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羅

원효대사

吾心竹--오심죽-- 2009. 9. 16. 20:01

 
소장 조회 7 | 09.08.28 11:36 http://cafe.daum.net/kjg1234/Lt4r/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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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元曉, 617년~686년)는 신라고승이다. 원효는 법명이고, 속성은 설(薛), 속명은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이며, 호는 화정(和淨)이다. 설총의 아버지이다.

 

생애

 

잉피공의 손자이자 내마 담날의 아들로 상주(湘州) 불지촌(佛地村)에서 태어났다. 그 어머니가 꿈에 유성(流星)이 품속으로 드는 것을 보고 원효를 임신하였으며 만삭(滿朔)이 된 몸으로 압량군(押梁郡)의 남불지촌(南佛地村) 율곡(栗谷) 마을을 지나다가 사라수(沙羅樹) 아래 이르러 갑자기 낳았는데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그때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 한다.

 

어려서 서당 또는 신당으로 불렸으며, 15세 때 또는 28세 때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황룡사(黃龍寺)에 들어갈 때 집을 희사하여 초개사(初開寺)를 세우게 했으며, 자신이 태어난 사라수 옆에도 절을 세워 사라사(沙羅寺)라 하였다.

영취산(靈鷲山)의 낭지(郎智), 흥륜사(興輪寺)의 연기(緣起)와 고구려 반룡산(盤龍山)의 보덕(普德) 등을 찾아다니며 불도를 닦으니 뛰어난 자질(資質)과 총명이 드러났다.

34세 때인 650년(진덕여왕 4년) 의상과 함께 당나라 고승 현장에게 불법을 배우러 가다가 요동(遼東) 근처에서 고구려 순라군(국경경비대)에게 잡혀 첩자로 오인받았다가 풀려났다.

 

661년(문무왕 1년) 다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길에 당항성(唐項城)근처의 한 무덤에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목이 말라 달게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다시 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마음이 죽으면 곧 해골이나 다름이 없도다(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龕墳不二).
부처님 말씀에 삼계(三戒)가 오직 마음뿐이라 한 것을 어찌 잊었더냐?

라는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달아 유학을 포기한다. 그 뒤 분황사(芬皇寺)에 있으면서 독자적으로 통불교(通佛敎)를 제창하며 민중 속에 불교를 보급하기에 노력했다.

하루는 마음이 들떠 거리에 나가 노래하기를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는냐, 내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로다.”라고 하니 사람들이 듣고 그 뜻을 몰랐으나, 태종무열왕이 듣고 “대사가 귀부인을 얻어 슬기로운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라며 요석궁(瑤石宮)의 홀로된 둘째 공주—흔히 요석공주—를 짝되게 하니, 과연 공주가 아이를 배어 설총(薛聰)을 낳았다.

 

스스로 실계(失戒)한 원효는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자칭하면서 속세의 복장을 하고 마을에 나다니다가 우연히 한 광대가 괴상한 을 가지고 춤과 만담을 벌이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은 물건을 만들어 《화엄경》의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에서 ‘무애’를 따라가 박의 이름을 짓고 〈무애가(無碍歌)〉라는 노래를 지어 춤추고 노래하며 여러 마을을 돌아다녔다. 이에 세상사람 중 염불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으니 원효의 교화가 그렇게 컸다.

수많은 저서를 남기고 70세 되던 해 음력 3월 30일 혈사(穴寺)에서 사망했다. 뒤에 고려 숙종이 대성화정국사(大聖和靜國師)라는 시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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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실로 불교 사상의 종합과 실천에 노력한 정토교(淨土敎)의 선구이며 또한 으뜸가는 저술가이기도 하였다.

 

 

대승기신론소

대승기신론소는 7세기 신라의 승려 원효의 철학 저서이다. 원효의 해동종 불교철학의 기본원리들이 저술되어 있다. 당시 동방의 불교학계에 ≪해동소≫라는 이름으로 널리 보급되고 있었다.

원효는 이 저서에서 선행시기 불교철학차상조류였던 중관파와 유식파의 견해들을 비판하고 절대적인 정신의식인 ≪일심≫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불교관념론 철학을 저술하였다. 책에서는 자연이나 인류가 출현하기 전에 절대적인 정신의식(일심)이 존재하였다고 하면서 그것은 일체 사물의 본원이며 모든 현상에 내재하는 본질이므로 사람도 포함한 세계의 모든 것은 다 여기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일심≫의 운동이며 ≪일심≫의 자기발전이다. ≪일심≫은 처음에는 그 어떤 물질적인 오염도 받음이 없이 순수하고 추상적인 상태로 존재하고 발전하다가 불순하고 물질적인 것의 작용을 받으며 오염세계(자연, 사회)로 진화된다. 이것은 다시 발전하여 자기본래의 정신세계로 돌아가(일심환원) 자기 발전을 완성한다.

 

책에서는 이러한 객관관념론의 원리에 기초하여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깨닫고 부처로 되는가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이란 원래는 순결한 것인데 오염된 물질세계의 영향을 받음으로 하여 번뇌심이 일어나고 ≪나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때 불교의 교리에 따라 자기 마음을 수양하게 되면 물질세계에서 오염된 불순한 중심요소들을 제거하고 본래의 순결한 정신상태로 돌아가게 되며 ≪진리를 깨닫고≫ 부처로 되게 된다

 

금강삼매경론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은 신라의 고승 원효가 지은 《금강삼매경》의 해석서이다. 신문왕 6년(686년)에 이룩된 것으로 3권 1책의 목판본이다.

권1에서는 《금강삼매경》의 대의(大意)를 논하고, 마음의 근원은 홀로 정(淨)하여 아공(我空)·법공(法空)·구공(俱空) 3공(空)의 바다는 담연(湛然)한 것이라 하고, 결국 무리(無理)의 지리(至理)와 불연(不然)의 대연(大然)으로서 이 경의 종지는 개합(開合)의 별(別)이 있어서 합하면 일미관행(一味觀行)이 요(要)가 되고 열(開)면 10중법문(十重法門)이 종(宗)이 된다고 하였다.

 

권3에서는 경제(經題)를 말하고, 다음에는 분과(分科)하고, 이어서 본문에 대하여 논석(論釋)을 했으나 장귀(章句)에 대한 주석이 아니고, 경의 이론에 대한 구명(究明)이다.

 

그는 이 책 속에서 불교의 진리를 비유하여 "물이 장강 속에 있으면 이름지어 강수(江水)라 하고, 물이 회수(淮水) 속에 있으면 이름지어 회수(淮水)라 하며, 물이 황하(黃河) 속에 있으면 이름지어 하수(河水)라 하나, 함께 모여 바다속에 있으면 오직 이름하여 해수(海水)이니, 법(法)도 역시 이와 같아서 다함께 모여 진여(眞如)에 있으면, 오직 이름하여 불도(佛道)일 뿐이다.(水在江中, 名爲江水, 水在淮中, 名爲淮水, 水在河中, 名爲河水, 俱在海中, 唯名海水, 法亦如是, 俱在眞如, 唯名佛道)"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만법귀일(萬法歸一) 또는 만법귀진(萬法歸眞)을 굳게 믿고, 이에 따라 그의 모든 사상과 생활을 이끌어갔음을 잘 나타내는 하나의 예증이라 하겠다.

그는 '하나'를 강조하였는데, 그 '하나'의 이해는 원효의 사상과 생활을 아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 '하나'를 원효는 '1심(一心)'이나, '제9식(第九識)'이니 또는 '대승(大乘)'이니, '불성(佛性)'이니, '열반(涅槃)'이니 하고 불렀던 것이다. 결국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이름들은 앞서 보아온 강수(江水)·회수(淮水)·하수(河水) 등의 예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일각(사람의 마음)이 일심이고 일심(자신의 마음)에서 일각을찾을수 있다.

본각은 자신의 청정한 마음인데 이 본마음을 찾으면 진여한 마음으로 들어가는

첫시발점이 된다고 볼수있다.

깨달음의 상승의 효과는 그마음을 찾으면 생사여탈뿐만이 아니라 여여한

마음을 가지고 진여의 마음으로 들어갈수 있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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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것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도 없는 것

            모든 것이 마음이요 만 가지 일이 오직 생각이다

            다만 마음 따라 생기고 마음 따라 사라질 뿐이라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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