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 부소산 위례성 학술회의...천안박물관 대강당 >>>
* 주체 : 천안시
* 주관 : 충남역사문화연구원
* 장소 : 천안박물관 대강당
* 일시 : 2011.12.22(목) 13:30~17:30 //
1. 제1주제 : 천안지역의 산성과 초도 위례성
발표자 : 김병희(중원문화재연구원)
토론자 : 윤종일(천안시역사문화연구실)
2. 제2주제 : 천안지역 고분유적을 통해 본 초도로서의 천안
발표자 : 이남석(공주대학교)
토론자 : 오규진(가경고고학연구소)
3. 제3주제 : 천안 성거산 위례성 관련자료 분석
발표자 : 임명순(천안향토사학회)
토론자 : 문동석(서울여자대학교)
4. 제4주제 : 천안지역의 구전을 통해 본 초도 위례성
발표자 : 황인덕(충남대학교)
토론자 : 이정우(천안향토사학회)
* 종합토론 좌장 : 심정보(한밭대학교)
<天安地域의 山城과 初都 慰禮城> 토론문
윤종일(천안시역사문화연구실)
백제초도 하남위례성은 어디인가?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이후 한국역사 800년 넘게 밝히지 못한 백제사 최대의 논쟁의 하나입니다. 그간 선학들의 연구와 고증을 통해 많은 학설들이 제기되고 반론과 토론, 고고학적 유물, 유구들이 역사와 시대를 대변하면서 많은 숙제가 풀리고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어야 그것을 풀 수 있듯이 13년간의 백제초도를 밝히기란 쉽지는 않지만 그것을 밝히려는 노력이 있으면 언젠간 풀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저는 직산 토박이입니다. 제 고장의 역사를 풀기 위해 학술회의 등을 개최하며 힘써 주시는 관계자 및 한국사학계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내 고장의 역사를 우리 손으로 명쾌히 풀지 못하고 외부의 필력을 빌려 갑론을박하는 동안 우리는 상대적으로 역사문화적 빈곤, 소외의 대상이 되었고, 목소리도 작아졌기 때문입니다.
천안지역의 산성과 초도위례성이란 주제로 중원문화재연구원 김병희 책임연구원의 글을 읽고 속으로 기쁘고 흐믓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2011년 3월 부터 천안시 역사문화 연구실에 근무하면서 봄부터 매주 주말을 이용하여 최근까지 천안지역의 산성이 과연 몆 곳이며, 역사학계에서 파악하고 있고 알려진 산성과 현지 탐방을 통해서 제가 파악한 산성과 중요 유물유적은 무엇인가? 한국 사학계에서 간과한 백제초도 위례성을 밝히기 위해 미처 파악 못한 유적은 어디인가? 이를 종합 비교검토하고 지표조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서 천안의 산성을 그 동안의 발굴보고서, 문화유적분포지도, 서울대,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천안시역사문화연구실 자료를 바탕으로 충실히 체계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주신 김병희 책임연구원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를 바탕으로 천안의 산성을 이해하고 백제초도 위례성의 위치를 찾는 나침반이 되었으면 합니다.
위 논문을 검토하며 여러 자료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천안지역의 산성 목록>표처럼
기존 천안시의 산성은 총 23개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답사한 산성은 28개입니다.
그리고 그 위치 표시 역시 사산성-직산면 군서리, 목천토성-목천면 남화리 등으로 기록되어 독자들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사산성 세부 설명엔 사산성-직산면 군동리로 되었습니다. 정확한 현재 위치 지번은 <직산면 군서리가 아닌 직산읍 군동리>가 맞습니다. 목천토성 역시 <목천면이 아닌 목천읍 남화리>입니다. 오래된 자료를 여과없이 인용하다보면 쉽게 이런 오류가 발생합니다. 성의 규모 역시 고기록, 일제시대 자료, 기존 자료를 인용하여 정리하였지만 막상 산성을 답사하면 성 터의 흔적과 윤곽을 찾기란 매우 어렵고 산성의 둘레 역시 어림잡아 그 정도 될 것이다 하는 정도지 줄자를 가지고 규모를 정확히 파악한 것은 아닌 것이 아쉽습니다. 이런 문제는 향후 천안시의 정밀한 문화유적 지표조사가 다시 선행되어 한국사학계의 기초자료로 제공되기를 바랍니다.
위 논문 내용을 종합하면 기존에 발굴조사 보고된 천안시 산성의 고고학적 유물, 유구, 유적을 통해서 <백제초도 위례성 건국...기원전 18년경>과 편년연대가 비슷한 산성은 거의 없고 이를 바탕으로 백제초도 직산 하남위례성을 고증하고, 비교연구 할 만큼 중요한 산성은 없는 것으로 결론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하겠습니다.
천안지역의 28개 산성중 백제시대~통일신라로 분류되는 17개 산성의 특징으로 시내 및 풍세, 지역은 백제시대 보루 성격의 토성으로, 목천, 북면, 병천, 동면지역은 신라와의 접경 산성으로, 금북정맥 능선은 고구려~신라의 접경지역 백제시대 산성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남위례성 건도 당시를 추정하면 이러한 유적, 유구의 발견이 천안지역에서 발견이 되지 않아 아쉽다는 내용입니다.
삼국사기 온조왕대에 마한을 멸하고 축성된 인근 아산시 일대로 추정되는 대두산성(大豆山城, 온조왕 27년 7월-영인산성, 물앙성 추정)과 탕정성(湯井城, 온조왕 36년 7월-배방산성, 읍내성 추정)을 비교하면 분명 축성(築城)이라하여 토축, 토석혼축, 목책이 되었던 간에 성책을 세웁니다. 그러나 제가 탐방한 몇 개의 옛 직산현의 산성은 아직까지 한 번도 사학계에 보고된 사례가 없고 고문헌에 짧게만 소개되어 매우 궁금했었는데 1899년 간행된 직산현지 및 구전지명을 바탕으로 주변 유적지 탐방 지표조사에서 놀라운 고고학적 유물이 2011년 7월~12월 발견되어 백제초도 직산 하남위례성의 가능성 높여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성거읍 정촌리~문덕리의 문성(文城)이며 둘레 약 700m의 테뫼식산성으로 보이나 성벽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고, C자형의 오목한 자연지형을 활용한 천혜의 농성(農城)으로 판단됩니다. 동쪽으로 위례성과 성거산성이 3~4km, 사산성(성산)이 북쪽 4~5km내에 있고 아산만~안성천~성거천, 입장천(漢川, 한내)이 해자처럼 하천의 상류지역에 흘러 천험의 지형을 갖춘 곳입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그릇(토기)받침, 타날문토기, 각종 토기류편의 유물은 태토의 상태, 기법, 양식 등을 고려하여 기원전3C~기원후3C 추정
(공주대교수,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사비부여문화재조사원, 임효재 교수님 참관)
마한~백제초도 위례성의 대문 즉 관문인 문성(門城)으로 이해됩니다. *별첨 사진-1(참조)
둘째로 도토성(都土城, 저성-猪城-톹성, 저성-渚城)과 그 주변 유적입니다. 직산읍 판정리~남산리~성거읍 정촌리에 있으며 문성의 북쪽 1~2km에 위치하며 3개의 하천이 합류하는 곶(串)의 지형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익산 건마국 금마저(金馬渚)의 도토성과 똑같은 지명이 구전되어 오고,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흡사한 지형으로 지표조사 결과 백제~통일신라~고려시대의 유물이 수습되고 있고, 도토성 건너편 성거읍 모전리 (모곶-茅串)의 구릉에서는 원경단경호편, 대옹(大甕) 격자타날문편, 우각파수호편 등이 수습되어 백제초기 위례성의 역사와 가장 근접한 유적, 유물이라고 비교 판단되고, 대옹 타날격자문편은 경기도 포천지역의 초기백제의 유물과 흡사하여 향후 이곳이 직산 위례성의 역사를 밝히는 황금열쇠라 생각됩니다. *별첨 사진-2(참조)
끝으로 몆가지 궁금한 질문으로 토론을 마치고자 합니다.
1. <천안 성거산 위례성>→<천안 부소산 위례성>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천안 성거산은 고려 태조가 작명한 것으로 거기에 성거산성이 있고, 또 그 성거산 어딘가엔 위례성도 있는 걸로 풀이되어 혼동됩니다. 직산현지에 이르길 (위례성은) 여지지에 이른바 성거산에 있다고한 것은 두렵건대 잘못이다. (輿地誌所謂在聖居山者恐誤)
천안 부소산(扶蘇山, 459.1m, 부수문이고개=扶蘇嶺) 위례성은 오방(五方)의 중심으로 좌성산(左城山, 서운산)↔우성산(右城山, 성거산)↔남 작성(鵲城)↔북 사산성(蛇山城)의 중심에 직산위례성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부여의 부소산성이 똑같은 이름으로 있습니다. 직산위례성이 백제초도로서 위상을 밝히기 위해서 <직산 부소산 위례성>으로 명칭부터 정확히 재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백제 도읍성의 변천 입지는 공통적으로 시대가 서로 다르더라도 북대천수(北帶川水)의 형상입니다. 고구려 도읍성의 변천 입지는 남대천수(南帶川水)의 지형입니다. 천안 직산땅이 이런 지형조건과 똑같이 부합되고 직산현의 진산이 사산성(성산, 176m)입니다. 혹시 사산성이 백제초도 위례성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는데 고견을 주십시오?
사산성에서 발굴된 성문들의 옹성(雍城)의 구조는 “이제까지 조사된 고대의 성문적(城門跡) 으로서는 초유(初有)의 것이라 여겨지는데 이는 문전(門前) 좌우의 옹성부터가 그러하다 ....중략... 치성(雉城)은 판축토루(版築土壘)에 있어서의 치성으로서는 초유(初有)의 존재란 점에서 향후 연구과제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중략... 토기류는 반월형석도, 숫돌, 김해식토기편(타날무늬토기편)이나 무문토기편(無文土器片)이 알려 주듯이 청동기시대 이래로 낮은 산야지대에 선사인(先史人)이 얼마간 살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직산 사산성 발굴보고서, 1994,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43p~144p)
3. 초기백제 위례성(慰禮城)의 크기가 어느 정도 규모의 성곽이라 생각되는지 의견을 주시고, 성곽의 형태는 목책, 토루, 토성, 토축성, 자연지형 등 축성방법은 어떻게 추정 되는지 고견을 주시고, 성거읍의 문성이 초도위례성이라 추정이 가능한지 고견을 주십시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8년 2월에 말갈적 3,000명이 위례성을 포위해 오니 왕은 성문을 닫고 출전하지 않았다. (靺鞨賊三千人來圍慰禮城 王閉城門不出)란 구절이 나옵니다.
미루어 짐작하면 3천명이 초기백제 위례성 주위를 포위했다고 짐작되는데 성거읍 정촌리~문덕리의 문성(文城)은 주위 약 700m 정도로서 삼국사기의 표현과 유사합니다. 사산성은 테뫼식 둘레가 750m이며 성산(사산성)의 전체 산의 둘레는 약 7km정도 됩니다. 3천명이 에워싸기엔 비교적 규모가 큽니다.
4. 평지성(平地城)인 농성(農城)의 형태가 백제초기 도읍성의 시작이라고 판단되는데 그에 대한 연구결과를 상세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울 한강변의 풍납토성, 청주 작천 (鵲川)의 정북토성(井北土城), 옛 직산현인 평택시 팽성읍 아산만 중류의 농성(農城)은 북대천수(北帶川水)의 공통적인 지형으로 백제 산성연구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데 성환읍 궁리(宮里)와 안양리(安養里)=안궁리(安宮里) 역시 위 지형과 쌍둥이 지형이며, 천안의 도토성~문성 역시 비슷한 지형지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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