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몽촌·풍납·춘궁동등 다양 최근엔 왕성 이동설 제기

吾心竹--오심죽-- 2009. 3. 31. 15:37

몽촌·풍납·춘궁동등 다양 최근엔 왕성 이동설 제기
발 행 일 : 2003/03/19

최근 몇년새 백제와 마한시대 유물·유적이 속속 발굴되는 등 고고학적 성과에 힘입어 한성백제 왕성에 대한 학설도 급진전되고있다. 한강변 한성백제 왕성과 관련한 최근 학설로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본다.

◈몽촌토성 왕성설〓풍납토성 왕성설이 확산되기 전에는 몽촌토성 초기 왕성설이 학계의 대세였다. 특히 1980년대 서울대박물관이 몽촌토성을 발굴하면서 ‘몽촌토성〓하남 위례성’이라는 학설을 제기하면서 이웃한 풍납토성은 묻혀버렸다. 몽촌토성 왕성설의 대표적인 학자가 이기백 교수 등.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유물 대부분은 3세기 중·후반에 출현하는토기류다. 백제가 3세기 이후에 국가형태를 갖췄다는 입장에 맞기 때문에 몽촌토성이 백제 왕성이란 설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풍납토성 축조연대가 3세기 전으로 앞당겨지면서 총면적 약6만평의 몽촌토성〓하남 위례성 학설은 빛을 잃고 있다.

◈풍납토성 왕성설〓 풍납토성이 하남 위례성이라는 가설은 최근 발굴성과에 도움받아 힘을 얻고 있다. 1999년 문화재연구소의풍납토성 발굴에서 나온 유물을 탄소방사성연대측정한 결과 풍납토성의 중심연대는 기원전 1세기∼서기 1세기로 드러났다. 경당지구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제사터로 생각되는 제사유적과, ‘대부(大夫)’라는 관직명을 새긴 백제초기 토기 파편도 발견됐다. 인근에 석촌동·가락동·방이동 고분군 등 백제고분이 널려있는 점도 한성백제 최초 왕성설의 근거로 거론된다.

대표적인 학자는 일본인 아유가이(點房貝之進)와 이형구(선문대) 권오영(한신대) 교수, 신희권 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등. 그들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전체가 한성백제 왕성의 일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도로나 대규모 건물 초석 등 왕궁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유물은 아직 발굴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인근에 고대도시의 특징인 산성이 없는데다, 한강의 홍수 등에 노출되고 겨울철 한강의 결빙 때는 적의 침공에 그대로 포위되는 점 등의 평지성인 점이 최대의 약점.

◈하남 고골(교산동·춘궁동) 왕성설〓하남 춘궁동(고골일대)이하남 위례성이라는 학설은 다산 정약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약용은 광주군(지금의 하남시) 춘궁리를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했다. 고고학계에서는 이 지역에 거의 눈길을 주지 않다가 최근 몇년새 교산동건물터·천왕사지 등 유물·유적이 집중 발굴되면서 논의의 핵으로 떠올랐다.2001년 문화재보호재단은 천왕사지에서 백제시대 기와(수막새)를 발굴했다. 최근 18년째 발굴이 진행중인 교산동건물터 서쪽 이성산성이 백제의 첫 석성이라는 주장이 최몽룡 교수에 의해 제기되면서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왕성 이동설〓최몽룡 교수는 ‘몽촌토성이 하남 위례성’이라는 과거의 주장을 철회하는 대신, 신라임금이 월성-금성-만월성등으로 옮겨다녔듯이, 한성백제 왕들 역시 하북 위례성에 이어풍납토성-몽촌토성-이성산성-춘궁동 왕성 등으로 옮겨다녔을 것이라는 학설을 새롭게 주장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정충신기자 cs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