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 山城 探訪

천안 도토성~문성 탐방-1

吾心竹--오심죽-- 2012. 2. 1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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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의 산성(山城

연번

산성

위치

시대

축조방식

둘레

대표 수습유물

1

慰禮山城

입장 호당~북면 운용

백제~신라

테뫼식

950m

삼족기, 우각파수호

2

聖居山城

성거 천흥~목천 석천

백제

테뫼식

550m

백제 타날문토기

3

文城(農城)

성거 문덕리

초기백제

자연지형

700m

타날문토기, 토기편

4

蛇山城(城山)

직산 군동리

백제~신라

복합식판축

1,780m

무문토기, 단각고배

5

都土城(猪城)

직산 판정~성거 정촌

백제~신라

구릉 토축

400m

타날문, 인화문토기

6

龍臥山城

직산 마정~음봉 월랑

백제

테뫼식석축

300m

토기, 자기편

7

木川(南化)土城

목천 남화리

백제

판축토성

450m

토기, 기와, 옹기편

8

黑城山城

목천 남화리

백제

테뫼식

400m

토기, 자기, 기와편

9

鵲城山城

병천 매성~북면 매송

백제 추정

테뫼식

300m

토기, 백자편

10

細城山城(農城)

성남 화성리

마한~백제

테뫼식석축

280m

격자문, 민무늬, 고배

11

大井山城

성남 대정~전의 관정

백제 추정

테뫼식석축

150m

수습못함

12

高麗山城

성남 소사~소정 고등

백제, 고려

테뫼식

250m

타날문토기, 기와편

13

斗南(九龍)山城

풍세 두남리~구룡동

백제

테뫼식토성

200m

토기편

14

靑龍(泰華)山城

광덕 매당리(자무실)

백제 추정

테뫼식

500m

기와, 토기편

15

銅城山城(農城)

동면 광덕~병천 도원

마한~백제

테뫼식

500m

토기, 기와편

16

廣德山城

동면 광덕리~행암리

백제 추정

테뫼식

300m

토기편

17

花溪(桃源)山城

동면 화계~병천 도원

백제

테뫼식

775m

격자 타날문토기

18

徐林山城

동면 송연~오창 후기

백제

테뫼식

450m

타날문토기

19

國師峯山城

동면 장송~진천 계산

백제~신라

테뫼식

300m

유물 수습 못 함

20

歡喜山城

동면 장송~진천 계산

백제~신라

테뫼식

500m

유물 수습 못 함

21

下長土城

동면 장송리

초기백제

편축식토성

?

적갈색 연질토기

22

望京山城

수신 백자~연기 전동

백제

테뫼식

660m

유물 수습 못 함

23

淸堂(三龍)山城

천안 구룡동~삼용동

백제

테뫼식

350m

백제 토기편, 기와편

24

日峯山城

천안 용곡~다가동

마한~백제

테뫼식

300m

격자타날문

25

月峯山城

천안 쌍용동

백제

테뫼식

260m

타날문토기

26

鳳棲山城

천안 성정동

백제

테뫼식

250m

타날문토기

27

白石土城(靈城)

천안 백석동~성성동

청동기~마한

테뫼식

300m

청동기, 석기

28

王字山城

천안 안서동

고려

자연지형

?

유물 수습 못 함

)...지표조사 탐방 결과 종합

 

 

 

 

 

 

 

 

 

 

 

 

 

 

 

 

 

 

 

 

 

 

 

 

 

 

 

 

 

 

 

 

천안시역사문화연구실...국립문화재연구소(1998), 충남역사문화연구원(2011)

 

3. 문성(文城...백두대간 금북정맥 직산지맥, 해발 약80~90m)

산성

위치

시대

축조방식

둘레

대표 수습유물

文城

(農城)

성거읍 문덕리~ 정촌리

초기백제

자연지형

700m

 

타날문토기, 무문토기편

 

 

◎ 문성(文城)은 그간 그 어떤 기록문헌에도 남아있지 않고,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직산현지(1899년) 산천조에 <현 남쪽 10리에 있다>고 짧게 기록되었고, 성지편, 고적편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고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았다.

 

백제초도라 전해지는 위례산성의 수차례 발굴에 의심을 품고, 서울 풍납토성, 몽촌토성, 공주 공산성, 부여 부소산성, <왕성=평지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역사적으로 백제의 도읍 형승이 북대천수(北帶川水)의 지형됨을 의심스럽게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직산 땅 어딘가에도 비슷한 지형을 추적하게 되었다.

 

북대천수의 지형으로 그간 사학계에선 성환읍 안궁리(양양리+궁리), 도하리(도감리+하리)를 위례성 혹은 마한의 도읍지 등으로 추정하였던바 일리는 있으나 험준함이 약해서 항시 의심을 품게 되었다.

 

일제시대 신문 직산사금광 기사를 검색하다가 “사금 채취시 입장면 용정리 한천 강바닥 약10m 지점에서 고대 뱃조각(주즙)들이 발견되어 백제 위례성시대엔 강바닥이 매우 깊어 배가 통행했을 가능성이 있다“에 주목했다.

*한천(漢川,大川)...아산만~안성천~도하리~입장 용정리~성거읍 문덕리~요방리.

 

성거 모곶(모전리, 일명 띄우지, 띠우지), 대문앞들, 천흥바다들, 신두(섶머리,섬머리),

모시울(저리), 만호들, 도토생이(도토성) 등 기록문헌에도 없는 동네 어른신들의 마을 지명유래를 추적하다가 <도토생이>에 주목하고, 직산현지에 기록된 저성(猪城)의 순우릿말이 도토성, 톹성임을 알게 되었다.

토토성(저성) 주변 1~2km 지역의 정밀지표조사를 매주말 답사하며 발품을 팔았다.

문성은 경부고속도로와 접해있고,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최근까지 성환활주로 공군비행장으로 사용 되었던 곳이고, 성거읍 문성리란 지명이 있을뿐, 성터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장마철이라 잡풀과 잡목이 얽혀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민묘 이장 터에서 우연히 토기편을 주워왔는데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감정결과 타날문토기편으로 기원전후~AD3,4세기를 추정한다. 몇 차례 재방문하면서 수습한 타날문토기 및 무문토기편 등 유물을 몇몇 교수들에게 의뢰 감정한 결과 놀랍게도 제작기법, 태토상태 등등으로 편년연대가 BC3C~AD3,4C로 추정하였다.

 

문성은 나지막한 동네 뒷산이며 주변엔 넓은 들판이 있다.

오목한 자연지형이며 동북향 C자형이다. 둘레 650~700m정도이며 동쪽으로 흐르는 한천(漢川)은 자연해자처럼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건너편 동쪽 위례산성 5.5km, 성거산성 4.7km, 서북 사산성 4km지점에 위치한다.

문성(文城)이라 기록되었지만 지명유래를 종합 검토하여 추정하면

대문, 관문의 성-문성(門城)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거읍 모전리(모곶)의 대문앞들, 대문안 방죽, 모시울 만호들이 이를 방증한다.

 

문성이 위치한 성거읍 문덕리, 정촌리, 삼곡리, 직산 남산리, 판정리, 입장의 호당리, 시장리 일대는 백두대간 금북정맥이 동북~남서쪽으로 막혀 천험을 이루며 아산만 수계의 최상류에 위치하며, 영인지맥과 교차하고 천안 원성천~봉호천~곡교천~ 삽교천 수계의 최상류가 분수하는 분수령이다.

고대의 산성들은 수계(水界)의 최상류에 입지해야만 적의 공격에 안전할 수 있다.

 

위례산성 바로 밑 성거읍 모곶(茅串) 대문앞들~문성까지 일제시대 한천에서 발견된 주즙(舟葺)을 추정하여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왔다면 소형 선박을 통한 고대육로와 해상교통로가 만나는 요충지, 접경지에 문성과 위례산성이 입지한 것이다.

 

문성~만일령, 문성~부소문령, 문성~엽전재(협탄령), 문성~납은치, 도리치 등 서해바다 해상교통로와 당항성로 육상교통로의 중심이며,

이를 통제하고 제어하는 천혜의 요충지에 문성이 위치한다고 볼 수 있고,

고대 강력한 세력집단이 문성주변에 세거하며 주변을 장악하며 통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