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렁'은 서로 상생하며 모두를 위한다라는 제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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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 http://cafe.daum.net/radioprojec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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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 瀆盧國(독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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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집에서 막 입는 통치마를 의 미하는 `두룽치마`도 두루치기라고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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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룽치마, 여자들이 집에서 입는 막치마의 한 종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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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巨濟島)는 남해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이 섬 이름이 한 때는 ‘상군’(裳郡)이라 불렸다. 뜻으로 본다면 ‘치마’인 셈인데, 이 섬을 ‘치마’와 연관지어 부를 만한 연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최남선의 <동경통지>에서는 거제를 상군으로 부른 연유를 두고 한 구절 설명을 덧붙인 바 있다. ‘치마’를 뜻하는 속어로 ‘두룽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두룽이’라는 말을 문헌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비가 올 때 입는 ‘도롱이’는 짚이나 띠로 만들어 허리에 매어 입었으므로 ‘치마’를 뜻하는 ‘두룽이’가 속어로 쓰였다는 이야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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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를 놓칠 적마다 달디단 바다를 밟고 섰는 나를 본다. 푸른 대문이 안보일 적마다 두룽치마 입은 마고할미를 기다리는 나를 본다. 야야, 와 여서 우노, 어데 갈라 하노 ... 裳 치마 상 ㉠치마 ㉡아랫도리 옷 ㉢바지 따위 ㉣산뜻한 모양 ㉤보통(普通)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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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왕성…신라시대 축조된 가장 오래된 성 거제도에는 성의 박물관이라 할만큼 27개의 많은 성이 있으며 폐왕성은 고려시대 축성된 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2004년 10월 폐왕성 복원 사업에 따른 발굴(시굴)조사 결과 신라시대인 서기 6-7백년 사이에 축성된 거제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으로 밝혀졌다. 삼국사기 지리지 등에 의하면 677년 신라 문무왕 때 상군(裳郡)이 설치되고 757년 신라 경덕왕 때 거제군이라 칭하면서 거제군에는 아주현, 명진현, 남수현(송변현, 지금의 다대) 등 3개의 속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중심지이며 치소지인 거제군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남았으나 폐왕성이 신라시대 축성된 거제에서 가장 오래된 성으로 밝혀짐에 따라 신라시대 상군과 거제군의 치소지가 있었던 곳은 폐왕성 임이 분명해 지고 있다. 성의 축조위치에 있어 조선시대는 평지성을 축조하였지만 고려시대까지는 산지성을 축조하여 치소지가 산에 있었으며 폐왕성은 치소지가 있었던 중심 성으로 산성에서 거제지역을 다스릴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으나 중요 인사는 산성에서 근무하고 보조 인력은 평지인 거림리 일대에서 근무하였다고 볼 수 있다. ■거림 일대 상사리 기와 발견…‘거제 상군 치소지’ 확실 둔덕면 거림리 일대는 중요한 유적이 많으며 고려시대 기성현지가 있었던 곳으로 1996년 거림리 경지정리로 인한 기성현지 발굴 조사 시 관청의 추춧돌 기와 등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특히 상사리(裳四里)라는 글씨가 새겨진 명문 기와편이 발굴되었다. 거제도는 신라 문무왕 때 상군(裳郡)이라 불렀으며 경덕왕 때 거제군으로 바뀌었는데 거림리에서 발굴된 상사리(裳四里)가 새겨진 기와편은 상사리 사람들이 기와를 제작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기와의 제작과정과 운반거리를 감안하면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 상사리가 거림 인근에 위치한 마을이며 상군 관할의 여러 마을 중 하나로 ‘상군의 치소지가 거림’이라고 시사 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독로국…신라 문무왕 때 칭한 거제의 명칭 독로국과 상군과의 관계에 대하여 상사리 기와가 발견된 것은 거제가 독로국임을 확신한다. 독로와 동래가 음이 비슷하여 독로국이 동래일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동래(동녘東, 쑥萊)는 삼국사기에 거칠산군(居柒山郡)에서 동래군(東萊郡)으로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쑥은 거친 곳에 사는 풀로 동쪽에 있는 래산국(萊山國)을 동래(東萊)로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신라가 예전에 장산국 혹은 래산국(萊山國)이라 일컫는 소국을 정복하여 거칠산군(居柒山郡)을 설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동래가 독로국이라는 설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리고 동래에는 복천동 고분 등 고분군이 많이 있으나 거제에는 고분군이 없는데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느냐는 의문에 대하여는 서기 250년경에는 무덤이 봉토(솟아있는 무덤)가 아니며 우리나라에서 2-3세기경의 고분군은 발굴되고 있지 않고 있어 동래의 고분군은 삼한시대 이후인 신라∼가야시대의 고분군이다. 그리고 조선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와 장지연(張志淵:1864∼1921) 선생의 아방강역고를 증보한 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에서 거제도를 독로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처음 설치한 상군(裳郡)의 상은 치마 상(裳)으로 바다가 섬을 둘러싸고 있다는 뜻으로 두루기와 그 소리가 같으며 신라시대 이두(吏讀)를 이독으로 읽지 않고 이두로 읽는 것과 같이 독로국을 두루국 또는 도로국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독(吏讀)을 이두로 읽듯이 독로(瀆盧)도 「도로」또는「두루」로 읽어야 하며 두루기 뜻의 치마상이 상군이며 상군은 두루국(瀆盧國)을 신라 문무왕 때 칭한 거제의 명칭인 것이다. ■폐왕성 7∼8세기 축조…거제역사 뿌리 간직한 곳 앞서 밝힌 둔덕면 거림리에서 발견된 상사리(裳四里) 명문 기와 파편은 신라 문무왕(文武王:626∼681) 상군 시대의 치소지가 거림리 일대로 거림리에 속한 폐왕성과 연계됨을 알 수 있다. 문무왕 이전의 치소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치소지 선정 시 앞의 성을 이용하거나 중심지역을 택하였으며 폐왕성은 7-8세기 축성되었다. 두루국(瀆盧國)과 상군(裳郡)의 치소지라고 볼 수 있는 폐왕성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우리나라 성곽연구의 교과서적인 성이라고 할 수 있다. 둔덕은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거제도의 치소지 이며 행정의 중심지로서 폐왕성과 거림리 일대는 거제의 역사뿌리를 간직한 곳이며 고려 의종이 3년간 머문 역사적인 곳이다. http://blog.empas.com/eco21kj/1399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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