 >

 

 

<<< 오심죽...직산위례성 주변 고고학 지표조사...2012.3.15 >>>

 

 

 

위례성주변 고고학 지표조사.천안사학회.201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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