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한강 이북에는 없었다?>
김태식 기자 = 서기 414년 장수왕이 아버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업적을 기려 세운 비문에는 광개토왕이 펼친 정복활동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 백제에 대해서만 해도 58개 성(城) 700개 촌(村)을 탈취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면서 비문은 광개토왕이 백제에서 빼앗았다는 58개 성 이름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나열하고 있다. 비문은 워낙 마모가 심해 읽을 수 없는 글자가 많다.
학계에서는 그나마 판독 가능한 성들이 지금의 어디쯤인가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한강 북쪽 혹은 임진강 일대라는 점에서는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강 이북에서 백제 성터는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런데 아주 희한하게도 현재까지 한강 이북 혹은 임진강 일대에서 백제 흔적이아주 뚜렷한 성터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한국고대사학계나 고고학계는 이 점을 대단한 미스터리로 보고 있다.
현재의 휴전선 남쪽에서 한강 이북 사이에서 확인된 고대 성곽을 보면 경기 연천의 호로고루성ㆍ당토성ㆍ은대리성ㆍ대전리산성, 경기 파주의 칠중성ㆍ오두산성ㆍ육계토성, 경기 포천의 고모루성ㆍ반월산성, 경기 양주 대모산성 등이 있다.
또 이와 더불어 규모가 작은 군사용 참호시설인 이른바 보루 유적이 아차산과인근 용마산, 임진강 일대에서 40여 곳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적어도 신라에 의한 고구려, 백제 멸망이 있기 전인 삼국시대로 축조시기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성곽이라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475년 수도인 한성이 고구려군에 함락돼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웅진(공주)으로 천도하기까지 적어도 수백년 이상 옛 백제 영토였던 한강 이북에서 백제가쌓았음이 분명한 성곽은 거의 없다.
심지어 한강을 사이에 두고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바라보는 한강 바로 북쪽 아차산성 또한 광개토왕 비문에는 고구려가 정복한 백제 58개 성의 하나인 아단성이라고 돼 있으나 잇따른 발굴 결과는 백제 성곽이라기보다 오히려 신라 성으로 확인되고 있을 정도다.
육계토성의 경우 최근 발굴 결과 한성 함락 이전까지 백제 왕성이었던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처럼 그 자리한 곳이 북쪽으로 강을 띠처럼 두르고 있고 흙으로 쌓았으며, 무엇보다 백제토기가 많이 출토되고 있다는 점에서 백제 흔적이 완연하다.
또 대모산성에서도 성곽은 백제 것이 아니라 해도 그 안쪽에서는 백제가 쌓았을것으로 추정되는 목책과 토루가 확인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강 이북에서 찾은 백제 흔적은 이 정도에 불과하다.
더욱이 90년대 들어 아차산과 용마산 및 임진강 일대를 중심으로 수십기에 달하는 보루 유적에서 고구려계 유물들이 쏟아지고, 이에 따라 이들 보루를 쌓은 주인공또한 고구려로 거의 굳어감에 따라 한강 이북에서의 백제 열세 현상은 아주 두드러지고 있다.
그렇다면 백제는 과연 한강 이북에 세력을 뻗치지 못했을까.
문제는 역사기록이나 지금까지 학계가 이룩한 성과를 볼 때 결코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이와 관련, 한강 이북 일대 고고학 조사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토지박물관 심광주 학예실장의 말은 경청할 만하다.
그는 "고고학에서는 발굴 조사 이전에 어떤 선입관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불문율이지만 한강 이북 발굴이나 조사 때는 백제라는 선입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백제가 475년 이전까지 수백년 동안 한강 이북을 장악한 역사적 사실만은 분명한 만큼 이곳 어디엔가는 백제의 흔적이 농후한 유적과 유물이 나오리라는 기대를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475년 이전 백제가 고구려와 빈번히 전쟁을 벌인 지역이 임진강이북 황해도 일대일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한강 이북 지역에서의 백제 흔적은 북한 고고학계에서 찾아주거나 아니면 남북이 통일된 이후 본격적인 조사를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taeshik@yonhapnews.ne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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