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 歷史 探訪-1

봉선홍경사 1021년 창건...가타파구신도량(呵吒波拘神道場), 아타파구신 도량재 881년만의 재현

吾心竹--오심죽-- 2011. 11. 4. 14:26

<<< 봉선홍경사(1021년 창건)...창건 990주년 기념, 가타파구신도량(呵吒波拘神道場), 아타파구신 도량재 >>>

 

<고려사>

* 홍경사 가타파구신 도량재...1130년(고려 인종 8년)

8월 갑술에 왕윤사에 행차하였다. 계사에 최자를 금에 보내어 천청절을 하하였다. 을미에 서경에 행차하였다.

임자에 아타파구신도량을 홍경원에, 반야도량을 선군청에 모두 27일간 설케 하니 다 묘청의 말을 쫓음이었다.

 

< 고려사절요 제9권, 인종 공효대왕 1(仁宗恭孝大王一) 경술 8년(1130), 송 건염 4년ㆍ금 천회 8년>

○ 가을 7월...이전에 이자겸이 세도를 부릴 때에 산승 선서(善諝)의 말을 들어 홍경원(弘慶院)을 수리하였다.

○ 9월에 가타파구신도량(呵吒波拘神道場)을 홍경원에,

    반야도량을 선군청(選軍廳)에 설치하기를 명하여 14일간 베풀었는데,

    묘청의 말을 따른 것이었다.

 

 

< 동사강목 제8하  경술년 인종 8년(송 고종 건염 4, 금 태종 천회 8, 1130) >

9월 서경 중흥사(重興寺)의 탑에 화재가 났다.
묘청(妙淸)이 왕을 청하여 서경으로 가고, 또 가타파구신도량(呵吒波拘神道場)을 홍경원(弘慶院)에 설치하고, 반야도량(般若道場)을 선군청(選軍廳)에 설치하고서 설회(設會)한 지가 무릇 27일이나 되었으며, 또 무승도량(無勝道場)을 설치한 지가 27일이나 되었으니, 그 음독(淫黷)하고 괴탄(怪誕)한 것은 상세히 기록할 수 없다.

이때에 와서 중흥사(重興寺) 탑에서 또 화재가 발생하니, 어떤 사람이 묘청에게 묻기를, “스님이 왕을 청하여 서도(西都)에 행차한 것은 재앙을 진압시키기 위한 것인데 무슨 까닭으로 이러한 화재가 있습니까?”하니, 묘청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하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 말하기를, “임금께서 만약 상경(上京 개경(開京))에 계셨더라면 이보다 더 큰 재변이 있었을 것인데, 지금 다행히 이곳에 옮겨와 계셨으므로 재앙이 밖에서 발생하여 임금의 몸이 편안하게 되었소.” 하니, 그 사람은 도리어 그 말을 믿었다.

 

 

<고려사절요 제12권  명종 광효대왕 1(明宗光孝大王一)   정유 7년(1177), 송 순희 4년ㆍ금 대정 17년>

○ 망이(亡伊) 등이 홍경원(弘慶院)을 불태우고, 살고 있던 중 10여 명을 죽이며, 주지승(住持僧)을 협박하여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가게 하였는데, 그 대략의 사연에, “이미 우리 고을을 현(縣)으로 승격시키고, 또 수령을 두어 위안ㆍ무마하게 하였으나, 곧 다시 군사를 동원하여 와서 토벌하고 나의 어머니와 아내를 잡아 가두니, 그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차라리 칼날 아래에서 죽을지언정 끝내 항복한 포로는 되지 않겠고, 반드시 왕경(王京)에 이르고야 말겠습니다." 하였다.

 

 

* 2011년 제3회 홍경사...아타파구신 도량재...881년만에 재현 부활됨 // 

 

 

 

 

 

 

 

 

 

 

 

 

 

 

 

 

 

 

 

  

 

 

 

 

 

 

 

 

 

 

 

 

 

 

 

 

 

 

 

 

 

 

 

 

 

 

 

 

 

 

 

 

 

 

 

 

 

 

 

 

 

 

 

 

 

 

 

 

 

 

 

 

 

 

 

 

 

 

 

 

 

 

 

 

 

 

 

 

 

 

 

 

 

 

 

 

 

 

 

 

동국이상국전집 제39권...불도소(佛道疏) 한림원에 있을 적에 지었다.

 

홍경원(弘慶院)에서 행하는 아타파구위대장군도량문(阿吒波拘威大將軍道場文)

 

부처님의 자비는 광대(廣大)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는 수승한 법문(法門)을 열었고, 신통력(神通力)은 맹렬하고 장엄하여 세상을 보호하는 신령한 감응을 나타내시나이다. 생각건대 때를 얻어서 계숙(季叔)에게서 이어받은 조업이 간난(艱難)하여 업(業)천중(千中)에 응하지 못하였고 기한은 거의 백육회(百六會)에 이르렀나이다. 더구나 세성(歲星)의 운행이 도성(都城)을 누르고 금성(金星)과 목성(木星)이 상극(相克)하며 또한 시령(時令)이 역법(曆法)에 맞지 않고 음양이 여러 번 어기었나이다. 아, 나는 보잘것없는 자질로 이 뚜렷한 변고 때문에 밤낮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하기를 깊은 못의 얼음을 밟는 듯하여 떨리나이다. 이에 잘 구제해 주시는 사정에 의하여 미리 나타나지 않은 환난을 막기 위하여, 법연(法筵)을 절에 베풀고 불경(佛經)의 미묘한 말을 선양하나이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감로가 널리 젖고 불법(佛法)의 바람이 두루 창달하여 창과 방패를 모으고 활과 화살을 거두어, 사방에 걱정이 없어지고 사직을 보호하며 백성을 화합하게 하여 만세에 길이 힘입게 하소서.


 

[주C-001]아타파구위대장군(阿吒波拘威大將軍) : 범어로서 십육대야차대장(十六大夜叉大將)의 하나인데 광신귀신대장(曠神鬼神大將)이라 번역한다. 밀교(密敎)의 대원수명왕(大元帥明王). 그가 말한 다라니(多羅尼)를 외는 사람은 악인(惡人)ㆍ악귀ㆍ악수ㆍ독충 등의 해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벗어날 수 있다 한다.
[주D-001]계숙(季叔) : 이 글은 강종(康宗)이 재위할 때인 1212~1213년 사이에 작자가 권보직한림겸수제(權補直翰林兼修製)로 있을 때 강종의 명을 받아 지은 것이다. 계숙은 신종(神宗)을 가리킨 것 같다. 강종은 명종(明宗)의 장자(長子)로서 1173년 왕태자(王太子)로 책봉되었으나 1197년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부왕(父王)이 폐위되자 부왕과 함께 강화도(江華島)로 쫓겨나고 계숙인 신종이 즉위하였었는데, 1210년에 다시 돌아와서 1211년에 즉위했다.
[주D-002]업(業) : 몸ㆍ입ㆍ뜻으로 짓는 말과 동작과 생각하는 것과 그 세력을 말하는 것으로 곧 의념(意念)이며, 이것이 뜻을 결정하여 선악(善惡)을 짓게 하여 업이 생긴다.
[주D-003]천중(千中)에……못하였고 : 천중은 천중무일(千中無一). 정토문(淨土門)에서 정토왕생(淨土往生)을 기원하여 한마음으로 염불만을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나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닦는 사람은 천에 하나도 왕생할 수 없다는 말. 여기서는 아직도 일심으로 염불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말한다.
[주D-004]백육회(百六會) : 액운(厄運)을 말한 것으로 4천 5백세가 1원(元)이 되고 1원 중에 9액이 있는데 양액(陽厄)은 5고 음액은 4며 양액은 한액(旱厄)이고 음액은 수액(水厄)인데, 1백 6은 양액이므로 한 해를 말한다.
[주D-005]세성(歲星) : 5성(星)의 하나인 목성(木星)으로 1년에 1사(舍)를 행하여 12년에 하늘을 한 바퀴 돈다 한다.

     < 출처-한국고전번역원 >

 

 

홍경원(弘慶院)에서 행하는 아타파구위대장군도량문(阿咤波拘威大將軍道場文) 아타파구위대장군(阿咤波拘威大將軍) 범어로서 십육대야차대장(十六大夜叉大將)의 하나인데 광신귀신대장(曠神鬼神大將)이라 번역, 밀교(密敎)의 대원수명왕(大元帥明王) 그가 말한 다라니(多羅尼)를 외는 사람은 악인(惡人)ㆍ악귀ㆍ악수ㆍ독충 등의 해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벗어날 수 있다 한다.

 

○ 하품하생 중에는 '언어다라니당(言語多羅尼堂)'이라 불리는 집이 있었는데, 언어다라니란 설법하시는 보살님께서 한 구절의 법문을 말씀하시면, 어떤 중생이라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것으로서, 듣는 사람이 어디 사람이건, 중국인, 한국인, 미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소련인, 일본인 등 세계 어느나라 사람이던지 간에 설법하는 보살님은 오직 한가지 말로 설법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모두 자기의 모국어 또는 고향의 말로 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듣는 사람이 어느 나라 언어를 사용하던 통역을 할 필요가 없이 모두 직접 알아들을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언어다라니'의 오묘함이다.

 

○ 한국의 밀교

한국에 밀교가 들어온 시기는 삼국시대로, 신라에서는 7세기 초부터 잡밀계통이, 8세기부터 순밀계통이 전해지면서 본격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다. 그 후 고려나 조선시대까지 민중신앙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다라니경[陀羅尼經] : [불교] 산스크리트 문장을 번역하지 않고 음 그대로 적은 비밀스러운 주문.

 

 

<경주 불국사 석가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제126호>

 

불국사 석가탑이 751년 김대성에 의해 불국사가 중창될 때 세움.

1966년 보수공사 중에 발견되었고, 폭6.5-6.7cm, 전체길이 약620cm의 목판으로 찍은 두루마리로 된 불경을 국내에서는 제작시기를 700년~751년 사이로 추정함.

다라니경이란 탑을 조성한 다음 불경을 염송함으로써 성불한다는 뜻에서 이루어진 경전으로서, 탑 속에 이를 넣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다라니경의 전문을 인쇄한 것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무구정광다라니경'이 발견되기 전에는 770년경에 인쇄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로 알려졌으며, 중국 최고의 목판인쇄물은 868년에 인쇄한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영국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목은시고 제3권 > 詩...목은 이색(1328-1396)

 

 홍경원(弘慶院)

 

아득한 큰 들판이 손바닥처럼 편평한데 / 大野微茫如掌平
사면의 뭇 산들이 멀리 뾰족뾰족 푸르네 / 群山四面遙攢靑
중도에 큰 기와집이 큰길에 비치는데 / 中途碧瓦照大道
그 앞엔 큰 비석이 높다랗게 우뚝 섰네 / 豐碑突立高亭亭
우는 새는 바람 따라 절로 오르내리는데 / 啼禽迎風自上下
말 곁엔 잠자리 나는 걸 또 보겠구나 / 近馬又見飛蜻蜓
평생에 멀리 노닐어 안계가 넓어져서 / 平生遠遊眼界闊
운몽택 가슴속이 시원하게 트이었는데 / 雲夢胸中甚軒豁
마침 요동 벌에서 말을 달리다가 / 適從鶴野飛征驂
동산서 노나라 작게 여긴 상달을 배웠네 / 東山小魯師上達
고향에 돌아가면 살 만한 땅이 있거니 / 歸去來兮有餘地
이불 갖고 가면서 어찌 여러 말을 하리요 / 携被何曾語剌剌
갑자기 구름 일어 가는 빗방울 내리는데 / 飛雲忽來雨滴微
평택에는 한 점의 석양빛이 선명하네 / 平澤一點明斜暉
내 말이 한창 왕자성 앞을 달리노라니 / 我馬正馳王字城
맑은 바람이 손의 옷에 솔솔 불어오누나 / 淸風習習吹征衣
흥이 나서 시 읊조려 억지로 꿰맞추어라 / 興來吟哦強排比
후일 남의 조롱 들을까는 걱정 않는다오 / 不愁異日遭人譏

 

 

 

계곡선생집 제25권

 

홍경사의 비석을 주제로 기옹의 시에 화운하다[弘慶寺碑 和畸翁韻]...계곡 장유(張維, 1587년∼1638년)

 

평천에서 관용 도로를 타고 / 平川帶官道
교외로 수십 리 길 빠져 나가면 / 莽蒼數十里
길 옆에 나타나는 고려조(高麗朝)의 사찰 유적 / 道傍前朝寺
비스듬한 평지 위에 옛날 자취 남아 있네 / 坡陁留故址
운무(雲霧)만 아스라한 참담한 모습 / 風煙黯慘淡
끝없이 뻗어 있는 언덕과 늪지대들 / 原隰紛迤邐
샘물도 고갈된 채 묻혀 버리고 / 泉枯井已堙
석당(石幢)도 엎어지고 탑도 무너졌어라 / 石倒塔亦圯
오직 하나 옛날 비석만이 / 唯有古碑在
잡초 속에 오똑하게 솟아 있는데 / 突兀荒草裏
귀부(龜趺)와 이수(螭首) 모두 아직 온전하고 / 龜龍未剝落
글자도 그런대로 알아 볼 수 있도다 / 字畫猶可視
고려 시대 거찰(巨刹)이 창건되면서 / 傑構剏麗代
한림학사(翰林學士)가 지어낸 빼어난 비문 / 鴻文出學士
그동안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 去今知幾何
오백 년도 훨씬 넘어섰어라 / 已過五百祀
그 문사(文詞) 화려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 詞采頗巨麗
필적 또한 용이 하늘 나는 듯 / 筆蹟龍蛇起
어디에서 생산된 빗돌이기에 / 貞珉産何地
이렇듯 흠이 없이 매끄럽게 빛나는가 / 瑩滑無玷滓
처음 건립할 그때 그 당일에 / 當其建立日
어찌 지금처럼 될 줄 알았으랴 / 豈道今如此
선찰(禪刹)이 온데간데 없어짐은 물론이요 / 禪宮旣銷歇
고려 사직(社稷)도 멸망하고 말았나니 / 麗鼎亦顚趾
물거품 같고 허깨비 같은 그 도리 / 因知泡幻理
불가(佛家)의 가르침을 더욱 증거해 주도다 / 益證空門旨
그래도 문장만은 조금 의지할 만하여 / 文章差可恃
흐르는 세월 따라 마멸(磨滅)이 되지 않아 / 獨不隨逝水
차마 떠나지 못한 채 빗돌 쓰다듬으면서 / 摩挲不忍去
지는 해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노라 / 佇立送殘晷
그저 원한다면 탁본(拓本) 널리 전해져서 / 願言廣墨本
무궁한 세월 동안 감상될 수 있기만을 / 傳玩無窮已

[주D-001]평천(平川) : 충청도 성환(成歡)의 속역(屬驛)이다.
[주D-002]길 옆에 …… 유적 : 고려 현종(顯宗)이 직산(稷山) 북쪽 15리 지점에 승려 형긍(逈兢)에게 명하여 사찰을 건립하게 하고, 병부 상서 강민첨(姜民瞻) 등에게 감독을 명하여 2백여 칸의 거찰(巨刹)을 세우게 한 뒤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의 이름을 내렸는데, 그 뒤 절은 없어지고 한림학사(翰林學士) 최충(崔冲)이 글을 지은 비석만 남아 있게 되었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6 稷山縣》


 

柳巷先生詩集


奉香赴弘慶寺。祝釐之餘。到碧瀾渡。登樓仰觀思菴相國丁酉年所題。不勝感嘆。依韻奉和

 

不識碧瀾渡。今踰知命年。如今幸寓目。爲到寶華前。

禮佛少餘暇。祝君多歷年。暫時須到此。勝槪要當前。

八月十六日。潮頭聞有年。靈胥所不及。江勢自如前。

丁酉思菴句。吾吟癸亥年。追懷帷幄日。彷彿若瞻前。

歲月若流木。江山如昔年。誰將繼芳躅。陳善一人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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