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脇呑嶺-협탄령>---吾心竹 詩 //
今勿奴 都堂山城 보름달 외로운데
人跡은 간곳없고 文案山 다가서네
산 넘어 曲澗里요 물 건너 大門里라
돌고개 장터마당 숯 지게 가득한데
西戍院 느티나무 幾百年 살았고야
찬 이슬 그대론데 잎새만 피고 지고
左城山 여기더냐 慰禮城 저기더냐
脇呑嶺 五十里 길 저녁 놀 비끼는데
素沙伐 오리 기러기 북녘하늘 맴을도네
漢川邊 황톳길엔 古人들 뵈질 않고
청룡사 오색구름 별빛 속 잠기나니
해골 물 큰 깨우침을 한 잔 술 달래이네
< 오심죽...협탄령(엽전재, 진천~입장)을 넘으며...2009.11. 4 >
*** <협탄령 詩>--주(注)---
1. 금물노(今勿奴) : 금물노(今勿奴:거물라)...흑성(黑城)-단재 신채호 //
충북 진천군(鎭川郡)의 고려시대 이름은 진주(鎭州), 통일신라시대 이름은 흑양군(黑壤郡), 고구려시대 지명은 금물노군(今勿奴郡). 여기서 ‘흑양(黑壤) = 금물노(今勿奴)’라는 등식(等式)이 형성된다.
‘흑양’이란 ‘검은 평야’를 말한다. ‘금물’이란 ‘검을(검은)’의 옛말이다.
한편 ‘노’란 ‘들판’을 가리키는 고구려말이다. 따라서 ‘흑양 = 검은 들판’이라는 등식이 입증되는 동시에, ‘들판’이란 뜻의 고구려말 ‘노(野)’와, ‘들판’이란 뜻의 일본말 ‘노(野·の)’가, 어김없는 동음동의어(同音同義語)임도 여기서 밝혀진다. [출처-이영희 교수의 고대 철강사]
2. 도당산성(都堂山城, 都唐山城...一名 : 徒幢(郎幢)山城-화랑, 渡唐山城)
충북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 도당산에 있는 신라시대 산성. 석축 산성의 둘레는 824m.
진천읍에서 서남쪽 1km 떨어진 해발 약 200m의 도당산(都堂山)의 정상에 축성된 산성이다.
진천 도당산성과 관련되어 전해지는 설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김유신 장군이 하룻만에 산성을 축성했다고 전해지며, 당나라 소정방이 함께 주둔하면서 고구려군을 막았다고도 전해진다.
3. 문안산성 [文案山城]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문안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앞쪽에는 봉화산(소을산) 봉수대가 있다.
진천읍에 있는 해발 420m의 문안산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석축 산성이다. 문안산 정상부에 테뫼식으로 축성되었으며 정상부에서 능선을 따라 산성을 축성하였다. 지금은 미군부대가 위치함.
4. 곡간리(曲澗,曲干)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면 곡간리.
마을이 산속 깊이 있어서 개울을 따라 꼬불꼬불 올라가는데 온조왕이 위례성에서 도읍할 당시
이곳에 곡식을 쌓아 두었던 곡간이었다 한다. 곳간(곡식창고) = 곡간(曲澗), 곡대라고도 부른다.
5. 대문리(大門里) :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
동네가 서쪽으로 만뢰산을 등지고 산 계곡에 산재(散在) 위치하여 숨은골이라 하였다. 옛날 군사 훈련을 할 당시 물을 가두었다가 이용하는 수문(水門) 이 있었다하여 수문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대문리는 지형상 직산 위례성 동쪽의 부소산 만뢰지맥에 있으며, 곡간리,군단이, 벼장골의 동쪽 입구.
*다물(多勿)-<復舊土>의 고구려어 / 다(多-ta)-大,對,地 / 물(勿-mor)-水,文,門,美,密,頭.龍(彌),馬,物과 대응함 / 그러므로 대문리의 大門은 <다물계-多勿系>의 지명을 의미함.
<출처-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김성호 저>
6. 돌고개(石峴里) :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
장대마을을 장터라 한다. 옛날에는 돌고개라 하였다. 물물교환(物物交換) 이 이루어질 때부터 이곳은 소금장으로 유명하다. 충남 아산만 일대에서 생산되는 소금이 충청 내륙지방인 괴산 증평, 음성 등지에서 이곳 돌고개에 와서 소금을 사갔다 한다. 지금도 앞 냇가에 소금소(沼) 라는 곳이 있다. 백곡면 소재지이며 장터이기에 장대(場垈)라 부른다. 옛이름 돌고개라 한 것은 돌이 많아서 돌고개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 후 돌석(石) 고개현(峴) 자를 써서 석현이라 한다.
7. 서술원(西戌院): 진천군 백곡면 서수마을. 서수원(西水院)이라 부름.
신라시대에는 백제와 국경을 이루고 있던 곳이기에 병정들이 진(陣)을 치고 주둔했던 서수마을이다.
당시는 이곳을 서술원(西戌院)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서수원(西水院)이라 부른다.
8. 좌성산(左城山, 左聖山) : 서운산의 다른 이름으로 좌성사가 있으며,
백제시대 축성한 산성임. 일명, 서운산성(瑞雲山城).
출토되는 유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임진왜란 때 의병장 홍계남(洪季男)이 북상하는 일본군을 방어하기 위해 의병을 지휘하여 수축(修築)하였다고 전한다.
9. 위례성(慰禮城,523m)-천안시 입장면~북면의 부소산(扶蘇山)에 있슴.
위례성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한 산성이다. 성내 면적은 5,700평이고, 성채의 길이는 900m에 이른다. 위례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처음으로 도읍지를 삼은 곳인데, 백제시조 온조왕이 건국한지 13년 만에 경기도 광주 한성(漢城) 옮겼다고 전함. 직산 위례성 백제시대(bc18~6년, 13년)
《삼국유사》에는 충남 천안시 직산읍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근의 학설에는 이곳 직산이 가장 유력한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례산성은 전쟁이나 위급한 상황에 소용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이 산성에 1,690척의 성이 있고, 우물이 하나 있다고 되어 있다.
10. 협탄령(脇呑嶺) : 협탄령>렵둔령>엽둔(돈)령>엽전재로 음훈 변화됨.
천안시 직산읍~입장면~안성 청용사~진천 백곡면~진천읍 도당산성을 잇던 백제와 신라의 교통로.
신라가 백제의 땅을 빼앗고 <백제의 옆구리를 삼켰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 지금은 엽돈재, 엽전재라 부름. 만뢰산이 분기하며, 금북정맥의 주능선 길이며. 백제초도 온조왕의 부소산 위례산성이 있다.
11. 소사벌(素沙伐, 素沙坪 / 안성시 양성면: 사복홀(沙伏忽)-새밝골)
경기도 평택시~안성시~천안시 성환지역의 안성천변(한천,홍경천,안성천)의 넓은 평야지대를 말함.
12. 한천(漢川, 大川)-통칭 소사벌이 있는 안성천을 말하며,
안성~양성현의 경계 하천임.
아래로 인천(仁川-지금의 충남 아산시 인주면)으로 흐른다고 1872년 직산현, 양성현 고지도에 전함.
13. 청룡사 [靑龍寺]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1265년(고려 원종 6) 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明本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대장암(大藏庵)이라 하였으나 1364년(공민왕 13)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고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 다니다가 이곳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14. 해골 물 큰 깨우침
신라의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제1차 고구려의 육로를 통한 유학길이 실패하자, 제2차 해로(海路)를 선택, 당나라 유학길(AD661년)에 오른 원효와 의상은 김무력~김서현~김유신장군 가문(家門)이 개척한 신라의 육로를 통해 당항(黨項, 唐項-당나라로 가는 길목)의 지름길인 협탄령(脇呑嶺-백제의 옆구리를 삼키다, 진천~입장. 서운산 엽전재) 대당교역로(對唐交易路)를 따라 안전성이 우선 보장되는 충북 진천 도당산성(都堂(唐)山城, 일명-渡唐山城)~돌고개(백곡면 석현리)~서수원~협탄령~청룡사~입장(안성)~직산(양성)~평택(팽성)~대진(大津.漢津) 평택항 괴태길곶(槐台吉串, 홰대기곶,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봉수대)의 봉화산 수도사(修道寺)에서 <해골 물>을 마시고 대오각성하며 다시 협탄령(엽전재)을 거쳐 신라 경주로 되돌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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