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가라매 고을의 다섯 봉우리 오대

吾心竹--오심죽-- 2009. 8. 28. 15:46

가라매 고을의 다섯 봉우리 오대

 

- 오대산의 대(臺)는 단순히 '봉(峰)의 의미 -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배우리

 

060900 땅이름 기고 50매 땅기 조선일보 산 월간 산 백두대간 산21 `진고개~구룡령(오대산)


 


  강줄기가 좁은 골 지나 활짝 열린 곳 / 江出峽門開
  굽이진 곳 백 길 높이 자리한 선원(禪院) / 禪房百尺常
  맑은 물엔 하얀 자갈 환히 보이고 / 淸流分素礫
  오솔길엔 푸른 이끼 온통 뒤덮였구려 / 細逕入蒼苔
  세상을 그냥 초월하면 그만인 것을 / 直可超三界
  뭣 때문에 오대산을 굳이 가려 하시는고 / 何須向五臺
  동쪽 개울에 병들어 누운 거사님 / 東溪病居士
  한 해 쉬고 돌아올 그대를 기다림세 / 遲汝隔年回
     -이식(李植). 택당집(澤堂集)
  ※ 울암(鬱巖)에서 노닐 적에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혜종(惠宗) 선사에게 작별 선물로 준 시. 울암은 지금의 강원도 원주 지정면 월송리의 한 지명.

  두 번 호숫가로 나를 방문했나니 / 再度湖邊訪
  그대의 지성스런 후의가 고마워라 / 憐渠厚意勤
  몇 번이나 삼도의 달을 보았던고 / 幾看三島月
  다시 오대산 구름 속으로 들어가네 / 還入五臺雲
  맑은 새벽 방장실 정갈히 소제하고 / 丈室淸晨掃
  고요한 밤에 좋은 향은 사를 터이지 / 名香靜夜焚
  멀리서 알겠노니 예불을 마친 뒤 / 遙知禮佛罷
  가부좌 틀고서 경문을 외리란 것을 / 趺坐誦經文
     -이산해(李山海). 아계유고(鵝溪遺稿)
  ※ 삼도(三島)는 일본을 지칭한 말로, 일본에서 오랜 시일을 보냈음을 뜻함.

 

□ 문헌에 나타난 오대산 이름 유래 
  옛 문헌들에서는 강원도의 오대산을 '오대산(五臺山)'으로 쓴 것 외에 뒷음절 '산(山)'을 뺀 '오대(五臺)'로 쓴 것을 적지않게 볼 수 있다.
  즉, 대(臺) 자체를 그대로 '산(山)'이란 말에 대신한 것이다.
  <대동여지도>에서는 대(臺)를 굴(窟), 덕(德)과 함께 산지 지명에 포함시켰다. 이 지도에서는 대(臺)가 무려 96개나 나온다.
  산지에서 고원이나 대지(臺地)에 해당되는 지명이 바로 대(臺)와 덕(德)이다. 즉, 대는 경포대(鏡浦臺-강릉), 강경대(江景臺-논산), 낙수대(落水臺-안동)와 같이 정자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야산을 뜻한다. 덕(德)은 오늘날의 高原(고원)을 뜻한다. '고원'이라는 용어는 조선시대엔 별로 사용치 않았으므로 학자들은 덕을 고원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고 있다.
  대(臺)의 사전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차나 항공기, 기계 같은 것의 수를 세는 데 쓰는 말
  ② 수, 연수(年數), 액수 따위의 다음에 쓰여 그 대체의 범위(範圍)를 나타내는 말
  ③ (흙, 돌 등으로 높이 쌓아 올려)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곳
  ④ 물건을 받치거나 올려 놓는 물질의 통틀어 일컬음
  땅이름에서의 '대'의 뜻은 위 ③에 해당할진대, 이것은 옛 사람들이 흔히 생각해 왔던 뜻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대(臺)'의 한자는 형성문자로, 土, 高의 생략 글자, 至가 합쳐진 것이다. 즉, 흙을 높이 쌓고, 사람이 올 수 있게 만든 전망대란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로 보인다. (※ 台를 臺의 약자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오대산이란 이름에서의 '대'는 위의 자원(字源) 설명처럼 '사람이 올 수 있게 만든 전망대'란 의미는 아닐 것이다.
  여말선초의 학자이며 문신인 권근(權近. 1352∼1409)은 오대산의 이름 유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강원도의 경계에 큰 산이 있는데 다섯 봉우리가 함께 우뚝하다. 크기가 비슷하면서 고리처럼 벌렸는데, 세상에서는 오대산(五臺山)이라고 부른다. 봉우리의 가운데 것은 지로(地爐), 동쪽은 만월(滿月), 남쪽은 기린(麒麟), 서쪽은 장령(長嶺)이라 하며, 북쪽은 상왕(象王)이라 한다. 드디어 오류성중(五類聖衆)이 항상 머문다는 말이 있고 불가에서 성대히 칭송하지만, 우리 유가에서는 증거할 것이 없으므로 자세하게 적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오대산'이란 이름은 '다섯'이라는 뜻과 '산(봉우리)'의 뜻인 '대'가 합쳐져 나온 이름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의 대(臺)는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인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사전적인 뜻처럼 꼭대기가 평탄해서이거나 야산(野山)의 뜻으로 '대'를 취한 것도 아니다. 편하게 말한다면, '오대산'은 '오봉(五峰)'과 뜻이 거의 같은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가라매'로 불렸을 오대산 일대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오대산 일대의 고을 이름이 '지산현(支山縣)'으로 나온다. 즉, 지금의 강릉시 연곡면, 사천면, 주문진읍 일대를 그렇게 불렀는데, 이 이름은 고려시대에 와서 '연곡현(連谷縣)'으로 바뀐다. 즉, '지(支)'가 '연(連)'으로 대역되었고, 산(山)'이 '곡(谷)으로 대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곡현은 뒤에 강릉(명주) 고을에 속한 연곡면으로 되었고, 이 이름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강릉시의 한 면이름으로 자리잡는다.
  한자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삼국시대 이전에는 모든 고을이 거의 순 우리말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당시에 한글이 있었다면 당연히 이를 제대로 포기했을 것이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았던 우리 조상들은 뒤에 이를 문자화할 때 어쩔 수 없이 한자를 빌어 표기를 했던 것. 이렇게 하여 토박이 땅이름들이 소리빌기(음차)나 뜻빌기(의차)의 한자 옷을 입고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따라서, 당시의 한자 지명을 잘 뜯어 풀어나가 보면 그 원이름을 어렴풋이나마 알아 낼 수가 있다.
  오대산 일대의 삼국시대 지명 '지산(支山)'과 고려시대의 지명 '연곡(連谷)'을 결부시켜 보면 이 곳의 원래 땅이름은 '갈  (가라매)' 또는 '갈 (갈매,갈메)'일 가능성이 짙다. '지(支)'는 '재'의 음차로 쓰인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뒤에 '연(連)'이 '지(支)'에 바탕을 두었을 것으로 보아 '갈' 또는 '가 '라는 원말을 유추할 수 있다.
  '갈'은 '갈라짐' 또는 '연달아 이어짐'을 뜻한다. 따라서, '가라매(갈매)'는 '갈라져 나간 산' 또는 '산이 이어져 나간 줄기(支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 지형을 보더라도 오대산 일대에서 큰 산줄기가 서쪽으로 크게 갈라져 나와 있다. 동해안쪽으로 이어져 내린 백두대간이 오대산 부근에 큰 산무리를 만들고, 여기서 서쪽으로 큰 산줄기를 뻗혀 계방산, 태기산, 금물산, 용문산, 유명산 등의 봉우리를 솟구며 남한강과 북한강의 분수령을 만들고 있음을 본다.
  '지산(支山)' 또는 '가라매'라는 이름이 꼭 산줄기를 크게 가른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어떻든 이 이름이 오대산의 지형과 관련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 지형과 거리가 먼 산맥 이름들
  오대산에서 산줄기가 길게 갈라져 나갔음을 얘기한 김에 '산맥(山脈)'이라는 명칭과 관련해서 언급할까 한다.
  우리 한반도의 큰 동맥이라 할 수 있는 백두대간은 개마고원을 따라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동해안을 따라 동남쪽으로 뻗어 내리고, 태백산 부근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꺾여 멀리 남해안 끝까지 닿는다. 따라서, 지금의 남해안의 한 산줄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계속 북쪽으로 가면 어느 하천도 건너지 않고도 백두산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익히 배워 온 산맥의 이름들은 장백, 마천령, 함경, 낭림, 강남, 적유령, 묘향, 언진, 멸악, 마식령, 태백, 추가령(구조곡), 광주, 차령, 소백, 노령산맥 등이었다.
  이 이름들은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藏文次郞)가 1903년에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 기초하여 일본인 지리학자 야스쇼에이(失洋昌永)가 재집필한 <한국지리>라는 교과서에 기인한다.
  이 산맥 이름들은 지질구조선 즉, 암석의 기하학적인 모양(形), 이것들의 삼차원적 배치의 층층을 기본선으로 한 것으로 땅 속의 맥 줄기를 산맥의 기본개념으로 한 것. 예를 들면, 광주산맥은 금강산 북쪽에서 시작하여 북한강 상류를 건너 북한산에 이르고 다시 남쪽으로 한강을 건너 관악산과 광교산으로 이어 놓고, 차령산맥은 설악산과 오대산 근처에서 시작되어 남한강을 건너 금강 하류를 끼고 돌아 대천 뒤쪽으로 이어 놓고 있다. 즉, 이러한 지도로만 보면 많은 산맥들이 강이나 내를 건너뛰고, 능선과 능선을 넘나들고 있다.
  일제 때는 '산맥'이라는 개념 자체를 땅 위의 어떤 선상(이어짐)을 기준하지 않고 땅 속의 구조선을 기준하고 있어 우리 조상들의 산경-수경 개념과는 전혀 달랐다. 쉽게 얘기하면, 우리 조상들은 땅의 모양(지형)을 기초로 하여 산줄기를 이어 표시한 데 반해 일본인은 땅의 성질(지질)을 따라 선을 이어나가 이를 '광주산맥', '차령산맥'식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제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교과서를 통해 익혀 온 여러 산맥들 중에는 그것이 우리 옛 지도에서의 어느 정맥에 해당한다는 식의 논리로 말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한 세기 전의 낡아빠진 한 학설이 '우리'라는 '채'에 아직도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남아 우리 땅의 산줄기와 아무 관계도 없이, 우리 생활과 아무 관계도 없이, 그리고 자연지리의 활용면에서도 별 도움 없이 지금도 학교에서 그대로 교육하고 있어 이의 시정이 시급하다. (※ 북한에서는 지리 용어로 '산맥' 대신 '산줄기'란 말을 사용한다. 따라서, 북한 지도에서는 '□□산맥'식의 이름은 없다.)

 

□ 도선에 의해 '대간'이란 낱말 처음 나와
  '대간(大幹)'이란 말은 고려 초(10세기 초반)에 유명한 풍수가이며 승려인 도선(道詵)에 의해서 최초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백두대간을 의미하는 '대간(大幹)'이란 말이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1751)이다. 그리고, '백두대간'이라는 고유명사적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그 10년쯤 후인 1760년경 이익(李瀷)의 <성호사설>에 의해서였다.
  그 뒤, <산경표>(1770년경)의 저자 신경준(申景濬)은 백두대간의 산줄기 상황을 보다 상세화하고 표로써 제시하였다. 그에 의해서 '백두대간'이란 용어는 당대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 대간의 구체적 내용도 알기 쉽게 체계화되었다. 그 후에도 다산 정약용(丁若鏞)이 그의 <대동수경(大東水經)>(1814)에서 '백산대간(白山大幹)'이 풍수지리상의 용(龍)에 해당된다며 백두대간에 관해 언급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산맥(山脈)'이란 말을 써 오기는 했지만, 일반인들은 '산줄기'란 말을 더 많이 써 왔다. 풍수에서는 '지맥(地脈)'이란 말을 많이 써 왔는데, 이것은 '산맥'이라는 개념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산맥'이란 말을 지금의 우리 국어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해 놓고 있다.
  ㆍ산맥=산줄기 (산지가 좁고 길게 연속되어 있는 지형)
  ㆍ산줄기=뻗어 나간 산의 줄기. '산발'과 같은 말
  즉, '산맥'의 사전적 의미는 이처럼 버젓이 지형과 결부하여 정의되어 있다. 이러한 지형적 의미의 '산맥'이라는 단어 앞에 '광주'니 '차령'이니 하는 지명을 달아, 지형적이 아닌 지질적으로 설명되는 그 줄기들에 '광주산맥'이니 '차령산맥'이니 하는 고유명사를 만들어 붙인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것이 지표면의 줄기가 아닌, 지하의 줄기(지질맥)임에도 실제의 산줄기가 그렇게 지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차령산맥'이라고 하면 사실상 지하의 맥을 기본으로 한 것임에도 차령을 지나는 산줄기(지상의 줄기)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요즘 학계에서 백두대간(白頭大幹), 한북정맥(漢北正脈), 호남정맥(湖南正脈)식의 산줄기 이름을 공식화하자는 주장이 일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학자들은 우리 조상의 지형 개념의 산줄기 개념이 보다 과학적이고, 산줄기 이름이나 모든 지리 용어가 일본식으로 된 점을 지적하고, 지금부터라도 교과서를 우리식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러는 한북정맥이니 금남정맥이니 하는 것이 단순히 강을 기준으로 붙여진 것이어서 합당치 않다며 아예 새로운 이름을 붙이자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 사라진 차령산맥, 그 진실은?
  10여 년 전, 나는 회원들(한국땅이름학회 한강 탐사반)과 함께 남한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시에서부터 한강 줄기를 따라, 도보로 또는 고무보트를 타고 경기도 김포의 한강 하구까지 답사를 한 일이 있었다. 물줄기만 따라 탐사를 했으므로, 즉 물의 흐름을 따라 계속 흘러내려가기만 했으므로 우리 일행이 작은 고개 하나라도 넘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따라간 물줄기를 우리가 보통 보아 온 지도로 보니 두 개의 산줄기를 넘은 것이 아닌가. 그 하나는 경기도 여주 부근에서의 차령산맥이었고, 다른 하나는 구리시와 광주 땅을 잇는 광주산맥이었다. 분명히 지도상에서는 이 두 산줄기가 우리 일행이 지난 남한강 줄기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 (당시 살펴본 지도는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였다.)
  이 어찌 된 일인가?
  지도가 이렇게 된 것은 지도 속에 표시된 산맥이 지형에 따라 그려진 것이 아님을 답사를 통해서도 확실히 알게 된 나는 우리 조상들이 그린, 산줄기를 평지에까지 올바르게 지형적으로 자세히 그려 낸 옛 지도의 가치를 더욱 높이 사게 되었다.

  2005년 1월 14일 KBS TV 뉴스를 통해 '사라진 차령산맥, 그 진실은'이라는 제목으로 산맥지도에 관한 보도가 나간 일이 있었다.
  -앵커: 최근 국토연구원이 새로 발표한 산맥지도가 논란과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차령산맥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앵커: 교과서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처럼 쓰여졌던 차령산맥이 왜 없다는 것일까요? 그 근거를 김태욱 기자가 추적해 봤습니다.
  -기자: 강원도에서 충청도까지 한반도 남쪽을 가로질러 이어지고 있다는 차령산맥. 하지만 이번에 국토연구원이 새로 발표한 산맥지도에는 이런 산줄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KBS 항공 1호기는 지금 차령산맥이 태백산맥으로부터 갈라져 뻗어나가기 시작하는 지점으로 알려져 있는 오대산 상공을 날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부터 차령산맥 방향인 서남쪽으로 계속 내려가 보겠습니다. 북쪽에 보이는 설악산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차령의 중간 기착지라는 치악산이 구름 사이로 수줍게 봉우리를 드러냅니다. 굽이굽이 이어진 오대산 줄기를 따라 계속 내달리다 보면 어느새 치악산 정상이 눈앞입니다. 하지만, 산을 넘어서자마자 산세가 눈에 띄게 작아집니다. 이 낮은 구릉지대마저 곧 남북을 관통해 흐르는 남한강에 가로막히고 맙니다.
  -김송걸(KBS 항공 1호기 기장): 이거 맥이 끊어진 거야.
  -기자: 위에서 보면 확실히 끊긴 거예요?
  -김송걸: 끊겨 있지.
  -기자: 이곳 남한강을 만나면서 오대산에서부터 치악산을 넘어 이어져 내려오던 산줄기는 완전히 맥이 끊겼습니다. 충청도까지 길게 가로질러 있다던 차령산맥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산맥과 실제 지형이 서로 다르다는 주장은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현진상(산악인 한글 산경표 저자): 산악체계의 지도로는 산을 다닐 수가 없습니다. 고지도에 나타난 산줄기대로라면 얼마든지 종주가 가능합니다.
  -기자: 실제로 조선 후기에 제작된 우리의 대동여지도나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이 끊김없이 이어지는 반면, 차령산맥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산맥 모습도 새 산맥지도와 거의 일치합니다. 일본인 지질학자가 현재 산맥체계를 만든 시기는 산경표보다 100년이나 후대인 1903년. 과거에 없었던 차령산맥이 갑자기 생겨나게 된 이유는 뭘까?
  -양보경(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 지리학계에서는 지질구조라든가 또 여러 가지 단층선, 이런 것에 의거해서 교과서에서 활용을 해 왔었던 거죠.
  -기자: 강으로 단절돼 있더라도 같은 지질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한 산맥으로 봤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국토연구원의 조사 결과 근거 없는 주장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김영표(국토연구원 CJS연구센터장): 한반도의 산이 지질 구조로 돼 있는지 한번 살펴봤습니다. 살펴보니까 지질 구조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기자: 오히려 애초부터 조사 자체가 빈약했거나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영표(국토연구원 CJS연구센터장): 망아지 4마리 하고 인부 6명을 데리고 가서 우리나라 전부를 답사했다고 하는데 14개월 동안 답사해 봤자 얼마나 답사를 했겠습니까?
  -기자: 결국 우리 지리학계가 지난 100년 동안 아무 비판이나 검증 없이 일본인이 만든 산맥지도를 받아들여 후대에 가르쳐온 셈입니다. 이 때문에 혈맥처럼 이어진 백두대간은 허리가 끊겼고, 있지도 않은 차령산맥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정용미(환경운동연합 백두대간 보전팀장): 사실 80년대부터 산맥체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 왔었는데 정부나 학계에서 노력을 게을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이번 새 산맥지도의 발표가 우리 산의 본모습을 되찾았다는 기쁨보다 더 큰 충격과 허탈감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KBS뉴스 김태욱입니다. 
  이러한 주장이나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주위에 맴도는 '산맥' 관련 지식은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일부 학계의 입김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 오대산과 차령이 직접 손잡았다고?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보면 차령산맥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해 놓고 있다.
  '태백산맥은 힘찬 기세로 금강산, 설악산을 지나 대관령, 소백산, 태백산으로 이어지는데 태백산맥이 대관령을 넘기 전에 곁가지 하나를 늘어뜨린다. 이것이 바로 차령산맥으로 이 산맥은 치악산을 걸쳐 충청남북도를 관통해 서해의 대천 앞바다로 이어지는 성주산에서 마감한다. 태백산맥이 차령산맥으로 갈려나가는 지점, 즉 차령산맥의 발원지가 되는 곳에 우뚝 솟은 산이 바로 오대산이다.'
  즉, 오대산에서 가지를 친 차령산맥이 서해안까지 직접 달려갔다는 것이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과 공주시 유구읍 경계에 있는 고개 높이 240m, 예산 남동쪽 11km, 공주 북서쪽 22km 지점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차유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차령산맥을 넘는 고개로 양장로를 이루며, 남금강의 지류인 유구천과 북서류하는 무한천이 이 곳에서 발원하며, 두 하천의 분수령이 된다. 높이 180m, 공주 북쪽 22km, 천안 남쪽 16km 지점으로 차령산맥을 넘는 고개이다. 예로부터 이 고개를 경계로 하여 호서와 호남지방을 지방을 구획해 왔으며, 금강의 지류인 정안천과 곡교천이 여기서 발원하여 두 하천의 분수령이 된다.'
이것은 공주시의 한 농협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의 '차령' 설명 내용.
  그러나, 지형상으로의 차령산맥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우리는 지금의 지형도에서 오대산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충남의 서해안까지 닿는 산줄기를 접하게 되는데, 실제 등고선을 따라 선을 그려 나가 보면 그러한 차령산맥의 선이 절대로 그려질 수가 없다.
  위에서 언급한 성주산, 차령 등의 산, 고개가 있는 곳은 대동여지도상에서 보면 금북정맥(錦北正脈)이다. 이 정맥은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북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한 맥으로, 죽산(안성)의 칠현산에서 시작하여 경기도 안성, 충청도의 공주, 천안, 청양, 홍주, 덕산, 태안의 안흥진에 이어지는 금강 북쪽의 산줄기이다. 즉, 오대산에서 뻗어 내려왔다는 종래의 차령산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충청북도와의 경계를 이루는 차령산맥에는 서운산(瑞雲山:547m)을 최고봉으로 500m 안팎의 산지가 솟아 있고, 이 산맥 중의 덕성산(德成山:519m)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칠현산(七賢山:516m), 칠장산(七長山:492m), 도덕산(道德山:366m) 등이 솟아 있으며, 이들 산지가 형성하는 능선을 따라 안성시는 동서 2개의 지형구로 나누어진다. 또한 북쪽 용인시와의 경계 부근에는 구봉산(九峰山:465m), 비봉산(飛鳳山), 쌍령산(雙嶺山) 등의 구릉성 산지가 이어진다. 그러나, 군의 남서쪽과 북동쪽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지는데 특히 남서쪽의 안성평야는 넓고 비옥하다.'
  여행 관련의 한 홈피에서도 경기도 안성시 부분에서 이처럼 차령산맥을 설명하며 거기에 속한 여러 산들을 들고 있는데, 사실 이들 산이 모두 금북정맥과 한남정맥(漢南正脈)에 있는 것이지, 오대산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한강을 넘어온다는, 실제 있지도 않은 차령산맥에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 오대산은 한가람을 만들어 내고
  백두대간 중의 오대산은 산과 물의 관계에서 두 가지의 큰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이 산에서 갈라져 나간 산줄기가 남한강과 북한강의 유역권을 구분지어 놓은 것이고, 또 하나는 그 한강물의 발원지가 되어 준다는 점이다. 실제, 물줄기의 길이로 보아서는 오대산에서 나온 물줄기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보기 어려우나, '큰 강은 명산(名山)에서 그 물줄기를 시작한다'는 옛 사람들 생각에 근거하여 보면 이 산은 분명히 한강의 상징적 발원지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학자 권근도 오대산의 우통수에 관해서 이렇게 언급하였다.
  '(오대산) 서쪽의 누대 아래에 함천(檻泉)이 솟아나는데, 빛과 맛이 보통 물보다 낫고 물무게 또한 그러하다. 그 물을 우통수(于筒水)라고 하며 서쪽으로 수백 리를 흘러서 한강(漢江)이 되고, 바다로 들어간다. 한강이 비록 여러 곳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모인 곳이나, 우통수가 중령(中 令)이 되며, 빛과 맛이 변하지 않아서 중국의 양자강(楊子江)이 있는 것과 같으며, 한강이라는 명칭도 이 때문이다.----'
  -오대산 서대 수정암 중창기(五臺山 西臺 水精菴 重創記)
  '우통수(于筒水) 부 서쪽 1백 50리에 있다. 오대산 서대(西臺) 밑에 솟아나는 샘물이 있는데, 곧 한수(漢水)의 근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강릉편

  어떻든, 가라매골의 오대산은 우리 한반도 중부지방의 젖줄인 한가람(한강)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품 안에서 자아낸 물을 키워 한강이라는 큰 물줄기를 이루어 놓았고, 긴 등줄기로 그 물줄기를 거의 같은 양으로 갈라 남한강, 북한강으로 나누어 흐르게 했다. (결국, 이 두 물줄기는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하나로 합한다.)
  그래서, '갈림(支)'과 '이음(連)'이란 뜻의 '가라매', '이음골(연곡)'이라는 이름이 더욱 돋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글. 배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