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이것이 ‘歷史’다
기사입력 2004-07-23 17:27 최종수정 2004-07-23 17:27
1971년 7월5일, 문화재관리국은 공주의 문화재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작업 중 새로운 전돌무덤이 발견되었다는 특급보고였다. 신속히 김원룡 국립박물관장을 단장으로 한 발굴단이 조직돼 현장에 급파된다.
발굴단은 우중에 철야작업까지 해가며 백제 무령왕릉 발굴이라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낳는다. 1,300년이 지나 홀연히 나타난 백제 무령왕. 도굴되지 않은 처녀분인 무령왕릉에서는 왕의 이름과 출생·사망연대를 기록한 지석을 비롯, 108종 3,000여점에 달하는 엄청난 유물을 쏟아냈다. 피장자의 이름이 밝혀진 고대 임금의 무덤이 발굴된 것은 처음 있는 일. 그만큼 무령왕릉은 수수께끼로 가득찬 고대사를 해독할 블랙박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발굴은 한국 고고학사에 지울 수 없는 오명도 남겼다. 몇 달 걸려 해야 할 작업을 하룻밤 사이에 해치운 졸속발굴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30여년간 한국사 발굴의 현장과 함께 해온 중진 고고학자가 풀어낸 발굴 이야기이다. 저자는 직접 발굴에 참여했거나 관여한 주요 발굴 조사 30건을 들어 땅속에 묻힌 역사의 비밀을 파고 들어간다.
역사 문헌이 절대 부족한 현실에서 발굴은 읽어버린 역사를 찾아가는 작업이다. 발굴의 역사(役事)는 역사(歷史)를 만든다. 때론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기도 한다.
97~98년 광주 신창동 저습지에서 출토된 현악기·타악기, 베틀부속구(보디), 수레부속구 등은 마한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상을 확인시켜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특히 수레바퀴축, 바퀴살, 가로걸이대 등 수레기구는 기원 전후에 이미 마한지역에서 수레와 마차가 사용됐음을 보여준다. 2002년 전북 완주 갈동유적에서 완형으로 발굴된 거푸집은 한국 청동기 문화를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저자는 고고학을 ‘자유스러운 학문’으로 정의한다. 발굴 자료에 따라 역사 해석이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과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의 주인공이 일본인일 가능성을 조심스레 전망한다. 잇단 발굴로 ‘풍납토성=위례성’이 정설로 된 풍납토성에 대해서도 또다른 발굴 결과에 따라서는 ‘위례성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놓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발굴에 얽힌 흥미있는 에피소드들은 고고학이 우리 삶 가까이 있음을 말해준다. 함안 마갑총 발굴에 결정적인 제보를 한 신문배달 소년이나 충주 숭선사터 존재를 확인한 답사 모임의 일화를 상세히 소개한 것은 고고학이 전문가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경향신문에 연재됐던 기획물을 보완한 이 책은 발굴 현장을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뜻밖에 금관이 눈앞에 나타나자 너무나 놀라 말문이 막혔습니다”(경주 천마총 발굴)식의 증언이나 “연도를 따라 무덤방인 석실에 이르자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성 송악동 고분)는 체험적 묘사는 현장 중계방송을 보는 듯하다.
이 책에는 풍납토성 발굴, 광주 신창동 유적 등 아직 발굴보고서도 나오지 않은 최신 성과까지 포함돼 있다. 73년 ‘한국 고고학개설’(김원룡) 출간 이후 이렇다할 개설서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은 최근 발굴의 맥을 짚을 수 있는 고고학 입문서이자 일반인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는 대중서이기도 하다. 1만4천5백원.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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