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史 文獻史料集

삼국사기 지리지

吾心竹--오심죽-- 2009. 8. 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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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건대『通典』에 이르기를, "주몽이 漢 建昭 2년에 北扶餘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와 보술수(普述水)를 건너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러 웅거하면서 (나라 이름을) 구려(句麗)라 하고, 고(高)로써 성씨를 삼았다" 하고, 『고기』에는, 주몽이 부여(扶餘)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卒本)에 이르렀다" 하였으니 흘승골성과 졸본은 한 곳인것 같다. 『漢書』(地理)志에는 "요동군(遼東郡)은 낙양(洛陽)과의 거리가(相距)가 3,600리요, 속현(屬縣)에 무려(無慮)가 있다"고 하였는데, 곧 주례(周禮)에서 말한 북진(北鎭) 의무려산(醫巫閭山)이다.

대요(大遼)가 그 아래에 의주(醫州)를 설치하였다. 현도군(玄菟郡)은 낙양(洛陽)과의 거리가(相距)가 동북쪽으로 4,000리요 속현(屬縣)이 셋인데, 고구려가 그 하나로 되어 있으니, 주몽(朱蒙)이 도읍하였다는 흘승골성(紇升骨城)과 졸본(卒本)은 대개 한(漢) 현도군(玄菟郡)의 경내(境內)요, 대요국(大遼國)의 동경(東京) 서쪽이니, 『漢志』의 이른바 현도군(玄菟郡)의 속현(屬縣)인 고구려가 (혹시) 이것인가? 옛날 대요(大遼)가 망하기 전에 요제(遼帝)가 연경(燕京)에 있었으므로, 우리 나라(고려) 사신들이 동경을 지나 요수(遼水)를 건너 하루 이틀 만에 의주(醫州)에 이르고, 거기서 연계(燕薊)로 향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임을 알게 된다. ○ 주몽이 흘승골성(紇升骨城)에 도읍한 후로 40년을 지나 (제2대) 유류왕(孺留王) 22년에는 도읍을 국내성(國內城)[위나암성(尉那巖城) 혹은 불이성(不而城)이라고 함]으로 옮겼다. ○ 『漢書』를 살펴보면, 낙랑군(樂浪郡) 속현(屬縣)에 불이(不而)가 있고, 또 총장(總章) 2년에,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이 칙명(勅命)을 받들어, 고구려의 여러 성에 도독부(都督府)와 주현(州縣)을 설치하였는데, 그 목록에 이르기를, 압록(鴨淥) 이북의 이미 항복한 성(城)인데, 그 중 하나가 국내성(國內城)이요, 평양(平壤)에서 여기까지는 17驛이라 하였으니, 이 城이 역시 북조(北朝) 경내(境內)에 있는데, 다만 어느 곳인지는 모르겠다. ○ 국내성(國內)에 도읍한 지 425년을 지나 장수왕(長壽王) 15년에 평양(平壤)으로 도읍을 옮기고 156년을 지나 평원왕(平原王) 28년에 장안성(長安城)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83년을 지나 보장왕(寶臧王) 27년에 망하였다[옛사람의 기록이, 시조 주몽에서부터 보장왕(寶臧王)에 이르기까지 역년(歷年)이 정녕(丁寧)하고 자세함이 이러하다. 그런데 혹은 말하기를, 고국원왕(故國原王) 13년에 평양(平壤) 동황성(東黃城)으로 이거(移居)하였는데, 성(城)이 지금의 서경(西京) 동쪽 수멱산중(水覓山中)에 있었다고 하니, 그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일이다]. ○ 평양(平壤)은 지금 서경(西京)인 것 같고, 패수(浿水)는 대동강(大同江)이다. 무엇으로 아는가 하면,

『唐書』에 이르기를, "평양성(平壤城)은 한(漢)의 낙랑군(樂浪郡)이다. 산맥을 따라 에둘러(圍繞) 성곽(城郭)을 만들고, 남쪽으로 패수(浿水)에 임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지리지(志)에는 “등주(登州) 동북쪽 바다로 가서 남쪽으로 해안지방을 끼고 패강(浿江) 어귀 초도(椒島)를 지나면 신라 서북쪽이 된다" 하였고, 또 수양제의 고구려 원정(東征) 조서(詔書)에는 "창해(滄海) 도군(道軍)이 주로(舟艫) 1,000리에 높은 돛은 번개 달리듯 하고 큰 함정(艦艇)은 구름 가듯 하여 패강(浿江)을 가로막고 멀리 평양(平壤)으로 나간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보면 지금의 대동강(大同江)이 패수(浿水)임이 분명하며, 서경(西京)이 평양(平壤)임도 알 수 있다. 『唐書』에는 평양성(平壤城)은 또한 장안(長安)이라 한다 하고, 『古記』에는 평양(平壤)에서 장안(長安)으로 옮겼다 하였으니, 두 성(城)의 이동(異同)과 원근(遠近)은 알 수 없다. 고구려는 처음 중국 북쪽 지역에 있다가 점차 동쪽으로 패수(浿水) 곁에 왔을 것이다. 발해인 무예(武藝 : 제2대 武王)가 말하기를 "옛날 고구려는

강성하여 군사 30만으로 당에 항거하여 대적하였다" 하였으니, 지역이 크고 군사가 강하다고 할 만하였다. 그런데 말기에 이르러서는 군신이 혼암(昏暗)하고 포학하여 도의(道義)가 없어지자, 대당(大唐)이 두 차례나 군사를 출동하고 신라에서 원조하여 이를 쳐 평정하였다. 그 지역이 많이 발해·말갈로 들어가고, 신라도 그 남쪽 지경을 얻어서 한(漢)·삭(朔)·명(溟) 3주(州)와 및 그 군현(郡縣)을 설치하여 9주(州)의 체제를 갖추었던 것이다(이하의 고구려 군현명(郡縣名)은 기술한 신라의 주(州)·군(郡)·현(縣) 연혁에서 추출한 것이나, 개중에는 다소의 이동(異同)과 출입(出入)이 있다). ○ 한산주(漢山州) 국원성(國原城)[미을성(未乙省)이라고도 하고, 탁장성(託長城)이라고도 함] 남천현(南川縣)[남매(南買)라고도 함] 구성(駒城)[멸오(滅烏)라고도 함] 잉근내군(仍斤內郡) 술천군(述川郡)[성지매(省知買)라고도 함] 골내근현(骨乃斤縣) 양근현(楊根縣)[거사참(去斯斬)이라고도 함] 금물내군(今勿內郡)[만노(萬弩)라고도 함] 도서현(道西縣)[도개(都蓋)라고도 함] 잉홀(仍忽) 개차산군(皆次山郡) 일죽(一竹) 노음죽현(奴音竹縣) 내혜홀(奈兮忽) 사복홀(沙伏忽) 사산현(蛇山縣) 매홀(買忽)[수성(水城)이라고도 함]

당성군(唐城郡) 상홀(上忽)[차홀(車忽)이라고도 함] 부산현(釜山縣)[송촌활달(松村活達)이라고도 함] 율목군(栗木郡[동사힐(冬斯肹)이라고도 함] 잉벌노현(仍伐奴縣)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 매소홀현(買召忽縣)[미추홀(彌鄒忽)이라고도 함] 장항구현(獐項口縣)[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라고도 함] 주부토군(主夫吐郡) 수이홀(首尒忽) 검포현(黔浦縣) 동자홀현(童子忽縣)[구사파의(仇斯波衣)라고도 함] 평회압현(平淮押縣)[별사파의(別史波衣)라고도 하고, 회(淮)는 유(唯)라고도 되어 있음] 북한산군(北漢山郡)[평양(平壤)이라고도 함] 골의내현(骨衣內縣) 왕봉현(王逢縣)[개백(皆伯)이라고도 하는데, 한인(漢人) 미녀가 안장왕(安臧王)을 맞이한 지방이므로 왕봉(王逢)이라 이름함] 매성군(買省郡)[마홀(馬忽)이라고도 함] 칠중현(七重縣)[난은별(難隱別)이라고도 함] 파해평사현(波害平史縣)[액(額)이라고도 함] 천정구현(泉井口縣)[어을매곶(於乙買串)이라고도 함] 술이홀현(述奈忽縣)[수니홀(首泥忽)이라고도 함] 달을성현(達乙省縣)[한인(漢人) 미녀가 고산(高山) 위에서 봉화(烽火)를 피워 안장왕(安臧王)을 맞이한 곳이므로 후에 고봉(高烽)이라 이름하였음] 비성군(臂城郡)[마홀(馬忽)이라고도 함]

내을매(內乙買)[내이미(內尒米)라고도 함] 철월군(鐵圓郡)[모을동비(毛乙冬非)라고도 함] 양골현(梁骨縣) 승량현(僧梁縣)[비물(非勿)이라고도 함] 공목달(功木達)[웅섬산(熊閃山)이라고도 함] 부여군(夫如郡) 어사내현(於斯內縣)[부양(斧壤)이라고도 함] 오사함달(烏斯含達) 아진압현(阿珍押縣)[궁악(窮嶽)이라고도 함] 소읍두현(所邑豆縣) 이진매현(伊珍買縣) 우잠군(牛岑郡)[우령(牛嶺)이라고도 하고 수지의(首知衣)라고도 함] 장항현(獐項縣)[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라고도 함] 장천성현(長淺城縣)[야야(耶耶)라고도 하고, 야아(夜牙)라고도 함] 마전천현(麻田淺縣)[이사파홀(泥沙波忽)이라고도 함] 부소갑(扶蘇岬) 약지두치현(若只頭恥縣)[삭두(朔頭)라고도 하고, 의두(衣頭)라고도 함] 굴어압(屈於押)[홍서(紅西)라고도 함] 동비홀(冬比忽) 덕물현(德勿縣) 진림성현(津臨城縣)[오아홀(烏阿忽)이라고도 함] 혈구군(穴口郡)[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도 함] 동음내현(冬音奈縣)[휴음(休陰)이라고도 함] 고목근현(高木根縣)[달을참(達乙斬)이라고도 함]

수지현(首知縣)[신지(新知)라고도 함] 대곡군(大谷郡)[다지홀(多知忽)이라고도 함] 수곡성현(水谷城縣)[매단홀(買旦忽)이라고도 함] 십곡현(十谷縣)[덕돈홀(德頓忽)이라고도 함] 동음홀(冬音忽)[시염성(豉鹽城)이라고도 함] 도랍현(刀臘縣)[치악성(雉嶽城)이라고도 함] 오곡군(五谷郡)[우차탄홀(于次呑忽)이라고도 함] 내미홀(內米忽)[지성(池城)이라고도 하고, 장지(長池)라고도 함] 한성군(漢城郡)[한홀(漢忽)이라고도 하고, 식성(息城)이라고도 하며, 내홀(乃忽)이라고도 함] 휴류현(鵂鶹縣)[조파의(粗波衣)라고도 하고, 휴암군(鵂巖郡)이라고도 함] 장새현(獐塞縣)[고소어(古所於)라고도 함] 동홀(冬忽)[우동어홀(于冬於忽)이라고도 함] 금달(今達)(신달(薪達)이라고도 하고, 식달(息達)이라고도 함] 구을현(仇乙峴)[굴천(屈遷)이라고도 함] 궐구(闕口)는 지금(고려)의 유주(儒州)이다. 율구(栗口)[율천(栗川)라고도 함]는 지금의 은율현(殷栗縣)이다. 장연(長淵)은 지금 그대로이다. 마경이(麻耕伊)는 지금의 청송현(靑松縣)이다. 양악(楊岳)은 지금의 안악군(安嶽郡)이다. 판남곶(板麻串)은 지금의 가화현(嘉禾縣)이고, 웅한이(熊閑伊)는 지금의 수령현(水寧縣)이다.

옹천(甕遷)은 지금의 옹진현(甕津縣)이고, 부진이(付珍伊)는 지금의 영강현(永康縣)이다. 곡도(鵠島)는 지금의 백령진(白嶺鎭)이다. 승산(升山)은 지금의 신주(信州)이다. 加火押(가화압) 부사파의현(夫斯波衣縣) ○ 우수주(牛首州)[수(首)는 두(頭)로도 되어 있음. 수차약(首次若)이라고도 하고, 오근내(烏根乃)라고도 함] 벌력천현(伐力川縣) 횡천현(橫川縣)[어사매(於斯買)라고도 함] 지현현(砥峴縣) 평원군(平原郡) 내토군(奈吐郡)[대제(大堤)라고도 함] 사열이현(沙熱伊縣) 적산현(赤山縣) 근평군(斤平郡)[병평(並平)이라고도 함] 심천현(深川縣)[복사매(伏斯買)라고도 함] 양구군(楊口郡)[요은홀차(要隱忽次)라고도 함] 저족현(猪足縣)[오사회(烏斯廻)라고도 함] 옥기현(玉岐縣)[개차정(皆次丁)이라고도 함] 삼현현(三峴縣)[밀파혜(密波兮)라고도 함] 생천군(狌川郡)[야시매(也尸買)라고도 함] 대양관군(大楊菅郡)[마근압(馬斤押)이라고도 함] 매곡현(買谷峴) 고사마현(古斯馬縣)

급벌산군(及伐山郡) 이벌지현(伊伐支縣)[자벌지(自伐支)라고도도 함] 수생천현(藪狌川縣)[수천(藪川)이라고도 함] 문현현(文峴縣)[근시파혜(斤尸波兮)라고도 함] 모성군(母城郡)[야차홀(也次忽)이라고도 함] 동사홀(冬斯忽) 수입현(水入縣)[매이현(買伊縣)이라고도 함] 객연군(客連郡)[객(客)은 각(各)으로도 되어 있고, 가혜아(加兮牙)라고도 함] 적목현(赤木縣)[사비근을(沙非斤乙)이라고도 함] 관술현(管述縣) 저란현현(猪闌峴縣)[오생파의(烏生波衣)고도 하고, 저수(猪守)라고도 함] 천성군(淺城郡)[비열홀(比烈忽)이라고도 함] 경곡현( 谷縣)[수을탄(首乙呑)이라고도 함] 청달현(菁達縣)[석달(昔達)이라고도 함] 살한현(薩寒縣) 가지달현(加支達縣) 어지탄(於支呑)[익곡(翼谷)이라고도 함) 매시달(買尸達) 천정군(泉井郡)[어을매(於乙買)라고도 함] 부사달현(夫斯達縣) 동허현(東墟縣)[가지근(加知斤)이라고도 함] 내생군(奈生郡) 을아단현(乙阿旦縣) 우오현(于烏縣)[욱오(郁烏)라고도 함]

 

地理(지리) 2 新羅(신라)

○ 漢州(한주)는 본시 高句麗(고구려)의 漢山郡(한산군)으로 新羅(신라)가 빼앗았는데 景德王(경덕왕)이 漢州(한주)로 改稱(개칭)하였다. 지금의 廣州[광주:州治(주치)]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黃武縣(황무현)은 본시 고구려의 南川縣(남천현)으로, 신라가 이를 아울러 眞興王(진흥왕)이 州[주:南川州(남천주)]를 삼고 軍主(군주)를 두었다. 경덕왕이 [黃武(황무)로]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 利川縣[이천현:지금 利川郡(이천군)]이다. ② 巨黍縣(거서현)은 본시 고구려의 駒城縣(구성현)으로, 경덕왕이 [巨黍(거서)로] 改名(개명), 지금의 龍駒縣[용구현:지금 龍仁郡(용인군) 駒城面(구성면)]이다.

○ 中原京(중원경)은 본시 高句麗(고구려)의 國原城(국원성)인데, 新羅(신라)가 平定(평정)하여 眞興王(진흥왕)이 小京(소경)을 설치하였다(同王(동왕) 18년). 文武王(문무왕) 때(13년)에 城(성)을 쌓으니 주위가 2,592步(보)이다. 景德王(경덕왕)이 이를 고쳐 中原京(중원경)으로 하였다. 지금 忠州(충주)다.

○ 槐壤郡(괴양군)은 본시 고구려의 仍斤內郡(잉근내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槐壤(괴양)으로] 改名(개명)하니 지금 槐州[괴주:지금 忠北(충북) 槐山郡(괴산군)]다.

○ 泝[沂(기)로도 되어 있음]川郡(소천군)은 본시 고구려의 述川郡(술천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泝川(소천)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川寧郡[천녕군:지금 京畿道(경기도) 驪州郡(여주군)]이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黃驍縣(황효현)은 본시 고구려의 骨乃斤縣(골내근현)으로, 경덕왕이 [黃驍(황효)로] 개명하였으니 지금의 黃驪縣[황려현:지금 驪州邑(여주읍)]이다. ② 濱陽縣(빈양현)은 본시 고구려 楊根縣(양근현)으로, 경덕왕이 [濱陽(빈양)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은 다시 예전대로 [楊根(양근)으로] 하였다[지금 楊平郡(양평군) 楊平面(양평면)].

○ 黑壤郡(흑양군)[黃壤郡(황양군)이라고도 함]은 본시 고구려 今勿奴郡(금물노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黑壤(흑양)으로] 改名(개명)하였다(지금 鎭川郡(진천군)의 대부분). 지금 鎭州(진주:지금 忠北(충북) 鎭川郡(진천군))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都西縣(도서현)은 본시 고구려 道西縣(도서현)으로, 경덕왕이 [都西(도서)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道安縣[도안현:지금 槐山郡(괴산군) 道安面(도안면)]이다. ② 陰城縣(음성현)은 본시 고구려 仍忽縣(잉홀현)인데, 경덕왕이 [陰城(음성)으로] 개명, 지금도 그대로다.

○ 介山郡(개산군)은 본시 고구려 皆次山郡(개차산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介山(개산)으로] 改名(개명), 지금 竹州(죽주)니, 領縣(영현)이 하나다. 陰竹縣(음죽현)은 본시 고구려 奴音竹縣(노음죽현)인데, 경덕왕이 [陰竹(음죽)으로] 개명, 지금도 그대로다.

○ 白城郡(백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奈兮忽(내혜홀)인데 景德王(경덕왕)이 [白城(백성)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의 安城郡[안성군:今同(금동)]이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赤城縣(적성현)은 본시 고구려의 沙伏忽(사복홀)인데, 경덕왕이 [赤城(적성)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陽城縣[양성현:지금 安城郡(안성군) 陽城面(양성면)]이다. ② 蛇山縣(사산현)은 본시 고구려의 縣(현)이었는데, 경덕왕이 그대로 (이름)하였으니 지금 稷山縣[직산현:지금 天安郡(천안군) 稷山面(직산면)]이다.

○ 水城郡(수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買忽郡(매홀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水城(수성)으로] 改名(개명)하였으니 지금 水州[수주:水原(수원)]다.
○ 唐恩郡(당은군)은 본시 고구려의 唐城郡(당성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唐恩(당은)으로] 改名(개명)하였는데, 지금은 다시 예전대로 [唐城(당성)으로] 하였다(지금 華城郡(화성군) 南陽面(남양면) 일대).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車城縣(거성현)은 본시 고구려 上[車(거)로도 되었음]忽縣(상홀현)인데, 경덕왕이 [車城(거성)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의 龍城縣(용성현:지금 華城郡(화성군) 남쪽)이다. ② 振威縣(진위현)은 본시 고구려 釜山縣(부산현)인데, 경덕왕이 [振威(진위)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華城郡(화성군) 松炭面(송탄면)].

○ 栗津郡(율진군)은 본시 고구려의 栗木郡(율목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栗津(율진)으로] 改名(개명), 지금의 菓州(과주:지금 始興郡(시흥군) 일대)니, 領縣(영현)이 셋이다. ① 穀壤縣(곡양현)은 본시 고구려의 仍伐奴縣(잉벌노현)으로, 경덕왕이 [穀壤(곡양)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의 黔州[검주:서울市(시) 冠岳區(관악구) 奉天洞(봉천동)·新林洞(신림동)]다. ② 孔巖縣(공암현)은 본시 고구려의 齊次巴衣縣(제차파의현)인데, 경덕왕이 [孔巖(공암)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金浦郡(김포군) 陽村面(양촌면)]. ③ 邵城縣(소성현)은 본시 고구려 買召忽縣(매소홀현)인데, 경덕왕이 [邵城(소성)으로] 개명, 지금의 仁州[인주[慶原買召(경원매소)라고도 하고 彌鄒(미추)라고도 한다]:지금 仁川(인천)]다.

○ 獐口郡(장구군)은 본시 고구려의 獐項口縣(장항구현)인데, 景德王(경덕왕)이 [獐口(장구)로] 改名(개명)하였으니, 지금 安山縣[안산현:지금 始興郡(시흥군) 秀岩面(수암면)]이다.

○ 長堤郡(장제군)은 본시 고구려의 主夫吐郡(주부토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長堤(장제)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의 樹州[수주:지금 富川郡(부천군)]니, 領縣(영현)이 넷이다. ① 戍城縣(수성현)은 본시 고구려 首尒忽(수이홀)로, 경덕왕이 [戍城(수성)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의 守安縣[수안현:지금 金浦郡(김포군) 舊邑(구읍) 南(남)]이다. ② 金浦縣(김포현)은 본시 고구려 黔浦縣(검포현)인데, 경덕왕이 [金浦(김포)로] 개명하여 지금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金浦郡(김포군) 金浦面(김포면)]. ③ 童城縣(동성현)은 본시 고구려 童子忽[㠉山縣(동산현)이라고도 함]縣(동자홀현)인데, 경덕왕이 [童城(동성)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通津古邑(통진고읍)]. ④ 分津縣(분진현)은 본시 고구려 乎唯[平淮(평회)]押縣(호유압현)]으로, 경덕왕이 [分津(분진)으로] 개명, 지금의 通津縣[통진현:지금 金浦郡(김포군) 月串面(월곶면)]이다.

○ 漢陽郡(한양군)은 본시 고구려의 北漢山郡(북한산군:平壤(평양)이라고도 함)인데, 眞興王(진흥왕)이 州(주)로 삼고 軍主(군주)를 두었다. 景德王(경덕왕)이 [漢陽(한양)으로] 改名(개명)하였으니 지금 楊州(양주) 옛터로,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荒壤縣(황양현)은 본시 고구려의 骨衣奴縣(골의노현)으로, 경덕왕이 [黃壤(황양)으로] 改名(개명)하였는데 지금의 豐壤縣(풍양현:지금 楊州郡(양주군) 榛接面(진접면) 일대)이다. ② 遇王縣(우왕현)은 본시 고구려 皆伯縣(개백현)으로, 경덕왕이 [遇王(우왕)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幸州[행주:지금 高陽郡(고양군) 知道面(지도면)]다.

○ 來蘇郡(내소군)은 본시 고구려의 買城縣(매성현)인데, 景德王(경덕왕)이 [來蘇(내소)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見州[견주:지금 楊州郡(양주군) 州內面(주내면)]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重城縣(중성현)은 본시 고구려의 七重縣(칠중현)으로, 경덕왕이 [重城(중성)으로] 개명, 지금의 積城縣[적성현:지금 坡州郡(파주군) 積城面(적성면)]이다. ② 波平縣(파평현)은 본시 고구려의 波害平史縣(파해평사현)인데, 경덕왕이 [波平(파평)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坡州郡(파주군) 坡平面(파평면)].

○ 交河郡(교하군)은 본시 고구려의 泉井口縣(천정구현)인데, 景德王(경덕왕)이 [交河(교하)로] 改名(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坡州郡(파주군) 交河面(교하면)].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峯城縣(봉성현)은 본시 고구려의 述尒忽縣(술이홀현)인데, 경덕왕이 [峯城(봉성)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坡州郡(파주군) 州內面(주내면)]. ② 高烽縣(고봉현)은 본시 고구려의 達乙省縣(달을성현)인데, 경덕왕이 [高烽(고봉)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高陽郡(고양군) 碧蹄面(벽제면)].

○ 堅城郡(견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馬忽郡(마홀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堅城(견성)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抱州(포주)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沙川縣(사천현)은 본시 고구려의 內乙買縣(내을매현)으로, 경덕왕이 [沙川(사천)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楊州郡(양주군) 北(북)]. ② 洞陰縣(동음현)은 본시 고구려의 粱骨縣(양골현)이니, 경덕왕이 [洞陰(동음)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抱川郡(포천군) 永中面(영중면)].

○ 鐵城郡(철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鐵圓郡(철원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鐵城(철성)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東州(동주)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㠉梁縣(동량현)은 본시 고구려의 僧梁縣(승량현)으로, 경덕왕이 (동량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僧嶺縣(승령현:지금 漣川郡(연천군) 舊邑(구읍) 동쪽)이다. ② 功成縣(공성현)은 본시 고구려의 功木達縣(공목달현)으로, 경덕왕이 [功成(공성)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의 獐州[장주:지금 漣川郡(연천군) 漣川面(연천면)]다.

○ 富平郡(부평군)은 본시 고구려의 夫如郡(부여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富平(부평)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金化縣(금화현)이니, 領縣(영현)이 하나다. 廣平縣(광평현)은 본시 고구려 斧壤縣(부양현)으로, 경덕왕이 [廣平(광평)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平康縣[평강현:지금 江原道(강원도) 平康郡(평강군)]이다.

○ 兎山郡(토산군)은 본시 고구려의 烏斯含達縣(오사함달현)인데, 景德王(경덕왕)이 [兎山(토산)으로] 改名(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黃海道(황해도) 延白郡(연백군) 銀川面[은천면)·海月面(해월면)]. 領縣(영현)이 셋이다. ① 安峽縣(안협현)은 본시 고구려의 阿珍押縣(아진압현)인데, 경덕왕이 [安峽(안협)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江原道(강원도) 伊川郡(이천군) 安峽面(안협면)]. ② 朔邑縣(삭읍현)은 본시 고구려의 所邑豆縣(소읍두현)으로, 경덕왕이 [朔邑(삭읍)으로] 개명, 지금의 朔寧縣[삭녕현:지금 漣川郡(연천군) 北面(북면)]이다. ③ 伊川縣(이천현)은 본시 고구려의 伊珍買縣(이진매현)인데, 경덕왕이 [伊川(이천)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江原道(강원도) 伊川郡(이천군) 伊川面(이천면)].

○ 牛峯郡(우봉군)은 본시 고구려의 牛岑郡(우잠군)이니, 景德王(경덕왕)이 [牛峯(우봉)으로] 改名(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黃海道(황해도) 金川郡(김천군)]. 領縣(영현)이 셋이다. ① 臨江縣(임강현)은 본시 고구려의 獐項縣(장항현)인데, 경덕왕이 [臨江(임강)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長湍郡(장단군) 북쪽). ② 長湍縣(장단현)은 본시 고구려의 長淺城縣(장천성현)인데, 경덕왕이 [長湍(장단)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長湍郡(장단군) 郡內面(군내면)]. ③ 臨端縣(임단현)은 본시 고구려의 麻田淺縣(마전천현)으로, 경덕왕이 [臨端(임단)으로] 개명, 지금 麻田縣[마전현:지금 漣川郡(연천군) 嵋山面(미산면)]이다.

○ 松岳郡(송악군)은 본시 고구려의 扶蘇岬(부소갑)인데(新羅(신라)에서 松岳郡(송악군)으로 改名(개명)했다), 孝昭王(효소왕) 3년에 城(성)을 쌓았고, 景德王(경덕왕)이 그대[松岳(송악)]로 하였다. 我太祖(아태조)가 開國(개국)하면서 王畿[왕기:畿內(기내)]로 하였으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如羆縣(여비현)은 본시 고구려의 若豆恥縣(약두치현)으로, 경덕왕이 (여비로) 개명, 지금 松林縣[송림현:지금 長湍(장단) 北(북)]이다. 제4대 光宗(광종)이 佛日寺(불일사)를 그 곳에 創建(창건)하고 縣(현)을 동북쪽으로 옮겼다. ② 江陰縣(강음현)은 본시 고구려의 屈押縣(굴압현)인데, 경덕왕이 [江陰(강음)으로] 개명,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金川郡(김천군) 西北面(서북면)].

○ 開城郡(개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冬比忽(동비홀)인데, 景德王(경덕왕)이 [開城(개성)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開城府[개성부:治所(치소)는 지금 開豐郡(개풍군) 西面(서면)의 開城里(개성리)]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德水縣(덕수현)은 본시 고구려의 德勿縣(덕물현:지금 開豐郡(개풍군) 鳳東面(봉동면) 興旺里(흥왕리) 일대)인데, 경덕왕이 [德水(덕수)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 [高麗(고려)] 제11대 文宗(문종) 때 興王寺(흥왕사)를 그 곳[德水(덕수)]에 창건하고 縣(현)을 남쪽으로 옮겼다[지금 開豐郡(개풍군) 大原面(대원면)]. ② 臨津縣(임진현)은 본시 고구려의 津臨城(진임성)이니, 경덕왕이 [臨津(임진)으로] 개명,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漣川郡(연천군) 臨津面(임진면)].


○ 海口郡(해구군)은 본시 고구려의 穴口郡(혈구군)으로, 海中(해중)에 있다. 景德王(경덕왕)이 [海口(해구)로] 改名(개명), 지금 江華縣[강화현:지금 江華郡(강화군)]이니, 領縣(영현)이 셋이다. ① 江陰縣(강음현)은 본시 고구려의 冬音奈縣(동음내현)으로, 경덕왕이 [江陰(강음)으로] 개명, 穴口島(혈구도: 지금 江華島(강화도)) 안에 있으니 지금 河陰縣[하음현:지금 江華郡(강화군) 河岾面(하점면)]이다. ② 喬桐縣(교동현)은 본시 고구려의 高木根縣(고목근현)으로, 海中(해중)의 섬이다. 경덕왕이 [喬桐(교동)으로] 개명,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지금 江華郡(강화군) 喬桐面(교동면)]. ③ 守鎭縣(수진현)은 본시 고구려의 首知縣(수지현)으로, 경덕왕이 [守鎭(수진)으로] 개명, 지금 鎭江縣(진강현:지금 江華郡(강화군) 남쪽)이다.
○ 永豐郡(영풍군)은 본시 고구려의 大谷郡(대곡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永豐(영풍)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의 平州[평주:지금 黃海道(황해도) 平山郡(평산군)]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檀溪縣(단계현)은 본시 고구려의 水谷城縣(수곡성현)으로, 경덕왕이 [檀溪(단계)로] 개명, 지금의 俠溪縣[협계현:지금 新溪郡(신계군) 新溪面(신계면)]이다. ② 鎭瑞縣(진서현)은 본시 고구려의 十谷城縣(십곡성현)으로, 경덕왕이 [鎭瑞(진서)로] 개명, 지금의 谷州[곡주:지금 谷山郡(곡산군) 谷山面(곡산면)]이다.
○ 海皐郡(해고군)은 본시 고구려의 冬彡[혹음 音字(음자)로 되어 있음]忽郡(동삼홀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海皐(해고)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鹽州[염주:지금 延白郡(연백군)]니 領縣(영현)이 하나다. 雊澤縣(구택현)은 본시 고구려의 刀臘縣(도랍현)으로, 경덕왕이 (구택으로) 개명, 지금 白州[백주:지금 延白郡(연백군) 銀川面(은천면)]다.
○ 瀑池郡(폭지군)은 본시 고구려의 內米忽郡(내미홀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瀑池(폭지)로] 改名(개명), 지금의 海州(해주)다.
○ 重盤郡(중반군)은 본시 고구려의 息城郡(식성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重盤(중반)으로] 改名(개명), 지금의 安州[안주:지금 載寧郡(재령군)]다.
○ 栖嵒郡(서암군)은 본시 고구려의 鵂嵒郡(휴암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栖嵒(서암)으로] 改名(개명), 지금의 鳳州(봉주)다.
○ 五關郡(오관군)은 본시 고구려의 五谷郡(오곡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五關(오관)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洞州[동주:지금 瑞興郡(서흥군)]니, 領縣(영현)이 하나다. 獐塞縣(장새현)은 본시 고구려의 고을로서, 경덕왕이 그대로 두었으니 지금 遂安郡[수안군:지금 遂安郡(수안군) 遂安面(수안면)]이다.
○ 取城郡(취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冬忽(동홀)로서, 憲德王(헌덕왕)이 (取城(취성)이라고) 改名(개명)하였다. 지금의 黃州(황주)니, 領縣(영현)이 셋이다. ① 土山縣(토산현)은 본시 고구려의 息達(식달)인데, 헌덕왕이 [土山(토산)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中和郡(중화군) 祥原面(상원면)]. ② 唐嶽縣(당악현)은 본시 고구려의 加火押(가화압)인데, 헌덕왕이 縣(현)을 설치하고 이름을 (唐嶽(당악)이라고) 고쳤으니, 지금 中和縣[중화현:지금 中和郡(중화군) 唐井面(당정면)]이다. ③ 松峴縣(송현현)은 본시 고구려의 夫斯波衣縣(부사파의현)인데, 헌덕왕이 [松峴(송현)으로] 개명하였다. 지금 中和縣(중화현:지금 中和郡(중화군) 서쪽 부근)에 속했다.

○ 朔州(삭주)는 賈耽(가탐)의 『古今郡國志(고금군국지)』에 이르기를, "高句麗(고구려)의 東南(동남)쪽, 濊(예)의 서쪽에 있는 옛날 貊(맥)의 땅이니, 대개 지금 新羅(신라)의 북쪽 朔州(삭주)라고 하였다. 善德王(선덕왕) 6년, 唐(당) 貞觀(정관:太宗(태종)의 연호) 11년에 (이 곳을) 牛首州(우수주)로 삼아 軍主(군주)를 두었는데[혹은 文武王(문무왕) 13년, 唐(당) 咸亨(함형) 4년에 首若州(수약주)를 설치하였다고도 함], 景德王(경덕왕)이 [朔州(삭주)로] 고쳤다. 지금 春州[춘주:州治(주치)는 지금 春川市(춘천시)]니, 領縣(영현)이 셋이다. ① 綠驍縣(녹효현)은 본시 고구려의 伐力川縣(벌력천현)으로, 경덕왕이 [綠驍(녹효)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洪川縣[홍천현:지금 洪川郡(홍천군) 洪川邑(홍천읍)]이다. ② 潢川縣(황천현)은 본시 고구려의 橫川縣(횡천현)으로, 경덕왕이 [潢川(황천)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은 다시 예전대로 [橫川(횡천)으로] 하였다[지금 橫城郡(횡성군) 橫城邑(횡성읍)]. ③ 砥平縣(지평현)은 본시 고구려의 砥峴縣(지현현)이니, 경덕왕이 [砥平(지평)으로] 개명,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京畿道(경기도) 楊平郡(양평군) 砥堤面(지제면)].

○ 北原京(북원경)은 본시 고구려의 平原郡(평원군)으로, 文武王(문무왕)이 (여기에) 北原小京(북원소경)을 설치하고, 神文王(신문왕) 5년에 城(성)을 쌓으니 周圍(주위)가 1,031步(보)였다. 景德王(경덕왕)이 그대로 [北原京(북원경)으로] 하였는데 지금 原州[원주:今同(금동)]다.
○ 奈隄郡(내제군)은 본시 고구려의 奈吐郡(내토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奈隄(내제)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湜(堤)州[식(제)주:지금 堤川郡(제천군)]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淸風縣(청풍현)은 본시 고구려의 沙熱伊縣(사열이현)인데, 경덕왕이 [淸風(청풍)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堤川郡(제천군) 淸風面(청풍면)]. ② 赤山縣(적산현)은 본시 고구려의 고을로서, 경덕왕이 그대로 (이름)하였는데 지금 丹山縣[단산현:지금 丹陽郡(단양군) 丹陽面(단양면)]이다.
○ 奈靈郡(내령군)은 본시 百濟(백제)의 奈已郡(내이군)으로, 婆娑王(파사왕)이 取(취)하였는데, 景德王(경덕왕)이 [奈靈(내령)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剛州[강주:지금 榮州郡(영주군)]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善谷縣(선곡현)은 본시 고구려의 買谷縣(매곡현)으로, 경덕왕이 [善谷(선곡)으로] 개명하였는데, [그 位置(위치)가] 지금 未詳(미상)이다[지금 榮州郡(영주군) 禮安面(예안면)]. ② 玉馬縣(옥마현)은 본시 고구려의 古斯馬縣(고사마현)으로, 경덕왕이 [玉馬(옥마)로] 개명, 지금의 奉化縣[봉화현:지금 奉化郡(봉화군) 奉化面(봉화면)]이다.
○ 岋山郡(업산군)은 본시 고구려의 及伐山郡(급벌산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업산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興州[흥주:지금 榮州郡(영주군) 順興面(순흥면)]니, 領縣(영현)이 하나다. 鄰豐縣(인풍현)은 본시 고구려의 伊伐支縣(이벌지현)으로, 경덕왕이 [鄰豐(인풍)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 未祥(미상)이다.
○ 嘉平郡(가평군)은 본시 고구려의 斤平郡(근평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嘉平(가평)으로] 改名(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하니[지금 京畿道(경기도) 加平郡(가평군)], 領縣(영현)이 하나다. 浚水縣(준수현)은 본시 고구려의 深川縣(심천현)으로, 경덕왕이 [浚水(준수)로] 개명, 지금 朝宗縣[조종현:지금 加平郡(가평군) 下面(하면)]이다.
○ 楊麓郡(양록군)은 본시 고구려의 楊口郡(양구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楊麓(양록)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陽溝縣[양구현:지금 江原道(강원도) 楊口郡(양구군)]이니, 領縣(영현)이 셋이다. ① 狶蹄縣(희제현)은 본시 고구려의 猪足縣(저족현)으로, 경덕왕이 [狶蹄(희제)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麟蹄縣[인제현:지금 麟蹄郡(인제군) 麟蹄面(인제면)]이다. ② 馳道縣(치도현)은 본시 고구려의 玉岐縣(옥기현)으로, 경덕왕이 [馳道(치도)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瑞禾縣[서화현:지금 麟蹄郡(인제군) 瑞和面(서화면)]이다. ③ 三嶺縣(삼령현)은 본시 고구려의 三峴縣(삼현현)으로, 경덕왕이 [三嶺(삼령)으로] 개명, 지금의 方山縣[방산현:지금 楊口郡(양구군) 方山面(방산면)]이다.
○ 狼川郡(낭천군)은 본시 고구려의 狌川郡(생천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狼川(낭천)으로] 改名(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江原道(강원도) 華川郡(화천군)].
○ 大楊郡(대양군)은 본시 고구려의 大楊菅郡(대양관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大楊(대양)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長楊郡[장양군:지금 淮陽郡(회양군)]이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藪川縣(수천현)은 본시 고구려의 藪狌川縣(수생천현)으로, 경덕왕이 [藪川(수천)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和川縣[화천현:지금 淮陽郡(회양군) 東(동)]이다. ② 文登縣(문등현)은 본시 고구려의 文峴縣(문현현)이니, 경덕왕이 [文登(문등)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淮陽郡(회양군) 東(동)].
○ 益城郡(익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母城郡(모성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益城(익성)으로] 改名(개명), 지금의 金城郡(금성군:지금 金化郡(금화군) 金城面(금성면) 일대)이다.
○ 岐城郡(기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冬斯忽郡(동사홀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岐城(기성)으로] 改名(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金化郡(금화군) 金城面(금성면) 東(동)]. 領縣(영현)이 하나이다. 通溝縣(통구현)은 본시 고구려의 水入縣(수입현)이니, 경덕왕이 [通溝(통구)로] 개명,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金化郡(금화군) 金城面(금성면) 북쪽).
○ 連城郡(연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各[客(객)으로도 되어 있음]連城郡(각연성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連城(연성)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交州[교주:지금 淮陽郡(회양군)]니 領縣(영현)이 셋이다. ① 丹松縣(단송현)은 본시 고구려의 赤木鎭(적목진)으로, 경덕왕이 [丹松(단송)으로] 개명, 지금의 嵐谷縣[남곡현:지금 淮陽郡(회양군) 嵐谷面(남곡면)]이다. ② 軼雲縣(일운현)은 본시 고구려의 管述縣(관술현)으로, 경덕왕이 (질운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 未詳(미상)이다. ③ 狶嶺縣(희령현)은 본시 고구려의 猪守峴縣(저수현현)으로, 경덕왕이 (희령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 未詳(미상)이다.
○ 朔庭郡(삭정군)은 본시 고구려의 比列忽郡(비열홀군)인데, 眞興王(진흥왕) 17년 梁(양) 太平(태평:敬帝(경제)의 연호) 원년에 (이 곳으로써) 比列州(비열주)를 삼아 軍主(군주)를 두고, 孝昭王(효소왕) 때에 城(성)을 쌓았으니 周圍(주위)가 1,180步(보)였다 景德王(경덕왕)이 [朔庭(삭정)으로] 改名(개명)하였는데, 지금의 登州[등주:지금 咸南(함남) 安邊郡(안변군)]니 領縣(영현)이 다섯이다. ① 瑞谷縣(서곡현)은 본시 고구려의 ꜎谷縣(경곡현)인데, 경덕왕이 [瑞谷(서곡)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이다[지금 安邊郡(안변군) 瑞谷面(서곡면)]. ② 蘭山縣(난산현)은 본시 고구려의 昔達縣(석달현)으로, 경덕왕이 [蘭山(난산)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 未詳(미상)이다. ③ 霜陰縣(상음현)은 본시 고구려의 薩寒縣(살한현)으로, 경덕왕이 [霜陰(상음)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다[지금 安邊郡(안변군) 東(동)]. ④ 菁山縣(청산현)은 본시 고구려 加支達縣(가지달현)으로, 경덕왕이 [菁山(청산)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 汶山縣[문산현:지금 安邊郡(안변군) 南(남)]이다. ⑤ 翊谿縣(익계현)은 본시 고구려의 翼谷縣(익곡현)으로, 경덕왕이 [翊谿(익계)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安邊郡(안변군) 南(남)].
○ 井泉郡(정천군)은 본시 고구려의 泉井郡(천정군)으로, 文武王(문무왕) 21년에 (이를) 取(취)하였고, 景德王(경덕왕)이 [井泉(정천)으로] 改名(개명)하여 炭項關門(탄항관문)을 쌓았다. 지금 湧州[용주:지금 德源郡(덕원군)]니, 領縣(영현)이 셋이다. ① 蒜山縣(산산현)은 본시 고구려의 買尸達縣(매시달현)으로, 경덕왕이 [蒜山(산산)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 未詳(미상)이다. ② 松山縣(송산현)은 본시 고구려의 夫斯達縣(부사달현)으로, 경덕왕이 [松山(송산)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 未詳(미상)이다. ③ 幽居縣(유거현)은 본시 고구려의 東墟縣(동허현)으로, 경덕왕이 [幽居(유거)로] 개명하였는데, 지금 未祥(미상)이다(지금 德源郡(덕원군) 府內面(부내면)인 듯함).

○ 溟州(명주)는 본시 고구려의 河西良(하서량)[何瑟羅(하슬라)라고도 함]인데, 후에 新羅(신라)에 속하였다. 賈耽(가탐)의 『古今郡國志(고금군국지)』에 이르기를, "지금 신라 北界(북계)의 溟州(명주)는 대개 濊(예)의 古國(고국)이라" 하였다. 前史(전사)에는 扶餘(부여)를 濊(예)의 땅이라 하였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善德王(선덕왕) 때에 (이 곳으로써) 小京(소경)을 만들고 仕臣[사신:小京(소경)의 長官(장관)]을 두었다. 太宗[태종:武烈王(무열왕)]왕 5년, 唐(당) 顯慶(현경:高宗(고종)의 연호) 3년에 何瑟羅(하슬라)의 땅이 靺鞨[말갈:東濊(동예) ?]에 연접하였음으로 해서, 京(경)은 罷(파)하고 州(주)를 만들어 軍主(군주)를 두어 鎭守(진수)하게 하였다. 景德王(경덕왕)이 16년에 溟州(명주)로 改稱(개칭)하여 지금도 그대로 하니[그 治所(치소)는 지금 江陵市(강릉시)], 領縣(영현)이 넷이다. ① 旌善縣(정선현)은 본시 고구려의 仍買縣(잉매현)으로 경덕왕이 [旌善(정선)으로] 개명,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旌善郡(정선군) 旌善面(정선면)]. ② 栜[棟(동)으로도 되어 있음]隄縣(촉제현)은 본시 고구려의 東吐縣(동토현)으로, 경덕왕이 [栜隄(촉제)로] 개명하였는데, 지금 未詳(미상)이다. ③ 支山縣(지산현)은 본시 고구려의 고을로서, 경덕왕이 그대로 하였으니 지금 連谷縣[연곡현:지금 溟州郡(명주군) 連谷面(연곡면)]이다. ④ 洞山縣(동산현)은 본시 고구려의 穴山縣(혈산현)으로, 경덕왕이 [洞山(동산)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襄陽郡(양양군) 남쪽).


○ 曲城郡(곡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屈火郡(굴화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曲城(곡성)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臨河郡(임하군:지금 安東郡(안동군) 臨河面(임하면) 일대)이니, 領縣(영현)이 하나이다. 緣[椽(연)으로도 되어 있음]武縣(연무현)은 본시 고구려의 伊火兮縣(이화혜현)으로, 경덕왕이 [緣武(연무)로] 개명, 지금의 安德縣[안덕현:지금 靑松郡(청송군) 安德面(안덕면)]이다.
○ 野城郡(야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也尸忽郡(야시홀군)인데, 景德王(경덕왕)이 [野城(야성)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盈德郡[영덕군:今同(금동)]이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眞安縣(진안현)은 본시 고구려의 助攬縣(조람현)으로, 경덕왕이 [眞安(진안)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甫城府[보성부:지금 靑松郡(청송군) 眞寶面(진보면)]이다. ② 積善縣(적선현)은 본시 고구려의 靑已縣(청이현)으로, 경덕왕이 [積善(적선)으로] 개명, 지금의 靑鳧縣[청부현:지금 靑松郡(청송군) 靑松面(청송면)]이다.
○ 有鄰郡(유린군)은 본시 고구려의 于尸郡(우시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유린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의 禮州[예주:지금 盈德郡(영덕군) 寧海面(영해면)]니 領縣(영현)이 하나이다. 海阿縣(해아현)은 본시 고구려의 阿兮縣(아혜현)으로, 경덕왕이 [海阿(해아)로] 개명, 지금의 淸河縣[청하현:지금 迎日郡(영일군) 淸河面(청하면)]이다.
○ 蔚珍郡(울진군)은 본시 고구려의 于珍也縣(우진야현)으로, 景德王(경덕왕)이 [蔚珍(울진)으로] 改名(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慶北(경북) 蔚珍郡(울진군)]. 領縣(영현)이 하나이다. 海曲[曲(곡)이 西(서)로도 되어 있음]縣(해곡현)은 본시 고구려의 波且縣(파차현)으로, 경덕왕이 [海曲(해곡)으로] 개명, 지금 未詳(미상)이다.
○ 奈城郡(내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奈生郡(내생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奈城(내성)으로] 改名(개명)하였으니 지금 寧越郡[영월군:今同(금동)]으로, 領縣(영현)이 셋이다. ① 子春縣(자춘현)은 본시 고구려의 乙阿旦縣(을아단현)으로, 경덕왕이 [子春(자춘)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永春縣[영춘현:지금 丹陽郡(단양군) 永春面(영춘면)]이다. ② 白烏縣(백오현)은 본시 고구려의 郁烏縣(욱오현)으로, 경덕왕이 [白烏(백오)로] 개명, 지금의 平昌縣[평창현:지금 江原道(강원도) 平昌郡(평창군) 平昌面(평창면)]이다. ③ 酒泉縣(주천현)은 본시 고구려의 酒淵縣(주연현)으로, 경덕왕이 [酒泉(주천)으로] 개명, 지금도 그대로이다[지금 寧越郡(영월군) 酒泉面(주천면)].
○ 三陟郡(삼척군)은 본시 悉直國(실직국)으로, 婆娑王代(파사왕대)에 와서 (新羅(신라)에) 항복하였다. 智證王(지증왕) 6년, 梁(양) 天監(천감:武帝(무제)의 연호) 4년에 州(주)를 삼고 異斯夫(이사부)로 軍主(군주)를 임명하였다. 景德王(경덕왕)이 [三陟(삼척)으로] 改名(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는데[今同(금동)], 領縣(영현)이 넷이다. ① 竹嶺縣(죽령현)은 본시 고구려의 竹峴縣(죽현현)으로, 경덕왕이 [竹嶺(죽령)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 未詳(미상)이다(지금 竹嶺(죽령) 부근). ② 滿卿(만향)[鄕(향)으로도 되어 있음]縣(만경현)은 본시 고구려의 滿若縣(만약현)으로, 경덕왕이 [滿卿(만경)으로] 개명, 지금 未祥(미상)이다. ③ 羽谿縣(우계현)은 본시 고구려의 羽谷縣(우곡현)으로, 경덕왕이 [羽谿(우계)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溟州郡(명주군) 玉溪面(옥계면) ?]. ④ 海利縣(해리현)은 본시 고구려의 波利縣(파리현)으로, 경덕왕이 [海利(해리)로] 개명, 지금 未詳(미상)이다.
○ 守城郡(수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䢘城郡(수성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守城(수성)으로] 改名(개명)하였다. 지금 杆城縣(간성현:지금 江原道(강원도) 高城郡(고성군) 杆城面(간성면) 일대)이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童山縣(동산현)은 본시 고구려의 僧山縣(승산현)으로, 경덕왕이 [童山(동산)으로] 개명, 지금의 烈山縣[열산현:지금 杆城郡(간성군) 域內(역내)]이다. ② 翼嶺縣(익령현)은 본시 고구려의 翼峴縣(익현현)으로, 경덕왕이 [翼嶺(익령)으로] 개명, 지금도 그대로이다[지금 襄陽郡(양양군) 域內(역내)].
○ 高城郡(고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達忽(달홀)이다. 眞興王(진흥왕) 29년에 州(주)를 삼고 軍主(군주)를 두었다. 景德王(경덕왕)이 [高城(고성)으로] 改名(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하니 領縣(영현)이 둘이다. ① 豢猳縣(환가현)은 본시 고구려의 猪䢘穴縣(저수혈현)으로, 경덕왕이 (환가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高城郡(고성군) 域內(역내)]. ② 偏嶮縣(편험현)은 본시 고구려의 平珍峴縣(평진현현)으로, 경덕왕이 [偏嶮(편험)으로] 개명, 지금의 雲巖縣[운암현:지금 通川郡(통천군) 域內(역내)]이다.
○ 金壤郡(금양군)은 본시 고구려의 休壤郡(휴양군)으로, 景德王(경덕왕)이 [金壤(금양)으로] 改名(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通川郡(통천군)] 領縣(영현)이 다섯이다. ① 習谿縣(습계현)은 본시 고구려의 習比谷縣(습비곡현)으로, 경덕왕이 [習谿(습계)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歙谷縣[흡곡현:지금 通川郡(통천군) 歙谷面(흡곡면)]이다. ② 隄上縣(제상현)은 본시 고구려의 吐上縣(토상현)으로, 경덕왕이 [隄上(제상)으로] 개명하였으니 지금 碧山縣[벽산현:通川郡(통천군) 碧養面(벽양면) ?]이다. ③ 臨道縣(임도현)은 본시 고구려의 道臨縣(도림현)인데, 경덕왕이 [臨道(임도)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通川郡(통천군) 臨南面(임남면)]. ④ 派川縣(파천현)은 본시 고구려의 改淵縣[개연현:지금 咸南(함남) 安邊郡(안변군) 沛川(패천)]인데, 경덕왕이 [派川(파천)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 ⑤ 鶴浦縣(학포현)은 본시 고구려의 鵠浦縣(곡포현)으로, 경덕왕이 [鶴浦(학포)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지금 安邊郡(안변군) 鶴城面(학성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