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종교] "장수왕 한강이남 지배 못했다"
고구려 장수왕(長壽王ㆍ394~491)은 한강 이남지역을 지배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젊은 고고학자에 의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심광주(39)토지박물관 학예실장은 최근 열린 고구려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현재까지 통설로 인정받고 있는 한강 이남 고구려 접경지역에서 고구려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며“이는 고구려가 이 지역을 지배하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신 고구려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한 구의동 보루(堡壘), 아차산 4보루, 시루봉 보루 등 고구려 유적으로 확인된 40여 개의 거점을 이용, 백제와신라에 대한 비항구적 형태의 지배방식을 취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보루는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견고하게 구축한 군사 기지를 의미한다. 고구려가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할 여력이 없었거나, 죽령 이북지역에서 한강유역 일대까지를 백제, 신라의 군사적 완충지대로 남겨 둘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심 실장은 “어느 성보다도 확고한 고구려성으로 추정하고 있는 남한강상류의 온달산성 조차도 축성 기법면에서 오히려 신라 성일 가능성이 높다”며 “고구려의 한강유역 경영에 대한 통설에 유물편년을 짜맞추는 식의역사기술은 앞으로 수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은 일선 고구려 유적 발굴자에 의한 고고학적 관점의 최초의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학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학계를 지배해 온 문헌사학적 역사기술 방법에 대해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국사 교과서의 기술도 바꿀 수 있는 이번 주장에 대해 앞으로 학계는 치열한 학술적 공방을 펼칠 전망이다.
고구려의 한반도 남쪽 경계선에 대한 통설은 475년 장수왕이 친히 백제를공격하고 한성을 함락한 후 551년까지 한강유역을 완전 장악했다는 역사학자 이병도(1896~1989) 선생의 견해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삼국사기지리지의 기술을 받아들인 것인데, 삼국사기 본기에는 장수왕이 475년 한성 점령 이후 곧바로 돌아갔다는 기록도 있어, 그 동안 학계는 이 부분에 대해 미심쩍어 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91년 ‘조선전사’ 수정판에서 삼국사기 본기의 기록을인정해 한강유역은 백제가 지배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김영관 서울시립대 박물관학예관이 “475년 웅진 천도 이후 한강유역은 백제가 관리했으며, 고구려 안장왕 11년(529년)에야 한강 장악에성공, 나제 연합에 패한 551년까지 지배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것도 이 같은 역사적 의구심에 대한 이의로서 제기된 것이다.
심광주 실장은 “고구려 유적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라며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된 유적 유물 발굴 성과에 따르면 5세기 고구려 남방한계선에 대한 통설은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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