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흥사 출토유물 고대사 규명의 열쇠">
2007년 11월 14일 (수) 07:36 연합뉴스
(부여=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지난달 24일 부여 왕흥사지(王興寺址)에 대한 제8차 발굴성과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 성과의 백미는 이곳 목탑 터 심초석(心礎石.중앙 기둥의 주춧돌)에 마련한 사리공(舍利孔)에서 출토된 백제 창왕(昌王) 시대에 제작 매납(埋納)된 사리구였다. 이 사리구는 사리를 안치한 금병(金甁), 그것을 감싼 은병(銀甁), 다시 그 은병을 안에다 넣은 동함(銅函)의 3중(三重) 구조였으며, 이 중 동함 겉면에서는 이 사리구를 백제 창왕이 정유년(丁酉年) 2월15일에 죽은 왕자를 위해 찰주(刹柱)를 세우고 사리를 안치했다는 내용의 글이 확인됐다. 조사단이나 학계, 언론의 관심이 이 사리구에 쏠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리구 외에도 무시 못할 유물들이 대거 수습됐다. 특히 사리구가 발견된 목탑 심초석 주변에서는 금제 귀고리와 금모(금 모자) 장식, 탄목금구(炭木金具.숯으로 심을 박은 금목걸이 장식), 금사(金絲), 각종 구슬, 비녀, 곡옥(曲玉), 청동 팔찌 등의 귀금속류가 다수 출토됐다. 고고학자로 고대 장신구와 금속공예품을 연구해온 대전대 이한상 교수는 부여문화재연구소가 이번 왕흥사지 발굴성과를 언론을 통해 공개하자, 사리구보다는 그것과 함께 출토된 다른 유물들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13일 왕흥사지 발굴현장과 부여문화재연구소가 수습해 보존처리 중인 이들 유물을 직접 관찰한 이 교수는 "이번 조사 성과는 한국 고대사를 고고학적으로 해명하는 관건이 된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삼국시대를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역사고고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유적과 유물의 연대를 두고 매번 논쟁이 벌어져 왔다. 다른 무엇보다 그것을 판정할 만한 절대적인 자료, 예컨대 이번 왕흥사지 사리함 명문(銘文)과 같은 확실한 근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525년에 백제 무령왕이 매장되고 529년에는 그의 왕비를 합장했다는 기록이 분명하게 나온 공주 무령왕릉 출토 유물이라든가, 643년에 공사를 시작해 645년에 완성됐다는 문헌기록이 남은 경주 황룡사 목탑의 하부 출토 유물처럼 땅 속에 묻힌 연대가 분명한 경우도 더러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가뭄에 난 콩처럼 한국 역사고고학계에서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 교수가 이번 왕흥사지 목탑 터 지하층 출토 유물을 주목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사리구를 창왕 재위 24년인 577년에 안치했으므로, 그 주변에서 출토된 각종 장신구 등의 유물 또한 같은 시기에 묻었음이 분명하다. 이 교수는 "삼국시대 한국고고학의 최대 약점은 유물의 편년 체계가 아직 안정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지만 이번 발굴을 통해 절대 매납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을 다수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컨대 이번 왕흥사지 동제 팔찌는 신라시대 적석목곽분인 경주 보문리 부부총의 축조 연대를 가늠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왕흥사지 팔찌가 경주 부부총 출토 팔찌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또, 탄목금구는 무령왕릉과 공주 옥룡동 고분, 그리고 청주 신봉동 고분에서도 출토된 적이 있어 이런 양식이 한성시대 후반기에서 사비 도읍기에 이르기까지 백제의 최고위층이 선호한 장식이었다는 사실도 더욱 확실해 졌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한편, 조사단은 각종 장신구 등의 유물을 탑을 세울 때 땅의 동티를 막기 위해 기초에다가 뿌리는 '진단구'(鎭壇具)로 간주했으나, 불교학 전공자인 박상국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실장은 "고고학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으나, 진단구라는 용어나 개념 자체가 이번 왕흥사지 발굴에서는 성립하기 어렵다"면서 "이 유물들은 모두 사리 공양품"이라고 못박았다. 불교에서 탑(塔)이란 간단히 말해 '부처님 무덤'이고, 이 경우 부처님 시신이 바로 '사리'이므로, 사리를 안치한 사리구 주변에서 발견된 각종 유물은 부처님(사리)을 무덤(탑)에 매장하는 의식을 행할 즈음에 내놓은 공양품이라는 것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오픈ⓘ와 함께하는 모바일 연합뉴스 7070>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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