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행 일 : 2003/01/18
녪백제 첫 수도인 한성백제(BC18∼AD475년)의 왕도(하남 위례성)와 관련된 학설은 몽촌토성, 풍납토성, 하남시 고골등 3가지로나뉜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위원장 차문섭)가 발간하는 ‘향토서울’ 최신호(62호)의 하남 위례성 위치에 관한 특집에 따르면이 3가지 학설이 발굴경과에 따라 차례로 등장한다.
1980년대 몽촌토성 발굴단 출신인 박순발 충남대교수는 475년 고구려 3만대군에 의해 백제 왕도가 함락된 사정을 전하는 ‘일본서기’를 근거로 몽촌토성 왕도설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서기는“백제기에 이르기를 개로왕 을묘년 겨울에 개새끼 대군(고구려군)이 대성(大城)을 공격해온지 7일 낮 7일밤만에 왕성(王城)이함락되니 마침내 위례를 잃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박교수는 북성〓대성〓풍납토성, 남성〓왕성〓몽촌토성이라고 주장한다. 풍납토성 발굴에 참여한 신희권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사는 출토유물이나 연대측정 결과를 종합할때 풍납토성이 왕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풍납토성의 발굴지인 경당지구는 풍납토성전체 백제 유물층위 가운데 중·상층일 뿐이라며 앞으로의 발굴성과에 기대를 걸고있다.그러나 몽촌토성·풍납토성 왕성설은 최근 3년새 하남 고골일대주변 유적들에서 고대 도시 흔적이 본격 발굴되면서 빛을 잃고있다. 백제문화연구회 전문위원인 오순재 명지대교수는 고골 왕도설을 주장한다. “고대도시 왕도는 한결같이 평지의 왕성과 산성이 한 세트를 이루는데 몽촌·풍납토성은 한강변에 있고 남쪽은 산이 없는 평지로 뻥 뚫려있어 도성의 수비성, 즉 수로관리성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더구나 풍납토성은 상습침수지역으로 발굴과정에서 4m 이상 모래가 퇴적된 아래에 유물층이 나오고 있어 대홍수로 인한 범람이여러 차례 있었다. 최몽룡 서울대교수도 풍납토성이 위치한 일대는 지대가 너무 낮고 강에 인접해 도성으로 부적당하며 고구려의 남침을 저지하는 군사적 성격이 강한 성이라고 주장해왔다. 풍납토성이 왕성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백제 사찰지 흔적이 이 일대에는 없다. 3세기 중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몽촌토성 역시 침수가 잦았으며 주초석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오교수는 “각각 6만평(몽촌토성), 22만평(풍납토성)밖에 안되는 도성으로는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온 고구려 3만대군의 공격을 7일동안 견디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천혜의 자연지형과 토성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하남시 고골일대와 비교할때몽촌·풍납토성을 한 왕조가 500년동안 지탱한 왕성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허점이 많다는 것이 오교수의 주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