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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의 관문 소사동
소사동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양성군 영통면이었고, 1983년 평택시로 편입되기 전에는 안성군 공도면이었다. 소사동에는 원소사마을, 서지골, 솔밭말, 아랫말(창말)과 같은 자연마을이 있다. 원 소사마을은 경상도 삼랑진에서 남원, 전주, 공주 천안을 거쳐 한양으로 올라가는 삼남대로가 충청도 땅을 지나 경기도로 넘어가는 관문이었다. 마을 앞에는 소사천이 흘렀고 나루터와 목교(木橋)가 설치되어 사람과 물자의 통행이 많았다. 교통이 발달한 마을은 정치적으로도 시달림을 받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는다. 소사동 앞 소사벌은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무성한 갈대밭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지역에서만 밭농사를 지었으며 그나마도 수해와 염해가 심했던 지역이었다. 이 평원에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 백제와 신라가 격전을 벌였고, 임진왜란 때는 조, 명 연합군과 왜군이 격전을 벌였다.
또 청일전쟁 때는 청, 일 양군의 격전지였으며, 6. 25전쟁 때는 국군과 인민군이 수시로 오갔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조선시대에는 소사원이라는 역원(驛院)이 설치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시장이 개설되었다. 소사원은 조선 후기 없어졌지만 시장만은 크게 번창하였다. 시장은 일제시대 평택시장이 발달하면서 폐장(廢場)되었는데 지금도 마을 앞에는 장터, 대장간집, 주막, 우시장과 같은 지명(地名)이 남아있다. 마을이 경기도의 관문 역할을 하면서 조선 후기에는 대동법시행기념비(본래 명칭은 대동법시행선혜비)가 세워졌다.
이 비(碑)는 김육이 충청도에 대동법을 실시한 것을 감사히 여긴 백성들이 경기도로 넘어가는 초입에 세우고 뜻을 기린 것이다. 마을 뒤 당산(堂山)에는 수령 2백년쯤 된 당목(堂木)이 있고 마을 안 미륵당에는 돌미륵이 모셔졌다. 당목(堂木)과 미륵은 부부사이로 예전에는 마을에서 지극정성으로 받들었고 지금도 몇 몇 사람이 치성을 드리는데, 이번에 가봤더니 땅 주인이 당목(堂木) 옆에 빌라를 짓는다고 포크레인으로 산을 뭉게버리고 있었다. 주인은 재산권 행사를 하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해도 허가를 내준 관계기관과 마을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가슴이 답답했다.
서지골은 본래 쇠죽골 또는 소떼골로 불렸다. 조선시대 소사나루 부근에는 조창(租倉)이 있었으며 서지골에는 마굿간이 있었다. 그래서 세곡(稅穀)을 운반해온 사람들이 서지골에서 소들을 쉬게하며 쇠죽을 먹였기 때문에 "쇠죽골" 또는 소떼골이라고 불렀는데, 지명이 한자화 되는 과정에서 쇠죽골과 비슷한 소리가 나는 서지곡(서직곡)으로 바뀌었다. 항간에는 소사장 서쪽이라서 서직골이라고 불렸다는 의견도 있고, 지형이 소가 여물을 먹고 있는 형국이라서 쇠죽골이라는 설(說)이 있는데 지나치게 풍수지리적으로 이해하려는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동방학교를 중심으로 서북쪽 마을이 솔밭말, 남동쪽 마을이 아랫말이다. 두 마을은 한자로 송전(松前)이로 표기되었으며, 솔밭말은 마을 주변이 온통 솔밭으로 둘러싸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창말이라고도 불리는 아랫말은 솔밭말 아래에 있으며 조선시대 사창(社倉)이 있어서 생겨난 이름이다.
2.사창육고가 있었던 구룡동 마을
소사뜰을 가로질러 솔밭말로 가는 길에 진사리에 사는 김용지(78세) 옹을 만났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길을 막고 말을 건넸다. 행정구역으로 평택시는 아니지만 진사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우림아파트, 삼성아파트, 주은청설아파트와 같은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평택의 생활권 안에 들어온 마을이다. 이 마을은 진촌(포), 고려촌, 옹촌(독사골)과 같은 세 개의 마을로 형성되었다. 이 가운데 중심마을이 진촌이었는데, 구룡동마을, 현촌마을과 함께 옛 양성현(군) 구룡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진포라는 포구(浦口)가 있었다. 그래서 마을 안에 조창(租倉)도 있었고 사람의 왕래도 잦았다. 고려촌과 옹촌은 양진으로도 불리는데 일제시대 이 마을 입구에 양진국민학교가 설립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김용지 옹에 따르면 자신이 어릴 때만 해도 소사벌은 온통 갈대밭이었고 소사천 물줄기도 현재처럼 곧지 않았으며 하천의 폭도 무척 넓고 깊어 배들이 드나들었다며 세월이 변한 만큼 주변 환경도 많이 변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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