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구천동'은 '길고 굽은 골짜기'의 뜻

吾心竹--오심죽-- 2009. 8. 28. 15:20

'구천동'은 '길고 굽은 골짜기'의 뜻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배우리

 


  "여보게. 좀 잡았나? 오늘은 수확이 좀 괜찮으이. 난 벌써 구령(九嶺)이야."
  "난 온통 잔챙이고 큰놈이래야 구우일모(九牛一毛)네."
  "자넨 구서(九暑) 내내 별 재미 못 보더니만…"
  "구서뿐인가, 지난 구동(九冬)에도 그랬지. 그래도 오늘은 꼭 구척장신(九尺長身) 같은 잉어 한 마리는 낚고 가야지."
  "고놈들이 모두 구중심처(九重深處)로 모두 숨어 들어간 모양인데, 구산팔해(九山八海)를 뒤적인 들 무슨 소용이겠나?"
  낚시꾼들이 물가에서 온통 '구(九)'자 타령을 하고 있다. 고기잡이와 아홉(9)이 무슨 관계가 그리 있기에 '구'에서 시작해 '구'로 끝나는가? 


□ '구(九)'자가 들어간 성어들
  우리네 한자 단어나 성어를 보면 '구(九)'자가 들어간 것이 무척 많다.
  '구(九)'자는 지사문자(指事文字)로서, 다섯 손가락을 위로 펴고 나머지 손의 네 손가락을 옆으로 편 모양을 나타내어 '아홉'을 뜻하고 있다. 그러나, '많음'이나 '깊음' 또는 '길게 뻗음' 등을 나타낼 때 이 글자가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세계 구성설에서 일컫는 모든 산과 바다를 '구산팔해(九山八海)'라 하고, 아홉 번이나 통역을 거듭함이라는 뜻으로 아주 멀고 먼 나라를 가리킬 때는 '구역(九譯)'이라 한다.
  낚시꾼들이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뜻으로 '구령(九嶺)'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 것은 아홉 마리 잡았음을 열 마리째로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으로 일컫기 때문이다. '아홉 고개'라고 직역되는 '구령'이란 말이 재미있다.
  그럼, 여기서, '구'가 '아홉'이라는 뜻 외로 쓰이는 몇 예를 들어 보자.
  '온 누리'와 관계되는 관련 단어에는 '나라의 영토'라는 뜻으로 쓰이는 '구령(九嶺)'이 있고, '너른 하늘'과 관련되는 성어로는 '구만리장공(九萬里長空)' '구만장천(九萬長天)', '구천구지(九天九地)' 등이 있다. 하늘의 가장 높은 곳은 '구천(九天)'이나 '구원(九原)'이고, 땅속 깊은 밑바닥은 '구천(九泉)이다. 먼 곳에 있다고 인식되는 저승은 '구천지하(九天地下)'라 한다. 높은 하늘에서 땅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떨어진다는 뜻으로 풀리는 '구천직하(九天直下)'는 강한 형세를 일컬을 때 쓰인다.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곳을 나타낼 때도 '구'자를 많이 사용한다. '구중궁궐(九重宮闕)', '구금(九禁)', '구중심처(九重深處)' 등으로, 이 모두 '구'가 통과해야 할 벽(문)이 많음을 뜻하고 있다.  
  '구공(九功)'이나 '구우일모(九牛一毛)'에서의 '구'는 '많음'을 나타낸다. '구공'은 백성의 생활의 기본인 여러 가지 일을 잘 닦는 임금의 여러 공적을 뜻하는 말이고, '구우일모(九牛一毛)'는 아홉 마리 소에 털 한 가닥이 빠진 정도라는 뜻으로, 대단히 많은 것 중의 아주 적은 것의 비유로 쓰인다. 중국에서는 구주(九州=세상)의 장관, 곧 천하의 제후들을 '구백(九伯)'이라 했는데, 이 역시 '많음'이나 '세상'을 '구'로 대신한 것이다. 
  '많음'의 뜻과는 달리 '구척장신(九尺長身)'처럼 '구'가 '큼(大)'을 나타내기도 한다.
  아홉 번 꺾어진 양의 창자로 직역되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은 '구회지장(九回之腸)'과 함께 꼬불꼬불하면서도 험하고 긴 길을 말할 때 흔히 쓰인다. ('구회지장'은 장이 뒤틀릴 정도로 무척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도 쓰인다.) 비슷한 말로 쓰이는 '구곡간장(九曲肝腸)'은 굽이굽이 사무친 깊은 마음 속을 나타내고.
  '길다'는 뜻의 말로는 '구동(九冬)', '구하(九夏)', '구서(九暑)' 등의 말이 있는데. 각각 '긴 겨울', '긴 여름', '긴 더위' 등을 가리키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구(九)'는 단순히 '아홉(9)'의 뜻을 나타내는 것뿐이 아니라, 많음(多), 김(長), 넓음(光), 깊음(深) 등의 뜻을 안고 있다. 한자 자전에도 보면 '九'가 '아홉(9)'의 뜻과 함께 '많다(多)'의 뜻을 함께 적어 놓고 있다.
  길거나 많음을 순 우리말로 나타낼 때는 '아홉'보다는 '아흔아홉'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ㆍ아흔아홉고개 ; 경기 화성 동탄면 중리 / 용인 이동면 서리 / 전북 무주 적상면 방이리  
  ㆍ아흔아홉골 ; 제주시 해안동 어승생 수원지 동남쪽 / 전북 진안 동향면 능금리 / 경남 합천 가야면 죽전리 석계동 북서쪽 /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석병리 남동쪽 / 전북 순창 동계면 어치리 회룡 동북쪽
  ㆍ아흔아홉배미골착 ; 전남 목포시 달동 개축골 서쪽.
  ㆍ아흔아홉또가리골짝 ; 경남 충무시 무전동 말구리 동쪽.
  ㆍ아흔아홉목 ; 제주도 서귀포시 월평동 월평 남쪽.
  ㆍ아흔아홉동산 ; 북제주 구좌읍 송당리 진머리굴렁 북쪽의 산.
  ㆍ아흔아홉간집 ; 경기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 서울 구로구 시흥동 / 경기 이천 부발면 산촌리 


□ '구천동'이란 이름에 관한 설
  우리 나라 한국 10대 관광권의 하나인 명승인 덕유산(德裕山).
  전북 무주군 무주읍에서 40리쯤 되는 곳에 나제통문(羅濟通門)이 있고, 그 앞으로 내가 흐르는데, 그 위에 다리가 얹혀 있다.
  바로 구천동 입구.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은 여기서 시작하여 남으로 덕유산까지 갈 지(之)자로 이어지는 1백리의 긴 골짜기이다.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굽이굽이 펼쳐진 계곡엔 사시사철 맑은 물소리가 울리고, 울창한 숲과 기암 등이 선경을 이룬다. 구중천엽(九重千葉)의 계곡마다엔 멋진 경승지의 이름들이 붙어 있다. 그래서, 덕유산 하면 누구나 무주(茂朱)를 떠올리게 되고, 무주 하면 아름다운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을 떠올리게 된다.
  백두대간이 이루어 놓은 많은 골짜기 중 가장 멋지고 길고 유명한 구주무천동.
  이 곳을 찾는 이들은 무주구천동이란 이름에서 우선 '구천(九千)'이란 말에 생각을 많이 모은다.
  "그 사람 무주구천동에서 온 거 아냐?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누만."
  이처럼 무주구천동은 일반 세상과 너무 다른 '깊고깊은 산골'의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구천동'이란 이름이 나오게 된 연유에 대해서 요즘의 자료들에선 그 동안 전해 온 이야기들을 인용,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설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① 두 성씨 집안이 살아서
  구씨와 천씨가 많이 살았다 함.(한글학회 지명총람) / 암행어사 박문수의 설화에 의하면, 이 곳에 구씨와 천씨의 성을 가진 집안의 집단 주거지라고 해서 두 성씨를 따서 '구천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네이버 사이트) / 윤증의 <유광려산행기>에서 처음으로 '동(洞)'자를 붙여 썼고, 어사 박문수가 천(千)씨 부자(夫子)와 관련해 구천동민을 신도로 다스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또 구씨와 천씨가 많이 산다고 해서 구천동(具千洞)이라 한다고 하는 말도 있다. (이명현의 무주구천동 리조트) / 구천(九泉)을 지나가는 구천동은 구(具)씨와 천(千)씨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구천동이 되었다고도 하고---. (야후 사이트)
② 바위가 많아서
  기이한 바위가 9천이 있다 함.(한글학회 지명총람) / 이 곳에 기암괴석들이 9천 개가 널려있는 곳이라서 '구천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네이버 사이트)
③ 중이 많이 머물러서
  예전에 절이 많이 있어서 중 9천 명이 머물렀다 함.(한글학회 지명총람) / 성불자(成佛子)가 9000명이나 다녀갔다고 해서 구천동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도 한다. (야후 사이트) / 조선 명종 때 광주 목사를 지낸 임갈천이 쓴 덕유산 향적봉기에 의하면 성불공자 9천 명이 이 골짜기에서 수도를 하였으므로 구천둔(9천명이 은둔한 곳)이라고 하였으며, 그들의 아침밥을 짓기 위하여 쌀을 씻은 뜨물이 개울물을 부옇게 흐렸다고 한다. 당시 이웃 고을 금산에 살던 한 여인이 수도를 하기 위해 구천둔에 입산한 남편과 약속한 3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남편을 찾아나서서 2년 동안을 헤맸으나 워낙 계곡이 깊어 결국 찾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이 때부터 '구천둔'이라는 지명이 구천동으로 바뀌어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숙종 때 소론의 거두 윤명제 같은 이는 구천동이 들어있는 덕유산을 불교의 소국이라 일컬을 만큼 이 곳 덕유산 속에는 1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네이버 사이트) / 예전에 구천동은 북한의 삼수갑산과 더불어 심산유곡의 대명사로 쓰였다. 갈천 임훈의 <등덕유산 향적봉기>에 구천동을 불공을 이룬 자 9천명이 머문 둔소(屯所)라는 뜻에서 구천둔(九千屯)이라 했다고 한다. (이명현의 무주구천동 리조트)


□ '구천'의 '구(九)'는 '길고 심하게 굽음'의 뜻
  이처럼 '구천동'에서의 '구'를 거의 '아홉(9)'과 관련지어 여러 가지 설을 펼쳐 내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 아홉과는 별 관련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구(九)'는 단순히 '아홉'의 뜻만 아니라 '크다'나 '길다'의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주구천동은 엄청나게 긴 골짜기이다.
  이 길고 아기자기한 골짜기를 우리 조상들은 단순히 '심곡(深谷)'이니 '장동(長洞)'이니 하는 말로의 표현이 별로 마뜩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생각해 낸 것이 '길고 굽음'의 뜻으로 많이 씌어 온 '구(九)'자를 취했을 것이고, 이것을 더 강조하기 위해 '천(千)'이라는 숫자까지 보태어 '구천(九千)'이란 말을 생각했을 것이다.
  <대동여지도>에서는 덕유산 북서쪽 골짜기가 '구천동(九泉洞)'으로 표기되어 있다. 같은 지도에 있는 '구천동(九千洞)'은 거제 땅에 있으며, 덕유산 골짜기가 아니다. 경남 진해시 소사동 소사저수지 서북쪽에도 구천동(九川洞)이란 골짜기가 있다.
  골짜기를 나타내는 말로는 대개 한자 '곡(谷)'이 쓰이지만, 경치가 좋거나 골이 깊어 사람들이 자주 오르내리는 곳이면 '곡(谷)' 대신에 '동(洞)'을 많이 쓴다. 그래서, 이름난 골짜기에 '자하동천(紫霞洞天)', 두문동(杜門洞), '선불동(仙佛洞)' 등의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는 것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우리 나라에선 '동(洞)'이 '동네'의 뜻으로 많이 쓰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그런 뜻으로 사용하는 일이 많지 않고, 대개는 '골짜기'의 뜻으로 쓰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행정지명에선 '동(洞)'자가 끝음절로 들어간 것을 별로 볼 수가 없다. 일본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나라로 관광 온 중국인이 이러한 '~동' 지명들이 많은 것을 보고, "한국에는 골짜기 이름이 참 많다."고 한다는데, 이는 '동'을 그쪽에서는 대개 '골짜기'로 생각하는 탓이다.
  '동(洞)이라는 글자는 '고을'이나 '마을' 외에 '골', '구렁', '굴', '골짜기', '깊다', '비다', '공허하다' 등의 훈을 갖는데, 이로 미루어 보면 전에는 이 글자가 '마을'보다는 '골짜기'라는 의미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 글. 배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