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들이름이 지명...

吾心竹--오심죽-- 2009. 2. 16. 13:44

들이름이 그대로 마을이름

 

사람이 살면 사는 곳 중심으로 '어떤 곳'임을 뜻하는 지칭이 발생한다. 그 어떤 곳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땅이름이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이 어느 곳에 자리잡고 살면 그 자리 잡은 때와 거의 동시에 그 일

대에 땅이름들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고  뒤에 여러 사람 입에 굳혀지면 여간해

서는 다시 바뀌지 않는 불변성을 지닌다. 다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편한 발음 위주로 바뀌어 나가는 수는

있다. 따라서 땅이름을 조사하다 보면 그 본디 꼴(原形)인 옛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미 한자로 바뀌어버린 것들도 많지만 이 한자식 땅이름도 잘 캐어보면 그 속에 조상들이 쓰던말이 그

대로 베어나오는 수가 있다. 들과 관련된 땅이름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러한 땅이름들 중 많은 옛말 또는

방언이 숨어 있음을 본다. 들은 바로 우리 조상들의 생활 터전이어서 그 들이름 자체가 그대로 마을 이름

이 되기도 했다. 들이나 벌의 마을이라 해서 그대로 '들말', '벌말'같은 이름들도 쏟아져나왔다.

 

'땅'과 관련된 낱말들

(참조: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와 "반시옷"을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은 적색 처리 하였슴)
'들'의 원래 음은 ''로, '덜', '달' 등의 음으로도 불리었다. ''은 처음에는 단순히 들(野)의 뜻만이 아

니라, 산, 들, 흙 등을 포괄하는 '땅'의 뜻을 갖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우리말의 통상적인 발음 변화 과정

으로 보아 ''은 ''이었을 것이다. 이 ''을 뿌리로 한 말들이 모두 땅과 관련이 있다. 
 

   > 닫 > 달(山)
                달 > 다 > ㅅ다(地)
   > 들/드르(野)
   > 돋 > 돌/돍/독(石)
   > 딛 > 딜 > 질(土, 질그릇)
   > 덜 > 더 > 터(基)

 

'다'나 '달'이 'ㅅ다'로 된 것은 15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지금의 '땅'이란 말은 본래  'ㅅ다'로, 그 활용은

ㅎ첨가 활용이어서 'ㅅ다히'(땅이), 'ㅅ다해'(땅에), 'ㅅ다흘'(땅을)로 되는데, 여기에 ㅇ이 첨가한 기록이

 17세기에 보인다.

 

   ㅅ다ㅎ.... '제(祭)던 ㅅ다흘 보고' <석보상절>
   ㅅ당해.... 'ㅅ당해 업더혀 니다 아니대' <동국신독삼강행실도 열四,64>
   ㅅ다을.... 'ㅅ당을 고 묻고져 더니' <동국신독삼강행실도 효~,1>

 

지금의 '양달', '응달'의 '달'도 '땅'의 뜻이다. '달고질'이란 말도 땅을 다지는 일을 뜻하는데, 여기서의

'달'도 땅이다. '달'이 산(山)의 뜻으로 쓰였음은 지금의 '진달래'란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달(山)의 곶(꽃) > 달의 곶 > 다래곶 > 달래곶 > (진)달래꽃

 

'돋', '둗'의 소리가 '똥'까지 되었고 '둗'은 '덜'로 옮겨져 '더럽다'라는 말을 낳았다.

 

     돋 > 돌 > 도 > 또 > 똥
     둗 > 둘 > 덜
                   덜+압다 > 더랍다 > 더럽다.
                   둘+엄 > 둘엄 > 두엄

 

'기와' 15세기 말은 '디새'인데, 이 말은 '딧'(딛)에서 나온 말이다. '두더지'란 말도 땅과 관련이 있다.

 

     둗(地)의 쥐 > 둗의쥐 > 두더지

 

즉 '두더지'란 말은 '땅 속의 쥐'란 뜻으로 붙여진 말이 변한 것이다.

 

'들'을 나타내는 옛 한자 지명

 

'들'은 옛날에 '드르'로 쓰인 예가 많다.

 

   '드르레 용(龍)이 싸호아 <용비어천가. 69>
   '먼 드르흘 지척(咫尺)만ㅎ.ㄴ가 ㅅ.랑ㅎ.노라' <두시언해. 七,23>   
   '드르 교(郊) 드르 평(坪)' <훈몽자회. 상4>

 

'들'은 경음화 해서 '뜰'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 말이 '마당' 또는 '정원'의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은 '달', '덜' 등의 음으로 옮겨가서 지금의 땅이름에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 달(月/達)... 달골(月谷), 달내(達川)
              덜(切/寺)... 덜머리(切頭), 절골(寺谷)
              돌(突/石)... 마돌(馬突), 돌모루(石隅)
              둘(二)...... 갯둘(浦二)
              들(野/梁)... 들말(野村), 너들(鷺梁)

 

달내는 '들의 내'란 뜻이고, 덜머리는 들머리이다. 마돌은 물의 들, 즉 물들(무들)과 같은 뜻이고, 돌모루

의 돌도 돌(石)의 뜻이 아닌 '들'의 방언으로 붙은 예가 있다. 갯둘에서의 둘도 '들'이다.

너들은 너른 들(大野)의 뜻인데, 노량(鷺梁)으로 음/훈차(音/訓借) 되었다. 양(梁)은 '들보'의
뜻을 가져 들보의 '들'과 음이 같아 들(野)의 뜻으로 이 한자가 취해지기도 했다. 
옛 땅이름에도 '들'은 여러 형태의 한자로 나타난다.          

 

   無等山, 一云 無珍岳, 一云 瑞錫山.  
   무등산은 무진악이라고도 하고 또 서석산이라고도 한다. <고려사. 권57>

   馬靈懸, 本 百濟 馬突, 一云 馬珍, 一云 馬珍良.
   마령현은 원래 백제의 마돌인데, 마진 혹은 마진랑이라고도 한다. <고려사. 권57>

   鎭安縣, 本百濟, 難珍阿縣, 一云 月良縣.
   진안현은 본래 백제의 난진아현인데, 달리 월랑현이라고도 한다. <고려사. 권57>

 

고 양주동님은 광주의 옛이름 무등, 무진은 이 고을의 진산에 붙은 이름으로, 이것은 '무'(무돌)의
표기이고, 이 산의 바위가 기이해서 서석이란 이름으로도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백제의 땅이름에

널리 보이는 영(靈), 돌(突), 진(珍), 월랑(月良) 등은 모두 '들'을 일컫는다고 하였다.

 

   들: 等
   달(들): 月
   돌(들): 珍, 突, 石

 

즉 '들'이 '달'이나 '돌'의 음으로 옮겨져 이것이 훈/음차 되어서 위와 같은 한자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  山  (글: 지명 연구가,  배우리)

 

'들골'이 '절골'이 되기도

 

들의 옛말 형태인 '드르'(두루)는 함경도, 평안북도, 제주도에 많이 나타난다.
강원도 지방의 '들' 관련 땅이름에도 적지 않게 '드루'가 들어가있다. 마릿드루(馬坪: 삼척), 전두루(長坪:

양구 방산면), 늪두루(楡坪: 횡성 갑천면),  뒷드루(北坪: 동해),  절뚜루(等坪: 인제 남면),  졸뜨루(卒坪:

정선 남면 나전리), 가느드루(정선) 등.


'졸뜨루'는 작은 들의 뜻이고,  '가느드루'는 가늘고  길게 뻗은 들의 뜻이다.  드루가  조금  변한  형태인

'가드래'(加坪: 영월 상동면 천평리)도 있고,   '또리'로 까지 음이 변한  '마람또리'(馬坪: 춘성 사북면 원

평리)란 마을이름도 있다.

 

제주도에서는 '돗드르'(吐坪: 서귀포)등 '드르'가 들어간 땅이름이 무척 많다.
'들'은 사투리가 그리 많지 않으나, 경상도 지방에서는 '덜'에 가깝게 발음하는 사람이 많다.
이 사투리가 더욱 발전하여 '돌'이 되는데, 이 때문에 '들머리'가 '돌머리'가 되어서 석두(石頭)라는 한자

지명을 단 곳도 있다.  

 

'들'의 사투리 '덜'은 '절'로 구개음화 해서  한자의 절(切/節)의 음을 달아 절두(切頭=덜머리: 서울 마포

구), 절골(節山: 전남 화순 남면)같은 땅이름을 낳기도 했고, 이 절이 또 사(寺)자로 취해져 절과 전혀 관

계 없는데도 사곡(寺谷里, 절골 <뎔골:충북 청원군 강내면)같은 이름을 이루게 했다.

 

들 관련 땅이름은 무척 많다.

대개는 한자의 야(野)로 취해져 '들말', '들막', '들목' 등의 이름이 야촌(野村里: 충남 논산 가야곡면 등),

야막(野幕里: 경기도 화성 진위면), 야목(野牧里: 경기도 화성 매송면)같은 이름을 이루게 했다.

 

또 들은 양(梁)이나 등(等)의 한자로도 옮겨져  '군들'(큰들), '버들'(벋들=벋은들)같은 우리말 땅이름이

군량(郡梁: 경기도 이천 모가면 양평리), 유등(柳等: 강원도 강릉 연곡면)등으로 되기도 했다. 

 

더러는 들이 '둘'의 음으로 되어 '갯들(갯돌)이 포이(浦二洞: 서울 강남구)로 되었는가 하면 '들말'이 '둘

말'이 되어 이촌(二村)이란 이름을 단 곳도 있다.

                                                                             

                                                                                 ........  山  (글: 지명 연구가,  배우리)

 

'들내'가 '달내'가 되기도 하고...

 

(참조: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와 "반시옷"을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은 적색 처리 하였슴)

'들'의 원말은 ''이어서 '달'로 된 이름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전국에 있는 월(月)자 지명은 대개 토박이 땅이름의 '달'을 옮긴 것인데, '달'은 또 산(山)을 일컫는 옛말

이기도 해서 월(月)이 산의 뜻으로 붙여진 것인지,  또는 들(野)의 뜻으로 붙여진 것인지 알기 어려운 것

이 많다.

 

'달내'에서 나온 월계(月溪:충남 서산군 부석면 등)가 그렇고, '달여울'에서 나온 월탄(月灘:충북 중원군

금가면 월상리 등), '달밭', '달들'에서 나온 월전(月田里: 충북 영동 용화면 등) 월평(月坪里: 전남 영암

신북면 등)같은 것이 그렇다.

 

그러나 충주시를 지나는 '달내'(達川),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곰달내'(古音月)같은 이름은 위치/지형적

개연성으로 보아 '달'이 '들'의 뜻을 가졌을 가능성이 짙다.

 

달 관련 땅이름은 이밖에도 '달바위'(月岩洞: 경기도 의왕), '달고지'(月松里: 충북 보은 보은읍), '달재'

(月嶺里: 경남 창녕 연산면),  '달애'(다래/月川里: 강원도 삼척 원덕면,  月湖里: 원주군 지정면), '달의'

(月外: 충북 옥천군 안내면), '댈울'(달울/月溪: 충남 보령 월전리)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이들 땅이름을 두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땅이름에서의 '달'은  하늘의 달(月)과는  대개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  山  (글: 지명 연구가,  배우리)

 

 

'작은 들'의 뜻인 '잔다리'

 

'달'이 연철되면 '다라' 또는 '다리'가 된다. 그래서 '다랏골'(다락골), '다리실' 같은 땅이름으로 옮겨

진다. '달'의 연철인 '다리'는 묘하게도 다리(橋/교)와 음이 같아 진짜 다리 관련 땅이름과 섞여 '다리'

가 어떤 뜻으로 븥여진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가 않다.  '다리',  '다라', '다래'로 시작하는 땅이름은

대개 '달'을 그 뿌리로 하는 것이 많다.

 

  다랏골 : 달 + 아(의) + 골
  다라실 : 달 + 아(의) + 실
  다래울 : 달 + 애(의) + 울
  다릿개 : 달 + 이(의) + 개
  다리실 : 달 + 이(의) + 실
  다릿목 : 달 + 이(의) + 목

 

이들 땅이름은 한자로 교곡(橋谷: 강원도 삼척 도계읍 마교리 등), 월곡(月谷里: 충남 당진 당진읍 등),
월송(月松洞: 충남 공주 등), 교포(橋浦里: 경기도 평택 오성면 등), 교항(橋項: 인천 강화 양사면 교산

리 등)같은 이름이 되어 전국에 널려 있다.

 

그런데 이들 땅이름에서 '다리'가 들어간 것이 해석상의 문제가 된다. 그 '다리'가 내나 강에 놓인 다리

를 뜻하느냐, 아니면 '들'의 뜻인 '달'의 연철형이냐 하는 점인데, 전국에 퍼져있는 '다리'  지명들을 대

개는 다리(橋/교)의 뜻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

판교(板橋)라는 땅이름도 그 하나의 예,  그러나 이 지명은 다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원래 '너더리'
(너덜)로 불려왔던 것이  '널다리'로 잘못 해석,  한자로 옮길 때 널을 판(板)으로, 다리를 교(橋)로 취

했기 때문이다. '너덜'은 '넓은 들'의 뜻이다.

 

   넓들 > 널들 > 너들 > 너덜(너더리)

 

판교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을 비롯, 행정지명만도 전국에 5개나 있다.

------------------------------------------------------------------------------------------

충남 예산의 삽교(揷橋)는 '삽다리'가 원래 지명이다.

'삽다리'는 '삿다리'로 '사이(샅)의 들'(間坪)이란 뜻을 담고 있다. 삽을 놓고 건너 다녔던 삽다리도 아

니고, 섶으로 만든 섶다리도 아니다. '잔다리'라는 곳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등

에서 세교(細橋), (棧橋里) 등의 한자 지명을 달고 있지만, 다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잔다리'는 '잔

들'  즉 '작은(좁은) 들'의 뜻이다.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의 '한다리'(白橋), 충남 당진 석문면의 '다리

길'(橋路里)도 들 관련 땅이름이다.

 

'들안'이 '달안'으로

 

'달', '다리'가 들(野)의 뜻으로 담아 있음직한 곳을 몇 군데 소개한다.   경기도 안양시의 평촌동 일대,
이 곳은 북쪽과 동쪽에 각각 관악산과 모락산이 가까이 있고, 서쪽으로 수리산이 제법 멀리 보이는 너

른 벌판이었는데,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있다.  '벌말'(坪村洞), '날미'(飛山洞), '한벌말'

(冠陽洞),  '범내'(虎溪洞) 등에 살았던 토박이들이 새 도시 형성으로 농토를 내어놓고 다른 곳으로 옮

겨갔다.  이 벌판에 조그마한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마을이름이 '달안이'였다. 10여 채의 집들로 이루

어졌던 마을인데, 도시계획이 이루어지기 전에 찿아 갔을 때에는  서너 집 정도의  빈 집이 있었는데,

보상금을 받고 그 곳을 떠났다고 한다. 그 당시 마을에서 박재웅이란 사람을 만났는데, 그의 애기로는

몇 달 안에 '달안이'마을이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관에서 계속 이주를 독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달안이'라는 마을이름이 어떤 뜻으로 붙은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어렸을 때 들었다는 어른들의 애

기를 인용하였다. " 여기가 평평한 들 가운데라 비만 오면 물이 안 빠져 길까지 진구렁창이 었대요. 그

래서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살기 힘든 동네라고  딴 곳으로 달아났답니다. 사람들이 잘 달아나는 마

을이라고 '달안이'라고 했다는 애기를 들었습니다." 누가 꾸며낸 이야기인지 역시 이 마을에서도 믿기

어려운 지명 유래를 남기고 있다. 이 마을은 들의 안쪽이었다. '달안이'는 아마도 들 안이란 뜻의 '들안

이'였을 것이다.

들 마을에 많은 '다리' 이름

 

다음에는 속리산 법주사 입구의 보은읍 외속리 방향으로 나가 보았다.  이 곳에는 '배다리', '긴다리',

'방아다리' 등 '다리'가 들어간 땅이름이 많아 여기서의 다리가 어떤 뜻을 담았는지를 알고자 해서였다.

 

'긴다리를 먼저 들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보은군 외속리면의 구인리, '긴다리'라 해서 먼저 마을에서

다리를 찿아보았는데,  그런 다리가 눈에 띄질 않았다. 다리가 놓일 만한 큰 내도 없었다. 마을 어른들

을 만나 물어보니 다리 이랴기는 하질 않고 마을의 한자식 이름 구인(求仁)에 대해서만 열심히 설명하

였다. '긴다리'라는 이름이 다리가 긴 것이 있어서냐고 거듭 물었다.  "긴 다리는 있을 리도 없죠. 옛날

에는 있었다고 듣긴 들었는데..."    그러나 그 긴다리가 있었을 만한 큰 내가 이 마을엔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긴 다리가  '장교'(長橋)의 뜻이 아닌 것이 틀림 없다.  이 곳의 들이 북쪽 말치

(말티고개)골짜기까지 길게 뻗은 것으로 보아 '긴다리'는 '긴들'(長坪)임이 확실했고, 이곳의 행정지명

'구인'은 '긴'을 소리빌기로 취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찿아들어간 곳은 '방아다리', 625 직후 까지도 10여호나 있었다는 이 마을은 살기가 어렵다고

한 집 두 집 빠져나가고 7채의 집밖에 남지 않았다.  몇해를 비어 놓아 다 헐어진 집도 보였고 집터였던

곳의 돌무더기들이 군데 군데 보였다.  그나마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마저 주로 60살 이상의 노인이었

다.  읍내 예식장으로 가는 길이라는  한 노인을 만나  '방아다리'란 이름을 가진 이 마을의 이름 유래를

물었으나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 마을엔 다리도 없다고 했다. 다만 들 모양이 방아처럼 생겨서

'방아'라는 이름이 붙었을 거라는 설명에는 수긍이 갔다.

 

다음으로 구인리에서 직선 거리로 서쪽으로 3km 떨어진 '배다리'를 찿았다.
그렇지만 곧은 거리로는 가는 길이 없어 보은 읍내를 거쳐 10k의 길을 돌아갔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보

은읍 월송리(月松里). 이 곳의 이장이었던 김영년씨를 만나 애기를 들어보았으나, 다리에 대한 설명은

들을 수가 없었다. "비가 엄청나게 온 해에 이 앞의 들판이 완전 물바다였답니다. 물이 오랫동안 안 빠

져서 마을 사람들이 배를 타고 다니면서 농사를 지었다는 거죠. 그래서 마을이름에 '배'자가 붙었대요"

만일 이 곳이 물바다였다면  이 아래쪽의 보은 읍내를 완전히 쑥밭이 되었을 것이다.  이 곳의 '배다리'

도 역시 다른 곳의 배다리처럼 '뱃들'(밧들)이 원이름일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또 딴 마을을 향했다.  
   

                                                                                   ........  山  (글: 지명 연구가,  배우리)

 

 

손톱은 '손의 돌'이란 뜻
 
'손톱'이란 말은 '손'과 '톱'이 합쳐 이루어진 말이다.

여기서 '톱'은 무슨 뜻이고 그 어원은 무엇일까?  나무를 써는 쇠연장도 '톱'인데, 손톱의 '톱'은 그것과

같은 뜻인가?  현재의 우리말 중에는 격음화한 것이다. '돕'은 '돌'(石)의 옛말인 '돋'의 음과 가까운 것

을 보면 돌의 뜻일 가능성이 있다. '손돕'(손톱)은 '손의 돌'이라는 뜻일 것이다.

 

   손 + 돋 > 손돋 > 손톱
   발 + 돋 > 발돋 > 발톱

 

그러나  여기서  '돋'은 단순히  돌(石)의 뜻이 아니라  돌과 같이  단단한 부분의 뜻으로 씌었으리라고

본다. 석기시대에는 돌이 주된 연모였다. 따라서 돌을 깨뜨리거나 갈아서 만든 돌연모들도 대개 '돌'의

뜻이 들어간 이름으로 붙여졌다.

 

'도끼'라는 낱말도 '돌'에서 나왔다. 지금은 도끼가 쇠로 만들어지지만 석기시대엔 돌 그 자체로도 도끼

구실을 했을 것이니 돌의 뜻이 자연스럽게 들어갔을 것이다.  '도끼'의 옛말은 '도채' 또는 '돗귀'였다. '돛'에 접미사가 붙어서 형성된 것인데, '돛'은 '돌'을 뜻한다.

 (적색 글씨는 아래아, 반시옷) 

 

   돛 > 돛에 > 도채
   
   도치' 가젯 한아빈 <두시언해초간. 漆/26>
   '도부(斧)  <훈몽자회. 中/16>
   '돗귀.<월인천강지곡.106>

 

'도최'라고 쓰이었는데, 역시 '돛'에 '의' 접미사가 붙어 이루어진 낱말이다.

 

   '도최와 鉞(월)와' <능엄경언해.八/85>
 
일본어의 '다찌'(大刀)나  '도쓰'(短刀)라는 말도  돌의 뜻인 '돛'(닻)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 우리말과의
친척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한다. 또 일본어에 '쓰루기'(劍)란 말도 있는데, '쓰루기'의 쓰루는 '들'이 구개

음화한 것일 것이니 역시 우리말의 '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석기시대엔 톱도 돌로 만들었다.  톱이라고 해야  돌칼(돌을 날카롭게 다듬은 것)과  비슷한  형태였고,

다만 날에다 약간 굴곡을 두어 물건을 썰기에 알맞게 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연장도 '돌'의 뜻이 들어간

이름으로 되는데, 그것이 '돕'이고 이것은 다시 격음화해서 지금의 '톱'이란 말로 되었다.

 

   돋 > 돕 > 톱

 

'톱'이 '돕'이었음은 지금의 '손톱', '발톱'이란 말이 옛날에 '손돕', '발돕'으로 쓰인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밧돕 다 다만대 낫 돈이니' <박통사언해 초간. 上/52>
   '손돕 조(爪)' <훈몽자회. 上/26>
   '부디어나 손토보뢰어나' <석보상절. 十三/52>

 

'손톱', '발톱'의 '톱'이 돕으로도 쓰인 것으로 보아, 이 말은 일찍 격음화한 것 같은데, 이것이 조선시대

에 와선 섞여 쓰인 듯하다.

 

'자르다'라고 하는 우리말도 '돋'이란 음과 그리 멀지 않다.
'자르다'의 뿌리말은 '잘'인데, 소급해 올라가면 '돋'과 형제격인 '닫'에 다닫는다.

 

   잘 < 달 < 닫

 

일본어의 '다찌'(斷)도 그 어근이 '닫'이므로 이 말도 우리말의 '잘'(자르다)과 통하고 있다.
석기시대엔 자르는 일도 돌을 이용했을 것이므로 이런 말이 이루어졌으리라는 추측이다.

 

                                                                                     ........  山  (글: 지명 연구가,  배우리)

 

 

제주도는 온통 돌 지명

 

돌 관련 땅이름은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여러 글자로 나타난다.

석(石)자로 의역된 것이 많고, 돌(突), 독(獨/禿), 도(道) 등의 한자로 음역된 것들도 적지 않다.

또 '독'이 '독'(그릇)과 음이 같아서 옹(甕)자로 옮겨진 경우도 있다.

 

돌이 많은 제주도에는 그 돌만큼이나 돌 관련 땅이름이 많다.
제주도의 들은 온통 돌이어서 들이름에도 온통 '돌'자가 붙어 있다.

'돌'의 옛말은 '드르'인데, 이 옛말이 돌 많은 이 섬에 '돌'(독)과 '드르'가 합성된 형태로 많이 남아 있다.

서귀포시 상예동의 '돗드르', '독귀드르',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조천읍 함덕리 등의 '돈드르' 등.

 
'들'이 '다리'로 옮겨간 '독다리'(남제주군 대정읍 무릉리), '독만다리'(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같은 이

름도 있다.  또 '들'이 '트레', '터리'로 격음/연철화 한 '도트레'(구좌읍 상도리), '돌터리'(북제주군 애월

읍 장전리)같은 이름도 있다.  이 곳에선 들을 '불', '뱅디'라고도 해서  '독불'(북제주군 한경면 두모리),

'동뱅디'(애월읍 상귀리)같은 들이름도 있다.


이밖에도 '돌석이'(남제주군 표선면 세화리), '독색이'(구좌읍 월정리), '돈방이'(애월읍 남읍리),'동모살'

(구좌읍 행원리), '동머르'(남제주군 성산면 시흥리), '돌혹'(북제주군 남원읍 의귀리), '돌모들'(북제주군

남원읍  수망리),  '독짓골'(애월읍  광령리),  '독재'(서귀포시 상예동),  '독곶'(북제주군 한경면 조수리),

'돌구릉'(북제주군 한경면 관포리), '돌고비'(애월읍 광령리), '돌크리니'(애월읍 상가리), '돌깐이'(구좌

읍 연평리),  '돈무덕'(북제주군 추천면 대서리),  '목돌개'(대정읍 신풍리), '검은덕머를'(애월읍 남읍리)

등 다른 지방에선 알기 어려운 돌 관련 들이름이 있다.

 

밭도 돌 투성이다.

그래서  '돗밭'(남제주군 안덕면 화순리, 표선면 토산리, 한림읍 금악리), '돌팟' (남제주군 남원읍 수망

리), '돌혹밭'(제주시 용강동, 안덕면 상창리, 구좌읍 평대리)같이  '돌밭'이란 뜻의 땅이름이 깔려 있다.

 

'왓'은 '밭'이라는 뜻의 제주도 특유의 사투리인데, 이 때문에 '독다리왓'(대정읍 무릉리),'독골왓'(서귀

포시 서호동),  '돌레왓'(한림읍 한림리), '동쿠왓'(구좌읍 서금녕리), '동태왓'(애월읍 신엄리), '돔빙이

왓'(만덕면 대평리),  '돗질왓'(북제주군 조천읍)같은 돌 관련 밭이름이 있다. 한림읍의 '돌레왓'은 엉뚱

하게 '흉년에 돌레떡(돌떡)과 바꾸어 먹은 밭'이라고 이름풀이를 한 책이 있다.

 

그 밖에도 '돌캐'(성산읍 삼달리),  '도꼬마리'(성산읍 신풍리), '돌쌩이터'(성산읍 신풍리), '돌뿌지'(한

경읍 저지리), '돌다릿캐'(한경읍 용수리), '돌팽이'(애월읍 이음리), '돈방이'(애월읍 애월리) 등의 이름

들이 있다.

 

마을이름에도 '돌'이 빠질 수 없다는 듯 많은 이름들이 '돌'(돗)을 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돌'이 '돈'의 음으로 되는 것이 이 지방의 특징인데,  그러한 예를 이 지방 땅이름들에서

찿아볼 수 있다. 제주도에 가장 많은 마을 이름은 '동카름'인데, 이것은 '돈'(돌)과 '가름'이 합성된 말로,

합성 과정에서 '가름'이 '카름'으로 격음화한 것이다. 제주도 사투리로 '가름'은 '마을'의 뜻이다.

 

   돈(돌) + 가름 > 돈가름 > 돈카름 > 동카름

 

즉 '동카름'은  돌마을(石村)의 뜻으로 제주도 지역 거의 전체에 이 이름들이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제주도의 마을이름은 '동동내'이다.  이 이름도 한 동/리에 평균 하나씩 있어서 고유

명사라기보다 보통명사 같은 느낌을 줄 정도 이다.   어느 한 지역엔 '동동네'가 여럿이 몰려있어 '어느

동/리의 동동네'라고 해도  구분이 어려울 지경이다.   '동동네'는 '돈'(돌)과 '동네'가 합성된 이름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이름도 '돌마을'의 뜻이 되는 것이다.

 

   돈(돌) + 동네 > 돈동네 > 동동네

 

'동똥'(구좌읍 월정리),  '동모살'(애월읍 곽지리), '동모랏'(북제주군 추자면 신양리), '돈놀래' (구좌읍

연평리), '돈지'(조천읍 북촌리, 한림읍 금악리) 등과 같이 돌 관련 마을 이름에 대게 '동'과 '돈'을 앞에

달아 놓고 있다. 그 밖에 '독지골'(제주시 이도동), '들돌거리'(애월읍 상가리), '돗드르'(서귀포시 토평

동) 등의 돌 관련 마을이름이 있다. 토평동의 '토평'(吐坪)은 바로 '돗드르'(돗+돌)를 한자화시킨 것이다.

    
산과 고개와 우물 이름에도..

 

산도 온통 돌이어서 '돌'자가 많이 들어가 있다.

'돌오름'(猪岳: 구좌읍. 287m, 石岩: 구좌읍 송당리. 370m)을 비롯해서 '돌동산'(안덕면 덕수리), '독산'

(石山:추자면 대서리),   '독개동산'(구좌읍 평대리),  '독돌'(남원읍 의귀리),  '독자봉'(성산읍 신산리),

'돌리미'(성산읍 수산리), '돔배오름'(조천읍 교래리) 등은 모두 '돌'의 뜻이 들어간 산이름들이다. 저악

(猪岳)으로도 불리는 구좌읍의 '돌오름'은 '도너리오름' 또는 '돛너리오름'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돛

(돼지)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시 도두동에는 '도돌오름'(도돌봉)이라고 불리는 작은 산(67m)이 있는데,한자로는 도원악(道圓岳)

이라 쓰고 있다. 도두동의 (道頭)도 이 산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그러나 '도두'는 '돋은' (솟아난)의

뜻일 가능성도 있다.   조천읍의 돔배오름은  '돔배'(도마)와 같아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있으나

역시 '돌오름'의 뜻일 것이다.

 

고개이름에도  '독모르'(남원읍 한남리),  '독대기모르'(남원읍 한남리), '턱모르'(표선면 가시리) 등 돌

관련의 것이 많은데, '모르'는 '뫼'란 뜻의 옛말이자 제주도 사투리이다. 물이 귀한 제주도엔 대개 우물

을 파서 물을 이용하였다. 역시 돌이 많은 땅이라 우물이름에도 '돌'이나 '독', '돗'자가 붙은 것이 많다.

'독물'이란 이름의 우물이 남제주군 대정읍 신평리, 성산읍 난산리 등 여러 곳에 있다. '돗물'이란 이름

의 못이나 우물도 성산읍 시흥리, 안덕면 화순리, 표선면 가시리, 남원읍 의구리, 성산읍 시흥리,한림읍

시흥리 등 무척 많다.

 

애월읍 금성리에 있는 '돝물'은  소(淵)의 이름인데,  어느 부자가 많은 돝(돼지)을 기르며  물을 먹여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돗물'로 '돌물'(石水)의 뜻이다. 제주시 월평동에도

'돌물'이 있다.


'돌샘'의 뜻인 '동새미', '독지새미'로 불리는 우물들도 제주시 월평동, 영평동, 아라동 등 몇 곳에 보이

고, '돌우물'의 뜻인 '독우물'도 조천읍 대흘리 등 여러 곳에 있다. 그밖에 '돈배물'(애월읍 어음리), '돌

통'(구좌읍 덕천리),  '독숭물'(제주시 해안동),  '도래물'(서귀포시 서귀리),  '돈짓물'(한림읍 수원리)
같은 이상야릇한 이름들도 있다.

 

성산읍 신천리에는 '도리못'이라는 못이 있다.

하천 이름에도 돌이름이 없어지지 않는다. '도근내'(獨近川: 제주시 근처), '돔박이내'(안덕면), '도태미

내'(구좌읍), '도루샛내'(구좌읍) 등. 이 외에도 '돌코지'(조천읍 신촌리)와 같은 곶(串)이름,'돌섬'(乭島:

추자면 영흥리)과 같은 섬이름,  '돌배'(대정읍 일과리)와 같은 무덤이름,  '독디골'(서귀포시 동홍동)과

같은 골짜기 이름 등 제주도는 그 땅이름들에서도 돌의 고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  山  (글: 지명 연구가,  배우리)

 

 

돌의 뜻이 독으로도 옮겨가...

 

돌 관련 땅이름은 한자의 석(石)자로 가장 많이 취해져 있다.
충남 당진군 합덕면 등의 석우(石隅 = 돌머리/돌모루),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등의 석현(石峴=돌고개)

충북 청원 강내면 등의 석화(石花=돌고지), 전북 부안군 진서면 등의 석포(石浦=독개/돌개), 경남 마산

시 등의 석전(石田=돌밭), 충남 청원 직산면 등의 석곡(石谷=돌실/독실), 석교(石橋=돌다리/독다리) 등

이 그 예.

'돌내'로 불리던 땅이름이 석천(石川)으로 된 예가 있는데, 돌내 중에는 물이 둥글게 휘돌아 '도는 내'의

뜻으로 붙여진 것이 있다. '돌'은 남부 지방에서 '독'으로 많이 불러오는 관계로 한자로 '독(禿/獨/篤)이

되어 독산(篤山=독뫼), 독도(獨島=독섬), 독내 등의 지명을 이루었다.

 
또 '독'은 뒤에 ㄴ,ㅁ의 음이 따라 오면 '동'으로 발음되어 동막(東幕=독막), 동내(東川=독내) 등의 이름

으로 변하기도 했다. 또 '독'은 항아리의 뜻인 '독'으로도 옮겨가 옹암(甕岩=독바위), 옹정(甕井=독우물)

옹포(甕浦=독개), 옹산(甕山=독미) 등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강원도 속초시의 대포동(大浦洞) 근처 바닷가에는 외옹치리(外甕峙里)라는 갯마을이 있다.

자그마한 언덕 비탈에 바닷가를 향해 펼쳐져 있는 마을인데, 전에는 법정동이었으나 지금은 지금은 대

포동이라는 행정동에 속해 있다. 이 마을 근처에 '독재'라는 작은 고개가 있는데, 지금은 고개이름으로

보다는 마을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독재 마을은 '안독재'와 '밧독재'로 갈라 부르기도 한다. '밧독

재'는 '안독재'의 상대적인 뜻을 가진 땅이름으로, '바깥쪽의 독재'라는 뜻이다.이 곳의 '독'도 '옹'(甕)

자로 취해져서, 안독재와 밧독재가 각각 내옹치(內甕峙)와 외옹치(外甕峙)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독'이나 '돌'이 도(道, 挑, 陶)자로 옮겨진 경우도 적지 않다.

전남 장성군 삼계면 상도리, 경북 상주 공성면, 경기 안성 양성면, 경북 영덕 축산면 등의 '돗골'(독골)

은 각각 도동(道洞), 도곡(道谷/桃谷/陶谷) 등으로 옮겨졌다. 서울 강남구의 도곡동(道谷洞)도 '독골'

(독구리)이 한자화한 것이다.  돌 관련 땅이름엔 이밖에도 한자로 덕(德), 돌(突), 회(回)가 들어간 것

들 중에서도 더러 있다.

 

                                                                                 ........  山  (글: 지명 연구가,  배우리)


 

'慰禮城 地名由來'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과 관련지명  (0) 2009.02.16
색깔과 지명  (0) 2009.02.16
아차산의 유래  (0) 2009.02.16
용에 관한 지명들  (0) 2009.02.16
할미성의 유래  (0) 2009.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