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행 일 : 2003/03/19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실시한 서울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서쪽성벽(삼표산업 부지) 발굴 결과, 풍납토성이 늦어도 3세기(200년)를 전후한 시점에 축조됐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7차 교육과정 고교 ‘국사’ 교과서의 기록 전면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풍납토성 서쪽성벽 발굴을 비롯한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성과와올해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7차 교육과정 고교 ‘국사’교과서‘고대국가의 성립’(49∼51쪽) 고대사 기술이 명백히 상치하고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고교 ‘국사’교과서에 실린 고대사 기술이 일제시대 일본학자들의 식민사관 영향을 받아 ‘삼국사기 고대사 초기기록 부정론’을 답습하고 있는 점, 최근 고고학계의 발굴성과와문헌학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는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들어 전면적인 개정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가 어떤 부분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본다.◈‘삼국사기’ 기록을 무시한 고교 교과서〓7차 ‘국사’ 교과서는 “3세기 중엽 백제 고이왕때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중앙집권국가의 토대를 형성하였다”(50쪽)고 적고 있다. 또“4세기 내물왕(356∼402)때 신라는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낙동강 동쪽의 진한지역을 차지하고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50쪽)고 기록하고 있다.이것은 중국 진(晉)나라 진수(陳壽)가 280년에 편찬한 ‘삼국지’ 위지동이전 한조를 근거로 한 것. 김부식의 ‘삼국사기’(1145년 편찬)에 따르면 백제는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이미 경기도일원을 정복한 왕국으로 발전하였고, 신라는 1세기 중반부터 이웃한 소국을 병합하기 시작해 3세기 중반에는 현재의 경상북도일대에 위치한 진한의 소국들을 모두 병합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만약 ‘국사’ 교과서가 참고로 한 ‘삼국지’의 기록이 옳다면, 풍납토성과 같은 거대한 성(성벽 폭 50∼60m, 높이 15m, 총26만평)은 절대로 3세기 전에 축조될 수 없다. 또 이번 풍납토성 발굴결과를 비롯한 한강유역의 고고학적 연구결과는 명백하게 교과서가 기대고 있는 ‘삼국지’가 아닌 김부식의 ‘삼국사기’ 기록이 옳음을 증명해보이고 있다.◈‘국사’ 교과서는 왜 백제·신라의 시조를 누락했나〓고교 ‘국사’교과서는 백제와 신라의 시조 온조왕과 박혁거세왕의 기록을 싣지 않아 ‘건국자’가 실종된 기묘한 역사책이 됐다. 온조왕과 박혁거세왕은 5, 6차 교과서때부터 하나둘 빠지기 시작했다.한마디로 ‘삼국사기’가 기록하고 있는 건국신화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온조왕은 본문에서 빠지고 교과서 ‘캡션’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됐다. 중국의 기록인 ‘삼국지’에 근거해, ‘온조가 남하하여 한강유역의 하남 위례성에 정착한후 마한의 소국가운데 하나로 발전하였다’고 축소됐다. ‘삼국사기’는 온조왕대에 이미 마한을 남쪽으로 내쫓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최몽룡(서울대) 교수는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마한이 늦어도 기원전 1세기경에 왕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체제를 갖추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국사기’ 불신은 식민사관의 유산〓 주류학계의 뿌리깊은‘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대한 불신은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이종욱(서강대) 교수는 최근 펴낸 ‘역사충돌’(김영사)에서 “일제시대 일본인 연구자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가 주장한 ‘삼국사기’ 허구설·조작설이 그 뿌리”라고 비판한다. 쓰다에게서 역사학을 배운 한국인 학자들이 그의 연구관행을 맹목적으로 따른 결과, 백제 고이왕과 신라 내물왕 이전 300∼400년의 역사를말살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삼국사기’ 초기기록 수정론 등이 득세, 신라 왕의 재위연대를 마음대로 지정하는 바람에 혁거세가 3세기 초의 인물이라는 주장이 나와 결국 교과서에서 추방되는 사태에 이른 것. 최근 고고학적 연구성과에 힘입어 금관가야 맹주 김수로왕이 교과서 본문에 상세히 기록된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비해 한국인이면 당연히 신라의 시조로 알고 있는 박혁거세라는 인물은 고교 교과서에 한줄도 소개되지 않고 있다. 광복 반세기가 지나도록 ‘삼국사기’에 엄연히 소개된 건국신화를 가짜라고 단정한 일제시대 일본인 사학자들의 역사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이종욱 교수의 주장이다.
정충신기자 csjung@munhw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