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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망경산 구룡사, 창건(創建)과 멸실(滅失)
지금으로부터 약 1300여년 백제 의자왕 11년, 신라 진덕여왕 5년인 서기 651년 신해년(辛亥年)에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창건하고, 서기 831년에 진산조사(珍山祖師)가 중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룡사는 백제의 화려한 불교문화로부터 국운의 쇠망(衰亡)시기에 창건되고, 서기 600년 의자왕 20년 신라에 항복함에 신라의 그 융성하고 찬란한 불교문화의 꽃을 피웠던 때의 사적을 찾아볼 수 있다. 민족의 5천년 역사 속에 외침의 국난이 끊이지 않았음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며, 이 오랜 민족의 수난에도 우리의 선조들은 이를 슬기롭게 대처해 왔다. 그러나 1596년(선조30년) 정유재란 당시, 원군으로 왔던 명나라 부총병 해생(副總兵 解生), 참장양등산(參將洋燈山)이 직산(稷山)=백제건국 당시 위례성 에서 복병(伏兵)으로 왜군(倭軍)을 섬멸하려고 할 때, 이미 왜장(倭將),좌우대장(左右大將),모리(毛利),선봉장(先鋒將),가또오(加臟淸正),구로다(墨田長致)가 왜병을 이끌고 공주,천안,청주를 점령하고, 북상할 때 구룡사의 주지승을 비롯하여 많은 승려와 승군이 한양을 지키기 위해 결사 항쟁하였다. 이때 참살 당하였고, 구룡사는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때 승의병 으로는 계룡산 갑사의 청련암에서 수도하고 있던 기허당 영규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중봉 조헌의 병장과 합세하여 청주를 수복하고 이어 전라도를 향해 진격하는 왜장 고바야시(少早川降景)와 금산에서 접전중 기허당 영규대사는 전사하였다. 이과같이 수난의 민족사가 구룡사의 역사라고 하겠다.
(삼국유사,고려사,고려사절요,대정회동,선조실록)
2. 중 건(重建)
정유재란 때 기허당 영규대사 등 고승들은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구하고자 승병을 일으켜 왜병과 싸운 것에 대한 보복의 만행으로 왜병들은 전국의 많은 사찰을 불태우고 오래된 절터의 유물과 문화재를 파괴하고 인명과 재산에 손실을 주었던 것이다. 이때 소실된 이후 폐허속에서 절터만 남았던 것을 1916년에 조그마한 암자를 지어 구룡사의 맥을 이어오다가 1940년에 오장보살(일명 호랑이 보살)이 오늘의 건물을 중건하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폐허속에서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되어 있던 까닭으로 사리탑은 파괴되고 2,000개의 부도(浮屠)등 많은 유물은 도난당하였음은 물론 이 고장의 옛 역사가 망각 속에 사라져간 지금 이곳 저곳에 민족의 얼이 담긴 탑과 주추와 기둥 등이 뒹굴고 있는 사적(寺蹟)을 모아 창건 당시의 화려하고 찬란했던 옛 모습을 재현해 보고자 한다.
3. 구룡사(九龍寺)에 관한 설화
일설(一說)에 의하면, 창건 당시의 절의 규모가 융성했을 때는 이곳에서 수도하는 스님이 3,000명이 되어 공양미 씻은 물이 지금의 백자리를 가로질러 흐르는 개울물이 뿌옇다고 해서 은천(銀川)이라고 불렀으며, 이때부터 구룡사를 일명 은천사(銀川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4. 지리적(地理的) 사적(寺蹟)
구룡사가 위치해 있는 산은 마곡사와 광덕사를 연잇는 차령산맥이 쑥 뻗어 나오다 불끈 곳은 망경산(望京山)이다. 망경은 서울 즉 한양을 바라보다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 망경산에는 망경대(望京臺)가 있다. 이 망경대는 우리의 조상들이 통신의 한 방법으로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빛으로 적군의 침입등 위급을 알리는 신호를 하던 봉수대 이다. 망경대는 올라 심호흡을 한번하고 동.서.남.북 어느 곳을 바라 보아도 앞이 탁트여 속이 시원함은 말할 것도 없고 봉수대로서 아주 적합한 곳이란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또 망경산 봉우리와 망경대를 중심으로 하여 봉화대를 표시하기 위한 표주(標株)가 현재까지 남아 있고, 경계를 설정한 축이 지금도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 봉수는 고대에도 사용했지만 법제하(法制下)에 정식으로 실시하게 된 것은 1149년(기사) 8월 고려(의종3년)때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망경산의 정기를 받고 있는 구룡사를 위시해서 바로 아래 부락이 백자리 (百子里)이다. 그리고 증자(曾資)와 한신(閑身)이 있고, 한버들과 장재울이 있다. 이는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가? 여기에 몸을 닦고, 심신을 단련하고 수련한다는 닦을 수(修)에다 우주 대천지를 축소한 오작육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몸을 나타낸 몸 신(身) 자(字)의 이름을 가진 수신면이란 행정단위의 지명이 있다. 이는 우연히도 아니 의도적으로 두자씩 겹치는 글자가 있다. 백자(百子)와 증자(曾資)의 자가 한신(閑身)과 한버들의 한(閑)자가 한신과 수신의 신(身) 자다. 이를 해의(解義)하면 자자(字字)하면
자자손손(子子孫孫) 즉 대대손손(代代孫孫)이 되겠고, 백자(百子)는 중국의 성현인 공자(孔子)요 증자(曾子)다. 한(閑) 한하면 한적하게 또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신신(身身)몸을 닦은다. 이는 참으로 불가사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의 빛나는 역사속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암시한 것으로서 이곳이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청정도량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서는 멀지 않은곳에 흑성산(黑城山)이 있다. 이 흑성산 밑에 민족의 수난사(受難史)와 독립의 의지를 후대에 보여줄 독립기념관이 있다. 멀리는 고려 태조가 제(祭) 올린 왕자산(태조산)이 있고, 수신(修身)하기전 몸을 씻을 병천천에는 오늘도 쉬임없이 많은 물이 도도히 흘러 금강을 이루고 있다.
< 글 제공 : 망경산 구룡사...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 >
* 망경산 구룡사, 구룡사 부도탑...천안시 수신면 백자리 //
* 망경산 구룡사, 구룡사 부도탑...천안시 수신면 백자리 //
<<< 오심죽...망경산 구룡사 탐방...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2012.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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