稷山邑 行事記

구억마을 지명유래와 표지석 내용...군동리

吾心竹--오심죽-- 2017. 5. 27. 15:32

 

 

 

구억마을 지명유래.20170527.hwp

 

 

 

 

구억마을 지명유래

 

구억마을(구억말, 구억촌-九億村)의 지명은 직산현지(稷山縣誌, 1899년 간행)에 읍치 동변면 허문리(虛門里) 내구아리(內舊衙里) 외구아리(外舊衙里) 방축리 남산리 판정리 산직촌이 있는데 허문리(虛門里)와 내구아리(內舊衙里)는 구억말(군동1), 외구아리(外舊衙里)는 금성(군동2), 방축리는(군동3)1914년 일제강점기 천안군 성산면 군동리로 변경되었다. 구아리(舊衙里)의 발음이 구아말, 구아촌(舊衙村)이 변하여 구억말 구억촌으로 되었으며, 더 좋은 뜻의 한자 구억촌(九億村)이 되었다.

 

구억마을은 직산(稷山) 역사 중심으로 백제 온조왕의 첫도읍지 위례성(慰禮城, BC18~BC5)의 터 잡은 땅이며, 삼국의 각축장으로 고구려~신라시대에는 사산현으로 용에서 뱀으로 격하되었다. 고려초(936년경) 태조 왕건(王建)이 순행하며 직산최씨 최양유(崔良儒)에게 사직을 지켰다고 하여 이름을 직산이라 하였다(社稷之衛 因名稷山)고 후손 최홍재(崔弘宰) 묘비명에 전한다.

 

명소(名所)로는 백제시대 성산(城山, 사산성-蛇山城), 제원루(濟源樓) , 백제개국공신 조성(趙成, 직산조씨 시조)의 묘와 신도비, 직산현관아, 영소정 터, 도영지와 휴류암(부엉바위), 여단(厲壇, 당재), 아사산 송림(衙舍山 松林), 직산초등학교 등이 있다.

 

- : 윤종일 -

 

 

   

 

제원루

 

백제 옛터에 잡초만 절로 우거졌는데

내 여기 오니 감개하여 마음이 상하네

오룡이 천안부에서 싸워 끝나고

한 쌍 봉황 위례성에서 울어 마치었네

온조사당이 깊은데 단풍나무 어우러졌고

성거산이 둘러싼 곳엔 푸른구름 비꼈어라

누각에 올라 가을 바람에 생각 하 많은데

어드메서 부는 철적소리 들려오는가

 

濟源樓

 

百濟遺墟草自平

我來感慨一傷情

五龍爭罷天安府

雙鳳鳴殘慰禮城

始祖祠深紅樹合

聖居山擁碧雲橫

登樓多少秋風思

何處吹殘鐵笛聲

 

*사가정 서거정(徐居正 : 1420~1488)

 

 

 

 

 

직산현 객사에서 비를 만나 낮잠을 자다

 

사방 산 흐릿하고 구름 낮게 깔리더니

직산현 객사 앞에 휘몰아친 소낙비

후두둑 문을 때려 오뉴월이 시원해도

길 막혀 깊은 시름 풀리지 않는구나

뜨락 홰나무 버들 그늘 새들이 지저귀고

못 위의 연꽃 기운 바람결도 향그럽다

옷 벗고 편히 누워 낮잠이나 청해 볼까

 

 

 

稷山客館前雨驟至

 

四山漠漠雲垂地

稷縣館前雨驟至

洒戶鳴簷五月涼

道阻不解愁人意

庭畔鳥啼槐柳陰

池面風薰菡萏氣

解衣高枕吾且睡

 

*농암 이현보(李賢輔1467~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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